사나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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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나크트는 논란의 대상인 고대 이집트 제3왕조의 파라오이다. 사나크트의 존재는 베이트 칼라프의 마스타바 K2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입증되었지만, 그의 정체성과 제3왕조 내에서의 위치는 불확실하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조세르의 선왕으로 보지만, 최근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조세르의 봉인으로 인해 사나크트가 조세르 이후에 통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사나크트는 네브카로 동일시되기도 하며, 호루스 이름 '사'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재위 기간과 업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시나이 반도 원정을 통해 터키석과 구리 등 광물 자원을 확보했다. 사나크트의 무덤은 베이트 칼라프의 마스타바 K2 또는 조세르의 피라미드 서쪽에 있는 기스 엘-무디르의 미완성 구조물로 추정되며, 유해 분석 결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인증 사례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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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크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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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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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 이름 | 호르-사나크트 (Ḥr-S3.nḫt, 승리적인 보호자 호루스) |
재위 기간 | 기원전 2650년경 시작, 토리노 파피루스에 따르면 18년, 실제로는 더 짧을 것으로 추정 |
왕조 | 이집트 제3왕조 |
선왕 | 불확실, 세켐케트 (가장 유력) 또는 카바, 조세르, 카세켐위 |
후왕 | 불확실, 카바 (가장 유력) 또는 세켐케트, 후니, 카헤제트, 조세르 |
다른 이름 | 네브카 ?, 호루스 사 ? |
신상 정보 | |
아버지 | 카세켐위 ? |
어머니 | 니마아트하피 ? |
배우자 | 니마아트하피 |
매장지 | 베이트 칼라프의 마스타바 K2 ? |
2. 정체성
사나크트의 정확한 정체성과 제3왕조 내에서의 위치는 여러 논쟁의 대상이며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1] 그의 존재는 베이트 칼라프의 마스타바 K2에서 발견된 봉인 조각과 와디 마가라에서 발견된 부조 등을 통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만, 그의 구체적인 통치 시기와 가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1][16]
전통적으로 마네토나 토리노 왕명록과 같은 후대 기록에 근거하여 그를 제3왕조의 창시자로 보기도 했으나, 최근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들은 조세르가 카세켐위의 직접적인 후계자일 가능성을 높여 사나크트의 위치에 대한 논쟁을 심화시켰다.[1] 일부 학자들은 사나크트가 카세켐위의 딸인 여왕 니마에타프와 결혼하여 왕위를 계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 경우 그가 조세르의 부모이거나 형일 수도 있다고 본다.[2][16]
현재 많은 이집트 학자들은 사나크트가 조세르 이후, 즉 제3왕조 후기에 통치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후대 왕명록에 등장하는 '네브카'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한다.[3][4]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존재하며,[5] 네브카라는 이름 자체가 조세르 시대 이전 유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5] 이 외에도 사나크트를 마네토가 언급한 '메소크리스'와 동일시하거나, 그의 호루스 이름이 '호루스 사'이며 니수트-비티 이름은 '웨네그'였다는 등의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었으나,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6][7][8]
사나크트의 이름 표기 또한 초기에는 '헨 네크트(Hen Nekht)'로 읽혔으나, 현재는 '사나크트(Sanakht)' 또는 드물게 '나크트-사(Nakht-Sa)'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13][9] 이처럼 사나크트의 정체성을 둘러싼 여러 의문점들은 그를 고대 이집트 초기 왕조 시대의 인물 중에서도 특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파라오 중 한 명으로 만들고 있다.
2. 1. 제3왕조 내 위치 논쟁

사나크트의 정확한 정체성과 제3왕조 내에서의 연대기적 위치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의 존재는 베이트 칼라프의 마스타바 K2 유적에서 발견된 봉인 조각과 낙서를 통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다.[1][16] 또한 시나이 반도의 와디 마가라에서 발견된 사암 부조에는 그가 적을 공격하는 모습과 함께 세레크 안에 새겨진 '사나크트'라는 이름이 확인된다.[16]
전통적으로 마네토와 토리노 왕명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나크트를 제3왕조의 창시자로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 최근 아비도스에서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이 주장은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증거들은 제2왕조 마지막 파라오 카세켐위의 장례 절차를 돕고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 사나크트가 아닌 조세르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특히 카세켐위의 무덤 입구에서 조세르의 이름이 새겨진 봉인이 다수 발견된 점이 주요 근거로 제시된다.[1]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카세켐위 무덤의 조세르 봉인이 단지 조세르가 선왕을 기리는 장례 의식을 집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그가 반드시 직계 후계자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2] 이들은 사나크트가 카세켐위의 딸이자 왕위 계승권을 가진 니마아트하피(혹은 니마에타프)와 결혼하여 왕위를 계승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고대 이집트는 모계 사회적 성격이 있어, 왕위 계승권을 가진 여성과의 혼인이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16] 이 경우, 사나크트와 니마아트하피가 조세르의 부모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또는 사나크트가 조세르의 형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2]
현재 이집트학계에서는 사나크트의 통치 시기를 조세르 이후, 즉 제3왕조 후기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토비 윌킨슨, 스테판 자이들마이어, 케네스 키친, 라이너 슈타델만과 같은 학자들은 사나크트를 후대 왕명록(특히 람세스 시대 왕명록)에 등장하는 '네브카(Nebka)'라는 이름의 왕과 동일 인물로 본다. 이들은 베이트 칼라프에서 발견된 점토 봉인 조각의 카르투슈 안에 새겨진 이름의 흔적에서 '네브카'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카(ka)' 기호를 식별했다고 주장한다.[3][4] 그러나 디트리히 빌둥 등 일부 학자들은 해당 봉인 조각이 심하게 손상되어 카르투슈 안의 이름을 '네브카'로 확실하게 판독하기 어렵다며 증거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5]
존 D. 디그리프, 나빌 스웰림, 볼프강 헬크 등은 네브카와 사나크트를 동일시하는 것에 반대하며, '네브카'라는 이름이 조세르 시대 이전의 어떤 당대 유물이나 문서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5] 스웰림은 네브카를 호루스 이름 카바와 동일시하며, 사나크트는 마네토가 언급한 왕 '메소크리스'와 동일 인물로 보았다. 그는 메소크리스가 사나크트 즉위명의 헬레니즘화된 형태이며, 사나크트의 통치 시기를 제3왕조의 일곱 번째 또는 여덟 번째 왕 사이로 추정했다.[6]
또 다른 학설로는 위르겐 폰 베케라트, 볼프강 헬크, 디트리히 빌둥, 페터 카플로니 등이 제시한 것으로, 사나크트의 호루스 이름이 불분명하게 기록된 '호루스 사'이며, '사(Sa)'라는 이름이 '사나크트(Sanakht)'의 축약형이라고 보는 견해이다.[7] 볼프강 헬크는 더 나아가 사나크트의 니수트-비티 이름이 웨네그였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웨네그는 일반적으로 제2왕조의 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이론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8]
사나크트의 이름 자체도 과거 어니스트 월리스 버지와 같은 초기 이집트 학자들에 의해 '헨 네크트(Hen Nekht)'로 잘못 읽히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나크트(Sanakht)' 또는 드물게 '나크트-사(Nakht-Sa)'로 읽는 것이 정설이다.[13][9]
2. 2. 니마에타프와의 관계
사나크트가 여왕 니마에타프(Nimaathap, 니마아트하피)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16] 니마에타프는 제2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카세켐위의 딸로 여겨지기도 하지만,[2][16] 일각에서는 카세켐위의 아내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2] 일부에서는 사나크트가 카세켐위 사후 왕위 계승권을 가진 니마에타프와 결혼하여 기원전 2686년경 왕위에 올랐다고 보기도 한다.[16] 고대 이집트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왕족 여성과의 혼인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16]사나크트와 니마에타프의 관계는 조세르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일부 학자들은 사나크트와 니마에타프가 조세르의 부모였을 것으로 추정한다.[2] 그러나 다른 가설에서는 사나크트가 조세르의 형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2] 이처럼 사나크트와 니마에타프, 그리고 조세르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2. 3. 네브카와의 동일시 여부
사나크트의 정체성과 제3왕조 내에서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1] 현재 지배적인 이론은 사나크트의 통치가 조세르 이후, 즉 제3왕조 후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집트 학자 토비 윌킨슨, 스테판 자이들마이어, 케네스 키친, 라이너 슈타델만 등은 사나크트를 후대 람세스 시대 왕명록에 나타나는 이름인 "네브카"와 동일 인물로 본다.[3][4]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카르투슈의 아랫부분이 나타나는 점토 봉인 조각이 제시된다. 윌킨슨, 자이들마이어, 슈타델만은 이 조각에서 '네브카'라는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카''-기호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3][4]디트리히 빌둥 역시 사나크트를 네브카와 동일시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해당 점토 봉인 조각의 비문이 심하게 손상되어 '네브카'라고 확실하게 읽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증거로서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5]
반면, 존 D. 디그리프, 나빌 스웰림, 볼프강 헬크 등은 사나크트와 네브카를 동일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네브카"라는 이름이 조세르 시대 이전의 어떤 유물이나 문서에서도 증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5] 대신 나빌 스웰림은 네브카를 호루스 이름 카바와 동일시한다.[6]
3. 재위 기간 및 업적
사나크트의 정확한 재위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의 활동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나, 시나이 반도의 와디 마가레에서 조세르, 세켐케트와 함께 부조로 묘사된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이집트 제3왕조 시대에 이집트가 해당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10] 특히 터키석과 같은 광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원정대가 파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3. 1. 불확실한 재위 기간

사나크트의 재위 기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마네토와 토리노 파피루스 목록에는 그의 재위 기간이 18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조세르와 달리 그의 재위 기간을 증명할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이 기록의 정확성에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토리노 파피루스 목록과 마네토의 기록은 이집트 제3왕조 시대와 각각 1천 년, 2천 년 이상 시간 차이가 나는 후대에 작성되었기 때문에, 내용이 부정확하거나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리노 파피루스 목록은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기원전 1279년~1213년 재위) 시대에 파피루스에 옮겨 적은 것이다.
사나크트의 출신은 불분명하나, 제2왕조 마지막 파라오 카세켐위가 사망한 후 그의 딸이자 왕위 계승자인 니마아트하피와 결혼하여 기원전 2686년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고대 이집트는 모계 사회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을 가진 여성과의 혼인은 왕위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비록 18년 동안 통치했다고 전해지지만, 그의 통치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는 매우 드물다. 현재까지 발견된 주요 사료로는 시나이 반도의 와디 마가레에서 발견된 사암 부조가 있다. 이 부조에는 사나크트가 적대자를 공격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의 세레크(왕명을 둘러싼 테두리 장식)가 새겨져 있다. 또한, 그가 하이집트(이집트 북부)의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은 선왕조 말기의 내란 종결 이후 영토를 안정적으로 유지했음을 시사한다.[16]
사나크트의 재위 기간 동안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조세르, 세켐케트와 함께 와디 마가레의 부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제3왕조 시대에 이 지역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10] 특히 그의 시대부터 시나이 반도에서 터키석이나 구리와 같은 광물 자원 채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를 위해 원정대가 파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확보된 자원은 이집트에 부를 가져다주었고, 다음 왕인 조세르가 계단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17]
3. 2. 시나이 반도 원정
사나크트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지만, 시나이 반도에서의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남아있다. 와디 마가레에서는 사나크트를 비롯하여 조세르, 세켐케트 등 제3왕조 파라오들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시사한다.[10]특히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나크트의 부조에는 그가 하이집트(이집트 북부)의 왕관을 쓰고 적을 공격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선왕조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영토를 안정적으로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16] 이러한 부조들은 사나크트가 터키석이나 구리와 같은 중요한 광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시나이 반도로 원정대를 파견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10][16]
사나크트 시대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보이는 시나이 반도의 자원 채굴 활동은 이집트에 상당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축적된 부는 다음 파라오인 조세르 시대에 이르러 왕권 강화와 계단 피라미드와 같은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17]
4. 무덤
사나크트의 무덤 위치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랫동안 베이트 할라프의 거대한 마스타바 K2가 그의 무덤으로 여겨졌는데, 이곳 발굴 조사에서 그의 이름이 새겨진 부조 조각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마스타바가 실제 파라오의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11][12] 일부는 고위 관료나 왕족의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이집트학자 볼프강 헬크는 사카라에 있는 기스 엘-무디르의 미완성 구조물이 사나크트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는 다른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8]
4. 1. 베이트 칼라프 마스타바 K2

사나크트의 무덤 위치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랫동안 사나크트의 무덤은 베이트 할라프의 거대한 마스타바 K2로 여겨졌는데, 그곳의 발굴 조사에서 그의 이름이 새겨진 부조 조각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이집트학자들은 이 마스타바를 파라오의 무덤이 아닌 고위 관료, 왕자 또는 왕비의 무덤으로 간주하고 있으며,[11] 다른 학자들은 여전히 첫 번째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12]
마스타바에서는 키가 1.87m가 넘는 남성의 골격 유해가 발견되었다. 찰스 S. 마이어스에 따르면, 이 키는 선사 시대 및 이후 이집트인들의 평균 키인 1.67m보다 상당히 컸다. 이 표본의 두개골은 매우 크고 컸다. 비록 그의 두개 지수가 이례적으로 넓고 거의 단두증에 가까웠지만, 그의 장골의 비율은 대부분의 다른 고대 이집트인, 특히 선왕조 시대의 이집트인들과 같이 열대 기후에 적응된 형태를 보였다. 그러나 전반적인 두개골 특징은 왕조 시대 이집트 두개골과 더 유사했다.[13]
결과적으로 이 마스타바는 마네토가 늦은 제2왕조의 왕 '세소크리스'에 대해 말한 일화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는 그를 특히 키가 큰 인물로 묘사했다. 이집트학자 볼프강 헬크는 또 다른 가설을 제시했는데, 즉 사나크트의 무덤은 조세르의 피라미드 서쪽에 있는 기스 엘-무디르의 미완성 구조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8]
사나크트의 경우는 뇌하수체 질환의 잠재적인 사례로 종종 의학 문헌에 등장했지만, 오랫동안 이것이 말단 비대증인지 거인증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었다. 2017년 고병리학자 프란체스코 M. 갈라시와 취리히 대학교 진화 의학 연구소의 이집트학자 마이클 E. 하비히트는 국제 연구팀을 조정하여 이 사례를 재평가했다. 그들의 결론은 사나크트의 유해로 추정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인증 사례임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14][15]
4. 2. 기스 엘-무디르
이집트학자 볼프강 헬크는 사나크트의 무덤이 조세르의 피라미드 서쪽에 위치한 기스 엘-무디르의 미완성 구조물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8]4. 3. 거인증
사나크트의 무덤으로 오랫동안 추정되어 온 베이트 할라프의 마스타바 K2에서는[11][12] 키가 1.87m가 넘는 남성의 골격 유해가 발견되었다. 찰스 S. 마이어스에 따르면, 이는 당시 이집트인들의 평균 키인 1.67m보다 상당히 큰 수치이다. 이 유골의 두개골은 매우 크고 넓었으며, 두개 지수는 이례적으로 넓어 거의 단두증에 가까웠다. 하지만 장골의 비율은 대부분의 다른 고대 이집트인들처럼 열대 기후에 적응된 형태를 보였고, 전반적인 두개골 특징은 왕조 시대 이집트 두개골과 더 유사했다.[13]
이 발견은 마네토가 후기 제2왕조의 왕 '세소크리스'를 특히 키가 큰 인물로 묘사한 기록과 연관되기도 한다.
사나크트로 추정되는 이 유골의 사례는 뇌하수체 질환의 잠재적 사례로 의학 문헌에 종종 등장했으나, 이것이 말단 비대증인지 거인증인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명확한 결론이 없었다. 그러나 2017년 고병리학자 프란체스코 M. 갈라시와 취리히 대학교 진화 의학 연구소의 이집트학자 마이클 E. 하비히트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이 사례를 재평가하여, 사나크트의 유해로 추정되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인증 사례임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14][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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