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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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샘 라이스는 1915년부터 1934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외야수이다. 1915년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데뷔하여 1933년까지 팀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1920년에는 63개의 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1924년과 1926년에는 최다 안타를 기록했으며, 1924년과 1925년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다. 통산 2,987개의 안타를 기록했으며, 1963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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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라이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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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외야수 |
타석 | 좌타 |
투구 | 우투 |
출생일 | 1890년 2월 20일 |
출생지 | 인디애나주모로코 |
사망일 | 1974년 10월 13일 |
사망지 | 로스무어, 메릴랜드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15년 8월 7일 |
데뷔팀 | 워싱턴 세너터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1934년 9월 18일 |
최종팀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타격 기록 | |
타율 | .322 |
안타 | 2,987 |
홈런 | 34 |
타점 | 1,078 |
소속팀 | |
팀 | 워싱턴 세너터스 (1915–193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34) |
수상 및 업적 | |
하이라이트 | 월드 시리즈 챔피언 (1924) AL 도루 1위 (1920) 워싱턴 내셔널스 명예의 반지 |
명예의 전당 헌액 | 국립 야구 명예의 전당 |
헌액 유형 | 국립 |
헌액일 | 1963 |
헌액 방법 | 베테랑 위원회 |
2. 유년 시절 및 초기 야구 경력
라이스는 찰스 라이스와 루이자 뉴마이어 사이에서 6명의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찰스와 루이자는 그가 태어난 지 약 두 달 후에 결혼했다. 그는 인디애나주 모로코 근처, 인디애나-일리노이 경계의 여러 마을에서 자랐으며, 모로코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겼다.[1] 어린 시절에는 "에디"로 알려졌다. 1908년, 라이스는 16세의 뷰라 스탐과 결혼했다.[2] 그들은 일리노이주 와세카에서 살았으며, 라이스는 가족 농장을 운영하고, 이 지역에서 여러 직업을 가졌으며, 여러 프로 야구팀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3]
1912년 토네이도로 가족과 형제를 모두 잃는 비극을 겪었지만, 라이스는 이후에도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인디애나를 떠나 미국 해군에 소속되어 멕시코 베라크루스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12]
1912년 4월, 라이스와 그의 아내는 18개월과 3세의 두 자녀를 두었다. 라이스는 일리노이주 게일스버그로 가서 센트럴 어소시에이션의 마이너 리그 야구팀인 게일스버그 페이버스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경기를 했다.[4] 라이스는 약 일주일 동안 팀에서 세 번의 시범 경기에 출전했다. 4월 21일 경기에서 구원 투수로 출전하여 페이버스의 승리를 이끌었고, 강풍 속에서 1실점하며 마지막 3이닝을 마무리했다.[5]
같은 날, 라이스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세카에서 약 약 32.19km 떨어진 모로코에 있는 라이스 부모의 농장으로 당일 여행을 갔다. 폭풍이 몰아닥치고 토네이도가 농가를 휩쓸어 집과 대부분의 부속 건물을 파괴했다. 토네이도로 인해 라이스의 아내, 두 자녀, 어머니, 두 여동생, 그리고 농장 일꾼이 사망했다. 라이스의 아버지는 부상으로 인해 일주일 더 생존하다가 사망했다. 라이스는 두 번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했다. 한 번은 부모님과 여동생들을 위한 장례식이었고, 두 번째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한 장례식이었다.[6]
라이스는 1912년 센트럴 어소시에이션의 머스카틴 머스키스에서 뛰었으며, 18경기에서 .194의 타율을 기록했다. 1913년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7] 슬픔에 잠긴 라이스는 이듬해 지역을 떠돌며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13년,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에서 복무했다. 라이스는 한 시즌 동안 그 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8] 그는 이 배를 타고 미국의 베라크루스 점령에 참여했다.[9]
1914년, 라이스는 투수로서 버지니아 리그의 피터스버그 구버스에 입단했다. 그 해 9승 2패, 1.54의 평균자책점(ERA)을 기록했고, 1915년에는 11승 12패, 1.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10] 피터스버그 팀의 구단주 "닥" 리는 당시 메이저 리그 워싱턴 세네터스를 소유하고 있던 클라크 그리피스에게 300USD의 빚을 지고 있었고, 부채를 갚기 위해 라이스의 계약을 그리피스에게 제안했다. 리는 라이스의 이후 경력에 영향을 미친 두 가지 행동으로 칭송받고 있는데, 그는 선수의 이름을 "에드가"에서 "샘"으로 바꾸었고, 세네터스가 라이스가 투수가 아닌 외야수로 뛰도록 설득했다.
3. 메이저 리그 경력
메이저 리그 데뷔 전에는 인디애나와 일리노이의 마이너 리그에서 뛰었다. 1915년 버지니아주 피터스버그 구단에서 워싱턴 세네터스로 이적하여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며, 이후 선수 생활 대부분을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보냈다.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19시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1시즌, 총 20시즌 동안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했다. 초기에는 투수로 뛰었으나 곧 외야수로 전향하여 빠른 발을 활용, 1920년에는 63도루로 도루왕에 올랐다. 이후 도루 수는 줄었지만, 적극적인 타격으로 많은 안타를 기록하며 1924년부터 1926년까지 3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 팀을 두 번의 월드 시리즈로 이끌었다. 1930년에는 40세의 나이로 6번째 200안타를 달성했는데, 이는 2016년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1925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는 논란이 된 포구 장면을 연출했다. 8회말, 상대 타자의 홈런성 타구를 펜스 근처에서 점프하여 잡았는데, 포구 후 펜스를 넘어가 심판이 포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라이스는 글러브에 공을 넣은 채 일어났고,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이 플레이의 진실은 라이스 사후 공개된 편지를 통해 밝혀졌는데, "공을 떨어뜨릴 틈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18]
1933년 월드 시리즈 출전 후 방출되었고, 1934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은퇴했다. 통산 안타는 3000개에 약간 미치지 못했지만, 라이스는 은퇴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통산 20시즌의 타격 성적은 다음과 같다.통산: 20년 2404 10251 9269 1514 2987 498 184 34 3955 1077 351 143 213 -- 708 -- 56 275 -- .322 .374 .427 .801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3. 1. 초기 MLB 시즌
1915년, 버지니아주의 피터스버그 구단에서 워싱턴 세네터스로 이적하여 그 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투수를 맡았지만, 곧 외야로 전향했다. 1919년부터 외야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빠른 발을 활용하여 1920년에는 6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이 되었다.[11]
1915년과 1916년에 총 62번의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1917년에는 155경기에 출전하여 656번의 타석에서 .302의 타율을 기록했다. 1918년에는 군에 소집되어[12] 제68 해안 포병 연대에 합류, 뉴욕의 포트 테리에 주둔했다. 두 번의 휴가 동안 세네터스에서 몇 경기에 출전했으며,[13] 9월에는 부대가 프랑스로 파견되어 전투를 준비했지만, 1918년 11월 11일 휴전 협정 체결로 실제 전투는 겪지 않았다.[14]
1919년, 141경기에 출전하여 .321의 타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300 이상 타율을 기록한 13시즌 중 하나였다. 1920년에는 .338의 타율, 리그 1위이자 개인 최고 기록인 63개의 도루를 기록했지만, 리그에서 가장 많은 30번의 도루 실패도 기록했다. 1921년에는 13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10시즌 연속 두 자릿수 3루타 기록을 시작했다. 1924년에는 리그 최다인 216개의 안타를 기록했고,[15] 뉴욕 자이언츠와의 7차전 끝에 1924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16] 1925년에는 개인 최고 기록인 227개의 안타, 87타점, .350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후 도루 수는 줄었지만, 사사구가 적은 적극적인 타격으로 많은 안타를 기록했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3년 연속 200안타 이상(그 중 2번은 리그 최다 안타)을 기록하며 세네터스를 두 번의 월드 시리즈로 이끌었다. 1930년에는 6번째 200안타를 달성했으며, 40대 선수로서 시즌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있다(2016년 시즌 종료 기준).
3. 2. 전성기
1915년, 버지니아주의 피터스버그 구단에서 워싱턴 세네터스로 이적하여, 그 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투수를 맡았지만, 곧 외야로 전향했다. 외야의 주전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19년 이후로, 그 무렵에는 빠른 발을 무기로 삼았다. 1920년에는 6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이 되었다.이후 도루 수는 줄었지만, 사사구가 적은 적극적인 타격으로 많은 안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3년 연속 연간 200안타 이상(그 중 2번은 리그 최다 안타)을 기록하며 세네터스를 2번의 월드 시리즈 출전으로 이끌었다. 특히 1925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그는 후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4-3으로 세네터스가 리드하고 있던 8회말 수비에서, 라이스는 상대 타자가 친 홈런성 타구에 펜스 근처에서 뛰어올랐다. 포구 후, 몸이 펜스를 넘어갔기 때문에, 심판은 잠시 그가 포구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스가 펜스에서 일어났을 때, 그의 글러브에는 공이 들어 있었다. 이 경기 후, 실제로 타구를 잡았는지에 대해 그는 가족에게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진실을 묻는 질문에 그는 "돈 때문이 아니야. 미스터리로 해두는 편이 더 재밌잖아."[3]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1930년에 6번째 200안타를 달성했으며, 40대 선수로 시즌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것은 2016년 시즌 종료 시점까지 이 해의 라이스가 유일하다.
세네터스에는 총 19년간 재적했지만, 1933년의 3번째 월드 시리즈 출전 후에 방출되었고, 다음 해 1934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현역에서 은퇴했다. 통산 안타 수는 3000개에 약간 못 미쳤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 채였다.
3. 3. 1925년 월드 시리즈 논란의 캐치
샘 라이스의 경력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은 수비에서 나왔다. 1925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워싱턴 세네터스가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4-3으로 앞서고 있었다. 8회 초, 라이스는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이동했다. 8회 초 2아웃 상황에서[17] 파이리츠 포수 얼 스미스가 우중간으로 타구를 날렸다. 라이스는 공을 쫓아가 펜스 앞에서 잡은 듯했고, 이는 스미스가 동점 홈런을 칠 기회를 막는 것이었다. 공을 잡은 후, 라이스는 펜스 너머 관중석으로 넘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라이스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글러브에 공을 가지고 있었고, 심판은 스미스에게 아웃을 선언했다. 심판의 설명에 따르면 공을 잡는 순간 플레이가 종료되므로 라이스가 어디에 떨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팀은 7차전에서 시리즈에서 패했다.라이스가 실제로 공을 잡았는지, 그리고 공을 계속 소유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일부 피츠버그 팬들은 팬이 공을 주워 라이스의 글러브에 다시 넣는 것을 봤다고 주장하는 서명 및 공증된 문서를 보냈다. 라이스 자신은 "심판이 내가 잡았다고 했다"고만 답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잡지들은 그에게 그 이야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라이스는 "돈은 필요 없다. 미스터리가 더 재밌다"며 거절했다. 그는 심지어 아내나 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논란이 너무 커지자 라이스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을 때 사망 시 공개될 편지를 썼다.[18] 라이스가 사망한 후, 명예의 전당 관계자는 그의 월드 시리즈 플레이에 대한 편지를 찾아 라이스 가족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그의 장례식 후에 열리고 읽혔다. 인터뷰에서 그의 아내 메리는 "그는 공을 잡았어요.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18] 편지는 "나는 한 번도 공의 소유를 잃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19]
1925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라이스는 큰 물의를 일으키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4-3으로 세네터스가 리드하고 있던 8회말 수비에서, 라이스는 상대 타자가 친 홈런성 타구에 펜스 근처에서 뛰어올랐다. 포구 후, 몸이 펜스를 넘어갔기 때문에, 심판은 잠시 그가 포구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스가 펜스에서 일어났을 때, 그의 글러브에는 공이 들어 있었다. 이 경기 후, 실제로 타구를 잡았는지에 대해 그는 가족에게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진실을 묻는 질문에 그는 "돈 때문이 아니야. 미스터리로 해두는 편이 더 재밌잖아."I don't need the money. The mystery is more fun.영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1925년 플레이의 진상은, 그의 사후에 열도록 유언했던 편지에 적혀 있었다. 그 편지에 따르면 "공을 떨어뜨릴 틈도 없었어."라고 한다.
3. 4. 선수 생활 후반기
1926년 리그 안타 1위를 기록한 라이스는 최우수 선수상 투표에서 4위를 차지했다.[11] 1927년 타율은 0.297로 하락했지만, 1928년부터 1930년 시즌까지 각각 0.328, 0.323, 0.349를 기록했다.[11] 1931년 120경기에서 0.310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팀이 좌완 투수를 상대할 때 데이브 해리스가 상당한 출전 시간을 얻었다. 세네터스는 외야수 자리를 위해 더 젊은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11][20]1932년 말 세네터스는 "샘 라이스 데이"를 열어 2200USD가 넘는 수표와 새로운 스터드베이커 자동차를 포함한 여러 선물을 증정했다. 그해 라이스는 106경기에 출전했으며, 종종 대타로 나왔다. 1933년 팀은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패했고, 라이스는 2차전에서 한 번 타석에 들어서 대타 안타를 기록했다.[21] 시즌 후 세네터스는 그를 방출했다.[22]
1934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뛴 라이스는 4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클리블랜드 감독 월터 존슨은 1935년에 복귀를 제안했지만, 라이스는 거절했다.[22] 통산 타율 0.322로 은퇴한 그는 타석에서 똑바로 서서 빠른 손목 스냅으로 모든 방향으로 공을 쳐냈다. 첫 번째 공에 스윙하지 않았고 삼진을 거의 당하지 않았으며, 1929년에는 616타수 시즌을 9개의 삼진으로 마쳤다. 9,269타수에서 단 275개의 삼진을 당해 33.71타수당 1번의 삼진을 기록, 메이저 리그 역사상 삼진을 가장 당하기 어려운 선수 11위에 올랐다.[23] 메이저 리그에서 6번의 200안타 시즌을 기록한 라이스는 완벽한 스윙을 가진 최고의 컨택트 히터였지만, 홈런 위협은 아니었다. 빠른 발은 종종 1루타를 2루타로 만들었고, 1920년 63개의 도루는 그에게 "만 오 워"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2,987개의 안타를 기록한 라이스는 3,000안타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 중 가장 많은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사실, 나는 내가 몇 개의 안타를 쳤는지조차 몰랐다. 은퇴한 지 몇 년 후, [세네터스 구단주] 클라크 그리피스가 그 사실을 알려주고, 세네터스에서 복귀해서 그 13개의 안타를 채우지 않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 노력을 기울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겪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해설자들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기록을 쏟아내기 때문에, 나는 내 안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아마 3,000개를 채우기 위해 남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24] 포스트시즌에서 라이스는 19개의 안타와 0.302의 타율을 기록했다.[15]
1930년 6번째 200안타를 달성한 라이스는, 40대 선수로 시즌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2016년 시즌 종료 시점까지).
총 19년간 세네터스에 재적했지만, 1933년 3번째 월드 시리즈 출전 후 방출되었고, 1934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은퇴했다. 통산 안타 수는 3000개에 약간 못 미쳤지만, 라이스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다.
4. 선수 생활 이후
1940년대에 샘 라이스는 양계업을 시작했다. 그의 농장은 메릴랜드주 올니에 있었으며, 미국 내무부 장관 해럴드 L. 이키스의 농장 옆에 위치했다. 라이스와 이키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미국 육군의 명령으로 서부 해안에서 이주한 일본계 노동자들을 고용했다.[27]
1963년, 라이스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존 클락슨, 엘머 플릭, 에파 릭시와 함께 명예의 전당 원로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는데, 원로 위원회는 20년 이상 활동하지 않은 선수들을 심사했다. 라이스는 헌액에 대해 기쁘다면서, 오래 살면 아마 선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28]
라이스는 두 번 재혼했다. 첫 번째 부인은 에디스였고, 69세에는 메리 켄달 아담스와 결혼했다. 메리는 이전 결혼에서 마가렛과 크리스틴이라는 두 딸을 두었다.[29] 1965년, 라이스와 그의 가족은 그의 경력을 기리는 프로그램에 앞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진행자가 라이스에게 토네이도에 대해 질문했고, 그가 폭풍과 파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처음으로 그의 이전 가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30]
라이스는 1974년 8월 화이티 포드와 미키 맨틀을 기리는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해 10월 13일 암으로 사망했다.[18] 그는 메릴랜드주 브링크로에 있는 우드사이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5. 통산 기록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수비율 |
---|---|---|---|---|---|---|---|---|---|---|---|---|---|
2,404 | 9,269 | 2,987 | 498 | 184 | 34 | 1,514 | 1,078 | 708 | 275 | .322 | .374 | .427 | .965 |
[25]
라이스는 통산 5안타 경기를 7번, 4안타 경기를 52번 기록했다.[26]
연도 | 팀 | 경기 | 타수 | 타석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4사구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희생플라이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15 | WAS | 4 | 8 | 8 | 0 | 3 | 0 | 0 | 0 | 3 | 0 | 0 | 0 | 0 | 0 | 3 | 0 | .375 | .375 | .375 | .750 | |||
1916 | 58 | 215 | 197 | 26 | 59 | 8 | 3 | 1 | 76 | 17 | 4 | 1 | 15 | 1 | 13 | .299 | .352 | .386 | .738 | |||||
1917 | 155 | 656 | 586 | 77 | 177 | 25 | 7 | 0 | 216 | 69 | 35 | 14 | 50 | 3 | 41 | .302 | .360 | .369 | .729 | |||||
1918 | 7 | 25 | 23 | 3 | 8 | 1 | 0 | 0 | 9 | 3 | 1 | 0 | 2 | 0 | 0 | .348 | .400 | .391 | .791 | |||||
1919 | 141 | 614 | 557 | 80 | 179 | 23 | 9 | 3 | 229 | 71 | 26 | 7 | 42 | 7 | 26 | .321 | .376 | .411 | .787 | |||||
1920 | 153 | 687 | 624 | 83 | 211 | 29 | 9 | 3 | 267 | 80 | 63 | 30 | 19 | 39 | 4 | 23 | .338 | .381 | .428 | .809 | ||||
1921 | 143 | 630 | 561 | 83 | 185 | 39 | 13 | 4 | 262 | 79 | 26 | 12 | 22 | 38 | 9 | 10 | .330 | .382 | .467 | .849 | ||||
1922 | 154 | 692 | 633 | 91 | 187 | 37 | 13 | 6 | 268 | 69 | 20 | 9 | 6 | 48 | 2 | 13 | .295 | .347 | .423 | .770 | ||||
1923 | 148 | 671 | 595 | 117 | 188 | 35 | 18 | 3 | 268 | 75 | 20 | 8 | 13 | 57 | 6 | 12 | .316 | .381 | .450 | .832 | ||||
1924 | 154 | 712 | 646 | 106 | 216 | 39 | 14 | 1 | 286 | 76 | 24 | 13 | 16 | 46 | 4 | 24 | .334 | .382 | .443 | .825 | ||||
1925 | 152 | 710 | 649 | 111 | 227 | 31 | 13 | 1 | 287 | 87 | 26 | 11 | 19 | 37 | 4 | 10 | .350 | .388 | .442 | .831 | ||||
1926 | 152 | 704 | 641 | 98 | 216 | 32 | 14 | 3 | 285 | 75 | 24 | 23 | 18 | 42 | 2 | 20 | .337 | .380 | .445 | .824 | ||||
1927 | 142 | 651 | 603 | 98 | 179 | 33 | 14 | 2 | 246 | 65 | 19 | 6 | 12 | 36 | 0 | 11 | .297 | .336 | .408 | .744 | ||||
1928 | 148 | 681 | 616 | 95 | 202 | 32 | 15 | 2 | 270 | 55 | 16 | 3 | 14 | 49 | 2 | 15 | .328 | .379 | .438 | .818 | ||||
1929 | 150 | 689 | 616 | 119 | 199 | 39 | 10 | 1 | 261 | 62 | 16 | 8 | 19 | 55 | 4 | 9 | .323 | .382 | .424 | .806 | ||||
1930 | 147 | 669 | 593 | 121 | 207 | 35 | 13 | 1 | 271 | 73 | 13 | 8 | 17 | 55 | 3 | 14 | .349 | .407 | .457 | .864 | ||||
1931 | 120 | 460 | 413 | 81 | 128 | 21 | 8 | 0 | 165 | 42 | 6 | 5 | 11 | 35 | 1 | 11 | .310 | .365 | .400 | .765 | ||||
1932 | 106 | 323 | 288 | 58 | 93 | 16 | 7 | 1 | 126 | 34 | 7 | 4 | 3 | 32 | 0 | 6 | .323 | .391 | .438 | .828 | ||||
1933 | 73 | 89 | 85 | 19 | 25 | 4 | 3 | 1 | 38 | 12 | 0 | 2 | 0 | 2 | 2 | 7 | .294 | .326 | .447 | .773 | ||||
1934 | CLE | 97 | 365 | 335 | 48 | 98 | 19 | 1 | 1 | 122 | 33 | 5 | 1 | 2 | 28 | 2 | 9 | .293 | .351 | .364 | .715 | |||
통산: 20년 | 2404 | 10251 | 9269 | 1514 | 2987 | 498 | 184 | 34 | 3955 | 1077 | 351 | 143 | 213 | 708 | 56 | 275 | .322 | .374 | .427 | .801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6. 수상 및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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