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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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군정치는 북한의 공식 이념으로, 군대를 사회주의 혁명의 동력으로 보고 군사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1972년 주체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채택한 북한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김정일이 최고 지도자가 되면서 선군정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는 북한의 불안정한 국제적 지위와 내부 정치적 위기를 배경으로, 군사력 강화를 통해 체제 유지를 도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선군정치는 김정일 시대에 주체사상과 함께 핵심 이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6년 국방위원회가 국무위원회로 개편되면서 '군사 우선'으로 표현이 바뀌었다. 선군정치는 대한민국의 안보 우려를 야기하고, 핵 문제와 연관되어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으며,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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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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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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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
한국어 | 선군 정치 |
한자 | 先軍政治 |
로마자 표기 |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Sŏn'gun chŏngch'i 문화관광부 2000년 표기법: Seon-gun jeongchi |
영어 | military-first politics |
조선글 | 선군정치 |
개요 | |
선군정치 | 북한의 군사 우선 정책 |
북한 정치 | |
관련 이념 | 주체사상 선군정치 |
관련 항목 | |
관련 정책 | 선군사상 |
마르크스-레닌주의 | |
핵심 요소 | 마르크스-레닌주의 |
2. 배경
19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 주체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선포하였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이념으로, 중소분쟁도 이 이념 채택의 배경이 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포함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는 붕괴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김일성 사후 최고령도자에 오른 김정일은 사회주의 혁명의 세계사적 퇴행이 극심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이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선군정치이다. 선군정치는 군대를 주체사회주의 혁명의 원동력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통해 사회주의 사회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여기서 '군민일치, 관병일치, 군정배합을 체현하는 당, 군대와 인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선군정치는 군사를 모든 것의 우선에 두는 정치 방식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이 '선군'을 주요 이념으로 전환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되어 왔다.[16] 한 가지 주장은 북한의 불안정한 국제적 지위 때문에 군사력 증강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 이러한 관점에서 '선군'은 다른 사회 부문을 희생시키면서 북한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행보로 인식된다.[1]
이러한 주장은 1990년대 초 북한에 닥친 일련의 위기도 지적한다. 1991년 장기간 동맹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를 시작으로 1994년 김일성 사망, 여러 자연재해, 고난의 행군과 경제 위기 등이 1999년 이전에 발생했다. 이러한 위기들 또한 새로운 권력 강화 방식의 동기가 되었을 수 있다.[17]
두 번째 주장은 군사 우선 정치로의 전환 원인으로 북한 내부 정치에 초점을 맞춘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그는 북한의 지도자 자리를 아들 김정일에게 물려주었다. 아버지 사망 당시 김정일이 북한 정부에서 차지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직책은 군사 직책, 구체적으로는 군 최고사령관이었다.
또한 김정일은 정부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인민군 내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보해야 했다.[1] 김정일이 의도적으로 정부의 다른 부문을 소외시켜 조선인민군의 우위를 주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는 중앙인민위원회 폐지, 국가 주석직 폐지,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축소가 포함된다.[10]
3. 역사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에 선군정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하위 문단을 참고하라.
3. 1. 김정일 시대
북한은 1960년 김정일이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을 방문한 것을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본다.[27] 공식적으로 '선군정치'라는 용어는 1997년 김정일 집권 이후 등장했다.[27] 김정일은 "선군정치는 혁명 승리의 만능 보검"이라며 군사 중심 정치를 강조했다.[25] 그는 "경제 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총대가 강하면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27]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선군정치의 사상적 기반으로 제시하고, 군부의 기능을 확대했다.[27] 군 인력을 건설 현장에 동원하고, 군민일치, 관병일치, 군정배합의 실현 등을 강조했다.[27]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은 선군정치 등장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이다. 1991년 소련 붕괴, 1994년 김일성 사망, 자연재해, 경제 위기 등은 김정일이 권력을 강화하는 동기가 되었다.[17] 김정일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조선인민군 내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선군정치를 활용했다.[1]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을 축소하는 등 의도적으로 정부의 다른 부문을 소외시켜 조선인민군의 우위를 주장했다.[10]
선군정치는 자주 사상을 대체하는 중심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역할을 최우선시하는 것과 달리, 선군정치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인민군대의 역할을 강조한다.
2002년 일조평양선언 서명 당시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아닌 '국방위원장' 직함을 사용했다. 이는 사실상 군사 정권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분석도 있다.[25]
3. 2. 김정은 시대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대의원회의에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기존의 국방위원회는 폐지되고 새롭게 국무위원회가 설치되었다.[26] 국방위원회가 선군정치의 중심 기관으로 여겨졌던 점을 고려할 때, 이를 폐지함으로써 기존의 군부에 대한 경도를 수정하고, 김일성 시대와 같은 노동당 중앙 중심주의로 공화국의 지도 체계를 되돌리려는 변화로 해석되고 있다.[26] 이에 따라 조선인민군 원로인 오극렬과 이영무는 해임되었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당 인사 또는 노동계급 출신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최룡해(당 부위원장)와 박봉주(내각총리)가 임명되었다.[26]
국방위원회 폐지 이후로는 “선군정치”라는 표현을 피하고 “군사 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26]
4. 정치적 함의
선군정치는 김일성이 주창한 주체사상과 함께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권력을 공고히 함에 따라 중심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로 주체사상을 대체했다.[18]
조선인민군의 부상은 대한민국에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햇볕정책에 대한 논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2] 북한은 선군정치가 통일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지지하지 않으며, 대한민국 내에서 북한의 군사 우선 사상을 홍보하는 웹사이트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19]
선군정치는 지속되는 핵 위기에 편승하여 번성해왔다.[20]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의 비핵화가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에, 군사 우선 정치와 이데올로기 개념은 우려스러운 것이다.[21] 선군정치는 핵무기 보유와 매우 잘 맞는 것처럼 보이며, 핵무기를 정부의 자주 통치라는 지도 이데올로기의 중심으로 삼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22] 군사 우선 이데올로기가 북한 정부를 더 오래 지배할수록 미국이 북한을 설득하여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해왔다. 북한은 비핵화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시도를 북한 내 군의 우위에 대한 위협, 즉 선군 이데올로기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우려는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할 의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20]
1997년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에 취임한 후, '선군정치'라는 말이 북한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는 나의 기본적인 정치 방식이며, 우리의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만능의 보검"이라고 언급했다.(『노동신문』 1999년 6월 16일자 기사)[25] 또한, "인민군대는 우리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 위업 완성의 주력군"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역할을 최우선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 문헌에 따르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노동계급의 당(공산당 등)이 먼저 건설되고 군이 건설되는 "선당후군"의 정치 방식을 채택했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에 의해 조선인민군의 전신인 조선인민혁명군이 먼저 창건되고, 조국 해방 후 조선노동당이 창건되었으며, 이후 군을 정규 무력으로 강화하여 건국 위업을 성취했다고 한다.
또한, 소련이나 루마니아의 사회주의 정권 붕괴를 예로 들며, 군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군이 반혁명에 동조하여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선군정치가 북한 매체에서 선전되기 시작하면서 김정일의 군 시찰도 활발하게 보도되기 시작했다. 2002년 9월 17일, 일조평양선언에 서명했을 때도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5. 경제적 함의
선군정치는 1990년대 북한을 휩쓴 기근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 즉 "고난의 행군"에서 비롯되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대가 최전선에서 일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정부는 선군정치를 통해 "강성대국"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설정했다.[23]
6. 비판 및 논란
선군정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비판과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6. 1. 대한민국 관점
대한민국에서는 선군정치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군사 부문에 대한 과도한 자원 집중은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개선을 저해할 수 있으며, 핵 개발과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는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25]6. 2. 국제 사회 관점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주요 관심사이며, 군사 우선 정치와 이념은 이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21] 선군정치는 핵무기 보유와 잘 맞는 것처럼 보이며, 핵무기를 정부의 자주 통치라는 지도 이념의 중심으로 삼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22] 군사 우선 이념이 북한 정부를 더 오래 지배할수록 미국이 북한을 설득하여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평가한다. 북한은 비핵화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시도를 북한 내 군의 우위에 대한 위협, 즉 선군 이념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우려는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할 의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20]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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