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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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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체사상파는 1980년대 대한민국 학생 운동권에서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활동한 세력을 지칭한다. 유신체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반독재 투쟁의 일환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노선이 전환되었으며,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주체사상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쇠퇴와 함께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일부는 제도권 정치에 진출하거나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연계, 용어 오용, 종북 논란 등 비판과 논란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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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파
명칭
한국어주체사상파
한자主體思想派
로마자 표기Juche sasang pa
약칭주사파
한자 약칭主思派
로마자 표기 약칭Jusapa
개요
설명남한 내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정치 세력을 지칭한다.
특징김일성과 김정일을 추종한다.
반미주의 성향을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한다.
역사
형성19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형성되었다.
영향남한 사회의 진보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일부 정치인과 시민 단체에 영향을 미쳤다.
논란대한민국 내부에서 종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
관련 인물 및 단체
주요 인물이석기
김재연
관련 단체통합진보당
민족해방파
경기동부연합
기타
비판북한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옹호한다는 비판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혼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다.
현재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줄었으나, 여전히 일부 정치 세력과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2. 유래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 사회운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이 크지 않았으나, 유신체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과학적 사회주의주체사상이 유입되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파와 주체사상파는 극심한 노선투쟁을 벌여 주체사상파가 학생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쟁취하였다.[24]

1985년 김영환의 강철서신은 주체사상이 학생운동세력에 퍼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반제국주의에 근거한 반미(反美) 의식과 한국 특유의 민족주의적 토양을 바탕으로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향하거나 지지하는 세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24]

1990년대 이후 여러 학생운동 정파들이 와해되거나 몰락하였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 실상이 전해지고 1996년 한총련 주도의 연세대학교 '조국통일범민족대회'가 김영삼 정부에 의해 강경 진압된 후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판결되어 학생운동 지도부가 구속·수감되면서 주체사상파의 세력이 급속히 약해졌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사건 이후 대학생들의 정치운동 참여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사람사랑 학생회[25]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몰락하였다.

2. 1. 배경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사회운동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이념은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았다. 이는 한국 전쟁과 그 이후의 반공체제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내 공산주의자들 대부분이 축출되었고 국가보안법반공법을 비롯한 사상 통제를 통해 친공산주의적인 내용의 정보 교류를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과 김일성 정권에 대한 거부감은 한국 사회 전반에 확고하였다.[24]

그러나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후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 사회통제가 심화되고, 10·26 사태 이후 12·12 군사 반란으로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新軍府)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함으로써 기존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소위 '자유우방 미국'에 대한 확신과 신뢰에 의문을 제기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학습하는 정치운동세력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마르크스주의파로 성장하였고, 이러한 반독재 투쟁의 분위기 속에서 주체사상도 유입되었다.[24]

2. 2. 형성 과정

1980년대 서울의 봄이 군부독재자 전두환의 집권으로 무산되면서 주체사상이 유입되었다. 상반된 견해를 가진 단체들 간의 갈등 이후, 주사파의 지배력이 명확해졌다.[6]

1986년 초, 운동권이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에 참여하면서 운동이 시작되었다.[6] 김영환이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쓴 책,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참여자들 사이에서 이 운동의 교과서로 여겨졌다. 이 책은 "강철서신"으로도 알려져 있다.[7] 이 운동은 "민족해방"을 강조했기 때문에 민족 해방 계열(NL)이라고도 불렸다. "민족해방"은 북한 혁명 이론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민족 해방"을 강조한 것이다.[8] 그러나 "민족 해방 계열"이라는 용어는 주체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해방이라는 동일한 인식을 가진 집단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6]

3. 활동

주체사상파의 활동은 크게 학생 운동과 제도권 정치 참여로 나눌 수 있다.

=== 학생 운동 ===

초기 주체사상파는 해외 유학생 계열 학생운동과는 달리 외부의 영향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에 의해 북한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기도 했다. 김영환이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쓴 '강철서신'은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북한과의 연계 및 비밀조직 형태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으로 인해 주사파는 사실상 몰락하였다.[6]

민족해방 계열이 주도하던 한총련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대중적 학생조직이었다. 1993년 발족 당시부터 학생운동 세력 중 최대 규모였던 한총련에, 민족해방 계열의 일부로 참여한 주사파는 그 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한총련이 대한민국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1997년 말부터 비운동권 학생회장이 당선되면서 학생운동이 퇴조하여 한총련은 급격히 쇠퇴하였다.[6]

=== 제도권 정치 ===

주체사상파는 신한국당, 민주당 등 보수정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에 모두 진출을 시도했다. 일부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즈음부터 전향하여 뉴라이트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 보수정당: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시대에 주체사상파는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부로도 참여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신한국당과 민주당 등 제도권 정당으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당시 운동권 세력 중 전향을 거부했던 주사파 일부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즈음부터 전향하여 뉴라이트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한나라당을 통해 국회로 진출하였다.

  • 진보정당: 주사파의 상당수는 민중민주 계열의 주도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에 입당함으로써 제도권 정당으로 진출하였다. 주사파를 비롯한 민족해방 계열은 지구당에 집단 입당하는 방식으로 '지구당 위원장'을 자기 정파로 선출하고 민주노동당을 접수하여 민중민주 계열과 갈등을 일으켰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2007년 대선 직후 폭발하여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분당으로 이어졌다.[1]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당시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은 기존 민주노동당 내 "친북 종북주의"를 비판하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하였다.[1]

3. 1. 학생 운동

초기 주사파는 해외 유학생 계열 학생운동과는 달리 외부의 영향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에 의해 북한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기도 했다. 이들은 강철서신의 유행으로 인해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가며 1980년대 말까지 수를 불렸지만, 북한과의 연계 및 비밀조직 형태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에 의하여 사실상 몰락하였다.[6]

반면, 민족해방 계열이 주도하고 있던 한총련은 기본적으로 대중적 학생조직을 지향하고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1993년 발족 당시부터 학생운동 세력 중 최대 규모로 그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민족해방 계열의 일부로 한총련에 참여한 주사파는 그 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총련1996년 소위 '연세대 사태' 이후 대한민국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1997년 말부터 비운동권 학생회장이 당선되고 학생운동이 퇴조함으로써 급격히 쇠퇴하였다.[6]

1986년 초, 운동권이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에 참여하면서 운동이 시작되었다.[6] 김영환(1963년생)이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쓴 책,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참여자들 사이에서 이 운동의 교과서로 여겨졌다. 이 책은 "강철서신"으로도 알려져 있다.[7] 이 운동은 "민족해방"을 강조했기 때문에 민족 해방 계열(NL)이라고도 불렸다. "민족해방"은 북한 혁명 이론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민족 해방"을 강조한 것이다.[8] 그러나 "민족 해방 계열"이라는 용어는 주체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해방이라는 동일한 인식을 가진 집단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6]

3. 2. 제도권 정치

주체사상파는 신한국당, 민주당 등 보수정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에 모두 진출을 시도했다. 일부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즈음부터 전향하여 뉴라이트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3. 2. 1. 보수정당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시대에 주체사상파는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부로도 참여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신한국당과 민주당 등 제도권 정당으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이 때문에 일부 반공주의자들 가운데에는 민주화 운동과 주체사상파를 동일한 집단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 당시 운동권 세력 중 전향을 거부했던 주사파 일부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즈음부터 전향하여 소위 '뉴라이트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한나라당을 통해 국회로 진출하였다.

3. 2. 2. 진보정당

주사파의 상당수는 민중민주 계열의 주도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에 입당함으로써 제도권 정당으로 진출하였다. 주사파를 비롯한 민족해방 계열은 지구당에 집단 입당하는 방식으로 '지구당 위원장'을 자기 정파로 선출하고 민주노동당을 접수하여 민중민주 계열과 갈등을 일으켰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2007년 대선 직후 폭발하여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분당으로 이어졌다.[1]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당시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은 기존 민주노동당 내 "친북 종북주의"를 비판하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하였다.[1]

4. 쇠퇴

1987년 6월 항쟁 이후 헌정 민주주의가 수립되면서, 운동의 초점은 남북한의 통일을 촉구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임수경을 대표로 파견했다.[8] 소련 붕괴, 김일성 사망, 1995년 북한 기근에 대한 뉴스 보도 이후, 이 운동은 쇠퇴를 겪었다.[6][8]

4. 1. 공산주의 붕괴와 쇠퇴

대한민국의 반공법은 대한민국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헌정 민주주의가 수립되면서, 운동의 초점은 남북한의 통일을 촉구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임수경을 대표로 파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8] 소련의 붕괴, 김일성 사망, 그리고 1995년 북한 기근에 대한 뉴스 보도 이후, 이 운동은 쇠퇴를 겪었다.[6][8]

5. 비판 및 논란

주체사상파에 대한 비판 및 논란은 다음과 같다.


  • 용어 오용 문제: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를 주체사상과 무관함에도 '주체사상파'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체사상파와 진보주의자를 동일시하면서 생긴 현상이다.[1] 1998년에는 최장집 등이 보수 정치권으로부터 주사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1]
  • 친북, 종북 논란: 대한민국의 특정 좌파 운동은 보수주의자, 반공주의자 및 북한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해 “친북”(親北), “종북”(從北), 주체사상 지지자(주사파)로 불리기도 한다. 1989년 북한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현재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표로 참석하여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을 칭찬한 임수경 사례가 대표적이다.[11] 2012년 임수경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탈북자와의 시비 과정에서 "개같은 배신자", "매국노" 등의 욕설을 퍼부어 대중적 항의를 받았다.[12]

5. 1. 용어 오용 문제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를 주체사상과 무관함에도 '주체사상파'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체사상파와 진보주의자를 동일시하면서 생긴 현상이다.[1] 1998년에는 최장집 등이 보수 정치권으로부터 주사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1]

5. 2. 친북, 종북 논란

대한민국의 특정 좌파 운동은 보수주의자, 반공주의자 및 북한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해 “친북”(親北), “종북”(從北), 주체사상 지지자(주사파)로 불리기도 한다. 1989년 북한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현재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표로 참석하여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을 칭찬한 임수경 사례가 대표적이다.[11] 2012년 4월, 임수경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21번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2년 6월, 서울의 한 술집에서 탈북자와의 시비 끝에 여당 의원을 향해 "개같은 배신자", "매국노" 등의 욕설을 퍼부어 대중적 항의를 받았다. 이는 《코리아중앙데일리》(Korea JoonAng Daily)에 의해 "술에 취해 서울의 한 식당에서 벌인 폭언"으로 묘사되었으며, 의원으로서 자격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12]

참조

[1] 뉴스 How to Spot a Juche Fan in a Crowd https://www.dailynk.[...] 2012-11-25
[2] 뉴스 'I Yielded to North Korean Reality, not Torture' https://www.dailynk.[...] 2007-06-30
[3] 서적 The Prisoner: A Memoir https://books.google[...] 2021-08-03
[4] 웹사이트 Jusapa: Painful legacy of modern history http://www.koreahera[...] 2012-06-11
[5] 웹사이트 한국 좌파의 실체는 http://www.newdaily.[...] 2010-10-04
[6] 웹사이트 주사파 https://encykorea.ak[...]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21-02-06
[7] 웹사이트 강철서신 저자, "민혁당, 북한 돈 받아 선거 출마" http://www.newdaily.[...] 2014-10-21
[8] 웹사이트 주사파 https://terms.naver.[...]
[9] 웹사이트 임수경은 누구? 전대협 대표로 1989년 북 입국 https://m.etnews.com[...]
[10] 웹사이트 주체사상파의 비극과 희극 https://news.naver.c[...]
[11] 뉴스 http://newsmaker.kha[...] 2009-09-29
[12] 웹사이트 For defector-traitor tirade, Lim apologizes anew http://koreajoongang[...] 2012-06-05
[13] 간행물 盧武鉉政権の破綻と進歩主義の危機 http://www.ackj.org/[...] 現代韓国朝鮮学会 2010-11
[14] 서적 朝鮮思想全史〈ちくま新書 1292〉 筑摩書房 2017-11-10
[15] 뉴스 "주사파뒤엔 김정일있다"(主思派の後には金日成がいる) http://srchdb1.chosu[...] 1994-07-19
[16] 웹사이트 統一日報 : 文在寅政権の「運動圏」勢力図―上― http://news.onekorea[...]
[17] 웹사이트 韓国社会を席巻した左翼勢力の実態 https://ippjapan.org[...] 2014-01-10
[18] 웹사이트 좌파 사회단체 "여권의 반일운동은 위험한 포퓰리즘" https://news.naver.c[...]
[19] 웹사이트 統一日報 : 従北派の目標は政権交替でない! http://news.onekorea[...]
[20] 웹사이트 【中央時評】所得主導成長も左派のわなに陥るのか=韓国(1) {{!}} Joongang Ilbo {{!}} 中央日報 https://japanese.joi[...]
[21] 간행물 盧武鉉政権の破綻と進歩主義の危機 http://www.ackj.org/[...] 現代韓国朝鮮学会
[22] 뉴스 “경기동부연합 없다?”..이정희 거짓 들통!심상정, 이정희와 한판 붙어? NL-PD의 암투!(“京畿東部連合あるか?”・・李正姫ウソばれる!シム・サンジョン、李正姫と一勝負詰める?NL-PDの暗闘!) http://www.newdaily.[...] 2012-04-18
[23] 뉴스 박홍 서강대 총장 "주사파 뒤엔 김정일 있다" http://srchdb1.chosu[...] 조선일보 1994-07-19
[24] 뉴스 민노당 경선 '네거티브 동영상' 시끌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7-08-24
[25] 기타 비 운동권 계열 학생회
[26] 뉴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정당 해산 후 첫 인터뷰 '진보의 죄인인가, 수호자인가'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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