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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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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셸 쇼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포탄 폭발의 영향으로 병사들에게 나타난 전투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 용어는 1915년 찰스 새뮤얼 마이어스가 처음 사용했으며, 이명, 기억 상실, 두통, 떨림 등의 증상을 동반했다. 초기에는 뇌의 물리적 손상이나 일산화탄소 중독이 원인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셸 쇼크는 종종 비겁함으로 치부되어 처벌받기도 했으며, 현대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하게 취급된다. 현대전에서도 고충격 폭발물로 인해 뇌 손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하며, 관련 연구와 치료법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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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 쇼크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이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이 "셸 쇼크"/"전쟁 신경증"과 관련된 무수한 증상 중 일부를 보이는 모습.
다른 이름총알 바람 (Bullet wind)
군인의 심장 (Soldier's heart)
다・코스타 증후군(Da Costa's syndrome)
전투 피로 (Battle fatigue)
전투 스트레스 반응(Combat stress reaction)
작전 피로 (Operational exhaustion)
관련 분야정신과
증상천 야드 응시(Thousand yard stare)
떨림(Tremors)
감각 과부하(Sensory overload)
말하기 불능(Inability to speak)
이명(Tinnitus)
합병증불면증(Insomnia)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2. 용어의 근원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 해외 파견군의 병사들은 이명, 건망증, 두통, 현기증, 떨림, 소음 과민증 등의 증상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상은 뇌에 물리적 손상을 입은 후에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했지만, 많은 병사들이 머리에 상처를 입지 않고도 이러한 증상을 보였다.[34] 1914년 12월까지 영국 장교의 10%, 하사관 및 병사의 4%가 "신경과 정신의 쇼크"를 경험했다.[35]

"셸 쇼크"라는 용어는 로스 전투에서 포탄 폭발의 영향과 증상 사이의 연관성을 추정하여 만들어졌다.[36] 이 용어는 1915년 찰스 마이어스가 의학 학술지 랜싯에 기고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셸 쇼크 환자의 약 60~80%는 급성 신경쇠약을 보였고, 10%는 함구증이나 둔주와 같은 전환 장애 증상을 보였다.[8]

3. 원인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 해외 파병군의 군인들은 전투 후 이명, 기억 상실, 두통, 현기증, 떨림, 소음 과민증 등의 의학적 증상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상은 뇌에 물리적 손상을 입은 후에 예상되는 증상과 유사했지만, 이러한 증상을 보고한 대부분의 병사들은 머리에 상처를 입은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7][34] 1914년 12월까지 영국 장교의 10%와 하사관 및 병사의 4%가 "신경과 정신의 쇼크"를 경험했다.[8][35]

"셸 쇼크"라는 용어는 로스 전투 중에 증상과 포탄 폭발의 영향과의 관련성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9][36] 이 용어는 1915년에 출판된 의학 잡지 랜싯에서 찰스 새뮤얼 마이어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셸 쇼크 환자의 약 60~80%는 급성 신경쇠약을 보였고, 10%는 언어 상실이나 둔주 등 현대의 전환 장애의 증상을 보였다.[8]

1915년부터 1916년에 걸쳐 셸 쇼크의 사례 수는 증가했지만, 의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거의 이해되지 않은 채였다. 일부 의사는 포탄의 작렬로 인한 충격파가 대뇌에 병변을 만들어 증상을 일으키고 치명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뇌에 숨겨진 물리적 손상의 결과라고 고찰했다. 또한 폭발로 생긴 일산화 탄소에 의한 중독이 셸 쇼크의 원인이라는 설도 있었다.[7][37]

동시에 셸 쇼크는 육체적인 손상보다는 정신적인 손상이라고 보는 다른 견해도 있었는데, 이 견해의 근거는 포격을 받지 않은 병사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폭발하는 포탄에 근접하지 않은 병사에게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부터 물리적인 설명은 명백히 불확실한 것이었다.[7][37]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국 육군은 폭발물에 노출된 후 증상이 나타나는 자를 다른 병사와 계속 구분했다. 1915년, 프랑스에 주둔하는 영국 육군에서는 다음과 같은 통달이 내려졌다.


  • 셸 쇼크가 적에 의한 포탄의 경우, 부상자 목록 머리에 "W"(Wounded, 부상)가 붙여진다. 그 경우 환자는 부상자로 간주되어 팔에 부상 완장을 달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의 증상이 포탄 폭발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 "적에 의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셸 쇼크 또는 "S"(Sickness, 병)로 간주되어 부상 완장 및 장애 연금을 받을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10][38]


그러나 사상자가 포탄 폭발에 가까웠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례가 해당되는지 특정하는 것은 종종 어려웠다.[7][37]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급조 폭발물(IED)에 노출된 참전 군인의 뇌 조직이 의사 결정, 기억, 추론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손상 패턴을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14][45] 이 증거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피해자가 보인 증상이 이러한 손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셸 쇼크가 단순한 정신 질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46] 셸 쇼크에는 매우 큰 압력 변화가 관련되어 있으며, 날씨에 따른 경미한 기압 변화조차도 행동 변화와 관련이 있다.[16][46]

또한, 병사가 직면하는 전쟁의 종류가 셸 쇼크 증상이 발병할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도 있다. 1918년 독일군의 공격으로 다시 전시 동원되자 이러한 증상의 발생률이 감소했다고 당시 의사들이 보고했다. 1916년부터 1917년에 걸쳐 셸 쇼크 발생 확률이 가장 높았는데, 이는 참호전, 특히 포위전 경험이 이러한 증상으로 이어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17][47]

4. 치료

많은 장교와 병사들이 포격을 받으면서, 19개의 영국군 병원이 셸 쇼크 치료에 전념했다. 최종적으로 28개 시설, 24,000개의 병상이 전쟁 신경증 환자 치료에 할당되었고, 입원 환자 수는 138,000명까지 늘어났다.[48] 시찰에 방문한 미군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제대 사유의 1/7, 비전투 부상자의 제대 사유의 1/3이 전쟁 신경증에 의한 것이었다.[48] 전후 10년이 지난 후에도 영국에서는 65,000명의 퇴역 군인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는 1960년에 고령이 된 셸 쇼크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49]

당시 대처법으로는 약초로 만들어진 수면제를 처방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영국군 의료부대(Royal Army Medical Corps)에 지원하여 종군한 스코틀랜드 정신과 의사 휴 크라이튼=밀러(Hugh Crichton-Miller)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창한 심리 요법을 도입하여 효과를 거두었으며, 이 성과로부터 일반인도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후 국내에 태비스톡 클리닉을 개소했다. 빈곤가에서 정신과 여의사로 일하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세르비아에 군의관으로 종군한 헬렌 보일(Helen Boyle) 또한 마찬가지로, 전후 대규모 정신 치료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 모금에 분주히 노력하여, 1920년에는 레이디 치체스터 병원을 개소했으며, 전후 영국 정신 의료의 초석을 다졌다.[50]

4. 1. 초기 치료

초기에 셸 쇼크 피해자는 전선에서 신속하게 후송되었는데, 이는 그들의 잦고 위험하며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8] 그러나 영국 원정군 규모가 증가하고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셸 쇼크 환자 수는 군 당국에게 점점 더 큰 문제가 되었다. 1916년 솜 전투에서는 부상자의 40%가 셸 쇼크를 겪었고, 이는 군사적, 재정적 측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과적 피해의 유행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8]

이러한 상황은 셸 쇼크에 대한 심리적 치료를 늘리고 의학적인 접근을 의도적으로 피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부상을 입지 않은 병사들은 전선으로 복귀시키기 더 쉬웠기 때문이다.[7] 또한 셸 쇼크 증상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셸 쇼크를 겪고 돌아온 병사들은 뇌가 외상적 기억을 차단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11]

1917년 파스샹달 전투에서 영국군은 셸 쇼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개발했다. 셸 쇼크 증세를 보이는 병사는 지역 의료관의 지시에 따라 며칠간 휴식을 취했다.[8] 블랙 워치 제4 대대 연대 의료 장교였던 제임스 사무엘 이먼 로저스 대령(1868-1949)은[12] 정서적 환자를 만났을 때, 심각하지 않다면 그들을 붙잡고, 그들이 당신을 알고 당신이 그들을 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병사가 당신을 아는 것이 당신이 그 병사를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응급 진료소에서 1~2일 동안 잠을 자게 한 다음, 그와 함께 전선으로 올라가서 그를 자주 만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조언했다.[10]

증상이 부상병 후송소에서 몇 주가 지나도 지속되면, 환자는 전선 뒤쪽에 설치된 4개의 전담 정신과 센터 중 한 곳으로 후송되었다. 이 센터들은 의료 전문가의 추가 조사가 있을 때까지 "NYDN(아직 진단되지 않음 신경)"으로 분류되었다.

파스샹달 전투는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셸 쇼크 환자 수는 비교적 적었다. 5,346명의 셸 쇼크 환자가 부상병 후송소에 도착했는데, 이는 투입된 영국군의 약 1%에 해당한다. 이 중 3,963명(약 75%)은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고 현역으로 복귀했다. 셸 쇼크 환자 수는 전투 내내 감소했고, 질병의 유행은 종식되었다.[8]

1917년, 영국군에서 "셸 쇼크"는 진단명으로 완전히 금지되었고,[13] 의료 저널에서도 언급이 검열되었다.[7]

많은 장교와 병사들이 포격을 받으면서, 19개의 영국군 병원이 셸 쇼크 치료에 전념했다. 최종적으로 28개 시설, 24,000개의 병상이 전쟁 신경증 환자 치료에 할당되었고, 입원 환자 수는 138,000명까지 불어났다.[48] 또한 시찰에 방문한 미군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제대 사유의 1/7, 비전투 부상자의 제대 사유의 1/3이 전쟁 신경증에 의한 것이었다.[48] 전후 10년이 지난 후에도 영국에서는 65,000명의 퇴역 군인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는 1960년에 고령이 된 셸 쇼크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49]

당시 대처법으로는 약초로 만들어진 수면제를 처방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영국군 의료부대(Royal Army Medical Corps)에 지원하여 종군한 스코틀랜드 정신과 의사 휴 크라이튼 밀러(Hugh Crichton-Miller)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창한 심리 요법을 도입하여 효과를 거두었으며, 이 성과로부터 일반인도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후 국내에 태비스톡 클리닉을 개소했다. 빈곤가에서 정신과 여의사로 일하며, 제1차 세계 대전에는 세르비아에 군의관으로 종군한 헬렌 보일(Helen Boyle) 또한 마찬가지로, 전후 대규모 정신 치료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 모금에 분주히 노력하여, 1920년에는 레이디 치체스터 병원을 개소했으며, 전후 영국 정신 의료의 초석을 다졌다.[50]

4. 2. 만성 치료

만성 셸 쇼크 치료는 증상의 정도, 관련 의사의 견해, 환자의 계급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셸 쇼크를 겪는 장교와 사병이 너무 많아서 영국에서는 19개의 군 병원이 셸 쇼크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4] 전쟁이 끝난 후 10년 동안 영국에서 65,000명의 참전 용사들이 여전히 셸 쇼크 치료를 받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1960년대까지 셸 쇼크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4]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대에서 셸 쇼크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그 본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일부 사람들이 셸 쇼크를 나약함이나 비겁함으로 치부했지만, 셸 쇼크의 심각성과 전쟁 후에도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은 군사 환경에서 정신 건강에 대한 재평가를 촉구했다.

당시 대처법으로는 약초로 만들어진 수면제를 처방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스코틀랜드 정신과 의사 휴 크라이튼=밀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창한 심리 요법을 도입하여 효과를 거두었다. 그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일반인도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쟁 후 국내에 태비스톡 클리닉을 개소했다. 헬렌 보일 또한 전쟁 후 대규모 정신 치료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 모금에 힘써 1920년에 레이디 치체스터 병원을 개소했으며, 이는 전후 영국 정신 의료의 초석을 다졌다.[50]

5. 비겁함 논란과 처벌

제1차 세계 대전 초기, 셸 쇼크는 비겁함이나 꾀병으로 간주되어 처벌받는 경우가 있었다. 전쟁의 스트레스가 병사들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되었지만, 지속적인 증상은 근본적인 성격 부족의 징후로 여겨졌다.[13] 예를 들어, 셸 쇼크를 조사한 전후 왕립 위원회에서 고트 경은 셸 쇼크가 나약함의 징후이며 "훌륭한" 부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13] 셸 쇼크에 대한 의학적 인정을 피하려는 지속적인 압력은 셸 쇼크 자체가 용납 가능한 변호로 간주되지 않음을 의미했다.[20]

영국군에서 셸 쇼크로 인해 병사들이 처형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240,000건의 군사 재판이 열리고 3,080건의 사형 선고가 내려졌지만, 실제 형이 집행된 경우는 346건에 불과했다.[13] 이 중 266명은 "탈영", 18명은 "비겁", 7명은 "권한 없이 직무 이탈", 5명은 "합법적인 명령 불복종", 2명은 "무기 투기"로 처형되었다.[22] 2006년 11월 7일, 영국 정부는 이들 모두에게 사후 조건부 사면을 부여했다.[23]

6. 사회 문화적 영향

셸 쇼크는 영국 문화 전반과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억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지그프리드 사순은 셸 쇼크에 관한 글을 썼으며, 셸 쇼크 피해자들을 치료한 크레이그로크하트 수치료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팻 바커는 자신의 저서 시리즈인 《재생 삼부작》에서 셸 쇼크의 원인과 결과를 다뤘다.[7]

지크프리트 섀순과 윌프레드 오언과 같은 전쟁 시인들은 작품에서 셸 쇼크를 다루었다. 섀순과 오언은 셸 쇼크 환자들을 치료했던 크레이글록하트 전쟁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작가 팻 베이커는 재생 삼부작에서 셸 쇼크의 원인과 영향을 탐구했으며, 많은 등장인물들을 실제 역사적 인물에 기반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시인들과 군의관 W. H. R. 리버스의 글을 참고했다.

7. 현대전에서의 셸 쇼크

"셸 쇼크"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초기 형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지만, 고충격 폭발물과 관련된 특성으로 인해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현재)에 투입된 약 38만 명의 미군, 즉 투입된 병력의 약 19%가 폭발성 무기와 장치로 인해 뇌 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다.[26] 이로 인해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뇌에 미치는 폭발 효과에 대한 1000만달러 규모의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낮은 수준의 폭발 충격 후에는 뇌가 즉시 온전하게 유지되지만, 이후의 만성적인 염증이 결국 셸 쇼크와 PTSD의 많은 사례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7] 2024년 현재, 미국 국방부는 뇌 손상 연구에 연간 10억달러에 가까운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28]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급조 폭발물(IED)에 노출된 참전 군인의 뇌 조직이 의사 결정, 기억, 추론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손상 패턴을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45] 이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피해자가 보인 증상이 이러한 손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셸 쇼크가 단순한 정신 질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46] 셸 쇼크에는 매우 큰 압력 변화가 관련되어 있으며, 날씨에 따른 경미한 기압 변화조차도 행동 변화와 관련이 있다.[46]

또한, 병사가 직면하는 전쟁의 종류가 셸 쇼크 증상이 발병할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도 있다. 1918년 독일군의 공격으로 다시 전시 동원되자 이러한 증상의 발생률이 감소했다고 당시 의사들이 보고했다. 1916년부터 1917년에 걸쳐 셸 쇼크 발생 확률이 가장 높았는데, 이는 참호전, 특히 포위전 경험이 이러한 증상으로 이어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4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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