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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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보기는 대한민국의 고고학자이자 국사학자로, 1940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및 대학원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을 통해 한반도 구석기 시대 존재를 증명하고 일제 식민사관을 반박하는 등 한국 고고학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고서 연구 및 직지심경의 금속활자 인쇄 주장을 통해 고문서 및 고인쇄술 연구에도 기여했으며, 2010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고활자》, 《세종대왕과 집현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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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손보기 |
출생일 | 1922년 7월 7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 |
사망일 | 2010년 10월 31일 |
사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및 경력 | |
업적 | |
분야 | 고고학 |
기타 정보 |
2. 생애
1940년 휘문고보와 194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및 대학원 국사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5]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박물관장, 문과대학장, 한불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1987년 퇴임하였다. 퇴임 후 한국선사문화연구소를 설립, 선사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1992년부터 단국대학교에서 초빙교수,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민속학연구소 소장 및 석주선기념박물관 관장을 맡았다. 2010년 10월 31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 학창 시절과 교육
1940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4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5]2. 2. 학문 활동과 교수 생활
1940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4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5] 1964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박물관장, 문과대학장, 한불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1987년 퇴임하였다. 퇴임 후 한국선사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선사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1992년부터 단국대학교 초빙교수를 시작으로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민속학연구소 소장 및 석주선기념박물관 관장을 맡았다.3. 기여 및 업적
손보기는 1964년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을 통해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으로 증명하여 널리 알려졌다.[6] 이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반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는 충북 제천 점말동굴유적을 발굴하고, 한자와 일본어 용어를 한국어로 대체하는 등 대한민국 고고학 발전에 기여했다.[7]
1969년부터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위원회에 참여하여,[8] 1945년 구입한 《규원사화》가 조선 중기에 씌어진 진본임을 1972년 11월 3일 확인했다.[9] 또한 1972년부터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을 주장하고 연구하여 고인쇄술 연구에도 업적을 남겼다.[10]
3. 1. 구석기 시대 연구
1964년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로 손보기는 한반도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6] 이는 ‘일본을 앞서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라는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그 뒤 92년까지 12차례에 걸쳐 발굴과 조사 작업이 진행되었다. 2009년, 손보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파른 손보기 기념관’이 공주 석장리에 문을 열었다.[4]1974년 ~ 1980년에는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유적을 발굴하였으며, 한자와 일본어 용어를 한국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등 대한민국 고고학에 업적을 남겼다.[7]
3. 2. 기타 고고학 연구
1964년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을 통해 한반도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으로 증명하여 널리 알려졌다.[6] 이는 '일본을 앞서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는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그 뒤 92년까지 12차례에 걸쳐 발굴과 조사 작업이 이루어졌다. 2009년에는 손보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파른 손보기 기념관’이 공주 석장리에 문을 열었다.[4]1974년부터 1980년까지는 충북 제천 점말동굴유적을 발굴하였으며, 한자와 일본어 용어를 한국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등 대한민국 고고학에 업적을 남겼다.[7]
1969년부터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위원회에 참여하였고,[8] 1945년 구입한 《규원사화》가 조선 중기에 씌어진 진본임을 1972년 11월 3일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의원이었던 이가원, 임창순과 함께 확인하고 인증서를 작성하여 국립중앙도서관 직인으로 인증하였다.[9]
1972년부터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을 주장하였고, 이듬해 활자 연구 공로로 독일 마인츠시에서 메달을 받는 등,[10] 고인쇄술 연구에도 기여하였다.
3. 3. 고문서 및 고인쇄술 연구
1964년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로 널리 알려졌다.[6] 이 발굴로 한반도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로써 ‘일본을 앞서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라는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뒤집었다.1974년 ~ 1980년에는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유적을 발굴하였으며, 한자와 일본어 용어를 한국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등 대한민국 고고학에 업적을 남겼다.[7]
1969년부터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구성한 고서위원회에 참여하였으며,[8] 1945년 구입한 《규원사화》 고서에 대하여 1972년 11월 3일,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의원이었던 이가원, 임창순과 함께 조선 중기에 씌여진 진본임을 확인하고 인증서를 작성하여 국립중앙도서관의 직인으로 인증하였다.[9]
또한 1972년부터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을 주장하였고, 이듬해 활자를 연구한 공로로 독일 마인츠시에서 메달을 받는 등,[10] 고인쇄술 연구에도 기여하였다.
4. 저서 및 논문
손보기는 다음과 같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 저서
- 《한국의 고활자》(1971년)
- 《금속활자와 인쇄술》(1977년)
- 《세종대왕과 집현전》(1985년)
- 《세종시대의 인쇄출판》(1987년)
- 《한국 구석기학 연구의 길잡이》(1988년)
- 《석장리 선사 유적》(1993년)
- 《장보고와 청해진》(1996년)
- 《공부의 즐거움》(공저, 2006년)
- 《석장리 유적과 한국의 구석기 문화》(2009년)
; 논문
- 〈이조전기정치기구의 기능적 분석〉
- 〈석장리 자갈돌 찍개문화층〉
- 〈석장리 후기구석기시대 집자리〉
- 〈미국에 있어서의 광복운동〉
- 〈체질학상으로 본 한국사람의 뿌리〉
4. 1. 저서
- 《한국의 고활자》(1971년)
- 《금속활자와 인쇄술》(1977년)
- 《세종대왕과 집현전》(1985년)
- 《세종시대의 인쇄출판》(1987년)
- 《한국 구석기학 연구의 길잡이》(1988년)
- 《석장리 선사 유적》(1993년)
- 《장보고와 청해진》(1996년)
- 《공부의 즐거움》(공저, 2006년)
- 《석장리 유적과 한국의 구석기 문화》(2009년)
4. 2. 논문
- 〈이조전기정치기구의 기능적 분석〉
- 〈석장리 자갈돌 찍개문화층〉
- 〈석장리 후기구석기시대 집자리〉
- 〈미국에 있어서의 광복운동〉
- 〈체질학상으로 본 한국사람의 뿌리〉
5. 상훈
참조
[1]
뉴스
한국구석기 개척자 손보기 교수 별세
http://news.chosun.c[...]
연합뉴스
2010-10-31
[2]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PPL_7KOR_A1922_1_0031331
[3]
문서
‘파른’은 ‘늘 푸르름’을 뜻한다.
[4]
뉴스
"[삶과 추억] 원로 고고학자 손보기 박사 별세"
http://news.joins.co[...]
중앙일보
2017-12-23
[5]
뉴스
博士学位
동아일보
1964-02-05
[6]
뉴스
公州郡下에 石器時代의遺物
동아일보
1964-11-18
[7]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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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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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2-0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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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달 6호
198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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