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손이는 군벌 손견의 아들로, 무용과 불같은 성격을 지녔으며, 형 손책을 닮았다. 주치에 의해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사공에서 복무했다. 203년 편장군과 단양 태수에 임명되었으나, 204년 성헌의 부하였던 규람과 대원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아내 서씨가 복수를 시도하고, 손권이 사건을 수습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난폭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4년 출생 - 왕상 (휴징)
왕상(王祥)은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한 관리로, 계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교육 정책 시행 및 산적 소탕 등 선정을 베풀었으며, 조위와 서진에서 고위 관직을 역임하다가 85세로 사망하였다. - 184년 출생 - 문덕황후 (조위)
미천한 신분에서 뛰어난 지략으로 조비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된 문덕황후는 후궁을 잘 다스리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나 조비의 후계자 조예의 생모인 견씨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의혹으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 손견의 아들 - 손광 (후한)
손광은 손견과 오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손견의 넷째 아들로, 손책이 오정후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후손 손휴는 오나라 멸망 후 진나라에 투항하여 복파장군을 지냈다. - 손견의 아들 - 손책
손책은 손견의 장남으로, 원술에게 의탁하여 회의교위로 임명되었으나 독립하여 강동 지역을 평정했고, 허공의 식객에게 습격당해 사망한 오나라의 군벌이다. - 204년 사망 - 공손도
공손도는 후한 말 요동 지역의 군벌로, 요동태수를 거쳐 평주목을 자칭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고구려와 오환을 정벌하며 독립 의지를 드러내다 조조에게 무위장군으로 임명되었으나 불만을 품고 사망했다. - 204년 사망 - 손하
손하는 오나라 장수로, 유씨에서 손책의 총애로 손씨 성을 받았고 손견을 따라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며, 손책 사후 손권을 섬겨 이술 토벌 등에 공헌했으나 손익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다 규람과 대운에게 살해당했다.
손익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손익 |
본관 | 오군 |
자 | 수필 (叔弼) |
이명 | 손엄 (孫儼) |
출생 | 광화 7년 (184년) |
사망 | 건안 9년 (204년) (향년 20세) |
배우자 | 서씨 |
자녀 | 손송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손견 |
어머니 | 오국태 |
형제 | 손책 손권 손광 손랑 |
관직 정보 | |
임관 시기 | 후한 |
최종 관직 | 편장군 단양태수 |
주요 활동 시기 | 후한 말기 |
2. 생애
손견과 오부인의 셋째 아들이며, 형 손책, 손권과 동생 손광이 있었다.[1] 용맹하고 불같은 성격은 형 손책을 닮았다고 평가받았다.[2] 오군 태수 주치의 추천으로 효렴에 천거되었고,[2] 조조가 사공으로 있을 때 그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성격이 급하고 희노애락이 분명하여 주치로부터 자주 가르침을 받았다.
건안 5년(200년), 손책이 위독해지자 장소 등 일부 신하들은 손책과 풍모가 비슷한 손익을 후계자로 지지했으나, 손책은 손권을 후계자로 지명했다.[3]
건안 8년(203년), 외숙 오경의 뒤를 이어 편장군 겸 단양군 태수로 임명되었다.[4] 당시 손권에게 살해된 옛 오군 태수 성헌의 부하였던 규람과 대운을 회유하여 각각 대도독과 군승으로 삼았으나,[5][6] 규람과 대원이 변홍과 친분을 맺은 것을 질책하여 그들의 불만을 샀다.
건안 9년(204년), 규람과 대운의 사주를 받은 측근 변홍(邊鴻)에게 암살당했다.[7][8] 손익 사후, 그의 아내 서씨는 남편의 옛 부하들과 공모하여 규람과 대운을 주살하고 복수했다.[10][11][12] 이후 손권이 직접 단양군으로 와 사태를 수습하고 손익에게 충성한 이들에게 상을 내렸다.[13]
아들 손송(孫松)은 사성교위(射聲校尉)를 지내고 도향후(都鄉侯)에 봉해졌으며,[14] 사교적이고 관대한 성품으로 알려졌으며, 손권의 친척 중 손권과 가장 가까웠다.[15] 그러나 파구(巴丘) 주둔 시절, 부대의 기강이 해이하고 부하들이 빈둥거리는 문제로 육손에게 자주 질책을 받기도 했다.[15][16] 손송은 231년에 사망했다.[17]
2. 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손이는 군벌 손견과 그의 아내 오부인의 셋째 아들이었으며, 동생 손광이 있었다.[1] 그는 용맹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맏형 손책을 닮은 점이었다.[2] 오군태수 주치가 그를 효렴으로 천거했으며,[2] 삼공 중 사공부에서 일했다.[2]200년, 형 손책이 죽음을 앞두었을 때, 그의 조언자 장소 등은 손익이 뒤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손책은 둘째 형인 손권에게 인수를 넘겨주며 후계자로 삼았다.[3]
건안 8년(203년), 외숙이자 단양태수였던 오경이 사망하자,[4] 당시 19세였던 손익은 편장군(偏將軍) 직책과 함께 새로운 단양태수로 임명되었다.[4] 당시 손권이 옛 오군태수 성헌을 살해한 일[4] 때문에 성헌이 효렴으로 천거했던 규람(嬀覽)과 대운(戴員)은 산 속으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손익은 단양태수가 되자 이들을 불러 회유하여 각각 대도독(大都督)과 군승(郡丞)으로 삼아 단양 지역의 안정을 꾀했다.[5][6]
2. 2. 단양태수 부임과 암살
오군 태수 주치(朱治)가 효렴으로 천거했다.[2] 손익은 군벌 손견과 그의 아내 오부인의 셋째 아들이었으며, 동생 손광이 있었다.[1] 그는 용맹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맏형 손책과 닮은 점이었다.《전략》에 따르면, 손책이 죽음에 임했을 때 그의 조언자 장소 등은 손익이 손책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손책은 둘째 동생 손권에게 인수를 넘겨주며 후계자로 삼았다.[3]
건안 8년(203년), 손익은 단양 태수 겸 편장군에 임명되었다.[4] 이는 당시 단양 태수였던 외숙 오경이 사망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손권이 옛 오군 태수 성헌을 살해하자, 성헌이 효렴으로 천거했던 규람(嬀覽)과 대운(戴員)은 산 속으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손익은 단양 태수가 되자 이들을 불러 회유하고 각각 대도독(大都督)과 군승으로 삼아 지역 안정을 꾀하려 했다.[5][6]
그러나 규람과 대운은 여전히 불만을 품고 반역을 계획했다. 건안 9년(204년), 그들은 손익의 측근 변홍(邊鴻)을 꼬드겨 손익을 암살하게 했다. 당시 단양의 여러 현령들이 손익을 만나기 위해 모였는데, 손익은 회의에 앞서 점술에 능한 아내 서부인에게 길흉을 점치게 했다. 서부인은 불길한 징조를 읽고 회의를 연기하라고 조언했지만, 손익은 이를 듣지 않고 연회를 열었다. 평소 무장을 하고 다녔던 손익은 연회 후 술에 취해 손님들을 배웅할 때는 무장하지 않았고, 이때 변홍이 뒤에서 습격하여 손익을 살해했다.[7][8]
변홍은 범행 후 산으로 도망쳤으나 곧 규람과 대운에게 살해당했다. 규람과 대운은 변홍을 죽여 손익의 원수를 갚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손익의 군대와 재산을 장악하고, 서부인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했다. 서부인은 기지를 발휘하여 손익의 옛 부하인 손고(孫高)와 부영(傅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과 함께 규람과 대운을 유인하여 죽이는 데 성공했다.
2. 3. 서씨의 복수와 손권의 수습
건안 9년(204년), 손익은 측근 변홍(邊鴻)에게 암살당했다. 변홍은 규람 嬀覽|중국어과 대운 戴員|중국어의 꼬드김을 받아 범행을 저질렀으나, 이후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했다. 규람과 대운은 손익의 원수를 갚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손익의 아내 서씨에게 수청을 들 것을 강요했다. 서씨는 이를 거부하며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한 달 뒤에 응하겠다고 시간을 벌었다.[10]서씨가 시간을 버는 동안, 손익의 사촌 손하는 손권의 명을 받고 단양군 완릉현으로 와서 혼란을 수습하려 했다. 그는 규람과 대운을 손익 살해 혐의로 비난했지만, 군권을 장악하지 못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규람과 대운은 손하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고, 손권이 직접 개입하기 전에 손하마저 살해했다. 이후 그들은 양주 자사 유부에게 사자를 보내 투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9]
단양의 관리들은 규람과 대운이 손익 암살의 배후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권세에 눌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규람은 손익의 저택과 첩, 하인들을 차지하고 서씨를 강제로 취하려 했다. 약속한 한 달이 되자, 서씨는 상복을 벗고 잔치를 준비하는 척하며 규람을 자신의 거처로 유인했다. 서씨는 미리 손익의 옛 부하인 손고 孫高|중국어와 부영 傅嬰|중국어 등과 공모하여 복수를 계획했다. 서씨의 신호에 따라 시녀로 변장하고 숨어 있던 손고와 부영 등이 뛰쳐나와 규람을 죽였고, 다른 이들은 대운을 처치했다.[10][11][12] 규람과 대운의 머리는 잘려 손익의 제단에 바쳐졌다.
이 사건은 단양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권이 직접 단양에 와서 사태를 수습했다. 손권은 서씨를 비롯해 손익에게 충성을 다한 이들에게 상을 내리고, 규람과 대운에게 협력했던 자들을 처벌했다.[13]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는 손익이 난폭한 성품으로 묘사되어 아랫사람들을 모질게 다루었기 때문에 원성을 샀다고 나온다. 그의 아내 서씨는 점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잔치를 열지 말 것을 권했지만, 손익은 이를 듣지 않았다. 결국 손익은 잔치 도중 규람과 대운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손익의 부장인 손고와 부영이 규람과 대운을 죽여 복수했다고 서술된다.
4. 가계
손이의 아들 손송(孫松)은 사성교위(射聲校尉)를 지냈고 도향후(都鄉侯)에 봉해졌다.[14] 손송은 사교적이고 관대한 성격으로 알려졌으며, 손권의 남자 친척 중 손권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손송이 파구(巴丘)에 주둔할 당시, 오나라의 고위 장수이자 대신이었던 육손은 손송의 부대가 기강이 해이하고 부하들이 직무에 태만한 것을 자주 꾸짖었다. 한번은 육손이 손송의 부하들에게 머리를 깎는 처벌을 내리기도 했다.[15][16] 손송은 231년에 사망했다.[17]
참조
[1]
문서
[2]
삼국지
[3]
기타
[4]
웹사이트
Generals of the South
http://www.anu.edu.a[...]
2011-08-27
[5]
문서
Generals of the South
[6]
삼국지
[7]
삼국지
[8]
기타
[9]
삼국지
[10]
웹사이트
Generals of the South
http://www.anu.edu.a[...]
2011-08-27
[11]
삼국지
[12]
삼국지
[13]
기타
[14]
삼국지
[15]
삼국지
[16]
기타
[17]
삼국지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