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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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민순은 외교관 출신으로, 외교통상부 장관과 제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75년 외무부에 입부하여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6자회담을 추진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기여했다. 200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국제개발협력기본법 등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2016년 회고록 출간 이후,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과 관련하여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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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송민순 |
로마자 표기 | Song Min-sun |
한자 표기 | 宋旻淳 |
출생일 | 1948년 7월 28일 |
출생지 | 미 군정 조선 경상남도 진양군 (현재의 진주시)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은진(恩津) |
학력 | 서울대학교 독문학 학사 |
종교 | 천주교(세례명: 요셉) |
웹사이트 | 공식 사이트 |
정치 경력 | |
소속 정당 | 무소속 |
직업 | 외교관 |
당무위원 경력 |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통합민주당 당무위원 민주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당 상임고문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
국회 의원 |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18 |
선거구 | 비례대표 (초선) |
임기 시작 | 2008년 5월 30일 |
임기 종료 | 2012년 5월 30일 |
소속 위원회 | 외교통상통일위원회 |
외교통상부 장관 | |
직책 | 제34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 |
임기 시작 | 2006년 12월 1일 |
임기 종료 | 2008년 2월 29일 |
대통령 | 노무현 |
전임자 | 반기문 |
후임자 | 유명환 |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실장 | |
직책 |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실장 |
임기 시작 | 2006년 1월 |
임기 종료 | 2006년 11월 |
대통령 | 노무현 |
후임자 | 백종천 |
기타 | |
학위 | 문학박사 |
2. 약력
송민순은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제9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현 외교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1] 독일에서 첫 해외 근무를 시작으로 인도, 미국, 싱가포르, 폴란드 등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1]
1989년~1991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1차 개정 협상, 1999년~2000년 SOFA 2차 개정 협상, 2000년 12월 한미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협상에 참여했다.[1] 2001년 3월 주폴란드 대한민국 대사로 임명되었다.[1]
2005년 6자회담 수석대표로 9.19 공동성명 도출에 기여했다.[1] 2006년 12월~2008년 2월 외교통상부 장관, 2008년 6월~2012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 비례대표)을 역임했다.[1][2][3]
2. 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1948년 - 1975년)
1948년 진주시(당시 경상남도 진양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제9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였고, 외무부(현 외교부)에 입부했다. 군 복무는 졸업 전에 마쳤다.[1]2. 2. 정무 (1975년 9월 - 2008년 2월)
독일에서 첫 해외 근무를 시작한 후, 인도, 미국, 싱가포르, 폴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근무하며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1989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한국 간의 첫 번째 개정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체결에 기여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북미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두 번째 한미 SOFA 개정 협상을 이끌었으며, 환경 보호 및 형사 재판 절차를 포함한 7개 분야에서 이전 협정을 개선했다. 2000년 12월에는 한미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협상을 주도했고, 2001년 3월에는 주폴란드 대한민국 대사로 임명되었다.
2005년에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평화적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며, 북한의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 포기,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북한의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 권리 존중, 북미 관계 정상화,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 한반도 평화 체제 협상 등도 포함하고 있다.[1]
9.19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 | 세부 사항 |
---|---|
한반도 비핵화 | 6자 회담 당사국들은 한반도의 평화적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만장일치로 재확인.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조기에 NPT에 복귀하며 IAEA 사찰을 받을 것을 약속.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 및 이행. |
북한의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 권리 | 북한은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 이용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힘. 다른 당사국들은 이를 존중하고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 |
북미 관계 정상화 | 북한과 미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국의 양자 정책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함. |
에너지 지원 |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미국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의사를 표명. |
한반도 평화 체제 |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에 대해 협상. |
단계적 이행 | 6자 회담 당사국들은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상기 합의 사항을 단계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조정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 |
2. 2. 1. 외교통상부 (1975년 - 2006년)
1975년 외교부에 들어가(入部) 독일, 인도, 미국,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이후 안보과장, 북미국장, 주(駐)폴란드 대사,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1]특히 한∙미 간의 군사, 안보협상에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경력이 눈에 띈다. 1989년~1991년 안보과장 재직 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이하 SOFA) 1차 개정 협상의 실무대표로서 형사재판관할권 반환 등의 성과를 이루어내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99년~2000년 북미국장으로서 SOFA 2차 개정 협상 한국측 수석대표를 맡아 형사재판절차 개선, 환경조항 신설 등 7개 분야 불평등 조항 삭제를 포함한 협정 개선을 이루어냈다. 2000년 12월 한∙미 미사일 협상에서는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협상을 도출, 한국의 안보 수요에 필요한 수준의 미사일 개발이 가능토록 했다.[1]
다자협상에서도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했다. 1999년 제네바 4자회담(남∙북∙미∙중)에서는 차석대표로서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이끌었다. 또한 2005년 차관보 재직 당시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다.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제4차 6자회담에서 각국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냄으로써 「9.19 공동성명」 채택의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됐다.[1]

2. 2. 2.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2006년)
2006년 1월부터 11월까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주로 한국 정부의 통일, 외교, 국방 정책 업무와 관련하여 대통령을 보좌하고 관계부처와의 협의·조정 역할을 수행했다.외교 부문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등과 정상회담 시 한반도 관련 주요 현안 의견 조율 과정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통일 부문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7월), 핵실험(10월)에 대한 대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차분한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 타개책을 강구해 나가도록 했다. 안보 부문에서는 용산기지 이전, 직도 사격장, 미군기지 환경오염 제거 문제 및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등 한·미 간 안보 군사 현안을 다루면서 유관 부처 간 정책 조율 역할을 수행했다.
이 외에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및 이조성 중국 외교부장 등 6자회담 관련국 외무장관 등 여타국 수석대표들과도 폭넓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6자회담의 재개와 진전을 위해 노력했다.
2. 2. 3. 제34대 외교통상부 장관 (2006년 - 2008년)
2006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제34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풍부한 외교 경험과 폭넓은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6자회담 진행 등의 업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창의적이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협상력,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십 등을 바탕으로 외교부 인력 확충 등의 내부적 업적 또한 이루면서 외교통상부장관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1]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송민순을 반기문의 뒤를 잇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전 세계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6자 회담을 추진했다. 특히 송 장관의 리더십은 2007년 2월 13일 발표된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합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북한은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봉인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직원들이 필요한 모든 감시 및 검증을 수행하도록 초청한다.
- 그 대가로 6자 회담의 다른 5개국은 60일 이내에 시작되는 초기 단계에서 북한에 5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는 긴급 에너지 지원을 제공한다.
- 6개국 모두 상호 신뢰를 증진하고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한다. 직접 관련된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에 대해 협상한다.
- 6개국 모두 한반도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력, 그리고 공동 동북아 평화 및 안보 메커니즘 등 5개의 실무그룹을 설립하는 데 합의한다.
이 공동성명은 7월 영변에 있는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시설 가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10월 평양은 원자로에서 8천 개의 사용후핵연료봉을 제거하여 영변 시설의 폐쇄를 시작했다.[1]
송 장관 재임 중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KORUS FTA)의 체결이었다. 이는 한국이 단일 국가와 체결한 가장 큰 FTA이며, 미국이 주요 아시아 경제국과 체결한 최초의 FTA이다.
2. 3. 제18대 국회의원 (2008년 6월 - 2012년 5월)
2008년 6월 제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소속 정당은 민주당이며 비례대표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외교∙통상∙통일∙안보 등의 의정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ODA, 유엔 평화유지활동(UN PKO) 능률화 등 중요한 외교 정책 과제들에 대한 법적 개선을 위해 힘써왔다. 또한 적절한 직업 훈련을 받지 못하는 탈북자들의 정착 문제를 지적, 훈련 기간이 8주로 명시되어 있는 현행법을 최소 1년 간 다양하고 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 제공으로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세계적 지위 강화와 남북 화해 가속화를 추구하며 원칙과 초당적 협력을 기반으로 국회 내외로 공동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민주적이고 시장지향적이며 이웃 국가들과 우호적인 비핵화된 통일 국가를 만드는 길을 닦아나가려 하고 있다.[2][3]
2. 3. 1. 주요 대표 발의 법률안
송민순 의원은 18대 국회의원으로서 외교, 통상, 통일, 안보 분야에서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외교 정책 과제와 관련된 법률 개정에 주력했다. 주요 대표 발의 법률안은 다음과 같다.-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파견절차법안: 헌법 정신에 따라 국제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국회 동의를 전제로 하는 잠정합의권'을 정부에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국회의 동의권을 존중하면서도 신속한 파병 절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2]
- 공적개발원조기본법안: 한국의 ODA 규모를 확대하고, 유상원조와 구속성원조 비중을 줄이며, 부처별로 분산된 집행 체계를 개선하는 등 한국 ODA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하기 위한 법안이다.[2]
3. 논란
2016년 송민순은 회고록 『빙하의 이동(氷河は動く)』에서 2007년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한국의 기권 결정 과정에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ഇടപെ와 북한과의 사전 협의 의혹을 제기하여 논란이 되었다.[4]
문재인 측은 이를 부인하며 송민순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송민순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기권은 북한과의 접촉 이전에 이미 노무현 정부 내부에서 결정되었지만, 송민순은 그것이 최종 결정이 아니라고 오해했다.[5]
북한 측은 송민순의 회고록 내용과 문재인의 "사후 통보" 주장을 모두 부인하며, "'인권 결의안'에 대한 의견 문의도, 기권이라는 입장 통보도 없었다"고 반박했다.[6]
3. 1. 회고록 논란
송민순이 2016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노무현 정부 수뇌부가 제62차 유엔 총회 대북 인권 결의안(유엔 총회 결의 62/167)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투표 방침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 사전 문의 후 결정하였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8] 송민순은 2007년 11월 18일 관계 장관 회의에서 북측의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정한 후 북측에 의사를 물었고, 20일에 북측의 반대 의사를 확인하고 기권 입장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9]2016년 송민순은 회고록 『빙하의 이동(氷河は動く)』을 출판했는데, 2007년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서 한국의 기권은 다음 해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문재인이 지시한 북한과의 접촉 때문이라는 내용이 담겨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회고록에 따르면, 2007년 유엔 투표를 앞두고 노무현 정부 내부에서는 찬성과 기권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으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은 북한과의 접촉을 지시했고, 북한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한국은 투표에서 기권했다.[4] 반면, 문재인은 이를 부인했고, 문재인 측은 송민순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기권은 북한과의 접촉 이전에 이미 노무현 정부 내부에서 결정되었지만, 송민순은 그것이 최종 결정이 아니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회고록에 그렇게 썼다. 그러나 송민순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사실을 공표한 것이 아니므로, 검찰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5] 한편, 북한 측은 송민순의 회고록 내용과 문재인의 "사후 통보가 있었다"는 주장 모두를 부인하며, "'인권 결의안'에 대한 의견 문의도, 기권이라는 입장 통보도 없었다"고 반박했다.[6]
4. 학력
5. 경력
- 1975년 5월: 제9회 외무고시 합격[2]
- 1975년 9월: 외무부 입부(독일, 인도, 미국, 싱가포르 대사관 근무)[2]
- 1989년 7월: 외무부 안보과장[2]
- 1991년 2월: 외무부 북미과장[2]
- 1994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2]
- 1997년 8월: 대통령 비서실 국제안보비서관[2]
- 1998년 8월: 대통령 비서실 외교통상비서관[2]
- 1999년 7월: 외교통상부 북미국장[2]
- 2001년 5월: 주폴란드공화국 특명전권대사[2]
- 2004년 8월: 외교통상부 기획관리실장[2]
- 2005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보[2]
- 2006년 1월: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2]
- 2006년 11월: 외교통상부 장관[2]
- 2015년 3월 ~ 2017년 5월: 제5~6대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2]
6. 서훈
수여 년도 | 훈장 종류 |
---|---|
1991년 9월 | 근정포장 |
2003년 9월 | Krzyż Komandorski Orderu Zasługi Rzeczypospolitej Polskiej|폴란드 공로십자훈장pl |
2008년 6월 | 청조근정훈장 |
7.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2008년 | 총선 | 통합민주당 | 4,313,645표 (25.17%) | 비례대표 4번 | 당선 | 초선 |
참조
[1]
웹사이트
The Six-Party Talks on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https://web.archive.[...]
2007-07-15
[2]
웹사이트
http://www.mssong.or[...]
2022-03-00
[3]
웹사이트
DP Lawmaker Sponsors Surprise Resolution
http://dailynk.com/e[...]
2010-10-06
[4]
웹사이트
[단독] 송민순 “문재인, 이처럼 증거 있는데도 계속 부인”
https://www.joongang[...]
2017-04-21
[5]
웹사이트
“송민순이 오해한 것 같다” … 검찰, 회고록 사건 무혐의 결론
https://www.joongang[...]
2017-11-08
[6]
웹사이트
北, ‘송민순 회고록’ 전면 부인…“여당의 모략”
https://news.kbs.co.[...]
2016-10-24
[7]
뉴스
‘동춘당 문화제’ 대전서 개막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12-10-06
[8]
뉴스
'송민순 회고록' 파문…與 "文 국기문란 충격" 野 "색깔론 그만"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6-10-15
[9]
뉴스
盧정부, 2007년 유엔 北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북한과 사전협의, 미국엔 막판 통보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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