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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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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발총은 17세기 초 프랑스에서 개발되어 19세기 초까지 널리 사용된 초기 형태의 화기이다. 부싯돌을 사용하여 화약을 점화하는 방식으로, 매치락, 휠락 등 기존 화기를 대체하며 주력 무기로 자리 잡았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조선에도 전래되었으나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수발총은 권총, 머스킷, 소총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1800년대 초 뇌관총의 등장으로 점차 사용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수발총은 군사 훈련과 언어에 영향을 미쳐 "자물쇠, 몸통, 포신", "얼치기로 굴러가다", "실패"와 같은 용어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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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총
화기 정보
플린트락 머스킷
플린트락 머스킷
종류소화기
작동 방식전장식
점화 방식부싯돌 (플린트락)
역사적 정보
개발 국가프랑스 왕국
개발 시기17세기 초
사용 국가유럽 국가, 북아메리카
사용 기간17세기 ~ 19세기
파생형
종류머스킷
소총
권총
산탄총
기타 정보
관련 항목화승총
휠락
뇌관총

2. 역사

수발총은 17세기 초 프랑스에서 개발되어 30년 전쟁(1618~1648)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1] 초기에는 기술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서 개발, 사용되었으며, 30년 전쟁 이후 전 유럽에 걸쳐 사용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군대의 주력 화기로 사용되었으며, 뇌관총의 등장으로 대체되었다.

수발총은 화승총과 달리 불씨를 갖고 다닐 필요가 없으며, 부싯돌에 의한 스파크로 화약접시의 화약에 불이 옮겨 붙어 발사된다.

2. 1. 유럽의 발전과 전파

마린 르 부르주아는 1610년 프랑스루이 13세가 즉위한 직후 부싯돌 발사 방식을 통합한 화기를 제작했다.[1] 초기에는 매치락(화승총), 휠락 등과 함께 사용되었으나 점차 주력 화기로 자리 잡았다. 1662년경 영국 왕실 군대가 사용하는 화기 중 6분의 1만이 스냅한스(초기 부싯돌)였고 나머지는 매치락이었다.[3] 총검은 1690년경 개발되어 수발총에 부착되면서 기병을 막기 위해 사용되던 장창을 대체하였고, 이후 장창병은 유럽 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부싯돌 화기는 부싯돌의 불꽃으로 화약 장약을 치면서 발사되는 방식으로, 당시 더 흔하고 제조 비용이 저렴했던 매치락 소총과는 차이가 있었다. 부싯돌로 무장한 병사들은 "푸실리에"라고 불렸는데, 이는 부싯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 "푸실"에서 유래했다.[4] 신성 로마 제국은 1702년에 모든 매치락을 개조하거나 폐기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정을 제정하여 부싯돌을 표준화했다.[6] 18세기에는 유럽 각국의 군대에서 표준 화기로 채택되었다.

1650년경부터 다양한 후장식 부싯돌이 개발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방식은 총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사를 풀어 분리하는 총신을 가진 방식이었다. 이 유형은 앤 (영국 여왕) 시대에 인기를 얻어 앤 (영국 여왕) 시대의 권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윌리엄 3세 (잉글랜드 왕) 시대에 도입되었다.[8] 이 방식은 1819년형 홀 후장식 소총으로 미 육군에 지급되었다.[9]

1807년 영국인 목사 포사이드(Forsyth)가 뇌관총을 개발하고, 1842년 영국이 브라운 베스 소총을 뇌관총으로 교체할 때까지 수발총 방식은 전 유럽 군대에서 사용되었다.

2. 2. 한반도 전래와 조선의 상황

17세기에 하멜박연조선에 표류하여 훈련도감에서 수발총 제작을 도왔다.[1] 그러나 조선에서는 자체적인 필요성이 크지 않았고, 제조 단가가 높았으며, 기술력도 부족하여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1]

2. 3. 아시아 및 기타 지역의 사용

유럽 외 지역에서는 제조 기술의 한계로 인해 19세기 중반까지 매치락이 주로 사용되었다. 인도 아대륙에서는 토착 방식으로 제조된 토라다르 매치락이 1830년경까지 가장 흔한 화기였다.[10] 스리랑카 왕국은 독특한 이분된 개머리판과 튼튼한 장식으로 유명한 Bondikula로 알려진 장총신 머스킷에 사용되는 부싯돌 메커니즘을 현지에서 생산했으며, 17~18세기에 널리 사용되었다.[11][12]

캔디 왕국에서 온 18세기 부싯돌 머스킷인 튼튼하게 장식된 Bondikula는 아시아에서 부싯돌 사용의 한 예이다.


중국에서는 1635년까지 일부 부싯돌이 획득되어 묘사되었지만, 군대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13] 1836년 청나라의 군사력에 대한 영국 보고서는 모든 중국 화기가 "조잡하게 만들어진" 매치락이며, 부싯돌이나 다른 "화기 부족"이 없다고 언급했다.[14]

동남아시아는 중국과 인도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 베트남은 1680년대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부싯돌을 접했고, 유럽 상인으로부터 일부를 구입했다. 부싯돌은 18세기 첫 10년 동안 자바 아스널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는 1710년대와 1720년대에 수라바야의 통치자들에게 부싯돌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치락은 19세기 중반까지 두드러졌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부싯돌을 토착적으로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교지 아르케부스는 18세기 말 응우옌 왕조 머스킷 총병의 주요 화기였다. 미얀마는 1860년대까지 군대에서 대부분의 부싯돌을 얻었으며(미얀마 왕들은 통화 대신 잉여 유럽 머스킷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유럽 열강은 이미 뇌관 화기로 옮겨갔다.[15]

3. 작동 방식 및 사용법

수발총은 부싯돌과 부싯쇠의 마찰로 발생한 불꽃을 이용해 화약을 점화시켜 발사하는 방식이다.

수발총의 발사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코크를 하프 콕 상태로 회전시킨다. 시어가 텀블러의 안전 노치에 걸려 의도하지 않은 발사를 방지한다.

# 화약 통에서 검은 화약을 총구에 넣고, 납탄을 넣는다. 납탄은 종이나 천 조각으로 싸여 있으며, 총구 삽입봉으로 밀어 넣는다.

# 플래시 팬에 소량의 화약을 채우고, 플래시 팬 뚜껑(프리즌)을 닫는다.

총은 "장전 완료" 상태가 되며, 사냥을 하거나 전투에 임할 때 이러한 방식으로 휴대한다.

영국군대륙군은 종이 탄약통을 사용해 무기를 장전했다.[24]

3. 1. 작동 원리

코크(cock)에 고정된 부싯돌이 부싯쇠(frizzen)를 치면서 불꽃을 발생시킨다. 발생한 불꽃은 화약접시(flash pan)의 화약에 옮겨붙고, 이 불꽃이 총열 안의 화약을 점화시켜 탄환을 발사한다.[24]

Flintlock 발사


Flintlock 메커니즘에 의해 생성된 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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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발사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코크를 하프 콕에서 풀 콕으로 회전시켜 코크의 안전 잠금을 해제한다.

# 총을 수평으로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부싯돌을 잡고 있는 코크가 풀린다.

# 부싯돌이 플래시 팬 뚜껑의 강철 조각인 프리즌을 쳐서 뚜껑이 열리고 화약이 노출된다.

# 부싯돌과 프리즌의 접촉은 플래시 팬의 화약으로 향하는 불꽃을 생성한다.

# 화약이 점화되고, 불꽃은 총열의 작은 구멍(벤트 또는 점화공)을 통과하여 주 화약 장약이 점화되는 연소실로 들어가 총이 발사된다.

영국군대륙군은 무기를 장전하는 데 종이 탄약통을 사용하였다.[24]

3. 2. 장전 및 발사 과정

수발총의 장전 및 발사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총구를 청소한다.

2. 화약접시에 화약을 넣고 뚜껑을 닫은 후, 콕(cock)을 발사 위치로 당긴다.

3. 페이퍼 카트리지(종이탄피)를 찢어 총구에 화약을 넣는다.

4. 납 총알을 넣는다.

5. 탄약을 싸고 있던 포장지를 넣어 총알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한다.

6. 꽂을대로 화약과 총알을 다진다.

7. 조준 후 발사한다.

8. 발사 후 총구 안을 털어낸다.

9. 1번 과정부터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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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싯돌을 잡고 있는 코크는 하프 콕 상태에서 시어가 텀블러의 안전 노치에 걸려 의도치 않은 발사를 방지한다.
  • 화약 통에서 검은 화약을 총구에 넣고, 납탄을 넣는다. 납탄은 종이나 천 조각으로 싸여 있으며, 총구 삽입봉으로 밀어 넣는다.
  • 플래시 팬에 화약을 채우고 뚜껑(프리즌)을 닫는다.


이제 총은 "장전 완료" 상태가 된다.

발사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코크를 하프 콕에서 풀 콕으로 회전시켜 안전 잠금을 해제한다.

2. 방아쇠를 당기면 코크가 풀린다.

3. 부싯돌이 프리즌을 쳐서 플라이밍 화약이 노출된다.

4. 부싯돌과 프리즌의 접촉으로 생긴 불꽃이 플래시 팬의 화약에 점화된다.

5. 화약이 점화되고, 플래시는 총열의 점화공을 통과하여 주 화약 장약이 점화되는 연소실로 들어가 총이 발사된다.

영국군과 대륙군은 종이 탄약통을 사용하여 무기를 장전했다.[24]

종이 탄약통을 사용한 장전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코크를 하프 콕 위치로 옮긴다.

2. 탄약통을 찢는다.

3. 플래시 팬에 화약을 반쯤 채운다.

4. 프리즌을 닫는다.

5. 나머지 화약을 총구에 붓고 탄약통을 밀어 넣는다.

6. 총구 삽입봉으로 탄환과 탄약통을 약실까지 밀어 넣는다.

7. 총구 삽입봉을 다시 넣는다.

8. 무기를 견착한다.

이후 무기를 풀 콕 상태로 만들어 발사한다.

3. 3. 종이 탄약통 사용 (영국군, 대륙군)

영국군과 대륙군은 모두 종이 탄약통을 사용하여 장전 시간을 단축했다.[24] 종이 탄약통에는 화약과 탄환이 함께 들어있어, 병사들은 빠르게 장전할 수 있었다. 장전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이빨로 탄약통을 찢는다.

# 화약접시에 화약을 반쯤 채우고 벤트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 화약접시 뚜껑(프리즌)을 닫아 화약을 보관한다.

# 나머지 화약을 총구에 붓고 탄약통(종이)을 함께 밀어 넣는다.

# 꽂을대를 꺼내 탄환과 탄약통을 약실까지 밀어 넣는다.

# 꽂을대를 다시 넣는다.

# 무기를 견착한다.

이후, 무기를 풀 콕(Full Cock) 상태로 만들어 발사할 수 있었다.

4. 종류

수발총은 소형 화기의 한 종류로, 장총 또는 권총, 활강총 또는 강선총, 전장식 또는 후장식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17세기 초 프랑스에서 개발된 수발총은 부싯돌을 이용해 화약을 점화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매치락 방식에 비해 발사 속도가 빠르고 오발이 적어 군용 및 민간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마린 르 부르주아는 1610년 프랑스루이 13세가 즉위한 직후 부싯돌 발사 방식을 통합한 화기를 제작했다.[1] 그러나 부싯돌 점화 방식은 이미 1517년 이전에 발명된 스냅록에서 사용되었다.[2] 초기에는 비용과 섬세함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나,[3] 매치락에서 휠락을 거쳐 여러 부싯돌 방식(스냅록, 스냅핸스, 미케레, 도그록)으로 발전하면서 점차 개선되었다.[4] 르 부르주아는 이러한 특징들을 결합하여 "진정한" 부싯돌을 만들었다.

수발총은 불을 붙인 끈이 필요했던 매치락과 달리 부싯돌의 불꽃으로 화약을 점화했기 때문에, 화약 취급 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위험을 줄였다. 이러한 이유로 수발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푸실리에"라고 불렸다.[4]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유럽 군대에서 정예 보병, 정찰병, 포병 경비대 등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매치락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았다.[4] 네덜란드 육군은 1620년대에 보병에게 스냅한스를 지급하고 1640년까지 진정한 부싯돌을 지급하는 등 부싯돌을 대규모로 사용했다.[5]

1630년경에는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수발총이 사용되었지만, 이전의 부싯돌 시스템도 한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1702년에 모든 매치락을 수발총으로 개조하거나 폐기하도록 하였다.[6] "진정한" 수발총은 이전 부싯돌보다 제조 비용이 저렴하여 18세기에는 모든 유럽 군인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수발총은 매치락에 비해 재장전 속도가 약 두 배 빠르고 오발이 적었으며, 불을 붙인 성냥이 필요 없어 사용이 편리했다.[7]

1650년경부터 다양한 후장식 수발총이 개발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방식은 총신을 나사로 풀어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앤 (영국 여왕) 시대에 인기를 얻어 앤 여왕 권총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윌리엄 3세 (잉글랜드 왕) 시대에 도입되었다. 또 다른 유형은 총신 측면, 상단 또는 하단에 탈착식 나사 플러그를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1704년 아이작 드 라 쇼메트가 제작한 시스템은 방아쇠 울의 세 번 회전으로 총신을 열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1770년대 패트릭 퍼거슨 대령에 의해 개선되어 미국 독립 전쟁에서 사용된 실험용 소총에 적용되었다. 대량 생산된 수발식 후장식 소총은 존 H. 홀 (군인)이 발명한 1819년형 홀 후장식 소총과[8][9] 주세페 크레스피가 생산한 머스킷이 대표적이다.

수발총은 19세기 중반까지 사용되다가 뇌관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현대에는 재연 행사나 흑색 화약 무기 전용 사냥 시즌에 사용되고 있다.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후에도 수발총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제조 기술의 복잡성 때문에 덜 발달된 국가들은 19세기 중반까지 매치락을 계속 사용했다. 인도 아대륙에서는 토라다르 매치락이 1830년경까지 가장 흔한 화기였다.[10] 스리랑카 왕국은 독특한 형태의 수발총 메커니즘을 현지에서 생산하여 사용했다.[11][12] 중국에서는 1635년에 일부 수발총이 묘사되었지만 군대에서 채택되지 않았다.[13] 1836년 영국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화기는 모두 "조잡하게 만들어진" 매치락이었다.[14]

동남아시아중국인도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베트남은 1680년대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수발총을 접하고 일부를 구입했다. 18세기 초 자바에 수발총이 나타났고, 네덜란드는 1710년대와 1720년대에 수라바야 통치자들에게 수발총을 공급했다. 그러나 매치락은 19세기 중반까지 두드러졌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수발총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미얀마는 1860년대까지 군대에서 대부분의 수발총을 얻지 못했다.[15]

4. 1. 권총 (Pistols)

1760년경 로잔에서 Galliard가 제작한 앤 여왕 스타일의 수발총. 모르주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수발총 권총은 호신용 및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다. 유효 사거리가 짧았으며, 검이나 커틀러스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권총은 대개 활강총이었지만, 일부 강선 권총도 생산되었다.

수발총 권총은 다양한 크기와 스타일로 제공되었으며, 이는 종종 겹치고 잘 정의되지 않아,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이름은 권총이 구식이 된 후 수집가와 딜러에 의해 붙여졌다. 가장 작은 것은 약 15.24cm 미만이었고, 가장 큰 것은 약 50.80cm 이상이었다. 1700년대 초부터 더 큰 권총은 짧아졌으며, 1700년대 후반에는 가장 큰 것이 약 약 40.64cm 길이였다. 가장 작은 것은 일반적인 주머니나 손을 따뜻하게 하는 머프에 들어갈 수 있었고, 여성도 쉽게 휴대할 수 있었다.

가장 큰 크기는 안장 바로 앞, 말의 등에 있는 홀스터에 넣고 다녔다. 중간 크기에는 큰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코트 포켓 권총 또는 코트 권총, 가방이나 상자에 코치의 좌석 아래나 위에 휴대하도록 제작된 코치 권총, 벨트나 허리띠에 걸 수 있도록 고안된 고리가 있는 벨트 권총이 포함되었다. 더 큰 권총은 말 권총이라고 불렸다. 모든 크기로 제작된 권총 디자인 중 가장 우아한 디자인은 앤 여왕 권총이었다.

수발총 권총의 기계적 발전의 정점은 영국 결투 권총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신뢰할 수 있고 방수 기능이 있으며 정확했다. 외부 장식은 최소화되었지만 장인 정신은 분명했고, 내부 작동 방식은 종종 외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장인 정신으로 마감되었다. 결투 권총은 1700년대 후반의 말 권총 크기였으며, 약 약 40.64cm 길이였고, 일반적으로 각 조각에 대한 구획이 있는 나무 상자와 함께 액세서리와 함께 쌍으로 판매되었다.

4. 2. 머스킷 (Muskets)

플린트락 방식 머스킷은 1660년에서 1840년 사이 유럽 군대의 주력이었다. 머스킷은 둥근 납 탄환을 장전하는 전장식 활강 장총이었지만, 산탄을 장전하여 사냥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군사용으로는 탄환이나 여러 개의 큰 산탄을 섞어 장전(이것을 벅 앤 볼이라고 부름)했으며, 유효 사거리는 약 75m에서 100m였다. 새 사냥용으로 설계된 활강식 무기는 "포울러"라고 불렸다. 플린트락 머스킷은 일반적으로 구경이 크고, 보통 초크가 없어, 전 구경 탄환을 발사할 수 있었다.

군용 플린트락 머스킷의 무게는 대략 4.53kg 정도였는데, 무거우면 너무 다루기 힘들고, 가벼우면 격렬한 전투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히 튼튼하거나 무겁지 않다는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총검을 장착하도록 설계되었다. 플린트락에서 총검은 주로 억지력 역할을 했다. 18세기의 몇몇 전투에서 부상자 목록을 보면 부상의 2% 미만이 총검에 의해 발생했다.[16]

앙투안 앙리 조미니는 나폴레옹 시대의 유명한 군사 작가로, 그 시기에 수많은 군대에서 복무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야전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총검 돌격은 접촉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쪽이 도망가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17] 플린트락 무기는 현대식 소총처럼 사용되지 않았다. 이들은 대개 일제 사격으로 사용되었고, 그 다음에는 무기를 이들이 대체한 파이크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총검 돌격이 이어졌다. 또한 파이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군용 플린트락은 길이가 대략 약 1.52m에서 약 1.83m(총검 미부착 시)였으며, 총검의 길이는 약 18inch에서 22inch였다.

4. 3. 소총 (Rifles)

예거 소총은 18세기 후반 독일에서 개발되었다. 이 소총은 사냥에 사용되었으며, 군사적으로는 산병전이나 전문 사수들이 사용했다.

미국에서는 1700년대 초 펜실베이니아 남동부에서 작은 사냥감 사냥용 롱 라이플(펜실베이니아 소총 또는 켄터키 소총)이 개발되었다. 예거 소총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훨씬 긴 총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정확했고 유효 사거리는 약 250m였다.[18] 이들은 일반적으로 더 작은 구경의 탄환을 사용했으며, 약 0.81cm~약 1.14cm 구경이 가장 흔했다. 그래서 때때로 "pea rifle"라고 불리기도 했다.[19]

제자일은 아프가니스탄, 인도, 중앙아시아, 중동 일부 지역에서 개발되어 널리 사용된 군사용 롱 플린트락 소총이었다.

그러나 유럽 군사 전술이 여전히 대략적인 조준의 일제 사격을 기반으로 하는 동안, 대부분의 플린트락은 여전히 평활강 소총이었다. 왜냐하면 강선이 있는 소총은 장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고, 반복적인 사격 후 흑색 화약이 총신을 더럽히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선이 있는 플린트락은 저격수, 산병 및 기타 지원 부대에 의해 군사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1756년의 킹스 로열 소총 부대와 소총 여단(프린스 콘소트의 전용)과 같이 군사적 목적으로 소총을 활용하려는 노력이 증가했지만, 미니에 탄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평활강 소총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 퍼커션 캡이 플린트락을 구식으로 만들었다.

4. 4. 다총열 화기 (Multishot flintlock weapons)

숙련된 사수조차도 활강식 전장식 머스킷을 재장전하는 데 15초가 걸렸기 때문에[20], 플린트락은 여러 발의 사격을 위해 2개, 3개, 4개 이상의 총열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러한 설계는 제작 비용이 많이 들고 종종 신뢰성이 낮고 위험했다. 쌍열 산탄총과 같은 무기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페퍼 박스 리볼버와 같은 무기는 때때로 모든 총열을 동시에 발사하거나 사용자의 손에서 폭발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러 개의 단발 무기를 휴대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안전하며 신뢰성이 높았다.

연발총, 다발 사격식 단발 권총, 그리고 다발 사격식 단발 리볼버도 제작되었다. 주목할 만한 예로는 퍼클 건, 모티머[21], 칼토프, 미셸 로렌조니, 아브라함 힐, 쿡슨 권총[22], 제닝스 연발총, 엘리샤 콜리어 리볼버 등이 있다.

5. 단점

수발총은 현대식 무기에 비해 여러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부싯돌 관리가 중요했는데, 무딘 부싯돌이나 잘 깨지지 않은 부싯돌은 불꽃을 잘 일으키지 못해 불발률이 높았다.[23] 습기에도 취약하여, 부싯쇠나 화약이 젖으면 발사되지 않아 비가 오거나 습한 날씨에는 사용이 어려웠다.[23]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죽 덮개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23]

오발 사고의 위험성도 높았다. 총열에 남은 불씨가 다음 화약 장약을 장전할 때 점화될 수 있었다.[23]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총열을 청소하거나 잔여물이 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전투 중에는 이러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23] 빠른 속도로 장전하고 사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발 사고의 위험이 더욱 커졌다.[23] 발사 시 총구와 섬광공에서 불꽃이 튀어나와 주변 병사의 화약에 불이 붙을 위험도 있었고,[23] 의도하지 않은 부싯쇠 타격으로 탄약통의 화약이 점화될 수도 있었다.[23]

흑색 화약 사용으로 인한 문제도 있었다. 흑색 화약은 총열을 빠르게 오염시켜 장전을 어렵게 만들었고, 특히 소총의 정확도에 영향을 미쳤다.[23] 화약과 탄환 사이에 공극이 생기면 총열이 폭발할 위험도 있었다.[23] 흑색 화약에 포함된 유황 성분은 이산화황을 생성하고, 이는 습기를 흡수하여 황산과 술폰산을 만들어 총열 내부와 잠금 장치를 부식시켰다.[23] 따라서 사용 후에는 반드시 청소를 해야 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수발총은 부식으로 인해 파괴될 수 있었다.[23]

대부분의 수발총은 부품 호환성이 낮았다.[23] 부품이 손상되거나 마모된 경우, 쉽게 교체할 수 없었고, 수작업으로 부품을 수정해야 했기 때문에 수리가 어려웠다.[23] 호환 부품은 수발총이 뇌관총으로 대체되기 직전에야 사용되기 시작했다.[23]

6. 문화적 영향

수발총은 200년 이상 주요 화기로 사용되면서 언어와 군사 훈련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예를 들어, "lock, stock and barrel"(모든 것), "go off half-cocked"(섣불리 행동하다), "flash in the pan"(반짝 성공 후 실패)과 같은 영어 표현들은 수발총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서 유래했다.[25]

또한, 수발총을 다루는 동작을 표준화하기 위해 고안된 무기 자세와 군사 훈련 명령은 현대에도 군사 훈련 및 시위의 표준으로 남아있다.[25]

현대에 들어 수발총은 구식이 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흑색 화약 무기 전용 사냥 시즌을 운영하여 수발총을 포함한 흑색 화약 무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역사 재현 행사 등에서 수발총이 사용되기도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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