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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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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총검은 총구에 장착하여 사용하는 칼로, 16세기부터 존재했다. 초기에는 꽂는식 총검으로 소총 발사를 막는 문제점이 있었으나, 소켓식 총검의 등장으로 해결되었다. 총검은 근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18세기와 19세기에는 주요 보병 전술로 활용되었다. 20세기 들어 자동화기의 발달로 총검의 전술적 중요성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많은 군대에서 총검을 지급하고 있으며, 포로 제압, 최후의 수단, 사기 진작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현대의 총검은 다용도 나이프, 병따개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훈련 도구로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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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
지도
기본 정보
종류총에 착검하는 칼날
날붙이 무기
용도백병전
관련 무기
발명 국가프랑스
발명 시기17세기
역사
초기 형태총구에 꽂는 단순한 칼날
이후 발전총몸에 부착하는 형태로 진화
주요 사용 시기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현대적 역할 변화대검의 전투 역할은 감소, 의장용 또는 부가 기능 강조
형태 및 종류
종류단검형 총검
침형 총검
칼날 형태단날, 양날 등 다양
착검 방식총구 결합식, 총몸 결합식 등
재질
주요 재료강철
손잡이 재료나무, 플라스틱, 금속 등
기능
주요 기능근접 전투
총의 보조 무기
기타 기능참호전, 도구 사용
기타
관련 용어착검, 총검술
문화적 의미군인의 상징, 무기의 한 형태

2. 역사적 배경

1606년 중국산 초기 화승총에 장착된 플러그식 총검의 묘사. 무기의 설명서와 사양이 위에 표시되어 있다.


'총검'(bayonette)이라는 용어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 총검이 총 끝에 장착할 수 있는 칼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칼의 한 종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코트그레이브(Cotgrave)의 1611년판 사전(Dictionarie)에서는 총검을 "칼이 달린 일종의 작고 납작한 주머니 단검 또는 허리에 차는 큰 칼"로 설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피에르 보렐(Pierre Borel)은 1655년에 "총검"(bayonette)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긴 칼이 바욘(Bayonne)에서 만들어졌다고 적었지만, 더 자세한 설명은 제공하지 않는다.[3] 프랑스 또는 독일에서 1570년대 초에 총검이 발명되었다는 기록도 있다.[4]

2. 1. 총검의 등장과 초기 발전



'총검'(bayonette)이라는 용어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 총검이 총 끝에 장착할 수 있는 칼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칼의 한 종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코트그레이브(Cotgrave)의 1611년판 사전(Dictionarie)에서는 총검을 "칼이 달린 일종의 작고 납작한 주머니 단검 또는 허리에 차는 큰 칼"로 설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피에르 보렐(Pierre Borel)은 1655년에 "총검"(bayonette)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긴 칼이 바욘(Bayonne)에서 만들어졌다고 적었지만, 더 자세한 설명은 제공하지 않는다.[3] 프랑스 또는 독일에서 1570년대 초에 총검이 발명되었다는 기록도 있다.[4]

18세기 초 러시아 보병이 소총에 꽂는식 총검을 장착하는 모습


총검의 최초 기록은 1606년에 출판된 중국 군사 논문인 兵录|병록중국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子母鳥銃|자모조총중국어 형태였는데, 약 57.6cm 길이의 꽂는식 총검이 장착된 후장식 머스킷 소총이었다. 총검을 장착하면 총의 전체 길이는 1.92m에 달했다. "총검"(銃刀|총도중국어)으로 명명되었으며, "총신에 삽입하여 약간 비틀어 고정할 수 있는 짧은 검"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전투에서 화약과 탄환이 모두 소진되었거나, 산적과 싸울 때, 근접전을 벌이거나 매복을 만났을 때" 사용되며, "2보(3.2미터)를 이동하는 시간 안에 총을 장전할 수 없다면 총검을 장착하고 창처럼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5][6]

초기 총검은 소총의 총신에 직접 장착되는 "꽂는식"이었다. 이를 통해 경보병을 중보병으로 전환하여 기병 돌격을 막을 수 있었다. 총검은 머스킷 소총 총신에 직접 삽입되는 둥근 손잡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당연히 총 발사를 막았다. 유럽 전쟁에서 총검 사용에 대한 최초의 알려진 언급은 자크 드 샤스네, 뷔시외그르 자작의 회고록에 나온다. 그는 삼십년 전쟁 (1618~1648) 동안 프랑스군이 조악한 약 0.30m 길이의 꽂는식 총검을 사용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1671년이 되어서야 장 마르탱 장군이 프랑스의 척탄병 연대에 꽂는식 총검을 표준화하여 지급했다. 이들은 1672년에 창설된 영국 용기병 연대 일부와 1685년에 창설된 왕립 척탄병에게도 지급되었다.[7]

총검의 소켓, 삼각형 단면과 홈이 있는 측면을 보여줌


꽂는식 총검의 주요 문제점은 장착하면 머스킷을 발사할 수 없게 만들어, 근접전 직전까지 총검을 장착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1689년 킬리크랭키 전투에서 오렌지 공 윌리엄에게 충성하는 세력이 자코바이트 고지대 주민들에게 패배한 것은 (다른 이유들 중에서도) 꽂는식 총검의 사용 때문이었다.[7] 고지대 주민들은 약 약 45.72m까지 접근하여 일제 사격을 가하고 머스킷을 버린 다음, 도끼와 검을 사용하여 총검을 장착할 시간도 주지 않고 충성파를 신속하게 제압했다. 그 직후 패배한 지휘관인 휴 매케이가 자신의 발명품인 소켓식 총검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 "소켓" 총검은 소켓 마운트와 머스킷 개머리판 주위에 맞는 오프셋 블레이드를 모두 통합하여 총검이 장착된 상태에서 머스킷을 발사하고 재장전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초 오프셋 스파이크 소켓 총검


1690년 플뢰뤼스 전투 이후 루이 14세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소켓식 또는 지그재그식 총검에 대한 시험이 있었지만, 머스킷에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채택되지 않았다. 라이스위크 조약(1697) 직후 영국과 독일은 창을 폐지하고 소켓식 총검을 도입했다.[7] 영국식 소켓 총검은 평평한 날이 아닌 삼각형 단면의 스파이크를 가지고 있었으며, 평평한 면은 총구 쪽을 향하고, 두 개의 홈이 있는 면은 약 38.10cm 길이로 가장 바깥쪽을 향했다. 총구에 고정시키는 장치가 없었고, 전투 중에 떨어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18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유럽 군대가 소켓식 총검을 채택했다. 1703년 프랑스 보병은 총검이 실수로 머스킷에서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는 스프링식 잠금 시스템을 채택했다. 1715년경 삼각형 날이 도입되었는데, 이전의 단날 또는 양날 모델보다 더 강했다.[8]

2. 2. 총검의 전술적 중요성 증대

17세기 이후 총검의 발달로 돌격은 주요 보병 전술이 되었다. 19세기 초, 군사 학자들은 대부분의 총검 돌격이 근접 전투로 이어지지 않고, 실제 총검전이 벌어지기 전에 한쪽이 도망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총검을 장착하는 행위는 주로 사기를 북돋우고, 가까운 거리에서 죽일 의향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36]

나폴레옹 전쟁 당시 총검 돌격은 흔한 전술이었지만, 총검 자체로 인한 사상자는 적었다. 앙투안-앙리 조미니는 야전에서 대부분의 총검 돌격은 한쪽이 도망치는 것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총검을 사용한 전투는 요새 공격이나 매복 작전과 같이 좁은 환경에서 주로 발생했다.[38] 집중 사격 시대에 총검의 위협은 훨씬 더 실질적이었고, 이는 전열이 만나기 전에 도망치도록 부추겼다.

미국 남북 전쟁(1861~1865) 당시 총검은 전투 사상자의 1% 미만을 차지했다.[39] 총검 돌격은 근거리 소규모 교전에서 적군을 후퇴시키는 데 성공적이었지만, 사상자는 적었고, 종종 단기간의 교전 결과와 방어 지형 점령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총검 훈련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데 사용되었다.[40] 겟티스버그 전투 둘째 날, 조슈아 로렌스 챔벌레인의 제20 메인 자원 척탄병 연대는 탄약 부족으로 총검 돌격을 감행하여 남부 연합군을 기습 포로로 잡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무인지대를 통한 총검 돌격은 기관총, 박격포, 포병 등에 의해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1919년 프랑스 플랑드르의 무인지대


20세기 현대전에서 백병전 돌격은 의문스러운 작전이 되었다. 뤼순 공략 기간 동안 일본군은 인해전술로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중일 전쟁 동안 일본군은 만세 돌격을 통해 중국군을 격퇴했다.

태평양 전쟁 초기, 만세 돌격은 준비되지 않은 적군을 제압했지만, 전쟁 후반에는 큰 희생을 치렀다. 일부 일본 지휘관들은 공격의 무의미함을 인식하고 금지했다.

한국 전쟁(1950~1953) 중 중국 인민해방군은 잠입과 돌격 전술을 조합한 단기 돌격을 사용했다.[43] 이들은 야간에 소규모 화력팀을 파견하여 적 방어의 취약점을 공격하고, 총검을 이용한 기습 공격으로 방어선을 돌파했다.[43] 이러한 공격 양상은 UN군에게 "인해전술"이라는 인상을 남겼지만,[45] 실제로는 좁은 지점에 소규모 팀을 연속적으로 파견하는 방식이었다.[46]

2. 3. 현대전에서의 총검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은 보병 전투 작전에서 장총과 총검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23][30][32][31] 참호전의 좁은 공간, 야간 기습 및 순찰, 개활지 공격 등 어떤 상황에서든 양측 군인들은 근접전 무기로 사용했을 때 길고 다루기 힘든 소총과 총검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23][30][32][31] 연합군 병사들이 '던지기' 또는 '뻗어 찌르고 돌진하는 공격'을 훈련받았지만, 이 방법은 제1차 세계 대전 전장에서 대부분 전술적 가치를 잃었다.[27] 강한 팔과 손목이 필요했고, 처음 찌르기가 빗나가면 회복이 매우 느렸으며, 이를 예상하고 훈련받은 병사에 의해 쉽게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반격에 노출되기 쉬웠다.[27][33][34] 따라서 양측 보병 부대는 긴 총검 대신 트렌치 나이프, 트렌치 클럽, 권총, 수류탄, 등 다른 무기를 보조 근접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32][35]

병사들은 곧 총검을 소총 부착물일 뿐만 아니라 나이프로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총검은 종종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단축되어 다용도 도구로 사용하거나 근접전에서 기동성을 높였다.[1][30][32][31]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총검은 더욱 단축되어 나이프 크기의 무기가 되었고, 전투용 또는 유틸리티 나이프로서 추가적인 유용성을 제공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입된 대다수의 현대 총검은 나이프 총검 유형이다.[1]

20세기에 들어와 실용화된 기관총을 비롯한 자동화기의 발달은 보병의 총검 돌격이나 기병의 창 돌격을 주체로 하는 전법에 변화를 가져왔다. 러일전쟁에서는 중기관총이 처음 등장하여 적진을 공격하는 보병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기관총과 철조망에 의해 진지 방어력이 크게 증대되어, 적절히 배치된 기관총 한 정으로 보병 1개 대대(수백 명 규모)의 돌격을 저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전 초기, 기병이나 보병의 일렬 돌격은 큰 피해를 입었고, 총검 돌격으로는 적진 돌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전황은 참호전으로 교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자동소총이 처음 등장하는 등 보병용 자동화기가 더욱 발달하여, 총검에 의존하지 않고도 근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군은 생산 간략화를 위해 자동소총이나 간이형 소총에서 총검을 폐지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보병 연대 총검의 길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경계로 짧아졌다. 일본의 삼십년식 총검, 미국의 M1905 총검, 영국의 M1917 총검 등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채택된 총검은 길이 40cm 정도의 칼날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시에는 25cm 전후로 짧아졌다. 이는 총검의 길이가 백병전에서의 우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과, 기병의 쇠퇴로 말 위의 기병에게 닿는 창으로서의 길이가 불필요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군대화력과 관계없이 자동화기를 장비하게 되었고, 근접전에 사용되는 보병의 장비는 돌격소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공격 전술로서 총검 돌격이 행해지는 일은 적어졌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도 보병이 접근전을 벌이는 경우가 있으며, 권총의 명중률 문제, 난전에서의 유탄, 튀는 탄환, 탄약 부족 등의 위험이 있어 총검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카빈총에서 불펍형 총에 이르기까지, 현대에도 많은 군용 소총이 착검 가능하며, 총검은 보병의 필수 무기로 남아 있다.

군대에서는 총검 전투 훈련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총기 고장이나 탄약 소진 시에도 전투 능력을 유지하고 병사의 사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또한, 외관상의 위압감은 치안 임무에서도 유용하다. 신병 기초 훈련에서는 총검으로 헌 타이어나 허수아비, 종이 표적 등을 반복해서 찌르는 훈련을 통해 상대방을 공격하고 살상하는 행위에 대한 훈련을 한다.

현대의 총검은 대부분 검 형태이다. AK 시리즈 총검처럼 총검의 다기능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M9A1 총검과 같이 전투용 나이프에 총검 장착 장치를 단 제품도 등장했다.[79] 이들은 휴대용 나이프로서의 성능이 높고, 철조망 절단용 와이어 커터, 드라이버,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서바이벌 나이프처럼 속이 빈 칼집에 연장을 수납할 수 있다. 현대에는 공구로서의 이용에도 적합한 크기의 나이프를 보병이 휴대하여 총검과 병용하는 운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군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총검 돌격이 실시되었다. 포클랜드 전쟁영국 육군낙하산 연대 B중대 제3소대 소속 상사가 총검 돌격을 지휘했고, 스코츠가즈 병사가 탄약을 소진한 후 아르헨티나군 진지에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80] 2000년대 영국에서는 총검이 현대화 과정에서 사라져 갈 장비로 여겨졌지만, 이후에도 여러 차례 총검 돌격이 있었다.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된 영국 육군 아가일 앤 서덜랜드 하이랜더스 연대가 마흐디군의 매복 공격을 받았을 때, 이들은 마흐디군의 박격포 진지에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81]

미국 육군에서 대규모 총검 돌격은 1951년 루이스 밀렛 대위가 지휘한 것이 마지막 사례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 M16이 총검 격투에 견딜 수 없다고 여겨져 총검 격투 훈련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초 포트 베닝 기지에 새로운 총검 훈련 코스가 건설되면서 훈련용 모의총을 사용하는 총검 훈련이 재개되었다.[84]

3. 주요 특징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총검술 교리는 대부분 "사정거리" 개념에 기반을 두었다. 이는 매우 긴 소총과 고정된 총검을 사용하여 적 병사의 칼날 사정거리에 접근하지 않고도 적 병사를 찌를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1][18][19] 과거 보병의 창처럼, 적 보병의 소총과 부착된 총검보다 더 긴 소총과 총검의 결합 길이는 전장에서 전술적 이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1][19][20][21]

1886년, 프랑스군은 르벨 1886년형 소총에 52cm 길이의 사각형 에페 형태 총검인 ''에페-바이오네트 모델 1886''을 도입, 소총과 총검의 총 길이를 약 1.8m로 만들었다. 독일은 1898년형 마우저 소총에 50cm 칼날을 가진 긴 검 형태의 총검 ''사이텐게베어 98''을 도입하여 약 1.75m의 총 길이를 확보, 프랑스 르벨 소총 다음으로 긴 '사정거리'를 제공했다.[20]

1900년 이후, 스위스, 영국, 미국은 라이플 머스켓보다 짧지만 카빈 소총보다는 긴 총열을 가진 소총을 채택하면서[1][22] 부착된 총검의 "사정거리"는 줄어들었다.[1] 영국은 1904년 SMLE(Short, Magazine, Lee–Enfield)을 도입했고,[1][22] 독일 M1898 마우저 소총과 검 형태의 총검은 SMLE와 P1903 총검(12인치, 약 30cm 칼날)보다 20cm(약 8인치) 길었다.[1][23] 영국 P1903과 P1888은 만족스러웠지만, 사정거리 단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1][20][22][24] 한 군사 저술가는 "독일 병사가 영국 병사보다 8인치의 이점을 가진다"고 경고했다.[20]

1905년, 독일군은 공병과 척후병을 위해 37cm 길이의 단축된 총검 ''사이텐게베어 98/05''를, 1908년에는 기병, 포병 등을 위해 소량 생산된 ''카라비너 모델 1898AZ'' 단총을 채택했다.[25] 그러나 긴 총열의 98 마우저 소총은 주요 보병 소화기로 계속 사용되었고,[26] 독일 군 당국은 더 긴 소총/총검 조합의 '사정거리' 이점을 보병 총검 훈련 교리에 반영, ''스로우 포인트''(최대 3.4m '사살 영역') 공격을 포함시켰다.[21][27] 이 전술은 미국 육군 등 다른 군대에서도 채택되었다.[27][28]

영국은 SMLE 소총과 총검의 사정거리 감소 비판에 대응, 1908년 약 43cm 칼날을 가진 P1907 총검을 도입했다.[1][19][22][29][30] 이는 일본 30식 총검을 복제한 것이었다. 미국은 M1903 스프링필드 단총에 40cm 칼날의 M1905 총검을, M1917 엔필드 소총에는 긴 검 형태의 총검을 제공했다.[24]

3. 1. 형태 및 종류

총검의 형태는 크게 "창형"과 "칼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소켓식 총검을 특히 "총창(銃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기에는 자루를 총구에 꽂아 사용하는 소켓식이 개발되었지만, 장착 상태에서는 다음 탄환을 장전할 수 없고, 적에게 꽂으면 쉽게 빠져 다음 공격을 할 수 없는 결점이 있었다. 이러한 결점을 개선하여 총의 오른쪽에 "묶는" 형태로 장착하는 방식이 발전했다. 당시 총이 전장식이었기 때문에 장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칼날을 총신의 축선에서 오른쪽으로 빼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 후 후장식 소총이 발명됨과 동시에 총구 아래쪽에 총검 설치용 장치가 부착되기 시작했다. 전장총 시대에는 사수가 칼, 단검과 총검을 모두 휴대했지만, 후장총 이후에는 단검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나이프형 총검만 휴대하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창형도 일부 사용되었지만, 대부분은 칼형이 되었고, 둘 다 찌르기와 베기(치기)가 가능했다.

총검의 종류
종류설명특징
창형 (소켓식)총구에 자루를 꽂아 사용장착 시 다음 탄환 장전 불가, 쉽게 빠지는 문제점
칼형 (서바이벌 나이프 형태)총의 오른쪽에 "묶는" 형태로 장착, 후대에 총구 아래쪽에 설치 장치 부착단검으로도 사용 가능, 찌르기와 베기(치기) 모두 가능



18세기에는 검 형태의 총검(sword bayonet)이 도입되었다. 이는 단날 또는 양날의 긴 칼날을 가진 무기로, 단검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초기 목적은 머스킷 소총보다 길어 사수들이 사각진형을 형성하여 기병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검 형태의 총검이 장착된 소총의 초기 대표적인 예로는 패턴 1800 보병 소총(Pattern 1800 Infantry Rifle)이 있으며, 이후 "베이커 소총(Baker Rifle)"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검 형태의 총검은 머스킷이나 소총에서 분리된 경우 권총으로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총검이 머스킷이나 소총에 부착되면 장총(long gun)이 창(spear)이나 글레이브(glaive)처럼 되어 찌르기와 베기 공격 모두에 적합하게 되었다.

1959년에 도입된 AKM I형 총검은 보위 스타일(클립 포인트) 칼날에 등뼈 부분에 톱니가 있으며, 강철 칼집과 함께 다목적 생존용 칼과 와이어 커터로 사용할 수 있다.[59][60] 1983년에 도입된 AK-74 총검 6Kh5는 칼날 단면에 혁신적인 변화를 도입했는데, 한쪽 면 날 근처와 반대쪽 날끝 근처에 평평하게 밀링 처리되었다.[59] 칼날은 새로운 창날 형태와 개선된 일체형 사출 성형 플라스틱 손잡이를 가지고 있어 더 효과적인 전투용 칼이 되었다.[59] 또한, 가짜 날끝에 톱니가 있고 와이어 커터로 사용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59] AK 총검의 와이어 커터 버전은 각각 전기 절연 손잡이와 칼집 부분을 가지고 있어 감전된 전선을 절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M16 소총에는 M7 총검이 사용되는데, 이는 M4, M5, M6과 같은 이전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며, 모두 M3 전투용 나이프의 직계 후손으로 창날 형태의 칼날에 반만 날카롭게 갈린 보조날을 가지고 있다. M9은 클립 포인트 칼날에 척추 부분에 톱니가 있으며, 칼집과 함께 사용할 경우 다목적 나이프 및 와이어 커터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추락한 헬리콥터나 비행기의 얇은 금속 외피를 자르고 탈출하는 데에도 병사들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해병대가 사용하는 OKC-3S 총검은 손잡이 부근에 톱니가 있는 해병대의 상징적인 카바(Ka-Bar) 전투용 나이프와 유사하다.

QBZ-95는 미군 M9과 유사한 다목적 나이프 총검을 가지고 있다.

FN FAL에는 두 가지 종류의 총검이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창날 형태의 총검이고, 두 번째는 1960년대에 도입된 C형 소켓 총검이다.[63] C형 소켓 총검은 속이 빈 손잡이가 총구에 장착되도록 되어 있으며, FAL의 22mm NATO 규격 방열기의 홈과 일치하는 홈이 있다.[63] 창날 형태의 칼날은 탄환이 칼날 옆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손잡이 측면에 치우쳐져 있다.[63]

현재 영국군이 사용하는 L3A1 소총검은 FN FAL C형 소총검을 기반으로 하며, 클립 포인트 형태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64] 속이 빈 손잡이는 L85 소총의 총구에 장착되며, 소염기의 홈과 정렬되는 홈이 있다. 탄환이 칼날 옆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칼날은 손잡이 측면으로 치우쳐져 있다. 칼집과 함께 사용하면 다용도 나이프 및 와이어 커터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칼집에는 숫돌과 접이식 톱날도 있다.

H&K G3 소총은 두 종류의 총검을 사용하는데, 모두 G3 소총의 총열 위에 장착된다.[65] 첫 번째는 미군 M7 총검과 비슷한 칼날을 가진 표준 G3 총검이다.[65] 두 번째는 톱니가 있는 클립 포인트, 와이어 커터가 달린 칼집, 독특한 사각형 손잡이를 특징으로 하는 아이크혼 KCB-70형 다목적 나이프 총검이다.[65] H&K G36의 경우에는 동독 국민군(Nationale Volksarmee)의 재고에서 나온 개조된 AKM 2형 나이프 총검을 거의 사용했다. 원래 총구 링을 잘라내고 새롭고 지름이 큰 총구 링을 용접하여 장착했으며, 원래 가죽 벨트 걸이는 서독 장비에 맞게 설계된 복잡한 웹과 플라스틱 벨트 걸이로 교체되었다.[66]

슈타이어 AUG는 두 종류의 총검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M16 총검 인터페이스를 가진 아이크호른 KCB-70형 다목적 총검이다. 두 번째는 글록 ''펠트메서 78'' (야전용 나이프 78) 및 ''펠트메서 81'' (생존용 나이프 81)인데, 손잡이(플라스틱 캡으로 덮여 있음)의 소켓을 AUG 소총에 장착할 수 있는 총검 어댑터에 연결하여 총검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67][68][69] 이 총검들은 주로 야전용 또는 생존용 나이프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총검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차적인 고려 사항이다. 투척용 나이프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가드병따개가 내장되어 있다.[70][71]

현재 FAMAS 소총에 사용되는 프랑스군의 총검은 전통적인 창날 형태이며, M1949/56 총검과 거의 동일하다.[72] 새로운 프랑스군 H&K 416F 소총에는 와이어 커터가 달린 다목적 전투용 나이프/총검인 아이크호른 "SG 2000 WC-F"( KM2000과 유사)가 사용된다.[73] 무게는 320g이며, 길이는 30cm이고, 톱니가 절반만 있는 17.3cm 길이의 칼날은 로프 절단에 사용된다.[73] 합성수지 손잡이와 칼집은 최대 10,000볼트까지 보호하는 절연체를 가지고 있으며, 칼집에는 다이아몬드 칼날 연마기가 있다.

3. 2. 전술적 활용

17세기 이후 총검의 발달로 총검 돌격은 18세기,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까지 주요 보병 전술이 되었다. 웰링턴 공작이 된 울즐리 휘하의 영국군은 고지대 연대의 초기 "고지대 돌격" 전술에서 "집중 사격과 총검 돌격" 전술로 발전시켰다. 이 "사격 및 기동" 전술은 1745년 폰테누아 전투에서 제42 고지대 연대(블랙 워치)가 처음 도입했지만, 그 이전에도 그들의 선조(독립 고지대 경비 중대)가 사용해왔다. 19세기 초 군사 학자들은 대부분의 총검 돌격이 근접 전투로 이어지지 않고, 한쪽이 실제 총검전이 벌어지기 전에 도망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총검 장착은 주로 사기를 북돋우고, 가까운 거리에서 죽일 의향이 있음을 아군과 적군에게 알리는 신호로 여겨졌다.

총검 돌격은 충격 도구였다. 18세기와 19세기 전쟁에서 돌격은 흔했지만, 총검을 든 부대 간의 실제 전투는 거의 없었다. 돌격은 보통 오랜 총격전 이후에 발생했고, 한쪽이 실제 접촉 전에 붕괴되어 도망쳤다. 반도 전쟁(1807~1814) 역사가 찰스 오만 경은 "반도 전쟁에서 가장 드문 일 중 하나인, 백병전의 진정한 백병전"의 단 하나의 예만 발견했다. 보병 난전은 마을, 촌락 등 좁은 지역에서 더 흔했는데, 이런 곳에서는 백병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난전은 정규 보병 부대가 수행하거나 방어한 것이 아니라, 개인 전투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총검, 칼, 장창, 소총 개머리판, 주먹이 사용되었다.[36]

1813년 그로스베렌 전투 당시의 총검 돌격


총검 돌격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흔한 전술이었다. 효과적이었지만, 총검 자체로 큰 사상자를 낸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전투 사상자 목록을 보면 많은 전투에서 치료받은 부상 중 2% 미만이 총검에 의한 것이었다.[37] 앙투안-앙리 조미니는 야전에서 대부분의 총검 돌격은 접촉 전에 한쪽이 도망치는 것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총검 전투는 요새 공격이나 험준한 지형에서의 매복 작전처럼 좁은 환경에서 소규모로 발생했다.[38] 집중 사격 시대에 보이지 않는 총알과 비교했을 때, 총검의 위협은 더 실질적이고 즉각적이었다. 양측이 계속 싸우면 끔찍한 결과가 확실했기 때문에 전열이 만나기 전에 도망치도록 부추겼다. 총검은 부상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적 영토 점령에는 매우 유용했다.

미국 남북 전쟁(1865년) 중 버지니아주 페터스버그 3차 전투 당시의 총검 돌격


미국 남북 전쟁(1861~1865) 당시 총검은 전투 사상자의 1% 미만을 차지했는데,[39] 이는 현대전의 특징이다. 적군을 후퇴시키는 총검 돌격은 근거리 소규모 교전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병사들이 재장전 중 돌격을 받으면 후퇴했기 때문이다. 이런 돌격은 사상자는 적었지만, 단기 교전 결과를 결정짓고 중요 방어 지형 점령을 가능하게 했다. 총검 훈련은 적 포화에 겁먹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데도 사용되었다.[40]

겟티스버그 전투는 지형과 집중 포격으로 연방군이 승리했지만, 전투 둘째 날 결정적 순간은 리틀 라운드 탑에서 조슈아 로렌스 챔벌레인의 제20 메인 자원 척탄병 연대가 소총 탄약이 부족해 언덕 아래로 돌격하여 제15 알라바마 보병 연대 등 남부 연합군 생존 병사들을 기습 포로로 잡은 총검 돌격이었다. 겟티스버그에서는 제1 미네소타 보병 연대 돌격 등 다른 총검 돌격도 있었다. 7월 2일 초, 윈필드 스콧 핸콕 장군은 연합군 전열의 빈틈을 메울 증원군이 올 때까지 남부 연합 여단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절박하게 명령했다. 7월 2일 늦은 저녁에는 컬프스 힐 연합군 전열 극우측을 방어하던 제137 뉴욕 보병 연대가 총검 돌격을 실시, 제10 버지니아 보병 연대 진격을 일시 지연시켜 제14 연대(뉴욕 주방위군)가 제137 연대 우측으로 이동해 공격을 격퇴했다.

1913년, 1886 르벨 소총을 든 프랑스 보병의 총검 돌격


제1차 세계 대전 전투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총검을 착검한 병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하여 적 총탄 세례 속 무인지대를 돌파하는 것이다. 이는 전쟁 초기 표준 전투 방식이었지만, 성공은 드물었다. 솜므 전투 첫날 영국군 사상자는 57,470명(사망 19,240명)으로 영국군 역사상 최악이었다.

1차 대전 당시 무인지대는 수백 야드에 달하는 경우가 많았다.[41] 이 지역은 전쟁으로 황폐화되었고, 포탄과 박격포탄 분화구가 즐비했으며, 화학 무기로 오염되기도 했다. 기관총, 박격포, 포병, 소총병에 의해 집중 방어되었고, 철조망과 지뢰로 덮여 있었으며, 포탄, 폭발, 화염을 건너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무인지대 총검 돌격은 종종 전체 대대 괴멸로 이어졌다.

20세기 현대전 등장으로 백병전 돌격은 의심스러운 작전이 되었다. 1904~1905년 뤼순 공략 기간 일본군은 러시아군 포병과 기관총에 대해 인해전술을 사용,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일본 제국 육군 병사들의 만세 돌격


중일 전쟁 동안 일본군은 조직력이 부족하고 무장이 열악한 중국군에 대해 백병전 돌격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만세 돌격"은 일본군이 중국군을 격퇴할 수 있었던 일반적인 군사 전술이었다.

태평양 전쟁(1941~1945) 초기, 갑작스러운 백병전 돌격이 준비되지 않은 적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런 돌격은 일본군 전투 함성인 "만세 돌격"으로 연합군에 알려졌다. 전쟁 말, 조직력이 뛰어나고 중무장한 연합군에 맞서 만세 돌격은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큰 희생을 치렀다. 때로는 주요 전투 패배 후 소규모 생존 병사들이 최후 수단으로 만세 돌격을 감행했다.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장군 등 일부 일본 지휘관은 이런 공격의 무의미함과 낭비를 인식, 부하들이 수행하는 것을 금지했다. 미국군은 일본군이 이오지마 전투에서 만세 돌격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인해전술"은 중국 단기 돌격을 묘사하는 데 잘못 사용되었다.[42] 이는 잠입과 한국 전쟁(1950~1953) 중 중국 인민해방군이 사용한 돌격 전술 조합이었다.[43] 전형적인 중국군 단기 돌격은 야간에 5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화력팀을 여러 개 파견, 적 방어 취약 지점을 공격하는 방식이었다.[43] 중국군 돌격대는 수류탄 사거리 내까지 탐지되지 않고 기어간 후, 고정된 총검으로 기습 공격, 최대한 충격과 혼란에 의존해 방어선을 돌파했다.[43]

초기 충격으로 방어선 돌파에 실패하면, 추가 화력팀이 뒤따라 같은 지점을 공격해 돌파구를 만들었다.[43] 돌파 성공 시 중국군 주력 부대가 적 후방으로 이동, 후방에서 공격했다.[44] 원시적 통신 시스템과 엄격한 정치적 통제로 인해, 방어선 돌파나 공격대 섬멸까지 단기 돌격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다.[43]

이런 지속적 공격 양상은 한국에서 싸운 UN군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인해전술" 묘사가 생겨났다.[45] "인해전술"은 언론인과 군 관계자들이 미국 군인들이 광범위한 전선에서 압도적인 수의 중국군에게 공격받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이는 좁은 지점에 소규모 팀을 연속 파견하는 중국군 방식과 비교할 때 부정확하다.[46] 중국군이 적 화력을 흡수하기 위해 고밀도 보병 부대를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47]

보병 총검 돌격이나 기병 창 돌격을 주체로 하는 전법 변화는, 20세기 실용화된 기관총자동화기 발달이다. 대규모 백병전에서 총검은 여전히 유효한 무기였지만, 러일전쟁에서 처음 중기관총이 등장, 적진 공격 보병에게 큰 피해가 발생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기관총과 철조망으로 진지 방어력이 크게 증대, 적절한 위치 기관총 한 정으로 보병 1개 대대(수백 명 규모) 돌격을 저지할 수 있다고까지 말해졌다. 대전 초기 기병이나 보병의 일렬 돌격은 피해가 커 전과를 올릴 수 없었고, 총검 돌격으로 적진 돌파가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전황은 참호전으로 교착되었다.

기관총 영향은 기병에게 더 심각했다. 백병 돌격이 어려워지면서 기병 병과 자체가 쇠퇴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창으로서 총검 중요성도 저하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자동소총이 처음 등장하는 등 보병용 자동화기가 더 발달, 총검에 의존하지 않고 근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군은 생산 간략화를 위해 자동소총이나 간이형 소총에서 총검을 폐지했다. 미국군 M1 카빈(U.S.M1 Carbine)은 경비용·자위용 경소총으로 채택, 처음에는 착검 장치가 없었지만, 나중에 후속식 착검 장치가 추가되었다.

1차 대전 프랑스 보병 연대 총검 길이는 2차 대전을 경계로 짧아졌다. 일본 삼십년식 총검, 미국 M1905 총검, 영국 M1917 총검 등 2차 대전 이전 채택된 총검은 40cm 정도 칼날을 가졌지만, 전시에는 25cm 전후로 짧아졌다. 이는 총검 길이가 백병전 우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과, 기병 쇠퇴로 말 위 기병에게 닿는 창으로서 길이가 불필요해진 것이 이유로 꼽힌다.

2차 대전 후에는 화력이 약한 군대도 자동화기를 장비, 근접전 보병 장비는 돌격소총으로 바뀌어 공격 전술로서 총검 돌격은 적어졌다. 그러나 불시 조우전 등 보병 접근전 기회는 현대전에도 있다. 근접전에서 권총 명중률은 확실하지 않고, 난전에서 유탄이나 튀는 탄환, 탄약 소진 위험이 없는 총검 수요는 여전하다. 카빈총에서 불펍형 총까지, 현대에도 많은 군용 소총이 착검 가능하며, 총검은 보병 최소 무기로 남아 있다.

군대에서는 여전히 총검 전투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총기 고장이나 탄약 소진 시에도 전투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아 병사 사기 유지에 총검은 여전히 중요하다. 외관상 위압감은 치안 임무에도 유용하다. 신병 기초 훈련에서 총검으로 헌 타이어나 허수아비, 종이 가짜 표적 등을 반복해 찌르는 훈련으로 상대 얼굴이 보이는 거리에서 사람을 공격해 살상하는 행위에 대한 훈련을 한다. 죽은 척하는 적병 확인 도구로도 사용된다.

전후 독일 연방군은 국민에게 위압적인 인상을 주는 총검을 제식 배치하지 않고, 다목적 나이프(캄프메서 또는 펠트메서)만으로 근접 전투를 수행하도록 했다. 의장용 Kar98k 소총과 G3 돌격소총, 최신식 G36 돌격소총에는 총검 장착 장치가 있으며, 연방군에서도 총검 자체 예산 요청이 있었지만 배치는 소수에 그쳤다.

총검 장착 채 발사하면 총구 점핑이 억제되어 탄도가 저하된다. 그러나 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총구 근처에 무거운 물체를 부착하면 모멘트가 커져 유지가 어려워지므로, 사격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총검을 장착하는 것은 아니다. 발사 시 충격파가 총검에 반사되어 총알에 간섭, 탄착군이 확산된다. 발사약에 포함된 , 질산 등 산화 입자가 총검에 부착되어 부식을 촉진하는 폐해도 있다.

현대 총검은 대부분 검 형태 총검이다. 참호를 파기 위한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AK 시리즈 총검처럼 최근에는 총검 다기능화가 진행 중이다. M9A1 총검처럼 전투용 나이프에 총검 장착 장치를 단 제품도 등장했다.[79] 즉, 휴대용 나이프로서 성능이 높고,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 철조망 절단 와이어 커터, 드라이버, 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서바이벌 나이프처럼 속 빈 칼집에 연장을 수납할 수 있다. 현대에는 공구로서 이용에도 적합한 크기 나이프를 보병이 휴대, 총검과 병용하는 운용이 이루어진다.

일본 자위대는 발포가 매우 드물어(해외 활동에서도 탄창에 탄약 삽입이 금지되는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 PKO 활동 당시 대원이 64식 소총에서 탄창을 빼놓은 것을 알아챈 정부군 병사나 현지인에게 "허수아비" 등으로 조롱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경우에도 총검 장착 소총 위협 효과는 크며, 현지 자위관이 "가장 의지가 된 도구는 총검이었다"라는 농담도 생겼다.

러시아어로 총검을 штыкru(슈티크)라고 하는데, 총검과 함께 "병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며, 복수형 штыкиru(슈티키)가 "병사들(군대)"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영국군에서는 2차 대전 이후 총검 돌격 사례가 여러 건 알려져 있다. 포클랜드 전쟁영국 육군낙하산 연대 B중대 제3소대 소속 상사가 총검 돌격을 지휘했고, 스코츠가즈 병사가 탄약 소진 끝에 아르헨티나군 진지에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80] 2000년대 들어 영국에서도 총검은 군 현대화 과정에서 사라져 갈 장비로 여겨졌지만, 이후에도 여러 차례 총검 돌격이 있었다. 2004년 이라크 파병 영국 육군 가 마흐디군 매복 공격을 받았을 때, 동 연대는 그들을 포격하던 마흐디군 박격포 진지에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81]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 해병대 소속 브래들리 말론 하사가 무장 세력에 대한 총검 돌격을 지휘했다.[82]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육군 소속 션 존스 하사는 순찰 중 무장 세력 매복을 받고 총검 돌격으로 격퇴했다.[83]

미국 육군에서 대규모 총검 돌격은 현재까지 1951년 루이스 밀렛 대위가 지휘한 것이 마지막 사례다. 1970년대 초 당시 주력 소총 M16이 총검 격투에 견딜 강도가 없다고 여겨져 총검 격투 훈련이 중단되었지만, 1980년대 초 포트 베닝 기지에 새 총검 훈련 코스가 건설, 전투 기초이자 사기 및 체력 향상 훈련 하나로 훈련용 모의총을 사용한 총검 훈련이 재개되었다.[84] 2010년 기초 전투 훈련(Basic Combat Training) 대규모 제도 개혁 때 총검 격투 과정이 폐지되었다.[85][86] 초등 훈련 부사령관으로 개혁을 주도한 장군은 총검 격투 과정 폐지에 관해 예비역 군인들 반발과 이런 훈련에 정신적 이점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총검 격투가 중요하다면 왜 기초 훈련에서만 가르치는가", "전시에는 우선 가르쳐야 할 사항이 많다"라고 말했다.[87] 그러나 새 제도에서도 백병전 훈련 일환으로 총검이나 나이프 사용 훈련이 실시된다고 한다.[88] 미국 해병대에서는 모든 대원을 대상으로 총검 격투 훈련이 계속되고 있다(민간인을 병사로 만들기 위해 총검으로 헌 타이어 등을 반복해 찌르는 훈련으로 눈앞에 적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공격하도록 단련하는 목적으로, 특히 신병 훈련에서 중시).

4. 현대적 응용


  • 영국군의 L85이나 프랑스군의 FA-MAS와 같은 벌펍식 소총은 일반적인 소총에 비해 소형이지만, 백병전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여러 전쟁에서 총검 돌격을 감행하여 승리한 바 있다.
  • 에어건이나 가스건 중 일부 장총에는 총검이 부착되어 있으며,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 드물게 권총에 총검을 장착한 예로는 Cz75 SP-01에 액세서리로 장착할 수 있는 것이나 아파치 리볼버에 내장된 접이식 단검이 있다.
  • 미국군에서는 육군에서 신병 대상 총검술 훈련이 폐지되었지만, 미국 해병대에서는 유지되고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의 해군력 감축 비판에 대해 "군마와 총검" 발언으로 반박하면서 총검이 주목받기도 했다.[90][91][92][93][94][95][96][97][98] 이는 롬니의 시대착오적인 국방 정책을 비판하는 취지였으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94][96][98]

4. 1. 군사적 활용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은 총검을 이용하여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는 데 사용했다.[48] 한국 전쟁 당시 프랑스 대대와 터키 여단은 적 전투원들에게 총검 돌격을 사용했다. 1951년, 미 육군 장교 루이스 L. 밀렛은 미 육군 제27 보병 연대 병사들을 이끌고 총검으로 기관총 진지를 점령했고, 명예훈장을 받았다.

1962년 10월 23일, 중일전쟁 당시 조긴더 싱이 이끄는 20명의 인도군 병사들은 총검을 고정하고 200명의 중국군을 향해 돌격했다. 1970년 5월 8일, 주 방위군은 알버커키의 뉴멕시코 대학교에서 학생 시위대를 총검으로 공격했다.[49]

1982년, 영국군은 포클랜드 전쟁 중 롱던 산 전투와 텀블다운 산에서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50][51][52] 1995년, 사라예보 포위 공격 중 프랑스 제3 해병 보병 연대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브르반야 다리 전투에서 세르비아군을 향해 돌격했다.[53]

제2차 걸프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도 영국군 부대는 여러 차례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2] 2004년 이라크의 대니 보이 전투에서 아가일 앤 서덜랜드 고지대 연대는 마흐디 군의 박격포 진지를 향해 돌격했고, 웨일스 공주 왕립 연대의 브라이언 우드 상사는 군사 십자훈장을 받았다. 2009년, 스코틀랜드 왕립 연대의 제임스 애덤슨 중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총검 돌격으로 군사 십자훈장을 받았다. 웨일스 공주 왕립 연대의 션 존스 상병은 2011년 총검 돌격에서의 공로로 군사 십자훈장을 받았다.[54]

오늘날 백병전에서 총검이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지만,[55][56] 많은 현대식 돌격소총에는 총검을 장착할 수 있으며, 총검은 포로 제압이나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일부 당국에서는 총검이 사기를 고취하고 병사들의 공격성을 높이는 훈련 도구로 활용된다고 본다.[57][58]

오늘날의 총검은 다용도 유틸리티 나이프, 병따개 또는 기타 도구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다용도 총검/나이프 하나를 지급하는 것이 별도의 특수 총검과 야전/전투용 나이프를 지급하는 것보다 비용 효율적이다.

AKM I형 총검은 보위 스타일 칼날에 등뼈 부분에 톱니가 있으며, 강철 칼집과 함께 다목적 생존용 칼과 와이어 커터로 사용할 수 있다.[59][60] AK-74 총검 6Kh5는 칼날 단면에 혁신적인 변화를 도입했는데, 한쪽면 날 근처에는 평평하게 밀링 처리되었고, 반대쪽 날끝 근처에도 마찬가지로 평평하게 밀링 처리되었다."[59] 칼날은 새로운 창날 형태와 개선된 일체형 사출 성형 플라스틱 손잡이를 가지고 있어 더 효과적인 전투용 칼이 되었다.[59] 또한, 가짜 날끝에 톱니가 있고 와이어 커터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구멍이 있다.[59]

미군 M16 소총에는 M7 총검이 사용되는데, 이전 모델들을 기반으로 창날 형태의 칼날에 반만 날카롭게 갈린 보조날을 가지고 있다. M9은 클립 포인트 칼날에 척추 부분에 톱니가 있으며, 칼집과 함께 사용할 경우 다목적 나이프 및 와이어 커터로 사용할 수 있다. OKC-3S 총검은 카바(Ka-Bar) 전투용 나이프와 유사하다.

Type 56 돌격소총은 접이식 총검이 일체형으로 장착되어 있다.[61] QBZ-95는 미군 M9과 유사한 다목적 나이프 총검을 가지고 있다.

FN FAL에는 두 가지 종류의 총검이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창날 형태의 총검이고, 두 번째는 1960년대에 도입된 C형 소켓 총검이다.[63]

현재 영국군이 사용하는 L3A1 소총검은 FN FAL C형 소총검을 기반으로 하며, 클립 포인트 형태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64] 칼집과 함께 사용하면 다용도 나이프 및 와이어 커터로도 사용할 수 있다.

H&K G3 소총은 두 종류의 총검을 사용하는데,[65] H&K G36의 경우에는 동독의 국민군(Nationale Volksarmee)의 재고에서 나온 개조된 AKM 2형 나이프 총검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슈타이어 AUG는 두 종류의 총검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M16 총검 인터페이스를 가진 아이크호른 KCB-70형 다목적 총검이다. 두 번째는 글록 ''펠트메서 78'' (야전용 나이프 78) 및 ''펠트메서 81'' (생존용 나이프 81)인데, 손잡이의 소켓을 AUG 소총에 장착할 수 있는 총검 어댑터에 연결하여 총검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67][68][69]

FAMAS 소총에 사용되는 프랑스군의 총검은 M1949/56 총검과 거의 동일하다.[72] H&K 416F 소총에는 와이어 커터가 달린 다목적 전투용 나이프/총검인 아이크호른 "SG 2000 WC-F"가 사용된다.[73]

기관총을 비롯한 자동화기의 발달로 보병의 총검 돌격이나 기병의 창 돌격을 주체로 하는 전법은 변화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기관총과 철조망에 의해 진지 방어력이 비약적으로 증대하여 총검 돌격으로는 적진 돌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자동소총이 등장하는 등 보병용 자동화기가 더욱 발달하여 총검에 의존하지 않고도 근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대전 후에는 돌격소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공격 전술로서 총검 돌격이 행해지는 일은 적어졌지만 불시의 조우전 등, 보병이 접근전을 벌이는 기회는 현대전에도 있으며, 총검의 수요는 아직 존재한다.

군대에서는 여전히 총검 전투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총기 고장이나 탄약 소진 시에도 전투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병사의 사기 유지에 총검은 여전히 중요하다.

전후 독일 연방군에서는 총검을 제식으로 배치하지 않고, 다목적 나이프만으로 근접 전투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총검을 장착한 채 발사하면 총구 점핑이 억제되어 탄도가 저하된다. 그러나 사격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총검을 장착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총검은 대부분 검 형태의 총검이다. AK 시리즈 총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에는 총검의 다기능화가 진행되고 있다. M9A1 총검처럼 전투용 나이프에 총검 장착 장치를 단 것과 같은 제품도 등장했다.[79]

일본자위대는 발포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의 PKO 활동 당시 총검을 장착한 소총의 위협 효과는 컸다고 한다.

러시아어로 총검을 штыкru(슈티크)라고 하는데, 총검과 함께 "병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며, 복수형 штыкиru(슈티키)가 "병사들(군대)"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영국군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총검 돌격이 실시된 사례가 여러 건 알려져 있다. 포클랜드 전쟁 중 롱던 산 전투와 텀블다운 산 전투에서 총검 돌격이 있었다.[80]

미국 육군에서의 대규모 총검 돌격은 현재까지 1951년 루이스 밀렛 대위가 지휘한 것이 마지막 사례로 여겨진다. 1970년대 초에는 총검 격투 훈련이 중단되었지만, 1980년대 초에는 총검 훈련이 재개되었다.[84] 그 후 2010년 기초 전투 훈련의 대규모 제도 개혁이 이루어졌고, 이때 총검 격투 과정이 폐지되었다.[85][86] 그러나 새로운 제도에서도 백병전 훈련의 일환으로 총검이나 나이프를 사용한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88] 미국 해병대에서는 모든 대원을 대상으로 총검 격투 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 영국군의 L85이나 프랑스군의 FA-MAS와 같은 벌펍식 소총은 일반적인 소총에 비해 소형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길이 면에서 백병전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 에어건이나 가스건 중 일부 장총에는 총검이 부착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 드문 경우이지만, 권총에 총검을 장착한 예로는 "Cz75 SP-01"에 액세서리로 장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 미국군에서는 육군에서 신병 대상 총검술 훈련이 폐지(미국 해병대에서는 유지)되는 등, 총검의 무기로서의 중요성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발언을 계기로 총검의 존재가 갑자기 큰 주목을 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4. 2. 비군사적 활용

오늘날 백병전에서 총검이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많은 현대식 돌격소총에는 총검 장착이 가능하고, 여전히 여러 군대에서 총검을 지급하고 있다.[55][56] 총검은 포로 제압이나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사기 진작 및 공격성 향상을 위한 훈련 도구로도 활용된다.[57][58]

현대의 총검은 다용도 유틸리티 나이프, 병따개, 와이어 커터, 드라이버, 등 다양한 기능을 겸비한 경우가 많다.[79] 이는 별도의 총검과 야전/전투용 나이프를 지급하는 것보다 비용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M9A1 총검처럼 전투용 나이프에 총검 장착 장치를 단 제품도 등장하여, 휴대용 나이프로서의 성능과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총검에서 유래된 용어로는 카메라 렌즈에 사용되는 "베이요넷 마운트", 전기 플러그에 사용되는 "베이요넷 커넥터", 영국에서 사용되는 베이요넷 방식의 전구, 펜싱 경기에서 사용되는 플뢰레와 사브르 무기의 "베이요넷" 커넥터 등이 있다. 체스에서는 킹스 인디언 디펜스의 공격적인 변형을 "베이요넷 공격"이라고 부른다.

총검은 군사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총검 끝에"라는 용어는 무력이나 행동으로 무언가를 달성하거나 유지, 방어하는 것을 의미하며(베이요넷 헌법 참조), "총검을 고정하고"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특히 정치에서 사용된다.

군대에서는 총검 전투 훈련을 통해 총기 고장이나 탄약 소진 시에도 전투 능력을 유지하고, 병사의 사기를 유지하는 효과를 얻는다. 또한, 외관상의 위압감은 치안 임무에서도 유용하다. 훈련 측면에서는 신병 기초 훈련의 일환으로 총검으로 헌 타이어나 허수아비, 종이로 만든 가짜 표적 등을 반복해서 찌르는 훈련을 통해 사람을 공격하여 살상하는 행위에 대한 훈련을 한다. 죽은 척하는 적병을 확인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전후 독일 연방군에서는 총검 대신 다목적 나이프(캄프메서 또는 펠트메서)만으로 근접 전투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의장용 Kar98k 소총과 G3 돌격소총, 최신식 G36 돌격소총에는 총검 장착 장치가 있지만, 총검 자체 예산 요청에도 불구하고 배치는 소수에 그쳤다.

총검을 장착한 채 발사하면 총구 점핑이 억제되지만, 탄도가 저하되고 유지하기 어려워져 사격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발사 시 충격파가 총검에 반사되어 총알에 간섭하고, 발사약의 산화 입자가 총검에 부착되어 부식을 촉진하는 문제도 있다.

일본자위대는 발포가 매우 드물어 캄보디아에서의 PKO 활동 당시 64식 소총에서 탄창을 빼놓은 것을 조롱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총검을 장착한 소총의 위협 효과는 컸다고 한다.

러시아어로 총검은 штыкru(슈티크)라고 하며, "병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복수형 штыкиru(슈티키)는 "병사들(군대)"을 의미한다.

영국군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포클랜드 전쟁의 마운트 롱돈 전투, 마운트 텀블다운 전투 등에서 총검 돌격이 실시되었다.[80] 2000년대 이후에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총검 돌격 사례가 있었다.[81][82][83]

미국 육군에서는 1951년 루이스 밀렛 대위가 지휘한 총검 돌격이 마지막 대규모 사례로 여겨진다. 1970년대에는 M16의 강도 문제로 총검 격투 훈련이 중단되었지만, 1980년대에 훈련이 재개되었다.[84] 2010년에는 총검 격투 과정이 폐지되었지만,[85][86] 백병전 훈련의 일환으로 총검이나 나이프를 사용한 훈련은 계속되고 있다.[88] 미국 해병대에서는 모든 대원을 대상으로 총검 격투 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총검 훈련에는 파지 스틱을 사용하는 스포츠 형, 목총을 사용하는 총검도 등의 무도 형이 있다. 실제 칼이 달린 총을 사용하는 경우 단독 또는 조별 방식의 형식 훈련 외에도 종이·천으로 만든 가짜 표적이나 헌 타이어, 인형을 실제로 찌르는 방법이 있다.

5. 한국 총검의 역사

일본에서는 덴포 시대, 다카시마 아키호의 "양식 조련" 이후 막말기에 양식 총과 함께 도입되었지만, 백병전에는 그때까지 익숙했던 타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에노 전쟁 당시에는 난전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78] 본격적으로 채용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이다.

일본 육군에서는 총검만 배치된 부대가 있었고, 소총 대신 "'''전장에 있어서 착검총에 대용할 수 있는 자상용구'''"라는 지원 장비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착검하여 백병전에서 자상에 사용한 소총은 충격으로 조준기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조준점과 조준구의 미세 조정을 다시 할 필요가 있었다.

러일 전쟁-태평양 전쟁 시기에 사용된 일본 육해군의 30년식 총검은 평시에는 날이 무뎌져 있었고, 출정 직전에 날을 세우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날이 세워지는 부분은 총 길이 40cm 중에서 끝에서 19cm까지였는데, 이는 총검이 찌르는 용도의 창으로 사용되는 날붙이이며, 일본도처럼 베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시대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찌르는 용도의 총검이나 긴 칼날의 앞부분만 날이 세워진 총검이 많았다. 날을 세우는 데에는 그라인더 등의 공구가 사용되었고, 연마 흔적이 남을 정도로 거칠게 갈아진 상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들의 감각으로는 일본도를 염두에 두고 날붙이의 쓰바까지 날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각자가 로 갈거나 숫돌로 갈아서 규정 범위를 넘어 날을 세운 것이 많이 존재했다.

1937년(쇼와 12년)경, 중일전쟁에서 38식 보병총을 장비한 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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