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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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천 송광사 국사전은 16국사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건물로, 국보 제56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어졌으며, 조선 초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신라 말 길상사로 창건되어 수선사를 거쳐 고려 희종 4년에 송광사로 명명되었으며, 임진왜란, 1842년 화재,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국사전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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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국사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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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순천 송광사 국사전 (順天 松廣寺 國師殿) (Guksajeon Shrine of Songgwangsa Temple, Sun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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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국보 |
지정 번호 | 56 |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송광사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송광사 |
수량 | 1동 |
문화재청 ID | 11,00560000,36 |
2. 역사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언제 세웠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고 신라 말기에 체징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어졌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다.
2. 1. 창건과 중창
신라 말 혜린 선사가 '길상사(吉祥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 명종 27년(1197년),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守愚)에게 명하여 대규모로 확장하고, 수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 희종 4년(1208년), 왕명에 의해 '송광사'로 명명되었다.연도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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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 혜린국사가 길상사(吉祥寺) 창건 |
1197년 (고려 명종 27년) | 보조국사가 제자 수우에게 명하여 대규모 확장, 수선사(修禪寺)로 개칭 |
1208년 (고려 희종 4년) | 왕명에 의하여 송광사로 명명 |
1212년 (고려 강종 원년) | 진각국사가 왕명으로 증축 (승평속지) |
1400년 (조선 정종 2년) | 고봉화상이 34개 건물 중건 (승평속지) |
1420년 (조선 세종 2년) | 중인선사가 고봉화상의 뜻을 이어 계속 지음 (승평속지) |
1601년 (조선 선조 34년) | 응선화상이 수각, 임경당, 천자암, 보조암을 중건 (승평속지) |
1609년 (조선 광해군 원년) | 부휴선사가 문도 벽암 등 400명에게 중수를 명함 (승평속지) |
1660년 ~ 1720년 (조선 현종·숙종 연간) | 대웅전 재건 (송광사성공중창록) |
1842년 (조선 헌종 8년) | 큰 화재로 절반이 불에 탐. 다음 해 용운선사가 중건 |
1899년 (대한제국 광무 3년) | 가을에 총섭 수현대사가 순천 송광사 하사당을 중수 (송광사지) |
6.25 전쟁 |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 (국사전은 화재를 면함) |
2. 2. 조선시대
정종 2년(1400년) 고봉화상(高峰和尙)이 건물 34개를 중건하였다. 세종 2년(1420년) 중인선사(中印禪師)가 고봉화상의 뜻을 이어 계속 건물을 지었다. 선조 34년(1601년) 응선화상(應禪和尙)이 수각, 임경당, 천자암, 보조암을 중건하였다. 광해군 원년(1609년) 부휴선사(浮休禪師)가 문도 벽암 등 400명에게 중수를 명하였다. 현종~숙종 연간(1660년~1720년) 대웅전(大雄殿)을 재건하였다. 헌종 8년(1842년) 큰 화재로 절반이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 용운선사(龍雲禪師)가 중건하였다.2. 3. 근현대
광무 3년(1899) 가을에 총섭 수현대사가 하사당을 중수하였다. 한국전쟁(6.25 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국사전은 화재를 면하였다.3. 건축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가 처음 짓고 길상사(吉祥寺)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작은 절이었으나, 고려 희종 때 왕명으로 송광사(松廣寺)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임진왜란과 1842년 큰 화재, 6.25 전쟁을 거치며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는 경내 입구의 우화각, 천왕문, 침류루, 종각, 임경당, 법성암, 영산전, 약사전 등과 동방 고대 위의 하사당, 삼일당, 응진전, 진영당, 그리고 남방의 화엄전 등이 있다.
국사전은 동쪽 언덕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뒤쪽에는 석축을 쌓고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또는 3칸의 주심포 양식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는 통칸으로 트여 있다. 이 건물의 초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여러 특징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 건물로 추정된다.
3. 1. 송광사 국사전 (국보 제56호)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어졌고, 이후 두 차례 보수되었다.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건물의 초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 건물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특징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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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석 | 상부는 주좌(기둥을 받치는 부분)를 가공한 흔적이 있으나 그 굽이 섬세하지 않고 낮으며, 지반 위 노출 부분 옆면은 거의 자연석 그대로이다. |
기둥 | 엔타시스(가운데가 볼록한 형태)가 큰 편이다. |
포작 | 주심포계(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양식)의 헛첨차(처마를 받치기 위해 덧댄 부재)가 있는 포를 따르고 있으나, 순천 송광사 하사당처럼 주두(기둥머리) 밑의 살미(산미, 공포 부재 중 하나)는 이미 헛첨차를 벗어나 무위사 극락전의 제1단 살미와 비슷하고, 주두 위 살미는 도갑사 해탈문의 살미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들의 포작과는 또 다른 봉정사 화엄강당과 같은 익공계(날개 모양의 부재를 사용한 양식)로 기우는 포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행공첨차(처마 끝을 받치는 부재)는 주심포계의 쌍S형이 조각되어 있으나, 두공첨차(기둥머리 위쪽의 부재)는 하사당과는 달리 다포계(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양식)의 교두형(맞댄 머리 모양)으로 변해 있다. 또, 하사당은 두공 위 접시받침 모양의 소로(작은 부재)를 두어 보와 주두 위 제1단 살미와 간격을 둔 것에 비해, 여기서는 이것이 없이 직접 하였다. 포의 조각(첨차, 봉취형 보머리 등)은 하사당의 조각보다 날카롭기는 하나, 그 선의 아름다움은 하사당에 비해 퇴락하기 시작한다. |
목가구 | 5량(다섯 개의 보를 사용한 구조)의 1출목(처마 끝이 기둥 중심선에서 한 번 꺾여 나간 형태) 주심포 맞배집인 점은 하사당과 같으나, 하사당은 측면 2고주(높은 기둥) 중간에 1고주 및 퇴칸(지붕이 덧달린 칸)으로 짜여 있는데 비해, 이 건물은 측면 2고주(단, 북측은 1고주 및 퇴칸 형식임) 중간을 통칸(하나의 큰 칸)으로 만들었다. 단면으로 보아 밑의 두 귀를 굴린 대량(큰 보) 위에 동자주(짧은 기둥)와 종보(가장 위에 놓이는 보)를 올리고, 하사당의 쌍봉황형 대공(지붕의 종도리를 받치는 부재)보다는 좀 퇴락한 형태의 소로 없이 대공을 놓아 종도리와 장여(도리를 받치는 부재)를 받치고 있다. 장여의 끝부분에는 단장여(짧은 장여)에서와 같이 배를 굴려 곡선을 이루었고, 하사당에서 종보 밑에 짜인 뜬창방(보와 보 사이를 연결하는 부재)과 뜬보는 여기서는 양봉(보를 받치는 부재)과 첨차로 바꾸었다. |
내부 바닥 및 반자 | 바닥은 보통 우물마루로 되어 있으나, 반자(천장)는 다포계에서 볼 수 있는 우물반자가 가설되어 우리나라 주심포계 맞배집에서는 특이한 점을 나타내고 있다. |
3. 2. 기타 건축물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은 조선 초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경내 입구에는 우화각(羽化閣), 천왕문(天王門), 침류루(枕流樓), 종각(鍾樓), 임경당(臨鏡堂), 법성암(法性庵), 영산전(靈山殿), 약사전(藥師殿) 등이 있다. 동방 고대 위에는 하사당, 삼일당(三曰堂), 응진전(應眞殿), 진영당(眞影堂) 등이 있으며, 남방에는 화엄전(華嚴殿) 일곽이 있다.4. 문화재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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