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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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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경지는 남조 송나라의 관료로, 시중, 태위를 역임했으며 사공으로 추증되었다. 그는 효무제 때 북벌을 반대하며 '백면서생'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으며, 전폐제 유자업에 의해 독살당했다. 사후 충무공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명제 유욱 즉위 후 사공으로 추증되고 양공의 시호가 더해졌다.

2. 가계

관계이름비고
본인심경지남조 송나라 시중, 태위, 증 사공
아들심문숙남조 송나라 시중
손자심소략남조 제나라 시중
아들심문계남조 제나라 시중
아들심문요(沈文耀)영양현후(永陽縣侯)
사촌심유지(沈攸之)형주자사(荊州刺史)
당질심문화남조 제나라 초대 황제 소도성 부마


3. 생애

심경지는 남조 송나라 때 여러 관직을 거쳤다. 전폐제 유자업이 즉위하자 시중(侍中)과 태위(太尉)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자업은 심경지가 자신을 폐위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품고, 사촌 심유지(沈攸之)를 시켜 독살했다. 심경지의 장남 심문숙(沈文叔)도 누명을 쓰고 독살당했다.

사후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명제 유욱 즉위 후 사공(司空)에 추증되고 양공(襄公)이라는 시호가 더해졌다.

송서(宋書) 심경지전(沈慶之傳)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무예를 닦아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동진(東晉)의 유신(遺臣) 손은(孫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10세의 나이로 반란군과 싸워 승리하여 이름을 떨쳤다. 40세에 이민족의 반란을 진압하여 장군에 임명되었고, 효무제 때는 도읍 건강(建康)의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이후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 총수로 부임했으며, 태위(太尉) 벼슬에 이르렀다.

3. 1. 백면서생(白面書生)

효무제는 변경 수비군의 총사령관 건무장군(建武將軍)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386~534) 정벌을 논의했다. 심경지는 북벌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에 반대하며 "밭갈이는 농부에게,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 출병을 '백면서생(白面書生)'과 논의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耕當問奴 織當問婢 欲伐國 而與白面書生 謀之事何由濟중국어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했다. 심경지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는 고사성어를 처음 만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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