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호야 대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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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카호야 대분화는 약 7,200~7,300년 전에 발생한 기카이 칼데라의 대규모 화산 폭발이다. 이 분화는 VEI 6~7 규모의 플리니식 및 프레아토플리니식 분화를 거쳐,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를 혼슈, 오키나와현, 한반도 남부까지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분화 과정에서 지진과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으며, 총 133~183 km³의 밀도 암석 상당량(DRE)의 퇴적물을 생성했다. 이 분화는 남부 규슈의 조몬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문화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회복하는 데 약 100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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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호야 대분화 | |
---|---|
개요 | |
명칭 | 아카호야 분화 |
발생 위치 | 규슈, 일본 |
좌표 | 30.789, 130.308 |
분출원 | 기카이 칼데라 |
분화 유형 | 울트라 플리니오식 |
VEI | 7 |
시기 | 기원전 6,860년 ~ 7,440년 (cal BP) |
규모 | |
영향 | |
영향 | 홀로세에 발생한 6번의 대규모 분화 중 하나. 남부 규슈의 식생에 큰 변화를 가져옴. 조몬 문화에 영향. |
2. 분화 배경
기카이 칼데라는 약 140,000년 전 코아비야마 분화가 발생하였고, 이후 약 94,000년 전에는 더 작은 규모의 나가세 분화를 일으켰다.[4][5][6]
기카이 칼데라에서 16,000~9,000 년 전 테프라층(K–Km)에서 화산 활동의 증거가 있다.[7] 다케시마 데브리스 사태에 이어 나가하마 용암(NgL) 및 헤이케조 화산재(K–Hj) 사건이 분출에 앞서 발생했다.[7]
3. 분화 과정
본 분출은 VEI-6 규모의 플리니식 분화 (K–KyP)로 시작되었으며, 고야(후나쿠라) 경석이 분출되었다. 이후의 과정은 최소 28시간 동안 지속되었다.[8] 이 플리니식 분화의 후반부에, 분화 기둥이 붕괴되면서 플리니식 내부 흐름인 후나쿠라 화쇄류 (K–Fn)가 발생했다.[7] K-KyP와 K-Fn의 총 부피는 40 세제곱킬로미터로 추정된다.[8]
이어서 VEI-7 규모의 최종적인 칼데라 형성 아카호야 프레아토플리니식 분화가 신속하게 이어졌다. 이 분출은 마그마와 해수의 접촉으로 인해 발생하여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 고야(다케시마) 화쇄류는 대규모 화쇄류로 발생하여 점결응회암 (K–Ky)을 퇴적시켰고,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 (K–Ah)는 혼슈, 오키나와현, 그리고 남부 한반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테프라였다.[7] 이 분출의 결과로, 기카이 화산에 20 x 17 km 직경의 이중 칼데라가 형성되었다.[6][9]
후나쿠라 화쇄류 이후, 고야 화쇄류가 발생하기 전에 기카이 칼데라 근처에서 큰 지진 (Ah1)이 발생했다. 큰 지반 운동으로 인해 야쿠시마와 타네가시마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7] 게다가,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가 낙하하는 동안 두 번째 큰 지진(Ah2)이 발생했고, 사쓰마 반도와 오스미 반도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 [7]
분출의 마지막 시점에 또는 직후에 거대 쓰나미가 발생했다. 쓰나미 퇴적물은 서일본 해안을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쓰나미 이후 기카이-아카호야 테프라가 퇴적된 곳, 즉 분출구에서 300 km까지 이어졌다.[7] 쓰나미의 원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간적 순서로 볼 때 칼데라 가장자리의 붕괴가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된다.[7]
3. 1. 플리니식 분화 단계
기카이 칼데라에서 16,000~9,000년 전[7]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된 테프라층(K–Km)에서 화산 활동 증거가 발견되었다.[7] 다케시마 이류 이후 나가하마 용암(NgL) 및 헤이케조 화산재(K–Hj) 사건이 발생했다.[7]
본 분출은 VEI-6 규모의 플리니식 분화(K–KyP)로 시작되어 고야(후나쿠라) 경석을 분출시켰고, 최소 28시간 동안 지속되었다.[8] 분화 후반부에 분화 기둥이 붕괴되면서 플리니식 내부 흐름인 후나쿠라 화쇄류(K–Fn)가 발생했다.[7] K-KyP와 K-Fn의 총 부피는 40 세제곱킬로미터로 추정된다.[8]
이후 VEI-7 규모의 최종적인 칼데라 형성 아카호야 프레아토플리니식 분화가 이어졌다. 이 분출은 마그마와 해수의 접촉으로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 고야(다케시마) 화쇄류는 대규모 화쇄류로 발생하여 점결응회암(K–Ky)을 퇴적시켰고,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K–Ah)는 혼슈, 오키나와현, 남부 한반도에 광범위하게 퍼졌다.[7] 이 분출로 기카이 화산에 20 x 17 km 직경의 이중 칼데라가 형성되었다.[6][9]
후나쿠라 화쇄류 이후, 고야 화쇄류 발생 전 기카이 칼데라 근처에서 큰 지진(Ah1)이 발생했다. 야쿠시마와 타네가시마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7]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 낙하 동안 두 번째 큰 지진(Ah2)이 발생했고, 사쓰마 반도와 오스미 반도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 [7]
분출 마지막 시점 또는 직후 거대 쓰나미가 발생했다. 쓰나미 퇴적물은 서일본 해안을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분출구에서 300 km 떨어진 곳까지 이어졌다.[7] 쓰나미의 원인은 칼데라 가장자리의 붕괴가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된다.[7]
3. 2. 프레아토플리니식 분화 단계
기카이 칼데라에서는 16,000년에서 9,000년 전 사이에 화산 활동의 증거가 발견된다.[7] 다케시마 데브리스 사태 이후 나가하마 용암 및 헤이케조 화산재 사건이 발생했다.[7]
본 분출은 화산 폭발 지수 (VEI) 6 규모의 플리니식 분화로 시작되어 고야(후나쿠라) 경석을 분출시켰다. 이 과정은 최소 28시간 동안 지속되었다.[8] 플리니식 분화 후반부에 분화 기둥이 붕괴되면서 플리니식 내부 흐름인 후나쿠라 화쇄류가 발생했다.[7] K-KyP와 K-Fn의 총 부피는 40 km³로 추정된다.[8]
이후, VEI-7 규모의 최종적인 칼데라 형성 아카호야 프레아토플리니식 분화가 빠르게 이어졌다. 이 분출은 마그마와 해수의 접촉으로 인해 발생하여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 고야(다케시마) 화쇄류는 대규모 화쇄류로 발생하여 점결응회암(K–Ky)을 퇴적시켰고,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K–Ah)는 혼슈, 오키나와현, 그리고 남부 한반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테프라였다.[7] 이 분출로 인해 기카이 화산에 20 x 17 km 직경의 이중 칼데라가 형성되었다.[6][9]
후나쿠라 화쇄류 이후, 고야 화쇄류 발생 전에 기카이 칼데라 근처에서 큰 지진(Ah1)이 발생했다. 큰 지반 운동으로 인해 야쿠시마와 타네가시마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7]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가 낙하하는 동안 두 번째 큰 지진(Ah2)이 발생했고, 사쓰마 반도와 오스미 반도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7]
분출 마지막 시점 또는 직후에 거대 쓰나미가 발생했다. 쓰나미 퇴적물은 서일본 해안을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분출구에서 300 km 떨어진 곳까지 이어졌다.[7] 쓰나미의 원인은 칼데라 가장자리의 붕괴가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된다.[7]
3. 3. 지진 및 쓰나미
기카이 칼데라에서는 16,000년에서 9,000년 전 사이의 화산 활동 증거가 발견된다.[7] 다케시마 데브리스 사태 이후 나가하마 용암 및 헤이케조 화산재 사건이 분출에 선행했다.[7]
본 분출은 VEI-6 규모의 플리니식 분화로 시작되어 고야(후나쿠라) 경석을 분출시켰다. 이후 최소 28시간 동안 분화 과정이 지속되었다.[8] 플리니식 분화 후반부에 분화 기둥이 붕괴되면서 후나쿠라 화쇄류가 발생했다.[7] K-KyP와 K-Fn의 총 부피는 40 km³로 추정된다.[8]
이후 VEI-7 규모의 최종적인 칼데라 형성 아카호야 프레아토플리니식 분화가 이어졌다. 이 분출은 마그마와 해수의 접촉으로 인해 발생하여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 고야(다케시마) 화쇄류는 대규모 화쇄류로 발생하여 점결응회암을 퇴적시켰고,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는 혼슈, 오키나와현, 그리고 남부 한반도에 광범위하게 퍼졌다.[7] 이 분출로 기카이 화산에 20 x 17 km 직경의 이중 칼데라가 형성되었다.[6][9]
후나쿠라 화쇄류 이후, 고야 화쇄류 발생 전에 기카이 칼데라 근처에서 큰 지진(Ah1)이 발생했다. 큰 지반 운동으로 야쿠시마와 타네가시마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7]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가 낙하하는 동안 두 번째 큰 지진(Ah2)이 발생했고, 사쓰마 반도와 오스미 반도에서 토양 액상화가 발생했다.[10][7]
분출 마지막 시점 또는 직후에 거대 쓰나미가 발생했다. 쓰나미 퇴적물은 서일본 해안을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분출구에서 300 km 떨어진 곳까지 쓰나미 이후 기카이-아카호야 테프라가 퇴적되었다.[7] 쓰나미의 원인은 칼데라 가장자리의 붕괴가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된다.[7]
4. 분화 퇴적물
분화의 총 부피는 현재 133–183 km³ DRE로 추정되며, 이는 이전 추정치의 약 두 배에 달한다. 332–457 km³의 주요 부피 추정치는 DRE 계산에 사용되는 용암보다 가벼운 부석 낙하와 같은 퇴적물과 관련이 있다.[8]p=235[2] 분화는 부분적으로 해저에서 발생했으며, 화산쇄설류의 일부가 해저 밀도류로 변환되어 총 해저 퇴적물 부피가 71 km³에 달했다.[2] 칼데라 바닥 자체는 해저 300–500 m 깊이에 있으며,[6]pp=99 연구하기 더 쉬운 대부분의 육상 퇴적물은 칼데라에서 약 40 km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7]337 일부 분화의 깊이는 해저에 밀착된 밀도류가 얕은 수중 환경에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다.[2] 육상에 있는 이그님브라이트 퇴적물의 부피는 5 km³이며, 현재 4500 km² 면적을 덮고 있는 광범위한 테프라의 부피는 249–374 km³이다.[2] 주요 절정 이그니브라이트는 대체로 건조하므로, 주요 분화가 모두 수중에 남아있거나 수중에 있었던 통풍구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8]p=234
주로 육상 테프라 퇴적물에 대한 이전 연구에서는 수정되지 않은 부피 추정치가 150 km³였으며,[6]pp=105 나중에 170 km³로 증가했다.[11] 이들은 나중에 밀도 암석 상당량을 제공하기 위해 분석되었으며, 총 부피가 3단계에서 30–45 km³로 추정되는 코야(다케시마) 화산쇄설류(K–Ky)는 15–25 km³의 DRE 부피가 할당되었다. 부피가 100 km³인 키카이-아카호야 화산재(K–Ah)는 50 km³의 DRE 부피를 나타냈다.[8]224 해저 밀도류의 존재가 이해되기 전에는 7.2의 VRE가 추정되었으며,[1] 총 DRE 부피는 70–80 km³였다.[8]p=234 분화 당시 해수면은 현재보다 낮았을 것이지만, 천 년 이내에 현재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8]p=215 분화의 대부분에 공급된 마그마 방은 표면 아래 3–7 km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8]p=234
4. 1. 기카이-아카호야 화산재 (K-Ah)
분화의 총 부피는 현재 133–183 km³ DRE로 추정되며, 이는 이전 추정치의 약 두 배에 달한다. 332–457 km³의 주요 부피 추정치는 DRE 계산에 사용되는 용암보다 가벼운 부석 낙하와 같은 퇴적물과 관련이 있다.[8]p=235[2] 분화는 부분적으로 해저에서 발생했으며, 화산쇄설류의 일부가 해저 밀도류로 변환되어 총 해저 퇴적물 부피가 71 km³에 달했다.[2] 칼데라 바닥 자체는 해저 300–500 m 깊이에 있으며,[6]pp=99 연구하기 더 쉬운 대부분의 육상 퇴적물은 칼데라에서 약 40 km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7]337 일부 분화의 깊이는 해저에 밀착된 밀도류가 얕은 수중 환경에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다.[2] 육상에 있는 이그니브라이트 퇴적물의 부피는 5 km³이며, 현재 4500 km² 면적을 덮고 있는 광범위한 테프라의 부피는 249–374 km³이다.[2] 주요 절정 이그니브라이트는 대체로 건조하므로, 주요 분화가 모두 수중에 남아있거나 수중에 있었던 통풍구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8]p=234주로 육상 테프라 퇴적물에 대한 이전 연구에서는 수정되지 않은 부피 추정치가 150 km³였으며,[6]pp=105 나중에 170 km³로 증가했다.[11] 이들은 나중에 밀도 암석 상당량을 제공하기 위해 분석되었으며, 총 부피가 3단계에서 30–45 km³로 추정되는 코야(다케시마) 화산쇄설류(K–Ky)는 15–25 km³의 DRE 부피가 할당되었다. 부피가 100 km³인 키카이-아카호야 화산재(K–Ah)는 50 km³의 DRE 부피를 나타냈다.[8]224 해저 밀도류의 존재가 이해되기 전에는 7.2의 VRE가 추정되었으며,[1] 총 DRE 부피는 70–80 km³였다.[8]p=234 분화 당시 해수면은 현재보다 낮았을 것이지만, 천 년 이내에 현재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8]p=215 분화의 대부분에 공급된 마그마 방은 표면 아래 3–7 km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8]p=234
5. 분화 이후 영향
이 분화는 남부 규슈의 초기 조몬 문화의 종말과 관련이 있지만, 영향은 컸지만 일부 논평에서 제시한 것만큼 크지는 않았으며, 분화 시퀀스 전후에 규슈에서 유지되었던 니시노조노 하위 유형의 도기 전통이 시작되었다.[16] 회복하는 데 거의 1000년이 걸렸다.[17] 더 멀리 떨어진 북부 규슈, 혼슈 및 홋카이도에 살았던 조몬인들은 생존했지만, 주로 해양 식량 자원으로 잠시 되돌아가야 했을 가능성이 높다.[16]
남부 규슈의 초기 조몬 문화의 운명은 또 다른 대규모 화산 폭발의 결과로 끝났을 수 있는 미노아 문명의 멸망과 거의 유사하지 않다.
이러한 사건들은 확립된 문화가 빠르고 완전히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유지하는 문화적 전통에 더 큰 신빙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멸망이 세계의 두 매우 다른 지역에서 (홀로세) 인류 역사에서 일어났지만, 두 시기의 시간 척도는 일부 연구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더 점진적이었으며, 관련된 모든 메커니즘에 대한 대안적인 제안을 허용했다.[18] 관련 문제로 인해 인간 문화 발달과 화산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모두에 대한 화산 활동의 영향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졌다.[19]
5. 1. 조몬 문화에 미친 영향
아카호야 대분화는 남부 규슈의 초기 조몬 문화 종말과 관련이 있다.[16] 분화의 영향은 컸지만, 일부에서 제시한 것만큼 크지는 않았으며, 분화 전후에 규슈에서 니시노조노 하위 유형의 도기 전통이 유지되었다.[16] 조몬 문화가 회복하는 데는 거의 1000년이 걸렸다.[17] 북부 규슈, 혼슈, 홋카이도에 살았던 조몬인들은 생존했지만, 주로 해양 식량 자원에 의존해야 했을 가능성이 높다.[16]남부 규슈의 초기 조몬 문화는 대규모 화산 폭발로 멸망한 미노아 문명과 유사한 운명을 맞이했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확립된 문화가 빠르고 완전히 사라진다는 문화적 전통에 신빙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멸망은 세계의 두 매우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두 시기의 시간 척도는 일부 연구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더 점진적이었으며, 관련된 모든 메커니즘에 대한 대안적인 제안을 허용했다.[18] 이러한 문제는 인간 문화 발달과 화산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화산 활동의 영향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촉발시켰다.[19]
5. 2. 한반도 신석기 문화에 미친 영향
아카호야 대분화는 남부 규슈의 초기 조몬 문화의 종말과 관련이 있다.[16] 이 분화로 인해 규슈 지역의 조몬 문화는 회복하는 데 거의 1000년이 걸렸다.[17] 북부 규슈, 혼슈, 홋카이도 등지에 살았던 조몬인들은 생존했지만, 해양 식량 자원에 의존해야 했다.[16]남부 규슈의 초기 조몬 문화가 겪은 운명은 대규모 화산 폭발로 멸망했을 가능성이 있는 미노아 문명의 멸망과 유사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러한 대규모 화산 폭발 사건들은 기존 문화가 급작스럽게 사라졌다는 문화적 전통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멸망은 일부 연구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더 점진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으며, 관련된 메커니즘에 대한 다른 제안들도 존재한다.[18] 이러한 문제들은 화산 활동이 인간 문화 발달과 화산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촉진했다.[19]
6. 연대 측정
고고학적으로는 기원전 7,300년경으로 추정되지만,[12] 수정되지 않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는 기원전 6,500년으로 측정되기도 했다.[13] 여러 다른 출처를 종합한 현재의 공인된 연대 조정치는 약 7,200년에서 7,300년 전이다.[14][15][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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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marine pyroclastic deposits from 7.3 ka caldera-forming Kikai-Akahoya eru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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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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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大カルデラ噴火のメカニズムとリスクを発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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鬼界アカホヤ噴火が南九州の植生に与えた影響 : 植物珪酸体分析による検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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