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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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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타의 거울은 "지혜" 또는 "정직"을 상징하는 일본의 삼종 신기 중 하나이다. 이름은 "여덟 자(咫) 거울"을 의미하며, 고대 일본에서 진실을 상징하는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현재는 이세 신궁에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지며, 복제품은 도쿄 황궁에 안치되어 있다. 신화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사용했으며, 니니기노미코토에게 하사되어 일본 황실로 전해졌다고 한다. 신사에서는 삼종 신기의 복제품을 마사카키에 포함하며, 고고학적으로는 히라바루 유적에서 출토된 대형 내행화문경이 야타의 거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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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의 거울
개요
야타노카가미
야타노카가미 (상상도)
종류거울
재료청동
크기팔咫 (야타)
소유자일본 천황
보관 장소이세 신궁
명칭
한국어야타의 거울
일본어야타노카가미 (八咫鏡)
로마자 표기Yata no Kagami
다른 표기야타카가미 (八尺鏡)
가타시하 (堅石)
마후쓰노카가미 (真経津鏡)
신화적 의미
상징지혜와 정직
관련 신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역할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동굴에서 나오게 함
천황의 권위를 상징
역사적 의미
기원신화 시대
현재 위치이세 신궁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시는 가장 중요한 신사)
중요성일본의 삼종신기 중 하나
전승고사기일본서기에 기록
천황에게 계승되는 신성한 물건
기타
특징일반에 공개되지 않음
모조품이 존재
관련 문화일본의 신도
천황 숭배

2. 명칭 및 의의

야타의 거울은 출처에 따라 "지혜" 또는 "정직"을 나타낸다.[2] 그 이름은 문자 그대로 "여덟 아타 거울"을 의미하며, 이는 크기를 나타낸다.[3][4] 고대 일본에서 거울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진실을 상징했으며,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흔치 않은 물건이었기 때문). 모럴로지 연구소의 다케나카 신스케에 따르면, 야타의 거울은 삼종신기 중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5]

고사기』에서는 하고천원의 팔백만의 신들이 아마노야스카와에 모여, 강가의 굳은 돌을 쇠받침 삼아, 금산의 쇠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에는 다른 이름을 '''마후츠노카가미'''(진경진경)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신경'''(신경) 또는 '''보경'''(보경)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지만, "신경"이나 "보경"이라는 말은 보통 명사이며 야타의 거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야타(八咫)"는 "팔십만신", "팔심대웅악", "야타가라스" 등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크다, 많다는 형용사이며 구체적인 수치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咫, 아타)를 원주의 단위로 생각하여 지름 1척의 원의 원주를 4자(0.8척×4)로 하여 "야타의 거울은 지름 2척(46cm 전후), 원주 약 147cm의 '''원경'''을 의미한다"는 설도 존재한다.[13]

후한의 학자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자(咫)는 보통 부인의 손의 길이 여덟 치로, 이것을 자라고 한다, 주척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평원 유적 출토의 "대형 내행화문경(내행화문 팔엽경)"은 지름 46.5cm이며, 야요이 시대 후기부터 만기에 이 크기의 거울이 존재했음이 확실해졌다. 이러한 특대 크기로 인해, 후에 삼종신기 중 하나인 거울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2. 1. 어원

야타의 거울은 출처에 따라 "지혜" 또는 "정직"을 나타낸다.[2] 그 이름은 문자 그대로 "여덟 아타 거울"을 의미하며, 이는 크기를 나타낸다.[3][4] 고대 일본에서 거울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진실을 상징했으며,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흔치 않은 물건이었기 때문).

모럴로지 연구소의 다케나카 신스케에 따르면, 야타의 거울은 삼종의 신기 중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5]

일본서기』에는, 다른 이름을 '''마후츠노카가미'''(진경진경)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신경'''(신경) 또는 '''보경'''(보경)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지만, "신경"이나 "보경"이라는 말은 보통 명사이며 야타의 거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야타(八咫)"는 "팔십만신", "팔심대웅악", "야타가라스" 등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크다, 많다는 형용사이며 구체적인 수치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咫, 아타)를 원주의 단위로 생각하여 지름 1척의 원의 원주를 4자(0.8척×4)로 하여 "야타의 거울은 지름 2척(46cm 전후), 원주 약 147cm의 '''원경'''을 의미한다"는 설도 존재한다.[13]

후한의 학자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자(咫)는 보통 부인의 손의 길이 여덟 치로, 이것을 자라고 한다, 주척이다"라고 쓰여 있으며, 전국 ~ 후한 초기의 자로는 1촌 2.31cm×8촌×8자=약 147cm가 된다.

평원 유적 출토의 "대형 내행화문경(내행화문 팔엽경)"은 지름 46.5cm, 원주는 46.5×3.14 = 146.01cm이며, 야요이 시대 후기부터 만기에 이 크기의 거울이 존재했음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현존하는 통대(어신체의 용기)의 크기로 추측되는 신기의 거울은 더 작다.

어쨌든 그 특대 크기로 인해, 후에 삼종 신기 중 하나인 거울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2. 2. 상징성

야타의 거울은 출처에 따라 "지혜" 또는 "정직"을 나타낸다.[2] 그 이름은 문자 그대로 "여덟 아타 거울"을 의미하며, 이는 크기를 나타낸다.[3][4] 고대 일본에서 거울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진실을 상징했으며, (흔치 않은 물건이었기 때문에)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모럴로지 연구소의 다케나카 신스케에 따르면, 야타의 거울은 삼종신기 중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5]

3. 역사

야타의 거울은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을 겪었다. 960년(天徳|덴토쿠일본어 4년)과 1005년(寛弘|간코일본어 2년) 화재로 세 개 중 두 개의 거울이 소실되었고, 1040년(長禄|조로쿠일본어 4년) 화재로 마지막 남은 거울마저 파손되었다. 이때 거울을 새로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개주를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반대하여 무산되었고, 결국 파편과 금속 조각을 신경으로 안치했다.[15]

1185년 단노우라 전투에서 안토쿠 천황과 함께 바다에 빠졌다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 의해 회수되었다. 남북조 시대에는 남조와 북조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신기를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 1392년 남조로부터 신기가 북조로 "환어"되었으나,[16] 1443년 킨켓츠의 변에서 다시 위기를 겪기도 했다.

3. 1. 소실과 복원

1040년(長久|조큐일본어 원년, 9월), 신성한 거울이 보관된 곳이 화재로 소실되었다.[6] 거울은 손상되지 않고 이 사건에서 살아남았다. 현재는 일본 미에현에 있는 이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7]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확인하기 어렵다. 동시에, 복제품이 도쿄 황궁의 궁궐 3전에 안치되어 있다.[2]

황거의 야타의 거울은 현소에 봉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거울을 가리켜 '''현소'''(かしこどころ)라고도 한다. 굳이 현소에 대해 말할 경우에는 이를 "켄쇼"라고 부르거나, 또는 그 통칭인 "내시소"라고 불러 구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세에는 내시소도 신경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내시소의 신경의 실태에 대해서는 공경들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텐토쿠 4년(960년)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내시소의 신경이 3개 존재한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들은 각각 이세・기이국히자키 신사・쿠니카케 신사의 신경이라고 여겨졌지만, 간코 2년(1005년)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그 중 2개가 소실되었다. 불에 타지 않고 남은 1개가 이세의 신경(야타의 거울의 형상)이라고 여겨졌다. 그것도 조로쿠 4년(1040년)에 일어난 내리의 화재로 인해 완전히 파손되었다. 간코 때에는 개주・신조가 논의되었지만, 이 경우에는 논의되지 않았고, 결국 신경의 파편이나 금속 조각이 신경으로서 안치되었다.[15]

헤이안 시대 말기, 헤이 가문의 몰락과 함께 서천하여 주에이 4년 3월 24일(1185년 4월 25일), 단노우라 전투안토쿠 천황과 함께 해중에 가라앉았고, 미나모토노 요시쓰네가 야사카니노마가타마와 함께 회수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천황이 2명 존재하는 상황에서 양 조정 간에 신기를 둘러싼 주장의 불일치가 발생했다. 겐무 3년(1336년)에 고다이고 천황고묘 천황에게 삼종 신기를 양도했지만, 남조 측은 이는 가짜이며 진짜는 남조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조의 주장에 절대적인 신뢰를 둘 수는 없다고 여겨지며, 실제로 쇼헤이 일통에서 남조는 북조의 신기를 접수했다. 또한, 그 때문에 그 후의 북조에는 삼종 신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고곤 천황 이후에는 "내시소 어신궤"를 신경의 대용으로 삼았다. 고코마쓰 천황 시대인 메이토쿠 3년(1392년)에 남조로부터 신기가 "환어"했다.[16]

무로마치 시대가키 3년 9월 23일(1443년 10월 16일)에 일어난 긴케쓰의 변에서 고난조 세력이 궁중을 습격했을 때, 삼종 신기 중 보검과 신서는 빼앗겼지만, 신경만은 난을 피했고, 다음 날 고노에 전으로 옮겨졌다.

근세의 내시소에는 2개의 신궤가 봉안되어 있었으며,[17], 무라타 마사시에 따르면 엔토쿠 3년(1491년)의 고도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겐코 신조의 신궤와 메이토쿠에 "환어"한 신궤라고도, 고곤 천황 이후의 북조의 신궤와 메이토쿠에 "환어"한 신궤라고도 한다.[18]

3. 2. 현재

1040년(長久일본어 1년) 9월, 신성한 거울이 보관된 곳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거울은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았다.[6] 현재는 일본 미에현 이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7]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확인하기 어렵다. 복제품은 도쿄 황궁 궁궐 3전에 안치되어 있다.[2]

1185년 (주에이 4년) 3월 24일, 단노우라 전투안토쿠 천황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았으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야사카니노마가타마와 함께 회수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천황이 2명 존재하는 상황에서 양 조정 간에 신기를 둘러싼 주장이 엇갈렸다. 1336년 (겐무 3년) 고다이고 천황고묘 천황에게 삼종 신기를 양도했지만, 남조 측은 이를 가짜라 주장하며 진짜는 남조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조의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며, 쇼헤이 일통에서 남조는 북조의 신기를 접수했다. 이후 북조에는 삼종 신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고곤 천황 이후에는 "내시소 어신궤"를 신경의 대용으로 삼았다. 1392년(메이토쿠 3년) 고코마츠 천황 시대에 남조로부터 신기가 "환어"했다.[16]

1443년(카키 3년) 9월 23일, 킨켓츠의 변에서 고난조 세력이 궁중을 습격했을 때, 삼종 신기 중 보검과 신서는 빼앗겼지만, 신경만은 난을 피했고, 다음 날 고노에 전으로 옮겨졌다.

4. 신화

기고신화에 따르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동굴에 숨었을 때 아마츠마라와 이시키리도메가 야타의 거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본떠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시험 삼아 닛소쿄나 히보코를 주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가 춤을 추고 신들이 크게 웃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바위 동굴을 조금 열었을 때, 이 거울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자신을 비추어 흥미를 갖게 하여, 아메노타지카라오노카미에 의해 밖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다시 다카마가하라와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는 밝아졌다고 한다.

천손강림 때,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는 니니기노미코토에게 야타의 거울을 하사하며, 이 거울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모시라는 신칙(보경 봉재의 신칙)을 내렸다고 한다.

진무 천황의 동정에서는 다른 신기와 마찬가지로, 야타노카가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8]

4. 1.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동굴

신토에서 거울은 이시코리도메 신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거울과 야사카니노 마가타마일본어는 동굴에서 아마테라스를 유인하기 위해 나무에 걸렸다.[8] 거울은 쿠사나기 검과 함께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가 일본을 평정하러 갈 때 그에게 주어졌다. 그 후 보물은 일본 황실의 손으로 넘어갔다.[8]

연구자 다케나카 신스케는 전설에 따르면 아마테라스가 니니기에게 "깨끗한 마음과 몸으로 나를 섬기듯이 이 거울을 나의 영혼으로 섬기라"고 말했다고 한다.[5][9]

기고신화에 따르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아마노이와토 숨기 때 아마츠마라와 이시키리도메노미코토가 만들었다고 하며, 『일본서기』에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과, 시험 삼아 닛소쿄나 히보코를 주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가 춤을 추고 신들이 크게 웃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바위 동굴을 조금 열었을 때, 이 거울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자신을 비추어 흥미를 갖게 하여, 아메노타지카라오노카미에 의해 밖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다시 다카마가하라와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는 밝아졌다고 한다.

천손강림 때,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로부터 니니기노미코토에게 하사되었으며, 이 거울을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모시라는 신칙(보경 봉재의 신칙)이 내려졌다고 한다.

진무 천황의 동정에서는 다른 신기와 마찬가지로, 야타노카가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4. 2. 천손강림(天孫降臨)

신토에서 거울은 이시코리도메 신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거울과 야사카니노 마가타마|야사카니노 마가타마일본어는 동굴에서 아마테라스를 유인하기 위해 나무에 걸렸다.[8] 쿠사나기 검과 함께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가 일본을 평정하러 갈 때 그에게 주어졌으며,[8] 그 후 일본 황실의 손으로 넘어갔다.[8]

연구자 다케나카 신스케는 전설에 따르면 아마테라스가 니니기에게 "깨끗한 마음과 몸으로 나를 섬기듯이 이 거울을 나의 영혼으로 섬기라"고 말했다고 한다.[5][9]

기고신화에 따르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아마노이와토 숨기 때 아마츠마라와 이시키리도메노미코토가 만들었다고 하며, 『일본서기』에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과, 시험 삼아 닛소쿄나 히보코를 주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가 춤을 추고 신들이 크게 웃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바위 동굴을 조금 열었을 때, 이 거울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자신을 비추어 흥미를 갖게 하여, 아메노타지카라오노카미에 의해 밖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다시 다카마가하라와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는 밝아졌다고 한다.

천손강림 때,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로부터 니니기노미코토에게 하사되었으며, 이 거울을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모시라는 신칙(보경 봉재의 신칙)이 내려졌다.

5. 현대 의례

거울과 곡옥을 특징으로 하는 야사카 신사의 오른쪽 마사카키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제단에 있는 거울. 야타노카가미는 다른 신을 숭배할 때 거울을 사용하는 원형으로 여겨진다.
[11][9]

야타노카가미를 포함한 일본의 삼종신기 복제품은 신사에서 마사카키에 포함되어 있다.[10] 마사카키는 세트로 나오며, 왼쪽에는 쿠사나기노츠루기의 복제품이, 오른쪽에는 야타노카가미와 야사카니노마가타마의 복제품이 들어 있다.[10] 신도의 거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야타노카가미는 신도에서 거울을 사용하는 원형으로 여겨진다.[11][9]

6. 고고학적 유물

일반적으로 '야타(八咫)'는 크거나 많다는 뜻의 형용사로 여겨지지만, '자(咫)'를 원주 단위로 보아 지름 1척 원의 원주를 4자(0.8척×4)로 계산하여 야타노카가미가 지름 2척(약 46cm), 원주 약 147cm의 원경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13]

후한의 학자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자(咫)는 보통 부인의 손 길이 여덟 치로, 이것을 자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전국 시대부터 후한 초기까지 1촌은 2.31cm였으므로, 8촌은 8자, 즉 약 147cm가 된다.

평원 유적에서 출토된 '대형 내행화문경(내행화문 팔엽경)'은 지름 46.5cm, 원주 146.01cm로, 야요이 시대 후기에서 만기에 이 크기의 거울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존하는 신기의 거울은 이보다 더 작은 것으로 추정된다.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의 히라바루 유적에서 출토된 국보 대형 내행화문경(내행화문 팔엽경) 4면(이후 5면으로 수정)은 하라다 다이로쿠에 따르면 야타노카가미 그 자체라고 한다.[19][20] 이 거울은 도상만 있는 대형 청동 거울로, 문자나 신수 등의 그림은 없다. 『어진좌 전기』에는 야타노카가미의 형상이 "팔두화기팔엽형야"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이러한 도상을 가진 고고 유물은 이 "대형 내행화문경"뿐이다. 이 거울 중 4면은 이토국 역사 박물관에서, 나머지 1면은 규슈 국립 박물관에서 상시 전시되어 실물을 볼 수 있다.

6. 1. 야타노카가미와의 관련성

일본 삼종신기의 복제품은 신사에서 마사카키에 포함되어 있다.[10] 마사카키는 세트로 나오며, 왼쪽에는 쿠사나기노츠루기의 복제품이, 오른쪽에는 야타노카가미와 야사카니노마가타마의 복제품이 들어 있다.[10] 신도의 거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야타노카가미는 신도에서 거울을 사용하는 원형으로 여겨진다.[11][9]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제단에 있는 거울이 그 예시이다.

참조

[1] 서적 Shinto Shrines: A Guide to the Sacred Sites of Japan's Ancient Religio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2-11-30
[2] 서적 Respect and Consideration https://books.google[...] Lulu.com 2011
[3] 서적 RLE: Japan Mini-Set F: Philosophy and Religion (4 vol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21-03-18
[4] 서적 Studies In Shinto & Shrine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4-06-03
[5] 웹사이트 Akihito and Japan's Imperial Treasures that make a man an emperor https://www.bbc.com/[...] 2019-04-27
[6] 문서 Lessons from History: the Tokushi Yoron 1982
[7] 서적 Shinto Shrines: A Guide to the Sacred Sites of Japan's Ancient Religio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2-11-30
[8] 서적 Japanese Mythology A to Z https://books.google[...] Infobase Publishing 2009
[9] 웹사이트 The circular mirror: Shinto symbol https://www.greenshi[...] 2012-02-17
[10] 웹사이트 The Colours of Shinto (masakaki) https://www.greenshi[...] 2015-04-05
[11] 서적 We Japanese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09-05
[12] 서적 『古事記 祝詞』 岩波書店
[13] 간행물 八咫の鏡について 大修館書店
[14] 서적 道長と宮廷社会 日本の歴史06 講談社学術文庫 2009
[15] 논문 内侍所神鏡をめぐる儀礼 2017
[16] 서적 南北朝史論 1971
[17] 논문 近世における天皇の地位と正統性 2017
[18] 서적 南北朝史論 1971
[19] 문서 平原弥生古墳 大日孁貴の墓
[20] 문서 実在した神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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