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니저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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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버니저 하워드는 영국의 도시 계획가로, 전원도시 이론을 주창했다. 그는 1850년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잠시 농업에 종사하다 영국으로 돌아와 속기사로 일하며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워드는 도시와 시골의 장점을 결합한 전원도시를 구상했으며, 이는 19세기 말 런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그의 이론은 도시, 농촌, 전원도시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전원도시는 자연과 사회적 기회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제시되었다. 하워드의 사상은 레치워스와 웰윈 가든 시티 건설로 이어졌으며, 21세기에도 뉴타운 건설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워드 메달이 제정되었으며, 배우 우나 스텁스는 그의 증손녀이다.
에버니저 하워드는 런던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1879년 엘리자 앤 빌스와 결혼했으며, 사회학자 브렛 클라크는 하워드를 "겸손하고 실용적인" 발명가로 묘사했다.[5] 그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도시의 윤곽을 만들었다.
하워드는 에드워드 벨라미의 1888년 유토피아 소설 회고와 헨리 조지의 경제 논문 진보와 빈곤을 읽고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도시와 시골의 장점을 모두 결합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898년 내일로: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평화로운 길을 출판했고, 1902년 내일의 전원도시로 대폭 수정하여 사회 및 도시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5]
2. 생애
하워드는 1927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07년 재혼한 에디스 애니 헤이워드(Edith Annie Hayward, 1864–1941)와 함께 레치워스 묘지에 묻혔다.
2. 1. 초기 생애 ( ~ 1876)
에버니저 하워드는 1850년 1월 29일 런던 시의 포어 스트리트에서 제빵업자인 아버지 에버니저 하워드(1817-1900)와 어머니 앤(결혼 전 성은 토우, 1816-1900) 사이에서 태어났다.[10][11][12] 그는 서퍽과 허트퍼드셔의 학교를 다녔으며,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런던에서 속기사로 일하기 시작했다.[5] 이후 시티 템플의 파커 박사와 함께 일하는 등 여러 사무직을 거쳤다.
1871년, 21세였던 하워드는 농업을 하는 삼촌의 영향으로 두 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네브래스카에서 농사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자신이 농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5] 이후 시카고로 이주하여 법원 및 신문 기자로 일했다. 하워드는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시카고에 도착하여 도시 중심부 대부분이 파괴된 후 재건과 교외 성장을 목격했다.[13] 그는 미국에서 시인 월트 휘트먼과 랄프 왈도 에머슨을 알게 되었고 존경하게 되었다. 하워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 2. 후기 생애 (1876 ~ 1928)
1876년 하워드는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의회의 공식 속기록을 제작하는 한사드(Hansard) 회사에서 일했다.[5] 1879년 8월, 엘리자 앤 빌스(Eliza Ann Bills)와 결혼했다. 의회에서의 경험은 사회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접하게 했고, 전원도시 구상에 영향을 주었다.[5] 그는 자유 사상가,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며 혁명적이고 개혁적인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5]
1900년, 하워드가 저서 초판을 출판한 후, 첫 번째 전원도시 건설이 시작되기 전에 그의 부모는 연달아 사망했다. 어머니는 1900년 11월 23일 폐렴으로, 아버지는 1900년 11월 24일 위염으로 사망했다.[11][12]
1904년 11월, 첫 번째 전원도시 레치워스 건설이 시작된 직후 아내 엘리자 앤 빌스(Eliza Ann Bills, 1853–1904)가 사망했다. 하워드는 1907년 에디스 애니 헤이워드(Edith Annie Hayward, 1864–1941)와 재혼했다.
3. 전원도시 이론
『내일의 전원도시』는 당시 산업 도시의 문제점(도시 빈곤, 과밀, 낮은 임금, 열악한 주거 환경, 전염병, 자연과의 단절 등)을 극복하고자 했다.[5][14] 또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협동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전원도시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를 재조직할 것을 제안했다.[15]
전원도시는 많은 교외 지역의 모델이 되었으며, 하워드는 도시와 자연의 완벽한 조화라고 믿었다.[5] 전원도시는 대체로 독립적이며, 경제적 이익을 가진 시민들이 관리하고, 지대료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조지스트 모델을 따랐다.
런던의 중공업 발전으로 인한 환경 악화와 빈곤 확대를 우려한 그는 미국 시카고의 가든 시티 구상에서 영감을 받아 "도시와 농촌의 결혼"을 목표로 한 전원도시 이론을 제시했다.
3. 1. 이론의 배경
하워드는 에드워드 벨라미의 1888년 유토피아 소설 회고와 헨리 조지의 경제 논문 진보와 빈곤을 읽고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5] 그는 현대 도시 개발 방식을 싫어했으며, 도시와 시골의 장점을 결합한 곳에서 사람들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워드는 '사람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도시', '시골', '도시-시골'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세 개의 자석' 다이어그램으로 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5]
사람들 | 그들은 어디로 갈까? |
---|---|
도시 | |
시골 | |
도시-시골 |
그는 슬럼가가 없고 도시(기회, 오락, 높은 임금 등)와 시골(아름다움, 신선한 공기, 낮은 임대료 등)의 이점을 모두 누리는 도시의 비전을 제시했다.[5][14]
3. 2. 이론의 핵심 내용
하워드는 에드워드 벨라미의 1888년 유토피아 소설 ''회고''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는 현대 도시 개발 방식을 비판하며, 도시와 시골의 장점을 결합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5]하워드는 1898년 "내일로: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평화로운 길(To-Morrow: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을 출판했고, 1902년에는 ''내일의 전원도시(Garden Cities of To-morrow)''로 수정 출판했다. 이 책은 당시 산업 도시의 문제점(도시 빈곤, 과밀, 낮은 임금, 열악한 주거 환경, 전염병, 자연과의 단절 등)을 극복하고,[5][14] 도시의 장점(기회, 오락, 높은 임금)과 시골의 장점(아름다움, 신선한 공기, 낮은 임대료)을 모두 누릴 수 있는 도시 비전을 제시했다.[5]
하워드는 '사람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도시', '시골', '도시-시골'을 선택지로 제시하는 '세 개의 자석' 다이어그램으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도시 | 시골 | 도시-시골 (전원도시) |
---|---|---|
『내일의 전원도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협동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전원도시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를 재조직할 것을 제안했다.[15] 이는 제한된 크기로 계획되고, 영구적인 농업 지대가 주변을 둘러싼 새로운 교외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워드는 이러한 전원도시가 도시와 자연의 완벽한 조화라고 믿었으며,[5] 도시와 시골을 결합하여 새로운 문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도시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경제적 이익을 가진 시민들이 관리하고, 지대료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조지스트 모델을 따랐다.
하워드는 자신의 다이어그램과 디자인이 완벽한 전원도시의 물리적 계획이 아니라, 각 도시가 사람들과 환경의 필요에 따라 조직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5] 그는 전원도시가 자신의 다이어그램처럼 원형이 될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5]
3. 3. 이론의 한계와 비판
에버니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몇 가지 한계와 비판에 직면했다.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토지 공유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었다.또한, 전원도시의 규모 제한은 도시 성장을 억제하고 새로운 도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전원도시가 중산층 위주의 주거 환경을 조성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웰윈 가든 시티와 같은 사례는 하워드의 이론이 도시 계획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그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더라도, 그의 이론은 도시 계획 분야에 중요한 진전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4. 전원도시 건설
1898년 "내일 -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평화로운 길 (''To-morrow;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을 출판하고, 1902년 "내일의 전원도시 (''Garden City of To-morrow'')"로 제목을 변경하여 출간하였다. 이는 런던의 중공업 발전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악화와 빈곤 확대를 우려하여 미국 시카고의 가든 시티 구상에서 영감을 받아 "도시와 농촌의 결혼"을 목표로 제안되었다.
인구 수만 명 정도의 제한된 규모의 자율적인 직주 근접형 도시를 교외에 건설하는 것으로, 주택은 공원이나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농작업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다양한 가정을 위한 임대 주택이 있으며, 그 임대는 전원도시를 운영하는 토지 회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주민들이 직접 공공 시설 정비 등을 추진하는 등 주민에 의한 커뮤니티 형성을 목표로 했다.
이 이론은 지나치게 몽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1903년 런던 북교외의 레치워스에 전원도시를 착공하고 주민을 모집하여 그 운영을 훌륭하게 궤도에 올려놓았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두 번째 전원도시인 웰윈 가든 시티를 건설했다.
1899년, 그는 현재 타운 앤 컨트리 플래닝 협회(Town and Country Planning Association)로 알려진 가든 시티 협회를 설립했다. 그는 헨리 하비 비비안(Henry Harvey Vivian) 및 공동 주택 운동과의 연관성을 통해 그의 아이디어는 레치워스(Letchworth)를 시작할 만큼 충분한 관심과 자금을 끌어모았다. 1901년 헨리 비비안의 지도 아래, 새로운 공동 주택 개발 벤처가 런던 이링 구(London Borough of Ealing)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현재 보존 지역인 브렌섬 가든 교외(Brentham Garden Suburb)가 되었다.
레치워스와 웰윈 가든 시티의 건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정부가 추진한 "영국의 신도시(New towns in the United Kingdom)"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30개 이상의 커뮤니티가 생겨났으며, 첫 번째는 스티븐에이지(Stevenage)이고, 마지막(그리고 가장 큰)는 밀턴 케인즈(Milton Keynes)이다. 하워드의 아이디어는 프레데릭 로우 옴스테드 2세(Frederick Law Olmsted Jr.)와 인접 단위(Neighbourhood unit)와 같은 다른 계획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월트 디즈니는 미래 실험도시(EPCOT)의 원래 디자인에 하워드의 개념 요소를 사용했다.
1913년, 하워드는 '가든 시티 앤 타운 플래닝 협회'를 설립했으며, 현재는 국제 주택 및 계획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ousing and Planning)이다. 그는 독일 건축가 헤르만 무테시우스(Hermann Muthesius) 및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와 친분을 맺었고,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건설된 많은 대규모 주택 프로젝트에 인간적인 디자인 원칙을 적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헤르만 무테시우스는 또한 1909년 헬레라우(Hellerau)에 독일 최초의 가든 시티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1. 레치워스 (Letchworth)
1903년 런던 북쪽 55km 지점에 건설된 최초의 전원도시이다. 하워드는 전원도시 건설을 위해 '제1전원도시 회사(First Garden City Limited)'를 설립하고, 투자자들을 모집하여 자금을 마련했다.[17] 레치워스 부지는 농지였으며, 15명의 개별 소유주로부터 매입했다.[17] 레치워스는 런던에서 약 56.33km 떨어져 있고 기차 노선이 있어 통근이 가능했다.[17]레치워스가 건설된 원래 부지는 3826acre에 달했고, 제1전원도시에 160,378파운드가 들었다. 이후 더 많은 토지를 매입하여 부지가 4710acre로 늘어났다.[17] 레치워스는 30,000명에서 35,000명 사이의 인구를 수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하워드가 그의 저서에서 설명한 대로 배치되었다.[17] 중앙에는 상업 및 공공 시설을 배치하고, 그 주변을 주거 지역과 녹지 공간이 둘러싸는 형태를 취했다. 특정 목적에 따라 토지를 분할하는 것은 현재 구역 설정이라고 불리며, 도시 계획에서 중요한 관행이 되었다.[17]
하워드는 레치워스를 통해 전원도시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로 건설했으며, 그 성공을 통해 다른 많은 도시들이 동일한 이상을 모방하여 건설되기를 희망했다.[17] 레치워스에 대한 몇 가지 비판이 존재하는데, 너무 넓고 건축적으로 인상적인 디자인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공간이 레치워스를 쾌적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건축물은 매우 인상적이지 않고 획일적이지는 않지만 색상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17]
4. 2. 웰윈 (Welwyn)
웰윈 가든 시티(Welwyn Garden City)는 레치워스(Letchworth)에 이은 하워드의 두 번째 전원도시(Garden City)였다.[19] 하워드는 친구들에게 빌린 5000GBP로 이 땅을 매입했다.[18] 웰윈 가든 시티는 런던에서 약 32.19km 떨어져 있어 시골의 매력을 보존하면서도 도시화로 인한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18] 웰윈의 건축물은 쾌적하다고 묘사되었으며, 넓은 도로와 탁 트인 공간을 갖춘 주택용 코티지들은 당시 런던과 비교했을 때 웰윈 가든 시티를 상쾌한 모습으로 만들었다.[18]웰윈 가든 시티는 10년 후 인구 10,000명에 도달했으며, 주거, 산업, 상업 구역이 잘 갖춰져 있었다.[18] 1930년에는 웰윈 가든 시티 주민들의 건강이 런던 주민들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웰윈 가든 시티의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더 낮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18] 이러한 건강 증진은 전원도시(Garden City)의 원칙 덕분인 것으로 이해되었다.[18]
그러나 웰윈 가든 시티가 하워드의 이상을 완전히 실현하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워드는 투자자들이 박애주의 정신으로 투자하기를 원했지만, 투자자들은 수익을 추구했고, 배타적인 정부 그룹이 형성되면서 지역 민주주의는 실패했다.[9] 또한 웰윈 가든 시티는 자립적인 도시라는 전원도시(Garden City)의 이상을 완전히 무시하고 중산층 통근자를 위한 교외 지역으로 마케팅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9]
5. 영향
하워드의 저작과 레치워스를 모델로 한 도시 계획은 출판 10년 이내에 북미, 유럽,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각지에 나타났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그는 독일에서 헤르만 무테지우스, 브루노 타우트 등과 접촉했고, 이들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 각지에서 주택 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1928년 하워드 사망 이후에도 레치워스 등의 성공은 영국 정부에 영향을 주어, 정부 주도로 30개 이상의 뉴타운·커뮤니티가 건설되었다.
21세기에도 뉴타운 건설이나 교외 주택 건설에 하워드의 이론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전원도시라는 이름 아래 단순한 베드타운으로 끝나, 직주근접의 자율적인 도시나 주민에 의한 커뮤니티까지 실현한 예는 많지 않다.
5. 1. 영국
하워드는 런던의 중공업 발전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악화와 빈곤 확대를 우려하여, 1898년 "내일 -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평화로운 길(''To-morrow;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을 출판했다. 이 책은 1902년 "내일의 전원도시( ''Garden City of To-morrow'')"로 제목이 변경되었다. 그는 "도시와 농촌의 결혼"을 목표로, 인구 수만 명 정도의 제한된 규모의 자율적인 직주 근접형 도시를 교외에 건설하는 것을 제안했다. 주택은 공원이나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농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다양한 가정을 위한 임대 주택이 제공되었고, 주민들은 토지 회사의 임대료를 통해 공공 시설 정비 등을 추진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었다.이러한 이론은 몽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하워드는 1903년 런던 북교외의 '''레치워스'''에 전원도시를 착공하고 주민을 모집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두 번째 전원도시인 웰윈을 건설했다. 웰윈 가든 시티는 런던에서 약 32.19km 떨어져 있었으며, 쾌적한 건축물과 넓은 도로, 탁 트인 공간이 있는 주택용 코티지들로 당시 런던과 비교했을 때 상쾌한 모습이었다.[18] 1930년에는 웰윈 가든 시티 주민들의 건강이 런던 주민들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가든 시티의 원칙 덕분으로 여겨졌다.[18]
그러나 웰윈 가든 시티는 하워드의 이상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못했다. 투자자들은 수익을 원했고, 배타적인 정부 그룹이 형성되면서 지역 민주주의가 실패했다.[9] 또한, 웰윈 가든 시티는 자립적인 도시라는 가든 시티의 이상을 무시하고 중산층 통근자 교외로 마케팅되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치워스 등의 성공은 영국 정부에 영향을 주어, 이후 정부 주도로 30개 이상의 뉴타운·커뮤니티가 건설되었다.
5. 2. 대한민국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대한민국의 신도시 개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정부는 수도권의 인구 집중과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를 건설했다. 이들 신도시는 전원도시 개념을 바탕으로 계획되었으며, 쾌적한 주거 환경과 충분한 녹지 공간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하지만 한국의 신도시는 직주근접, 토지 공유 등 전원도시의 핵심 원칙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특히 부동산 투기 과열, 교통 혼잡, 베드타운화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5. 3. 기타 국가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독일,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의 도시 계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서는 건축가 헤르만 무테지우스와 브루노 타우트 등이 하워드의 영향을 받아 주택 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그의 저작과 레치워스를 모델로 한 도시 계획은 저작 출판 10년 이내에 북미, 유럽,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각지에 나타났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뉴타운 건설이나 교외 주택 건설에 있어서 하워드의 이론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6. 평가
에버니저 하워드는 현대 도시 계획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런던의 중공업 발전으로 인한 환경 악화와 빈곤 확대를 우려한 그는 '도시와 농촌의 결혼'을 목표로 하는 전원도시 이론을 제시했다.[26] 그의 이론은 도시의 과밀화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으며, 주택을 공원과 숲으로 둘러싸고, 다양한 가정을 위한 임대 주택을 제공하며, 주민들이 직접 공공 시설 정비 등을 추진하는 커뮤니티 형성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이론은 몽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1903년 런던 북교외의 레치워스에 전원도시를 건설하고,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웰윈을 건설하는 등 실제로 구현해냈다. 그의 성공은 영국 정부에 영향을 주어 30개 이상의 뉴타운 건설로 이어졌다.
하워드는 에스페란토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연설에 자주 이 언어를 사용했다. 1924년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으며,[20] 1927년에는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21] [26] [27]
6. 1. 하워드 메달
하워드 메달은 하워드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 메달은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담은 청동 메달 형태로, 도시 계획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여겨진다.이 메달은 거의 90년 동안 11번 수여되었으며,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수상자 |
---|---|
1938년 | 레이먼드 언윈 |
리처드 배리 파커 | |
루이스 멈포드 | |
클래런스 스타인 | |
리처드 레이스 | |
패트릭 애버크롬비 | |
프레데릭 오스본 | |
1955년 | 엘리자베스 부캐넌 미첼 |
1999년 | 콜린 워드, 피터 홀 경 |
7. 가족
배우, 무용가, 텔레비전 출연자인 우나 스텁스는 에버니저 하워드의 증손녀였다.[25] 그의 직계 후손으로는 손자이자 크리켓 매니저인 제프리 하워드, 증손녀이자 시인이자 출판인인 조이 버나딘 하워드, 그리고 고손자(우나 스텁스의 아들)이자 텔레비전 및 영화 음악 작곡가인 크리스찬 헨슨 등이 있다.
참조
[1]
서적
Penguin Pocket On This Day
Penguin Reference Library
[2]
웹사이트
Enciklopedio de Esperanto
http://www.freeweb.h[...]
2007-07-08
[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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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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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al Design Profile
[5]
간행물
'Ebenezer Howard and the marriage of town and country'
http://oae.sagepub.c[...]
2016-05-11
[6]
학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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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
[7]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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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
Yale University Press
2014-08-05
[8]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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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
2014-08-05
[9]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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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적
The London Encyclopaedia
https://books.google[...]
Pan Macmillan
[11]
문서
Death Certificate, General Register Office (Southport): Ann Howard wife of Ebenezer Howard, pastrycook (master), died 23 November 1900, aged 84, at 127 Evering Road, Hackney.
[12]
문서
Death Certificate, General Register Office (Southport): Ebenezer Howard, pastrycook (master), died 24 November 1900, aged 83, at 127 Evering Road, Hackney.
[1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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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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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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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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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3
[17]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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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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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19]
학술지
British Medical Journal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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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London Gazette (supplement), No. 32941, 30 May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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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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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ondon-ga[...]
London Gazette
1926-12-31
[22]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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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8
[23]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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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hive.tcpa[...]
2022-04-28
[24]
웹사이트
January–March - Town & Country Planning Association
https://archive.tcpa[...]
2022-04-28
[25]
방송
Una Stubbs
http://www.bbc.co.uk[...]
2013-07-24
[26]
학술지
Supplement to The London Gazette: 1924 Birthday Honours
https://www.thegazet[...]
2017-02-27
[27]
학술지
Supplement to The London Gazette: 1927 New Year Honours
https://www.thegazet[...]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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