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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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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판(Stereotyping)은 인쇄 기술의 한 종류로, 활자 조판된 원본을 복제하여 대량 인쇄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18세기 초에 개발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신문 및 서적 인쇄에 널리 사용되었다. 금속판을 제작하여 활용하는 방식으로, 신문 신디케이션에 기여했으며, 활자 보관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오프셋 인쇄와 컴퓨터 조판 시스템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쇠퇴했다. 연판 제작에는 다양한 몰딩 재료와 금속 합금이 사용되었으며, 기술 발전과 함께 그 과정이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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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판
개요
종류인쇄판
재료
안티모니
주석
제작 방식활판 주조
몰드 제작
특징대량 인쇄에 적합, 수정 불가
관련 용어활자, 인쇄기
역사
기원18세기
발전윤전기와 함께 대중화
현대적 대체오프셋 인쇄, 디지털 인쇄
제작 과정
1단계활판 조판
2단계몰드 제작 (종이 반죽 사용)
3단계주조 (녹인 금속 부어 굳힘)
4단계표면 처리 및 마무리
장점 및 단점
장점내구성 우수
대량 인쇄에 적합
단점수정 불가
제작 과정 복잡
관련 기술
활판 인쇄연판 제작의 기반 기술
윤전 인쇄연판을 활용한 고속 인쇄 방식
오프셋 인쇄연판의 현대적 대체 기술
어원
영어Stereotype
프랑스어Cliche
의미고정된 이미지, 정형화된 생각

2. 역사

연판은 활자 조판 시대에 개별 활자와 기타 요소들을 체이스라는 블록에 배치하여 인쇄하던 방식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단일 페이지 인쇄를 위한 전체 설정을 포름이라고 불렀으며, 잉크를 포름에 바르고 종이에 압착하여 인쇄했다. 이 방식은 노동 집약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며, 다른 작업에 필요한 활자, 줄바꿈, 가구 및 체이스를 재사용하기 어려웠다. 또한, 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경우 활자를 다시 조판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3]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판 기술이 발명되었다. 연판은 활자 조판으로 만든 원형을 바탕으로 납 주조를 통해 납판을 제작하여 볼록판 윤전기에 거는 방식이었다. 이 기술은 1725년 윌리엄 게드(William Ged)가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도 카를 힐데브란트 폰 칸슈타인 백작(Karl Hildebrand, Count of Canstein)이 1712년부터 독일에서 연판 성경을 출판하는 등 유사한 기술이 존재했다. 심지어 15세기 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에 의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후 1800년대 초 찰스 스탠호프 경(Charles Stanhope, 3rd Earl Stanhope)에 의해 기술이 개선되어 널리 사용되었으며, 미국에서는 1814년에 성경 인쇄판이 연판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연판 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컬러 인쇄의 경우 납판은 정밀도와 재현성에 한계가 있었고, 1937년경부터 아연 등의 금속판을 사진 제판하여 납판에 주조하는 방법이 시도되었지만, 시간과 정밀도 문제가 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사진 화학적 쇄판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시간 문제가 있었다. 열가소성 수지를 사용한 수지 쇄판도 개발되었으나 큰 개선을 보이지 못했다.[3]

1980년대 초 광경화성 수지판이 개발되고, 1980년대 후반 CTS의 도입과 함께 오프셋 인쇄가 주류가 되면서 연판은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3]

2. 1. 발명과 초기 발전

활자 조판 시대에는 개별 문자(활자)와 기타 요소들을 체이스라는 블록에 배치하여 인쇄하였다. 이러한 단일 페이지 인쇄를 위한 전체 설정을 포름이라고 불렀다. 잉크를 포름에 바르고 종이에 압착하여 인쇄된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은 노동 집약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며, 다른 작업에 활자, 줄바꿈, 가구 및 체이스를 사용하는 것을 방해했다. 또한 수요를 과소평가한 인쇄업자는 활자를 다시 조판해야 했다.

너새니얼 호손의 출판업자들은 ''주홍 글자''(1850)가 잘 팔릴 것이라고 예상하여 2,500부를 인쇄했지만, "세관" 서문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여 틱노 & 필즈는 활자를 다시 조판하고 2개월 이내에 2,500부를 다시 인쇄해야 했다. 틱노 & 필즈는 4개월 후 세 번째로 책을 스테레오타입했을 때 활자를 다시 조판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스테레오타입은 도서 출판에 유용했지만, 신문 출판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320페이지짜리 책은 8페이지 배판의 경우 40개, 16페이지 배판의 경우 20개의 스테레오타입이 필요했다. 이는 주요 신문의 일요판이 최대 6,000개의 스테레오타입을 필요로 할 수 있는 신문과 대조된다.

영어 자료에서는 이 과정을 1725년 윌리엄 게드(William Ged)가 발명했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성경의 연판을 제작한 후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를 힐데브란트 폰 칸슈타인 백작(Karl Hildebrand, Count of Canstein)은 1712년부터 독일에서 연판 성경을 출판해 왔으며, 1702년 독일에서는 플롱을 이용한 초기 형태의 연판술이 묘사되었다. 이 기술은 15세기 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또는 그의 상속인에 의해 ''마인츠 카톨리콘''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기술은 개선을 거쳐 1800년대 초 찰스 스탠호프 경(Charles Stanhope, 3rd Earl Stanhope)에 의해 널리 적용되었다. 미국에서는 1814년에 성경 인쇄판이 연판으로 제작되었다.

20세기 초 신문 인쇄는 활자 조판으로 종이 원형을 만들고, 납을 주조하여 납판을 제작하여 볼록판 윤전기에 거는 방식이 유일한 지면 제작 방식이었다.[3] 그러나 납판은 컬러 인쇄에는 정밀도와 재현성의 한계가 있었다.[3]

미국에서는 1937년경부터 아연 등의 금속판을 사진 제판한 것을 납판에 주조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밀도에도 문제가 있었다.[3]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많은 신문사가 연일 컬러 인쇄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겨 납판이 아닌 사진 화학적인 쇄판도 사용했지만, 역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난점이 있었다.[3] 열가소성 수지를 사용한 수지 쇄판도 개발되었지만 처리 시간 향상을 보이지 못하고, 일요판 등에서 약간 컬러 인쇄에 사용되었을 뿐이었다.[3]

1980년대 초에 광경화성 수지판이 개발되었다.[3] 1980년대 후반에는 지면 제작도 CTS(Cold Type System)로의 전환이 진행되면서 오프셋 인쇄가 주류가 됨에 따라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3]

2. 2. 19세기: 기술 개선과 상용화

20세기 초 신문 인쇄는 활자 조판으로 종이 원형을 만들고, 납을 주조하여 납판을 제작하여 볼록판 윤전기에 거는 방식이 유일한 지면 제작 방식이었다[3]。 그러나 납판은 컬러 인쇄에는 정밀도와 재현성의 한계가 있었다[3]

미국에서는 1937년경부터 일부에서 아연 등의 금속판을 사진 제판한 것을 납판에 주조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밀도에도 문제가 있었다[3]。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많은 신문사가 연일 컬러 인쇄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겨 납판이 아닌 사진 화학적인 쇄판도 사용했지만, 역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난점이 있었다[3]。 그 후 열가소성 수지를 사용한 수지 쇄판도 개발되었지만 처리 시간 향상을 보이지 못하고, 일요판 등에서 약간 컬러 인쇄에 사용되었을 뿐이었다[3]

그러나 1980년대 초에 광경화성 수지판이 개발되었다[3]。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지면 제작도 CTS로의 전환이 진행되면서 오프셋 인쇄가 주류가 됨에 따라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3]

2. 3. 스테레오타이핑의 장점

연판은 다음과 같은 장점을 제공했다.

  • 인쇄업자는 고가의 활자를 빠르게 분배[1]하여 보관해야 하는 활자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2]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추가 판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하여 인쇄업자가 최대 6개월까지 활자를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3]
  • 조립된 활자 배포가 용이했다. 연판은 활자로 가득 찬 판형보다 훨씬 가볍고 덜 깨지기 쉬웠다. 이는 신디케이트 뉴스 서비스에 특히 중요했다.
  • 조립된 활자 보관이 용이했다. 연판은 활자로 가득 찬 판형보다 훨씬 가볍고 공간을 덜 차지했다. 이는 인쇄업자가 작업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연판 플레이트는 수십 년 동안 보관할 수 있었다. 1916년 영국에서는 전쟁 지원을 위해 보관된 연판 상당수를 녹였다. 예를 들어 1910년 G. A. 헨티의 ''분단된 친구: 남북 전쟁 이야기''를 호더 앤 스토턴이 출판했는데, 서문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1883년 그리피스 앤 패런이 처음 출판한 판에 사용된 연판을 사용했다. 같은 연판은 1917년과 1920년대에 재인쇄하는 데 사용되었다. 저작권을 다른 출판사에 판매할 때, 출판사들은 연판도 함께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 인쇄업자가 동일한 텍스트를 여러 번 빠르게 설정하여, 예를 들어 전단지를 동일한 종이에 여러 번 인쇄한 다음 분리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개별적으로 하는 것보다 빠르고 저렴했다.
  • 동일한 텍스트를 여러 인쇄기에서 동시에 인쇄할 수 있었다. 달진은 이를 위해 하나의 플롱에서 30개의 연판이 제작된 사례를 제시하며 더 많은 것을 주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 4. 20세기: 쇠퇴와 다른 기술로의 전환

1946년 달긴은 ''뉴욕 타임스''가 100대의 합금 주조 활자 주조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기계들은 밤마다 8ton의 활자 금속을 소비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스테레오타입 부서는 밤마다 45ton, 토요일(대형 일요판)에는 150ton의 활자 금속을 소비하며, 이보다 7배나 많은 금속을 주조했다. 그들은 일요판을 위해 최대 6,000개의 판을 주조했다.

조판에서 인쇄까지의 시간 제한은 단 15분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는 조판틀에 고정된 다음, 팀은 15분 안에 매트릭스를 성형하고, 스테레오타입을 주조하고, 깎고, 다듬고, 냉각시키고, 프레스에 배치하는 모든 과정을 완료해야 했다. 키에르는 1916년 8분에서 1926년 4분으로 조판틀이 스테레오타입 주조소에 전달된 후 인쇄실에 판이 전달되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되었다고 보고했다.

스테레오타이핑은 처음에는 더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더 높은 품질의 인쇄가 가능한 전주에 의해 처음으로 도전받았다. 처음에는 삽화의 구리 복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위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 출판에서 스테레오타이핑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1941년 쿠블러는 전주를 더 많이 사용한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의 공장에서는 모든 활판 인쇄 복제 작업의 75%에 스테레오타입 판을 사용했으며, 최고의 스테레오타입 작업은 최고의 전주 작업과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견해는 전주가 스테레오타입보다 더 높은 품질의 복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테레오타이핑은 신문 발행에서 그 우위를 유지했다. 쿠블러는 스테레오타이핑의 대안은 상당한 추가 자본 비용이 들거나, 수정 및 늦은 뉴스, 지역 자료 삽입을 허용하지 않아 신문에 적합하지 않거나, 비싸고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영국에서 최초의 컴퓨터 조판 책은 1966년 딜런 토마스의 ''시집''이었지만, 이 과정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신문 산업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오프셋 인쇄의 도입은 활자 금속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사진 식자가 활자 금속 기계를 대체했다. 이는 더 이상 스테레오타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진 식자 기계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톱 출판에 의해 차례로 대체되었다. 드라이 매트를 만드는 쿠블러의 회사는 1979년 8월 13일에 해산되었다.

20세기 초 신문 인쇄는 활자 조판으로 종이 원형을 만들고, 납을 주조하여 납판을 제작하여 볼록판 윤전기에 거는 방식이 유일한 지면 제작 방식이었다.[3] 그러나 납판은 컬러 인쇄에는 정밀도와 재현성의 한계가 있었다.[3]

미국에서는 1937년경부터 일부에서 아연 등의 금속판을 사진 제판한 것을 납판에 주조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밀도에도 문제가 있었다.[3]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많은 신문사가 연일 컬러 인쇄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겨 납판이 아닌 사진 화학적인 쇄판도 사용했지만, 역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난점이 있었다.[3] 그 후 열가소성 수지를 사용한 수지 쇄판도 개발되었지만 처리 시간 향상을 보이지 못하고, 일요판 등에서 약간 컬러 인쇄에 사용되었을 뿐이었다.[3]

그러나 1980년대 초에 광경화성 수지판이 개발되었다.[3]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지면 제작도 CTS(Cold Type System)로의 전환이 진행되면서 오프셋 인쇄가 주류가 됨에 따라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3]

3. 몰딩 재료

연판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 몰딩 재료는 다음과 같다.


  • 점토: 1730년 프랑스 인쇄업자 가브리엘 발레르(Gabriel Valleyre)가 발명했다. 점토나 기타 흙으로 조판된 활자를 눌러 반전된 이미지를 만들고, 녹인 구리를 몰드에 부어 연판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점토 또는 구리의 연성 때문에 복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았다.[1] 이 방법은 나중에 부활하여 개선되었으며, 워싱턴 D.C.의 정부 인쇄소에서 사용되었다.[2] 호 & 컴퍼니(Hoe & Company)는 1881년 카탈로그에 이 공정에 사용되는 다양한 설비를 포함시켰다.[3]
  • 석고: 1725년 게드(Ged)가 개발한 방법으로, 조판된 활자에서 석고 몰드를 만드는 방식이다. 1802년에 완성되었지만, 반복적인 인쇄가 필요한 책이 비교적 적어 20년 후에야 널리 사용되었다. 1816년 영국 은행은 석고 몰드에서 연판을 사용하여 지폐를 인쇄했다. 스탠호프 경은 이 공정 개발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으며, 런던에 연판 공장을 설립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인쇄업계의 상당한 반대에 직면했다. 1850년대에 유연하고 견고한 파피에마셰 플롱이 도입된 후에야 연판 제작이 책 제작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석고 공정은 종이 공정보다 더 미세한 선을 재현할 수 있지만, 연판을 제거하기 위해 몰드를 부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 파피에마셰(종이 또는 습식 공정): 여러 겹의 종이를 풀이나 고무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로 만든 풀로 붙여 만든다. 풀은 연판 제작자 자신의 레시피 또는 특허 풀일 수 있다. 파트리지(Partridge)는 이 공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몇 장의 얇은 종이를 물에 적셔 부드럽게 한 다음 풀로 붙여 플롱을 형성합니다. 이 플롱을 활자 페이지에 두드려 넣고 건조시켜, 식었을 때 활자 페이지의 정확한 복제품이 되는 용융 금속을 받을 매트릭스를 형성합니다. 플랫 베드 프레스에 필요한 평면 형태 또는 회전 프레스의 실린더에 맞게 곡선 형태로 동일한 매트릭스에서 다수의 복제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 도입되었을 때 ''더 타임스(The Times)''는 개별 열의 파피에마셰 플롱만 만들었지만, ''뉴욕 트리뷴(New-York Tribune)''의 찰스 크라스케(Charles Craske)가 전체 페이지의 플롱을 만들 수 있도록 이 방법을 개발했다.
  • 건식 매트(건식 매트릭스 공정): 활자 페이지에 매트릭스를 두드릴 필요가 없고 간단한 압력만으로 충분하다. 필요한 압력은 상당히 높으며 실제로 유압 프레스가 필요하다. 1946년까지 건식 매트 공정은 미국 신문 출판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전주(電鑄)를 위한 몰드 제작 공정은 유사했지만, 밀랍이나 자연 발생 광물 왁스인 오조케라이트와 같은 부드러운 재료로 제작되었다. 얇은 전주 쉘은 사용하기에 충분히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8mm 깊이의 활자 금속으로 뒷받침되어야 했다.

4. 스테레오타입 제작 과정

스테레오타입을 성형한 후에는 조심스럽게 금형에서 꺼낸다. 플롱을 성형 상자에 고정할 경우, 상자를 회전시켜 플롱이 수직 평면에 위치하도록 한 다음 액체 금속을 금형에 부었다. 신문의 경우 이 금형은 원통형이었다. 이것은 빠르게 냉각되었고, 금형을 열어 스테레오를 꺼냈다. 스테레오는 더 냉각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스테레오의 뒷면을 깎아 인쇄에 필요한 두께로 줄였다. 또한 스테레오의 가장자리를 다듬고 경사지게 하여 스테레오를 제자리에 고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스테레오를 인쇄 실린더에 고정하고 인쇄를 시작했다.

활자 금속은 , 주석, 안티몬의 합금이다. 납만으로는 활자가 너무 무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주석은 납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첨가되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주석과 안티몬을 함께 첨가하면 경도가 높고 마모 및 변형에 강하여 선명한 재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액체 납, 안티몬 및 주석 합금의 최저 응고점은 안티몬 함량이 12%일 때 발생하며, 이를 공융 합금이라고 한다. 안티몬 함량을 12%에 가깝게 유지하면 용융점이 최대한 낮아 슬러그 주조기에서 슬러그를 주조하기 위해 합금 잉곳을 녹이는 데 중요했다. 낮은 융점은 스테레오에 사용되는 금속에도 중요한데, 매우 높은 온도는 플롱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레오에 사용되는 활자 금속은 리노타입과 같은 슬러그 주조기, 모노타입과 같은 개별 활자 주조기, 또는 전기 주조물 뒷면에 사용되는 금속과 달리, 활자 주조에 사용되는 활자 금속과는 약간 달랐다. 안티몬 함량을 높이면 경도가 증가하는 반면, 주석 함량은 이에 비례하여 증가해야 한다.

프라이(Fry)는 다양한 용도의 활자 금속에 대한 다음 지침을 제공했다.

다양한 용도의 활자 금속 합금 조성
활자 금속의 용도주석 %안티몬 %납 %비고
전기도금 뒷면2–42–492–96
리노타입과 같은 슬러그 주조기3.5–411.5–1284–85
스테레오타입 판5–101575–80
모노타입과 같은 활자 주조기6–1315–1968–81
수동 활자 주조를 위한 활자 금속13–2220–2850–67



스테레오타입의 황금률은 수축 공동 또는 싱크 문제를 피하기 위해 금속을 차갑게 하고 상자를 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주조판을 사용하여 주조 뒷면의 냉각을 늦추기도 했는데, 이는 플롱이 열 전도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5. 활자 금속

활자 금속은 , 주석, 안티몬의 합금이다. 납만으로는 활자가 너무 무르기 때문에 주석을 첨가하여 단단하게 만들지만, 이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주석과 안티몬을 함께 첨가하면 경도가 높고 마모 및 변형에 강해 선명한 재현을 얻을 수 있다.

액체 납, 안티몬 및 주석 합금의 최저 응고점은 안티몬 함량이 12%일 때 발생하며, 이를 공융 합금이라고 한다. 공융 활자 금속 합금은 252°C에서 녹는 반면, 납의 융점은 327°C, 안티몬은 630°C, 주석은 232°C이다. 안티몬 함량을 12%에 가깝게 유지하면 용융점이 낮아져 슬러그 주조기에서 슬러그를 주조하기 위해 합금 잉곳을 녹이는 데 중요했다. 낮은 융점은 스테레오에 사용되는 금속에도 중요한데, 매우 높은 온도는 플롱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레오에 사용되는 활자 금속은 리노타입과 같은 슬러그 주조기, 모노타입과 같은 개별 활자 주조기, 또는 전기도금물 뒷면에 사용되는 금속과 달리, 활자 주조에 사용되는 활자 금속과는 약간 달랐다. 안티몬 함량을 높이면 경도가 증가하는 반면, 주석 함량은 이에 비례하여 증가해야 한다.

프라이(Fry)는 다양한 용도의 활자 금속에 대한 지침을 제공했다.

다양한 용도의 활자 금속 합금 조성
활자 금속의 용도주석 (%)안티몬 (%)납 (%)비고
전기도금 뒷면2–42–492–96
리노타입과 같은 슬러그 주조기3.5–411.5–1284–85
스테레오타입 판5–101575–80
모노타입과 같은 활자 주조기6–1315–1968–81
수동 활자 주조를 위한 활자 금속13–2220–2850–67



스테레오타입의 황금률은 수축 공동 또는 싱크(sink) 문제를 피하기 위해 금속을 차갑게 하고 상자를 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주조판을 사용하여 주조 뒷면의 냉각을 늦추기도 했는데, 이는 플롱이 열 전도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6. 신문 신디케이션과 스테레오타입

초창기 신디케이트 뉴스(syndicated news)는 인쇄된 시트를 배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1841년 12월, 뉴욕 ''선''의 소유주는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문을 택배로 받았다. 그는 이를 단일 시트에 인쇄하여 주변 지역 신문사에 판매했는데,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제목 머리만 신문에 맞게 변경했다. 다음 시도는 대통령 연설문은 한 면에, 지역 뉴스는 다른 면에 인쇄된 시트를 제작하는 것이었다.[1] 스테레오타이핑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상황이 개선되었으며, 신디케이션을 위한 스테레오타이핑의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1]

기간신디케이트 자료 배포 방식
~1850년인쇄된 시트를 통해 배포, 한 면 또는 양면 인쇄
1850–1883년인쇄된 시트 및 스테레오타입 판을 통해 배포
1883년~주로 스테레오타입 판을 통해 배포
1895년~플롱이 판을 대체하기 시작
1941년~플롱이 거의 완전히 판을 대체



배포된 플롱은 신디케이트 기사나 만화뿐만 아니라 광고도 포함했다. 이는 신문사에서 이러한 광고를 활자화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지역 상호명을 삽입할 수 있도록 잘라낼 수 있는 섹션이 포함된 플롱이 배포되어 특정 제품의 삽화 광고에 지역 판매점의 이름을 포함할 수 있었다.[2] 신문사들은 일련의 플롱을 결합하여 페이지용 스테레오타입 판을 주조했다. 어떤 경우에는 뉴스 인쇄업자가 플롱을 제작하고, 해당 플롱으로 판을 주조한 다음, 해당 판을 다른 요소와 결합하여 페이지 또는 펼침면을 만들고, 전체 페이지의 2세대 플롱을 제작한 다음, 해당 플롱으로 판을 주조하기도 했다.

7. 용어의 유래

"stereotype(고정관념)"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στερεός|스테레오스grc (''stereós'') "단단한, 확고한"[1]와 τύπος|튀포스grc (''túpos'') "타격, 인상, 새겨진 표식"[2]에서 유래되었으며, 1798년에 현대적 의미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stereotype(고정관념)"은 동일하거나 약간의 변경만 거쳐 반복되는 일련의 아이디어에 대한 은유가 되었다. "cliché(진부한 표현)"와 "stereotype(고정관념)"는 둘 다 원래 인쇄업자의 용어였으며, 인쇄상의 의미에서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cliché(진부한 표현)"는 원래 약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형태의 스테레오타이핑 과정에서 용융 활자 금속에 블록을 부딪히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였다. 이는 나중에 영어로 "dabbing(더빙)"이라고 불렸다.

1870년의 책 저작권 고지, 원래 의미로 "stereotyped"라는 용어를 사용

8. 스테레오타이핑 관련 주요 저술

조지 아돌프 퀴블러(1876–1944)는 스테레오타이핑에 대해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Certified Dry Mat Corporation의 설립자이자 사장이었다. 이 회사는 스테레오타입 매트릭스 또는 플롱 매트를 제작했다. 퀴블러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제목연도내용
스테레오타이핑의 간략한 역사192793쪽 분량의 책으로, 전문 스테레오타이퍼에게 주로 배포되었다. Hathi Trust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스테레오타이핑에 관한 역사적 논문, 초록 및 논문1936169쪽 분량으로, 스테레오타이핑의 초기 역사를 다룬다.
1690년 독일의 습식 매트 스테레오타이핑19376쪽 분량의 팸플릿으로, 습식 매트릭스 스테레오타이핑에 대해 설명한다.
찰스 스탠호프 제3대 스탠호프 백작 시대, 스테레오타이퍼, 1750–18251938120쪽 분량의 책으로, 스테레오타이핑을 실험한 찰스 스탠호프 제3대 스탠호프 백작에 대해 다룬다.
스테레오타이핑의 새로운 역사1941362쪽 분량의 책으로, 스테레오타이핑의 상세한 역사, 신문의 역사, 스테레오타이핑의 대안, 스테레오타이퍼 연합의 역사 등을 다룬다. Internet Archive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플라이시만, 달긴, 윌슨, 파트리지, 해치와 스튜어트, 살라드도 스테레오타이핑 관련 저술을 남겼다.

참조

[1] Lexicon Stereos https://www.perseus.[...] Perseus
[2] Lexicon Tupos https://www.perseus.[...] Perseus
[3] 간행물 新聞におけるカラー印刷の進展と現状 https://doi.org/10.2[...] 紙パルプ技術協会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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