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의 일당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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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열의 일당량은 열과 일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물리량으로, 1 칼로리(cal)의 열이 1 줄(J)의 일과 등가임을 의미한다. 1797년경 벤자민 톰슨(럼퍼드 백작)의 마찰열 관찰을 시작으로, 1840년대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와 제임스 프레스콧 줄이 독립적으로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줄의 실험과 헬름홀츠의 에너지 보존 발표 등을 거쳐 과학계에 수용되었으며, 20세기 초 4.1860 J/cal의 표준화된 값이 확립되었다. 현재는 4.1855 J/cal (15°C 칼로리 기준)로 정의되며, 교육적 목적으로 실험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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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 일당량 | |
---|---|
개요 | |
명칭 | 열의 일당량 |
정의 | 열에너지와 역학적 에너지 사이의 정량적 관계 |
기호 | J |
단위 | J/cal (줄/칼로리) |
값 | 약 4.1868 J/cal (줄/칼로리) |
역사 | |
주요 인물 | 줄리어스 로버트 폰 메이어 제임스 프레스콧 줄 |
연구 배경 | 열과 일의 관계에 대한 연구 |
실험 | 제임스 프레스콧 줄의 실험 |
줄의 실험 방법 | 물이 담긴 통에 회전 날개를 돌려 물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실험 |
물리적 의미 | |
열역학 제1법칙 | 에너지 보존 법칙의 한 형태 |
에너지 변환 | 역학적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환될 때의 비율 |
열과 일의 등가성 | 열과 일은 서로 변환 가능하며, 일정한 비율로 변환됨 |
응용 | |
열기관 | 열에너지를 역학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장치 |
산업 분야 | 엔진, 발전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응용 |
에너지 효율 | 에너지 변환 과정에서의 효율 계산에 활용 |
중요성 | |
에너지 보존 법칙 | 에너지 보존 법칙의 중요한 증거 |
열역학 발전 | 열역학 발전의 기초 |
과학 발전 기여 | 과학 및 공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 |
추가 정보 | |
관련 개념 | 열역학 에너지 보존 법칙 일 열 |
참고 문헌 | 열역학 관련 교재 및 논문 |
2. 역사적 배경
벤자민 톰슨(럼퍼드 백작)은 바이에른의 무기고에서 대포를 뚫을 때 발생한 마찰열을 관찰했다(1797년경). 럼퍼드는 대포 통을 물에 담그고 특별히 무딘 보링 도구를 사용했는데, 약 두 시간 반 만에 물이 끓었으며 마찰열 공급이 겉보기에 무한하다고 설명했다.
1798년 럼퍼드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열의 근원에 관한 실험적 탐구"를 출판했다. 이 논문은 당시의 열 이론에 큰 도전을 제기했고, 19세기 열역학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1840년대 제임스 프레스콧 줄의 연구에 영감을 주었다. 줄의 더 정확한 측정은 운동 이론을 열소 이론 대신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42년 독일의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 1843년 영국의 제임스 프레스콧 줄은 각각 독자적으로 열과 일이 등가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1840-1843년 루드비히 A. 콜딩도 비슷한 연구를 수행했지만, 그의 연구는 덴마크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820년대 니콜라 클레망과 사디 카르노는 열과 일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1]
1840년대 독일의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와 영국의 제임스 프레스콧 줄은 각각 독자적으로 열의 일당량을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두 과학자 사이에는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다. 존 틴들 등은 마이어가 이론적으로 먼저 정립했다고 주장했고, 윌리엄 톰슨(켈빈 경) 등은 줄이 실험적으로 먼저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프레스콧 줄 이후에도 과학자들은 더욱 정밀한 열의 일당량 측정을 위해 노력했다.
2. 1. 럼퍼드와 카르노의 초기 연구
벤자민 톰슨 (럼퍼드 백작)은 바이에른에서 대포를 뚫을 때 발생하는 마찰열을 관찰했다. (약 1797년경)[1] 럼퍼드는 대포 통을 물에 담그고 무딘 보링 도구를 사용했는데, 약 두 시간 반 만에 물이 끓었으며 마찰열은 무한히 공급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럼퍼드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1798년에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열의 근원에 관한 실험적 탐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1] 이 논문은 당시의 열 이론에 큰 도전을 제기했고, 19세기 열역학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실험은 1840년대 제임스 프레스콧 줄의 연구에 영감을 주었다.
1820년대에는 니콜라 클레망과 사디 카르노가 열과 일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1] 사디 카르노는 1824년 이후에 쓰인 노트 『수학, 물리학 기타에 관한 각서』에서 "단위량의 동력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2.70단위의 열을 소비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이는 현재의 수치로 환산하면 에 해당한다. 이 기술로부터, 카르노는 열의 일당량을 구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3] 그러나 카르노 본인은 이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고, 노트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72년이었다.
2. 2. 마이어와 줄의 독자적 발견
1840년대, 독일의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와 영국의 제임스 프레스콧 줄은 각각 독자적으로 열의 일당량을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했다.마이어는 1842년 논문 「생명 없는 자연계에서의 힘에 대한 고찰」에서 "대기 중의 일정 압력 하에서의 [열]용량과 일정 체적 하에서의 [열]용량의 비 = 1.421이라고 하면, 약 365미터 높이에서 추의 낙하는 [그 추와] 같은 무게의 물을 섭씨 0도에서 1도까지 데우는 것과 상당하다"라고 기록했다.[1] 그는 1845년 논문에서 기체의 정압 비열과 정적 비열의 차이를 이용하여 열의 일당량을 이론적으로 계산했다.
기체를 정압으로 온도를 높일 때와 정적 상태에서 온도를 높일 때, 같은 온도를 높여도 정압에서 더 많은 열이 필요한데, 이는 부피가 늘어날 때 기체가 외부에 일을 하기 때문이다. 즉, 정압 팽창과 정적 팽창의 열량 차이가 일이 된다.
온도를 만큼 상승시켰을 때의 열량 차이 는,
이 된다(는 정압 비열, 는 정적 비열).
한편, 일의 양은 압력 , 부피의 변화 로 나타낼 때, 이상 기체의 경우,
이다(는 기체 상수).
위의 두 식을 에 대입하여 계산하면,
를 얻을 수 있다.
, 의 값은 들라로슈와 벨라르의 열용량 측정값과 듀롱이 측정한 이라는 값을 이용하면 구할 수 있다. 이렇게 구한 의 수치는 현재 알려진 값보다 작지만, 이는 당시 측정값의 오차 때문이다.
줄은 1843년에 처음으로 열의 일당량을 실험으로 측정했다.[8] 그는 추에 의한 중력으로 전자기석 코일을 회전시키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유도 전류의 발열을 조사했다. 이 실험을 통해 줄은 "'''1파운드의 물의 온도를 화씨 눈금으로 1도만 상승시킬 수 있는 열량은 838파운드'''[의 추]'''를 수직으로 1피트 높이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기계적 힘과 같고, 그만큼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줄은 이 1개월 후에 다른 측정을 실시하여 의 값을 얻었다. 그리고 처음 얻은 값과 이 값을 비교하여, "기계적 힘이 소비될 때에는 '''언제나''' 그에 엄밀히 등량의 열이 얻어진다[9]"라고 결론을 내리고, 열이 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줄은 양쪽의 값이 거의 같다고 판단했다.[10]
줄은 1844년, 공기를 물 속에서 압축·팽창시키고, 그 때의 물의 온도 변화로부터 열의 일당량을 구했다(논문 발표는 1845년).[11] 특히, 공기를 팽창시켰을 때는 온도가 내려가므로, 이것은 지금까지의 일→열이라는 변화가 아닌, 열→일이라는 과정에서 처음 측정한 값이었다.
줄에 의한 열의 일당량 실험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날개차에 의한 실험인데,[12] 이는 1845년에 처음으로 행해졌다. 수중(또는 다른 액체 중)에서 날개차를 돌리고, 그 운동으로 생기는 열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날개차의 회전에는 추를 사용하고, 추의 무게와, 회전 중에 추가 내려간 길이로부터 일의 양을 구한다.
이 실험은 1845년부터 반복적으로 행해졌고, 1848년에 윌리엄 톰슨의 눈에 띄면서 일약 주목을 받았다. 1849년에 행한 실험(논문 발표는 1850년)에서는 을 얻었다. 이것은 30년 가까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의 표준값이었다.[13]
줄은 1862년, 전류의 발열 측정으로부터 의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 값은 이전에 줄 자신이 낸 값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줄은 영국 과학 진흥 협회로부터 재실험의 요청을 받았다. 줄은 이를 받아들여, 1878년에 다시 날개차에 의한 실험을 실시하여, 의 값을 냈다.[14] 이것은 줄이 행한 마지막 실험이었다.
년도 | 인물 | J 값[J/cal] | 측정 방법 |
---|---|---|---|
1842년 | 마이어 | 3.58 | 기체의 와 |
1843년 | 줄 | 4.50 | 전자기석의 유도 전류 |
1843년 | 줄 | 4.15 | 가는 관으로부터의 물의 압출 |
1845년 | 줄 | 4.29 | 공기의 압축・팽창에 의한 온도 변화 |
1845년 | 줄 | 4.78 | 날개차에 의한 물의 교반 |
1847년 | 줄 | 4.21 | 날개차에 의한 액체의 교반 |
1849년 | 줄 | 4.15 | 날개차에 의한 액체의 교반 |
1862년 | 줄 | 4.212 | 전류의 발열 |
2. 3. 우선권 논쟁과 과학계의 수용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와 제임스 프레스콧 줄이 열의 일당량을 발견한 후, 두 과학자 사이에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다.[16] 존 틴들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마이어가 이론적으로 먼저 정립했다고 주장했고,[16] 윌리엄 톰슨(켈빈 경) 등은 줄이 실험적으로 먼저 증명했다고 주장했다.[17]1862년, 존 틴들은 왕립 연구소 강연에서 열과 일의 관계를 처음으로 계산한 사람은 마이어라고 주장했다.[16] 이에 대해 줄은 자신이 실험적으로 이를 증명했다고 반박했다.[17] 틴들은 1863년 자신의 저서 《열: 운동의 한 형태》에서도 마이어의 업적을 강조했다.
이 논쟁은 주로 틴들과 피터 거스리 테이트, 톰슨 사이에 필로소피컬 매거진 지면을 통해 벌어졌다.[17] 결국 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현재는 열의 일당량을 처음으로 구한 것은 마이어이고, 이를 실험적으로 확인한 것은 줄이라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2. 4. 19세기 이후의 발전
제임스 프레스콧 줄 이후에도 과학자들은 더욱 정밀한 열의 일당량 측정을 위해 노력했다. 헨리 롤런드는 줄의 실험 장치를 개선하여 다양한 온도에서 더욱 정밀한 측정을 수행했다. 그 결과, 물의 비열이 온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9]20세기에도 예거 등은 전기적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변환하는 방식으로,[20] 1927년에는 라비 등이 기계적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각각 일당량을 측정했다.[21] 이러한 오랜 기간에 걸친 수많은 측정 결과로부터 현재의 값이 결정되었다.
3. 현대적 정의 및 측정 방법
일반적으로 열의 일당량은 기호 ''J''로 표시하며, 단위는 J/cal이다. 현재 International Steam Table calorie영어는 4.1868 J/cal로 정의된다[2].
일 ''W''과 열량 ''Q''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
이 수치는 섭씨 15도에서의 단위 칼로리(cal)와 줄(J)의 변환 계수이다. 즉,
:1 cal15 = 4.1855 J
이다.
열의 일당량을 구하는 것은 열과 일이 변환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이후 에너지 보존 법칙 연구로 이어졌다. 현재 열의 일당량 측정은 주로 교육적 목적으로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실험 교재로 사용된다.[22][23][24] 역사적으로는 역학적 일과 열량 간의 변환을 조사하는 것이 본질이지만, 이는 실험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전기 에너지를 열로 변환하여 일당량을 구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24]
구체적인 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물이 든 용기에 전열선과 온도계를 넣고, 용기를 열전도율이 낮은 물질로 덮는다. 전류를 흘려 물의 온도 상승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열의 일당량을 구한다.[24]
물의 질량을 ''X'', 용기의 열용량을 ''Y'', 온도 상승을 라고 하면, 발생한 열량은 [cal]이다. 단위를 cal에서 J로 바꾸면, 열량 Q[J]는 다음과 같다.
: (1)
물의 양을 ''X''에서 ''X' ''로 바꾸어 같은 실험을 하면, 발생한 열량 ''Q' ''는 다음과 같다.
: (2)
(1)과 (2)에서 ''Y''를 소거하면,
:
를 얻는다. 줄의 법칙에 의해 이므로, 전류값, 전압값, 전류를 흘린 시간을 알면 ''J''를 구할 수 있다.
4. 한국에서의 열의 일당량 연구 및 교육
한국에서는 열의 일당량 개념이 서양 과학의 도입과 함께 알려지게 되었다. 근대 교육 과정에서 열의 일당량은 과학, 특히 물리 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다루어졌다. 현재 한국의 중등 및 고등 교육 과정에서 열의 일당량은 에너지 보존 법칙과 함께 핵심적인 물리 개념으로 교육되고 있다.
5. 같이 보기 (추가 제안)
참조
[1]
논문
Sadi Carnot and the steam engine:Nicolas Clément's lectures on industrial chemistry, 1823-28
[2]
서적
物理定数表
[3]
서적
[4]
서적
近代熱学論集
[5]
기타
[6]
서적
[7]
서적
[8]
서적
近代熱学論集
[9]
서적
近代熱学論集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13]
서적
[14]
서적
[15]
기타
[16]
서적
[17]
서적
[18]
서적
[19]
서적
[20]
서적
[21]
간행물
エネルギー原理の、なりたちをたずねて
[22]
서적
[23]
서적
[2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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