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오펠 카데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펠 카데트는 1936년에 처음 출시된 오펠의 소형차로, 혁신적인 설계와 기술을 도입하여 주목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1962년 부활하여 여러 세대를 거치며 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카데트 C는 대한민국에서 대우 제미니의 기반이 되었으며, 카데트 E는 대우 르망의 베이스 모델로 활용되기도 했다. 카데트는 모터스포츠에서도 활약했으며, 1960년대에는 한국에도 수입되어 판매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62년 도입된 자동차 - 페라리 250 GTO
    페라리 250 GTO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페라리에서 제작한 그룹 3 GT 레이싱 스포츠카로, 셸비 코브라, 재규어 E-타입 등과 경쟁하기 위해 페라리 250 GT SWB의 섀시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2953cc V12 엔진을 탑재하여 약 300마력의 출력을 내는 수작업 차체와 뛰어난 성능을 가진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중 하나로, 총 36대가 생산되어 시리즈 I과 II로 나뉜다.
  • 1962년 도입된 자동차 - 로터스 엘란
    로터스 엘란은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된 경량 로드스터로, 기술적으로 진보된 1세대 모델과 전륜구동 방식의 2세대 모델이 있었으며, 뛰어난 핸들링으로 호평을 받았다.
  • 1930년대 자동차 - 쉐보레 서버번
    쉐보레 서버번은 1935년 출시되어 12세대에 걸쳐 생산된 풀사이즈 SUV로, 초기에는 목재 부품을 사용한 8인승 스테이션 왜건이었으나 현재는 3열 시트와 V8 엔진을 탑재하여 경찰차, 구급차, 미국 정부 기관 등에서 널리 활용된다.
  • 1930년대 자동차 - 오스틴 7
    오스틴 7은 1922년 영국에서 출시된 소형차로, 4기통 엔진과 다양한 차체 형식을 갖추었으며, 사이클카 산업 변화와 재규어 자동차의 기반 제공 등 국제적 영향과 모터스포츠 활약, 현대 자동차 기술 영향에 기여했다.
오펠 카데트 - [자동차]에 관한 문서
개요
오펠 카데트 B 4도어
오펠 카데트 B 4도어
제조사오펠
생산 기간1936년–1940년, 1962년–1993년
이전 모델오펠 1.3 리터
후속 모델오펠 아스트라
차급소형차 (C-세그먼트)
레이아웃전륜구동 (1936–1979), 전륜구동 (1979–1993)
상세 정보 (1936–1940)
엔진1,073 cc 직렬 4기통 OHV 가솔린
변속기3단 수동
축간거리2,337 mm (92.0 in)
전장3,835 mm (151.0 in)
전폭1,375 mm (54.1 in)
전고1,440 mm (56.7 in)
공차중량750 kg (1,653 lb)
상세 정보 (B 모델, 1965)
엔진993 cc 직렬 4기통 OHV 가솔린
1,078 cc 직렬 4기통 OHV 가솔린
1,100 cc 직렬 4기통 OHV 가솔린
1,897 cc 직렬 4기통 캠샤프트 가솔린
변속기4단 수동
3단 자동
상세 정보 (C 모델)
변속기4단 수동
5단 수동
3단 자동
상세 정보 (D 모델)
변속기4단 수동
5단 수동
3단 자동
상세 정보 (E 모델)
변속기4단 수동
5단 수동
3단 자동

2. 역사

오펠 카데트는 1936년 첫선을 보인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생산된 오펠의 소형차 모델이다.

1936년 출시된 첫 모델은 전륜 독립 서스펜션을 갖춘 혁신적인 설계로 주목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인 1940년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1962년 카데트 A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후 카데트 B, C, D를 거쳐 1984년 카데트 E가 출시되었으며, 1991년 아스트라로 모델명이 변경될 때까지 생산되었다.

카데트 C는 GM의 세계 전략 차종 계획에 따라 개발되어 대한민국의 대우 제미니와 맵시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카데트 E는 대우 르망의 바탕이 되었다.

세대출시 연도주요 특징
카데트 (1세대)1936년전륜 독립 서스펜션, 모노코크 바디 채택
카데트 A1962년22년 만에 부활, 간결한 디자인, 993cc 엔진
카데트 B1965년차체 크기 확대, 4도어 모델 추가, 다양한 엔진 라인업
카데트 C1973년GM의 세계 전략 차종, 대우 제미니/맵시의 기반
카데트 D1979년전륜구동으로 변경, 복스홀 아스트라와 통합
카데트 E1984년공기 역학적 디자인, 대우 르망의 기반


2. 1. 카데트 (1936년~1940년)

1936년에 선보인 오펠 카데트는 전륜 독립 서스펜션 등을 갖춘 진보적인 설계를 통해 개발되었다. 1,073cc 엔진은 23마력이었으나, 차량 중량(757kg)이 가벼워 최고 속도는 98km/h에 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인 1940년오펠 공장은 독일 정부에 접수되어 카데트의 생산도 중단되었다.[1]

오펠 카데트 정측면


카데트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오펠 자동차는 1936년 12월 오펠의 상업 기술 이사였던 하인리히 노르트호프에 의해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며, 그는 수십 년 후에 폭스바겐 회사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생산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40년에 중단되었다.[1]

새로운 카데트는 섀시가 없는 모노코크 바디 구조를 채택하면서 혁신적인 오펠 올림피아를 따랐으며, 이는 오펠의 영국 자매 회사가 1937년에 출시한 복스홀 10과 마찬가지로 오펠 카데트가 대량 생산, 저비용 생산을 위해 설계되었음을 시사한다.

오펠 카데트 ''스트롤치'' (1938)


1937년에 카데트는 작고 소박한[2] 2도어 "리무진" (세단) 또는 동일한 가격으로 소프트탑 "카브리오-리무진"으로 제공되었다. 차체는 기존의 더 큰 오펠 올림피아와 유사했으며 실루엣은 당시의 "유선형" 경향을 반영했다. 1,074cc 측면 밸브 엔진은 1935년 오펠 P4에서 가져왔으며, 3,400rpm에서 23PS의 동일한 최대 출력 출력을 제공했다.[3] 휠베이스는 234cm로 작은 P4와 더 큰 올림피아의 중간이었다.[4]

브레이크는 이제 유압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제어되었다. 서스펜션은 동시 스프링을 특징으로 했으며, 이는 제조사의 더 큰 모델에서 이미 볼 수 있었고, 프랑스 제너럴 모터스가 라이선스를 구매한 Dubonnet 서스펜션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다. 오펠의 북미 모회사에서 더욱 발전시킨 제너럴 모터스 버전은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특히 카데트와 같은 작고 가벼운 자동차에 이 시스템을 적용했을 때 핸들링과 노면 접지력이 저하된다는 비판도 있었다.[6] 1937년 말까지 이 1세대 카데트가 33,402대 생산되었다.[7]

1937년 12월부터 개량된 전면 그릴이 업그레이드를 나타냈다. 1,074cc 오펠 엔진과 2337mm 휠베이스는 변경되지 않았으며, 1937년형과 1938년형 차량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만 있었다.[8]

제조사는 이제 카데트를 "카데트 KJ38"과 "카데트 K38"의 두 가지 버전으로 제공했으며, 후자는 "카데트 스페셜(Spezial)"로도 판매되었다. 기계적으로나 공개된 성능 면에서 두 차량은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스페셜"은 창문 아래에 크롬 스트라이프가 있었고, 전면 그릴과 같은 다른 영역에 추가적인 외부 차체 트림이 있었다. "스페셜"의 실내도 더 잘 갖춰져 있었다. 이 차량 구매자들이 300 마르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은 생산 비용 절감을 반영한 것이었으며, 가장 큰 차이점은 기본형 "KJ38"이 차량 출시 시 장착되었고 "스페셜"에도 계속 장착되었던 동기 스프링을 제거했다는 점이었다. 기본형 차량은 대신 구형 오펠 P4에 장착된 것과 유사한 전통적인 강성 차축 기반 서스펜션으로 되돌아갔다.

기본형 차량은 2도어 "리무진"(세단)으로만 제공되었다. 소프트톱 "카브리오-리무진"을 원하는 고객은 "카데트 스페셜"을 선택해야 했다. 처음으로 카데트 구매자는 "카데트 스페셜"을 선택할 의향이 있다면 4도어 "리무진"(세단) 차체를 지정할 수도 있었다.

"카데트 KJ38"은 오펠 P4의 시장 세그먼트를 채우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KJ38은 P4보다 비쌌으며, 사양이 축소되어 독일의 경제 성장이 자동차 구매에 대한 덜 최소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장려하던 시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Image des Arme-Leute-Autos..'')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7] "카데트 K38 스페셜"은 시장에서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1938년과 1939년 모두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형차였다. 1941년 5월까지 회사는 17,871대의 "카데트 KJ38"과 56,335대의 "카데트 K38 스페셜"을 생산했다.[7]

경쟁력 있는 가격은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고, 카데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계속 생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격화로 생산이 중단된 1940년 5월까지 오펠의 뤼셀스하임 공장에서 106,608대의 오펠 카데트[9]가 조립 라인에서 생산되었는데, 이곳은 헨리 포드가 개척한 조립 라인 기술을 독일에서 처음으로 적용한 주요 자동차 공장이었다.

모스크비치 400(1947–195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이 합의한 전쟁 배상금의 일환으로 소련은 미국의 점령 지역에 있는 오펠 뤼셀스하임 자동차 공장의 설비를 요청하여 모스크바 전투에서 국내산 KIM-10-52 생산 라인을 잃은 것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했다. 소련의 계획자들은 다양한 독일의 "소형 리터리지" 모델 중에서 선택해야 했으며, KIM의 일반적인 유형, 즉 금속 차체와 4행정 엔진을 갖춘 4도어 세단을 원했다. 따라서 그들은 후방 엔진, 2도어 KdF-Wagen (미래의 VW 비틀)과 소련 점령 지역의 아우토 유니온 켐니츠 공장에서 제작된 2행정 엔진, 전륜 구동, 나무 차체의 DKW F8을 모두 거부했다. KIM과 가장 유사한 모델은 4도어 카데트 K38이었다.[10]

1945년 8월 26일, 국가 방위 위원회는 4도어 카데트의 생산을 "설계 변경 없이" 모스크바 소형차 공장에서 시작하도록 규정하는 명령 제9905호를 발표했다. 이 계획의 실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뤼셀스하임 공장은 나치 전쟁 노력에 깊이 관여하여 루프트바페의 항공기 엔진을 생산했으며,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공습으로 심하게 파괴되었다. 2도어 버전의 카데트용 스탬핑 다이를 몇 개 추가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쓸 만한 것이 없었다 – 대부분 앞뒤가 맞지 않는 도면과 계획이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카데트가 붉은 군대에 의해 트로피로 획득되었고 연구 및 역설계에 사용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독일 주둔 소련 군정 (SMAD) 하에 소련-독일 합작으로 설립된 설계국에서 수행되었다. 총 11개가 있었다. 베를린에 있는 한 곳은 엔진과 변속기를 역설계했다. 작센슈바르첸베르크에 있는 다른 곳은 강철 차체를 작업했다. 나무 차체 스테이션 왜건은 켐니츠에서 개발되었다. 이러한 설계국의 대부분의 인력은 군정에서 고용한 독일 전문가와 장인이었다. 이 설계국은 필요한 청사진과 문서를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차체용 나무 마스터 모델도 제공했다. 그들은 심지어 후드 엠블럼과 "M"(모스크비치)이 새겨진 허브 캡을 포함하여 오펠 프로토타입과 모스크비치를 구별하는 새로운 트림 조각을 개발했다. 그러나 스탬핑 다이와 대부분의 공구는 소련에서 생산되어야 했다.[10]

1946년 12월 4일에 생산이 시작되었다. 모스크비치 400/420은 1956년까지 몇 가지 사소한 변경을 거쳐 모스크바에서 계속 제작되었으며, 이후 모스크비치 402로 대체되었다. 후자는 엔진을 제외하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었으며, 모스크비치는 1958년까지 카데트 측면 밸브 엔진을 계속 사용하다가, 국내에서 설계된 OHV 엔진으로 교체되었다.[10]

초대(1938년의 대규모 마이너 체인지 이후의 후기형)


1930년대 중반 당시, 아돌프 히틀러 휘하 나치 정권의 지원으로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폭스바겐(후의 타입 1, 이른바 비틀)을 개발 중이었다.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 산하 외자 기업이 된 오펠은 가까운 장래에 국책으로 출시될 이 새로운 라이벌에 대항할 수 있는 모델을 필요로 했다.

그때까지 오펠의 최저가 대중차 "P4"는 앞뒤 바퀴 모두 고정축의 전 시대적인 모델로, 포르셰가 개발하는 대중차에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었기에, P4의 설계를 일신한 후계 차종으로 "카데트"가 개발되었다.

1935년에 등장한 고급 모델 올림피아의 연장선상에서 설계되었으며, 헤드라이트를 차체 본체와 일체화하고 사이드 스텝을 없앤 모노코크 보디, 듀보네식 전륜 독립 서스펜션을 가진 진보적인 설계였다. 기존 방식을 유용한 수냉 직렬 4기통 1,073cc 엔진은 구식 사이드 밸브 방식이었고 23마력에 불과했지만, 757kg으로 경량이었기 때문에 최고 속도는 98km/h에 달했고, 폭스바겐이 시판되지 않았던 이 시점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승용차였다.

1938년에는 대규모 마이너 체인지를 거쳐, 좌우에 완만한 원호를 그리며 상방이 약간 후퇴하는 유선형에 세로 줄의 흡기공을 5단으로 낸 디자인이었던 프론트 그릴은, 당시 올림피아(1937년 후반의 마이너 체인지를 거친 "OL38"형)와 마찬가지로, 원호가 강한 곡면이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가로 줄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그 외, 측면 통기공에도 개변이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인 1940년, 모회사 GM의 의향을 무시하고 오펠 공장은 독일 정부에 접수되었고, 카데트도 생산이 중단되었다. 프레스 금형이나 설계도는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1945년 독일의 패전 후, 생산 설비는 소련으로 옮겨져, 동국에서 모스크비치 400/420으로 생산되게 되었다.

전후 혼란기의 오펠은 카데트의 생산 설비를 다시 만들 여유가 없었고, 결국 오펠은 전후 15년 이상 동안 1,000cc급의 기본 모델을 갖지 못한 채, 1,500cc급의 올림피아 (및 그 후속 시리즈인 올림피아 레코르트)를 최저가 모델로 하게 된다.

2. 2. 카데트 A (1962년~196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이후 모터리제이션에 진입했고, 이에 오펠은 1962년에 카데트라는 차명을 22년 만에 부활시켰다. 오펠은 1962년 10월, "카데트"라는 이름으로 1,000cc급 대중차를 재등장시켰다. 생산성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간결하게 하였고, 40마력의 993cc 엔진을 얹었다. 3년 동안 649,512대가 생산되어 성공을 거뒀다.

카데트 A는 전장 3920mm×전폭 1470mm×전고 1410mm, 휠베이스 2325mm의 풀 모노코크 차체를 가졌다. 생산성을 고려하여 대형 프레스 부품을 사용한 간결한 조형이었다. 전면에 수냉 직렬 4기통 OHV 993cc 40마력 엔진을 탑재하고 후륜을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서스펜션은 전륜이 횡 배치 리프 스프링 지지의 위시본 독립 현가, 후륜이 반타원 리프 리지드 방식이라는 견실하고 간결한 구조였다. 선대 모델과 마찬가지로 경량으로 차체 중량은 700kg에 불과하여 최고 속도 120km로 폭스바겐에 대항할 수 있는 충분한 성능을 발휘했다.[1]

이 클래스의 유력한 라이벌로는 폭스바겐 외에 독일 포드의 "타우누스"가 있었지만, 타우누스의 1,200cc 모델은 동시기에 모델 체인지를 통해 전륜 구동화되었다. 기본 모델인 2도어 세단 외에, 3도어 왜건 "캐러밴", 럭셔리 버전 "L", 2도어 쿠페 등이 순차적으로 추가되어 3년여 만에 649,512대가 생산되는 큰 인기를 얻었다.[1]

영국 복스홀에서는 카데트 A와 거의 동일한 설계의 섀시에 독자적인 차체와 1,056cc, 45마력 엔진을 탑재한 Vauxhall Viva|복스홀 비바영어를 1963년에 출시했으며, 이후 독자적으로 모델 체인지를 거듭하며 생산했다.[1]

카데트와 비바는 1966년에 잇따라 등장하는 일본의 1,000cc급 대중차인 닛산・써니와 토요타・코롤라의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초대 써니의 설계는 엔진, 서스펜션, 조형 등 많은 면에서 카데트의 영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1]

2. 3. 카데트 B (1965년~1973년)

1965년 여름에 선보였다. 성공을 거둔 유럽산 차로서는 이례적으로, 풀 모델 체인지를 빠른 시기에 했다. 카데트 A와 디자인이 비슷하지만, 축거와 윤거가 연장되어 안정성을 높였다. 1972년에는 출시된지 오래되었던 폭스바겐 비틀을 제치고 서독의 베스트 셀러 카의 자리에 올랐다.[1]

1965년, 2세대 카데트 B가 등장했다. 판매 면에서 성공을 거둔 유럽 자동차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시점의 모델 체인지는 차체 치수를 확대하고 4도어 모델을 추가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독일 시장에서는 인접 국가인 프랑스와 달리, 베이직 카는 2도어가 일반적이며, 4도어 모델의 설정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는 4도어의 편리성이 인식되어 오펠도 사용자 요구에 부응하는 형태였다.[1]

디자인은 A와 매우 흡사하지만, 휠베이스가 95mm 연장되었고, 트레드도 확대되었다. 차체 형식은 2도어와 4도어 세단, 쿠페, 카라반이 있었다. 엔진도 1,078cc로 확대되었으며, 45마력과 압축비를 높인 55마력의 "S"의 2가지가 준비되었으며, 후자에는 전륜 디스크 브레이크가 기본 장착되었다. 1965년에는 60마력의 쿠페 모델 "랠리 카데트"가 추가되었으며, 무광 검정색으로 칠해진 보닛, 사이드 스트라이프, 캡리스 휠의 모습은 이후 소형 대중차의 스포티 모델의 유행이 되었다.[1]

카데트 B의 차체 바리에이션


1967년의 마이너 체인지에서는 후륜 서스펜션이 파나르 로드가 장착된 4링크 코일로 변경되었고, 윗급 모델인 레코르트에서 물려받은 SOHC, 1,698cc, 75마력과 1,897cc, 90마력을 탑재하는 고성능 버전, 같은 해에 등장한 상급 버전 자매차인 올림피아와 동일한 세미 패스트백형의 2·4도어 세단 (LS), 5도어 왜건, 새로운 2도어 쿠페가 추가되어 차종 체계가 매우 복잡해졌다.[1]

1971년에는 베이스 모델의 엔진이 1,196cc, 60마력으로 변경되었고, 올림피아가 신설계의 상급 대중차 아스 코나로 독립하면서 1,700cc 버전이 폐지되었다. 1,900cc 버전은 다수가 미국으로 수출되어 뷰익의 판매망을 통해 판매되었으며, 토요타닛산이 약진하기 전까지 미국의 수입차 랭킹 2위를 유지했다. 오펠 GT의 베이스 모델이기도 했다.[1]

1972년에는 모델 수명이 말기에 접어들어 판매가 부진했던 폭스바겐 타입 1의 판매 대수를 넘어 구 서독의 베스트셀러 카 자리를 차지했다.[1]

2. 4. 카데트 C (1973년~1979년)

1973년 8월에 출시된 카데트 C는 GM의 T 카 플랫폼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환경에 맞게 자동차를 개발한다"는 GM의 전략에 따라 세계 전략 차종으로 개발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7년에 출시된 대우 제미니와 제미니의 페이스 리프트 차종인 맵시 및 맵시-나가 카데트 C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27]

4세대 카데트 C는 GM의 "플랫폼은 공통으로 하되, 각 나라의 실정에 맞는 차를 만든다"는 세계 전략차 계획의 일환으로 개발되어, General Motors T platform|GM T카영어가 되었다. 이 카데트 C를 바탕으로 이스즈 제미니, Vauxhall Chevette|복스홀 셰베트영어, Chevrolet Chevette|시보레 셰베트영어 등의 형제차가 각국에서 개발되었다. 디자인은 만타, 아스코나, 레코드의 디자인을 감독했던 척 조던의 후임인 데이비드 홀즈가 이끄는 디자인 팀에서 담당했는데, 이전 모델들과의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낮은 웨이스트 라인을 가진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이었다.

처음에는 2도어 및 4도어 세단, 2도어 쿠페, 그리고 5도어가 단종되고 3도어만 남은 카라반의 4가지 차체 형식이 있었다. 엔진은 이전 모델에서 사용하던 OHV 방식의 1,196cc 엔진(52마력/S 사양 60마력)과 저가형 모델을 위한 993cc 엔진(48마력)이 탑재되었다. 1975년에는 3도어 해치백 버전인 "시티"와 만타 GT/E와 같은 1,897cc 105마력 엔진을 탑재한 "랠리 카데트"의 후속 버전인 2도어 쿠페 "GT/E"가 추가되었다. 1976년에는 지붕과 뒷유리가 접히는 2도어 카브리올레 "에어로"가, 1977년에는 GT/E의 성능을 향상시킨 1,979cc 115PS의 GT/E2와 그 장비를 간소화한 "오펠 랠리" 등의 차종이 추가되었다. 1977년에는 앞부분 디자인이 변경되어, 레코드나 아스코나처럼 방향 지시등이 헤드라이트 양쪽에 설치되었다.

영국에서는 1975년에 비바의 하위 모델로 복스홀 셰베트가 출시되었다. 처음에는 독일판에는 없는 3도어 해치백 모델만 있었고, 앞부분 디자인도 달라서 인상이 많이 달랐지만, 같은 해 말에 2도어 및 4도어 세단도 출시되면서, 오래된 비바를 대신하여 복스홀의 주력 대중차가 되었다. 이는 이후 모델에서 영국과 독일의 차종이 통합되는 계기가 되었다.

WRC에서는 오펠 워크스 팀인 "GM 유로핸들러" 팀과 각국의 딜러 팀이 세미 워크스 형태로 각국의 사양[27]으로 1975년 산레모 랠리에 그룹 4 사양으로 참가했다. 발터 롤, 안데르스 쿨랑, 라우노 알토넨 등이 드라이버로 참여하여, 기존의 아스코나 A를 대신하여 카데트 GT/E로 출전했다. 호몰로게이션 모델로는 GT/E2를 기반으로 150hp로 만든 그룹 1 사양, GT/E의 엔진을 DOHC 8밸브 207hp로 개량한 그룹 2 사양, DOHC 16밸브 240hp인 그룹 4 사양이 만들어졌다.

산레모에서는 변속기 문제로 완주하지 못했지만, 이듬해부터 그룹 1, 2, 4에 많이 투입되었다. 1977년 스웨디시 랠리에서 2위를 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고, 1978년까지 투입되었다. 1979년에는 호몰로게이션 변경으로 16밸브 헤드의 그룹 4 사양은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28], 워크스 활동은 아스코나 B로 변경되었지만, 오펠 워크스 팀 외에서는 기본적인 랠리카로서 각국의 개인 참가자들에게 사랑받았다.

"셰베트 HS"의 랠리 사양은 복스홀과 영국 브라인스테인 레이싱에서 개발되었으며, 16밸브 트윈캠 엔진이 랠리용으로 개량되자 영국 캠브리지 근처의 테스트 코스를 개발 거점으로 삼아, 핀란드의 펜티 아이리칼라에 의해 성능이 개선되어 1976년 11월에 WRC의 그룹 4로 참가했다.

데뷔한 지 1년도 안 되어 스테이지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지만, 1000호 랠리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WRC에서는 큰 주목을 받기 전에 기계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다.[29] 1978년에는 "셰베트 HSR"로 발전하여, 러스 뷰클리스의 포드 에스코트 RS와 1980년대까지 몇 초 차이로 선수권 경쟁을 벌였다.

2. 5. 카데트 D (1979년~1984년)

1979년 8월 중순, 오펠폭스바겐 골프의 영향을 받아 후륜구동에서 전륜구동으로 전환된 카데트 D를 출시했다. 1974년에 출시된 폭스바겐 골프는 소형 대중차 시장에서 횡치 엔진 전륜구동 및 해치백 차체 구성을 표준으로 만들었으며, 토요타 코롤라와 함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은 보수적인 고객층의 지지를 받던 카데트에도 영향을 미쳐, 5세대 카데트 D는 전륜구동(FF) 방식을 채택했다.

이전 세대 카데트 C와 복스홀 셰베트를 통해 시작된 영국 복스홀과의 차종 통합은 더욱 진전되었다. 비바 생산이 중단되면서, 카데트 D는 배지를 제외하고 Vauxhall Astra|복스홀 아스트라영어와 완전히 동일한 차량으로 영국에서 생산되었다.

카데트 D는 전륜구동으로 바뀌었지만, 일본, 미국, 브라질 등에서는 여전히 구형 모델의 상품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이스즈 제미니와 시보레 셰베트는 계속 생산되었다. 또한 복스홀은 셰베트를 병행 생산하여 독일에 수출하기도 했다.

일본인 수석 디자이너 고다마 히데오가 디자인한 카데트 D의 차체는 골프보다 크고, 레코르트 E와 유사한 리어 쿼터 디자인을 특징으로 했다. 그러나 차체 네 모서리에 돌출된 타이어와 플라스틱 부품의 사용은 기존 오펠 차량의 세련됨이나 골프의 품질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력 모델은 테일 게이트가 달린 3도어 및 5도어 해치백이었지만, 보수적인 고객을 위해 독립된 트렁크를 가진 2도어 및 4도어 모델도 출시되었다. 왜건 버전은 3도어 외에 5도어 버전도 다시 추가되었다. 엔진은 기존의 1196cc OHV 53마력 및 60마력 엔진과 새롭게 개발된 1297cc SOHC 60마력 및 75마력 엔진의 네 가지 종류가 제공되었다. 당시 횡치 엔진 차량용 자동변속기 개발의 어려움으로 초기에는 4단 수동변속기만 제공되었고, 3단 자동변속기는 1981년 5월에 추가되었다. 서스펜션은 새롭게 설계되어, 프론트에는 맥퍼슨 스트럿, 리어에는 트레일링 암과 빔 액슬을 결합한 특수한 반독립형 구조가 채택되었다.

1981년에는 1598cc 90마력 엔진이, 1982년에는 해당 엔진의 디젤 버전인 54마력 엔진이 추가되었다. 1983년에는 1796cc 115마력 엔진을 탑재하고 에어로 파츠를 장착한 "GT/E" 모델이 부활했다.

2. 6. 카데트 E (1984년~1991년)

1984년 8월에 출시되었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공기 역학 설계를 도입하여 곡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그 결과 공기 저항 계수(Cd)는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0.32를 기록했다. 1986년대한민국에 출시된 대우 르망은 카데트 E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30] 1991년에 후속 차종인 아스트라가 출시된 이후에도 병행 판매되다가 1995년에 단종되었다.

마지막 카데트가 된 E는 1984년에 등장하였다. 최대 경쟁 모델인 골프1982년에 2세대(골프 II)로 변경되었고, 아우디 100, 포드 시에라 등 공기역학적 스타일을 가진 신차들이 연이어 등장하였다. 기존 카데트 D의 각진 디자인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였기 때문에, E는 공기역학적 디자인으로 전면 개편하여 젊은 감각을 더했다. 그 결과, 공기 저항 계수(Cd 값)는 0.32로 우수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창문 면적이 작고 경사가 심해져 실내 개방감이 부족하고 좁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었다.

엔진은 이전 모델의 1,196cc, 1,297cc, 1,598cc 가솔린 엔진과 1,598cc 디젤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차체는 3도어와 5도어 해치백, 4도어 3박스 세단, 휠베이스를 235mm 늘린 3·5도어 왜건인 카라반이 있었으며, 1987년에는 이탈리아의 베르토네가 제작한 2도어 카브리올레가 추가되었다.

1986년에는 고성능 버전인 GSi가 출시되어 공기 저항 계수(Cd 값)는 0.30으로 더욱 낮아졌다. 115ps의 성능과 공기역학적 차체 덕분에 최고 속도는 220km/h에 달했다.[30] 초기에는 1,796cc 엔진을 탑재했지만, 1988년에 마이너 체인지를 통해 전면부가 변경되었고, 엔진 배기량이 1,400/1,800/2,000cc로 확대되었다. GSi는 2,000cc, DOHC 16밸브 엔진을 탑재하여 156마력을 냈다.

1992년아스트라로 모델명이 통일되면서, 5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카데트의 이름은 사라졌다.

WRC에는 그룹 A에서 GSi로 참가하는 데 그쳤지만, 그룹 B가 폐지되면서 상위 카테고리였던 그룹 S용으로 개발된 차량이 있었다. GSi를 기반으로 600마력, 4륜구동 파워트레인을 갖춘 'GSi T16 랠리 4X4'가 개발되었으나, 투입될 카테고리가 없어지면서 1988년 유러피언 랠리크로스 선수권에 참가했다.

GSi T16 랠리 4X4

3. 한국과의 관계

1973년 8월에 출시된 카데트 C는 GM의 T 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세계 전략 차종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7년에 대우 제미니가 출시되었으며, 이후 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맵시맵시-나도 카데트 C를 베이스로 하였다.

오펠 카데트 C 정측면


1984년 8월에 출시된 카데트 E는 공기 역학적 디자인을 통해 당시로서는 우수한 0.32의 공기 저항 계수(Cd)를 달성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86년대우 르망이 카데트 E를 베이스로 출시되었다. 카데트 E는 1991년 후속 차종인 아스트라가 출시된 이후에도 병행 판매되다가 1995년에 단종되었다.

오펠 카데트 E 정측면

4. 모터스포츠

카데트의 모터스포츠 참가는 주로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이루어졌다. 4세대 카데트 C는 GM의 "글로벌카" 전략의 일환으로 개발되어, 이스즈 제미니, 복스홀 셰베트 등의 형제차를 탄생시켰다.

1975년, 오펠 워크스 팀인 "GM 유로핸들러"와 각국 딜러 팀은 카데트 GT/E를 WRC에 투입했다. 발터 롤, 안데르스 쿨랑 등 유명 드라이버들이 활약했으며, 그룹 1, 2, 4 사양이 만들어졌다. 1977년 스웨디시 랠리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1979년부터는 아스코나 B로 워크스 활동이 전환되었다.

복스홀 셰베트 HS는 16밸브 트윈캠 엔진을 탑재하고 1976년 WRC 그룹 4에 참전했다. 1978년에는 셰베트 HSR로 진화하여 포드 에스코트 RS와 경쟁했다.

5세대 카데트 E는 고성능 버전인 GSi가 그룹 A에서 WRC에 참전했다. 또한, 그룹 S용으로 개발된 4륜구동 머신 'GSi T16 랠리 4X4'는 1988년 유러피언 랠리크로스 선수권에 참전했다.

참조

[1] 웹사이트 Opel Astra: Retour sur 85 ans d'histoire des compactes au blitz https://www.autoplus[...] 2021-08-11
[2] 서적 Oswald Band 2
[3] 서적 Oswald Band 2
[4] 서적 Opel: wheels to the world; a seventy-five year history of automobile manufacture Princeton Publishing 1975
[5] 웹사이트 Oldtimer picture gallery: Opel Kadett (Model 11234) http://www.autogalle[...] 2001-01-14
[6] 서적 Oswald Band 2
[7] 서적 Oswald Band 2
[8] 서적 Oswald Band 2
[9] 서적 Oswald Band 2
[10] 웹사이트 Расследование: как создавался Москвич http://www.autorevie[...]
[11] 서적 Oswald Band 3
[12] 서적 Oldtimer Katalog Heel Verlag
[13] 서적 Oswald Band 3
[14] 서적 Oswald Band 3
[15] 서적 Oswald Band 3
[16] 서적 Oswald Band 3
[17] 서적 Oswald Band 3
[18] 간행물 Daily Express Guide to 1980 World Cars
[19] 서적 Automobil Revue '82 Hallwag AG 1982-03-03
[20] 간행물 A touch of class IPC Business Press Ltd. 1982-06-05
[21] 간행물 Kadett för dåliga vägar Specialtidningsförlaget AB 1982-07-28
[22] 학술지 En sista utdelning OK Förlaget AB 2014-07
[23] 웹사이트 Opel Kadett Brochure 1979 NL — Veikl https://www.veikl.co[...] 2022-09-12
[24] 서적 World Cars 1981 The Automobile Club of Italy/Herald Books
[25] 웹사이트 Rewind to 1985: Opel Kadett https://web.archive.[...] Quicks 2014-02-25
[26] 웹사이트 Previous winners https://web.archive.[...] Car of the year 2010-10-02
[27] 문서 後述する英ブラインスタイン・レーシングのシェヴェットHSもその例。
[28] 문서 1979年は「100ユニット生産によってホモロゲーションに仕様追加できる」というルール上の特例が廃止されたため。
[29] 기타 ユーロピクチャーズ 「ワールドラリーヒストリー1950~1989」より
[30] 서적 80年代輸入車のすべて- 魅惑の先鋭 輸入車の大攻勢時代 三栄書房
[31] 문서 『外国車ガイドブック1983』p.212、昭和57年11月現在の日本自動車輸入組合加盟デーラー一覧にオペルの販売会社が東邦モーターズである旨の記載あり。『外国車ガイドブック1982』p.214、昭和56年10月24日現在の日本自動車輸入組合加盟デーラー一覧にオペルの名称なし。
[32] 문서 『外国車ガイドブック1984』に記述なく『外国車ガイドブック1985』に記述あることからこのようにした。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