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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파 빌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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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파 빌랄은 이라크 출신의 예술가로, 이라크 전쟁과 억압, 폭력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다. 바트당 정권 하에서 성장하며 반체제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분쟁 종식을 호소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페인트볼 총을 이용한 '국내 긴장' 프로젝트, 비디오 게임을 변형한 '가상 성전전사', 물고문 설문을 다룬 '개 혹은 이라크인', 뒤통수에 카메라를 부착한 '제 3의 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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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파 빌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와파 빌랄, 2013
와파 빌랄, 2013
본명وفاء بلال (와파 빌랄)
출생일1966년 6월 10일 (세)
출생지이라크 나자프
국적이라크계 미국인
직업예술가
활동 분야인터랙티브 아트
뉴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아트
사진
학력뉴멕시코 대학교 미술 학사 (1999년)
시카고 예술대학 미술 석사 (2003년)
드포 대학교 명예 박사 (2019년)
주요 작품168:1
칸토 III
국내적 긴장
제3의 눈
웹사이트Wafaabilal.com

2. 생애

와파 빌랄은 이라크 나자프 출신의 예술가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억압과 이란 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겪으며 성장했다.[1] 그는 예술을 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비판하는 활동을 펼치다 반체제 인사로 여겨졌고,[2] 결국 1991년 이라크를 떠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난민 캠프를 거쳐 199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3][25] 미국에서 예술 교육을 받고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의 작품에는 이라크에서의 경험과 이라크 전쟁 같은 정치적 사건들이 깊이 반영되었다.[5][26][24] 특히 전쟁의 비극과 폭력에 대한 고발은 그의 주요 예술 주제 중 하나이다.

2. 1. 이라크에서의 유년 시절과 반체제 활동

빌랄의 가족은 이라크 남부 나자프주 인근 출신의 시아파 이라크인이다.[1] 빌랄이 유년 시절을 보낸 이라크는 바트당이 집권하고 사담 후세인을 중심으로 권력이 재편되던 시기였다. 티크리트 출신의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은 풍부한 원유 자원을 바탕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 이를 이용해 교육, 의료 등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라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를 권력에서 배제하고 탄압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호메이니 정권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지원과도 관련이 있었다.

빌랄은 고등학생 시절 이란 이라크 전쟁을 겪으며 다른 학생들과 함께 송유관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졸업 후 바그다드 대학교 예술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친척 중 바트당 정권에 반대한 인물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지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럼에도 그는 대학 안팎의 예술 단체에서 활동하며 사담 후세인 정권을 비판하는 벽화 작업을 이어갔다.[24][1]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체포되기도 했다.[2]

1991년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빌랄은 쿠웨이트 침공 참전을 거부하고 반정부 활동을 조직했다.[3] 같은 해 1월 16일, 연합군의 공습('사막의 폭풍' 작전)이 임박하자 그는 이라크를 탈출하여 쿠웨이트를 거쳐 사우디 아라비아의 난민 캠프로 피신했다.[25] 그는 난민 캠프에서 약 2년간 머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등 예술 활동을 지속했다.[3][25] 이 시기 빌랄은 그의 예술적 유산과 이라크 내 예술 활동으로부터 단절된 채 망명 생활을 해야 했던 여러 이라크 지식인 및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었다.[4]

1992년, 빌랄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정착했다. 그는 뉴멕시코 대학교에서 예술을 공부해 1999년 미술학 학사(BFA)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로 이주하여 2003년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미술학 석사(MFA) 학위를 취득했고, 이듬해에는 같은 대학의 조교수로 임용되었다.[26][5] 미국에서도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강연 활동을 이어갔으며, 히스토리 채널과 인터뷰하기도 했다.[24][27][28][2][6][7]

2004년, 빌랄은 이라크 전쟁 중 미군의 공습으로 이복동생이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 사건은 그가 이라크 전쟁에 더욱 깊이 반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분쟁 종식을 호소하는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2. 2. 미국 이민과 예술 활동

1991년 걸프 전쟁 당시 쿠웨이트 침공군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던 와파 빌랄은 연합군의 공습이 임박하자 이라크를 떠나 쿠웨이트를 거쳐 사우디 아라비아의 난민 캠프에 수용되었다. 그는 난민 캠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25][3]

1992년, 빌랄은 미국 이민권을 얻어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로 이주했다. 그는 뉴멕시코 대학교에서 예술을 공부하여 1999년에 미술학 학사(BFA)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로 옮겨 2003년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미술학 석사(MFA) 학위를 취득했으며, 같은 해에 이 대학의 조교수로 임용되었다.[26][5] 이 시기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실상에 대해 강연 활동을 펼쳤으며, 히스토리 채널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24][27][28][2][6][7]

2004년, 와파 빌랄은 그의 이복동생이 이라크 전쟁미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 사건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그는 이라크 전쟁에 더욱 깊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빌랄은 전 세계를 순회하며 강연과 전시를 통해 이라크 민중이 겪는 현실을 알리고 전쟁과 분쟁의 종식을 강력히 호소하는 활동을 시작했다.[24]

3. 주요 작품

와파 빌랄은 스스로를 전쟁과 억압, 그리고 이라크에서의 경험을 다루는 정치 예술가로 여긴다.[3] 그는 바트당 치하 이라크에서 겪었던 억압과 폭력의 경험을 자신의 예술에 큰 영향을 준 요소로 꼽는다. 또한 미국에서 겪은 불의와 고통 역시 그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빌랄은 이러한 감정과 상황을 하이퍼리얼리즘적인 사진과 비디오 설치 작품을 통해 탐구한다.[23]

그의 작품 중 하나인 《Raze 213》은 관람객들이 산성 용액 속에서 부패하는 고기 조각의 냄새를 직접 맡도록 유도했는데, 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자행했던 고문 기법 중 하나인 죄수에게 무작위로 질산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뉴멕시코주 보건 당국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다. 2007년 8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재와 유해로 뒤덮인, 이라크에서 파괴된 집의 방을 재현하는 설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3]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2007년 시카고의 한 갤러리에서 30일간 스스로를 가두고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관람객들이 원격 조종 페인트볼 총으로 자신을 쏘도록 한 퍼포먼스 아트 ''가정 내 긴장''(Domestic Tension)이 있다.[8][9]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라크인을 쏴라: 총 아래에서의 예술, 삶, 저항''(Shoot an Iraqi: Art, Life and Resistance Under the Gun)이라는 책을 출판했다.[14] 또한, 알카에다가 만든 게임을 변형하여 플레이어가 조지 W. 부시를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의 컴퓨터 게임 ''Virtual Jihadi''를 제작하여 논란을 일으켰으며,[15] 이 작품은 렌슬러 폴리테크닉 연구소에서의 전시가 거부되기도 했다.[18][19] 이 외에도 관객 투표를 통해 개와 작가 중 물고문을 당할 대상을 결정하게 한 넷 아트 ''Dog or Iraqi'',[20] 머리 뒤에 카메라를 이식하여 1년간 일상을 기록하고 웹사이트 3rdi.me에 실시간 전송한 ''3rdi''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21][22]


  • ''바그다드의 슬픔''(Sorrow of Baghdad, 1999)
  • ''압생트 애호가''(Absinthee Drinker)
  • ''Raze 213''(1999)
  • ''모나리자''(Mona Lisa, 2002)
  • ''폴리 베르제르의 바''(A Bar at the Folies-Bergère, 2003)
  • ''Baiti "내 집"''(Baiti "My Home", 2003)
  • ''의자 하나''(One Chair, 2005)
  • ''미드웨스트 올림피아''(Midwest Olympia, 2005)
  •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 2005)
  • ''가정 내 긴장''(Domestic Tension, 2007)
  • ''이라크인을 쏴라: 총알 아래서의 예술, 삶, 저항''(Shoot an Iraqi: Art, Life and Resistance Under the Gun, 2008).
  • ''가상 지하디''(Virtual Jihadi, 2008)
  • ''... 그리고 세기''(... And Counting, 2010)
  • ''3rdi''(2010–11)
  • ''테크노바이킹''(Technoviking, 2013)
  • ''잿더미 시리즈''(Ashes Series, 2003-2013)
  • ''168:01''(2015-2016)

3. 1. 국내 긴장 (Domestic Tension)

2007년 5월, 빌랄은 이라크 전쟁에 항의하는 의미로 '국내 긴장'(Domestic Tension)이라는 30일간의 퍼포먼스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8][29]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시카고에 위치한 플랫파일 갤러리(FlatFile Galleries)의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생활했다.[8][29] 빌랄의 모습은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 24시간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으며,[8] 관람객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원격으로 제어되는 페인트볼 총으로 언제든지 그를 쏠 수 있었다.[8][29] 사용된 페인트볼은 노란색이었는데, 이는 이라크 전쟁 당시 '우리 군을 성원하자' 캠페인에서 장병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사용된 노란 리본을 상징했다.[24] 페인트볼 총은 발사될 때마다 악취와 함께 반자동 총과 맞먹는 큰 소리를 냈다.[9]

이 프로젝트의 계기는 이라크 나자프에서 그의 21살 이복동생 하지가 미군의 폭격 파편에 맞아 사망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연이어 세상을 떠난 사건이었다.[25] 이후 콜로라도에 앉아 원격으로 이라크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여성 군인에 대한 기사를 읽고 프로젝트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25] 그는 자신의 동포들이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컴퓨터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실에 주목했다.[10] 빌랄은 처음 프로젝트 이름을 '이라크인을 쏴라'(Shoot an Iraqi)로 하려 했으나, 너무 자극적이라는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내 긴장'으로 변경했다.[25]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30일 동안 빌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페인트볼 총의 끊임없는 위협과 발사 시의 소음, 온라인 관람객들의 시선과 피드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11] 페인트볼 탄환으로 인한 직접적인 상처 외에도, 언제 총에 맞을지 모른다는 지속적인 불안감은 그에게 실제 전쟁터와 유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했다.[11] 온라인 채팅방에서는 그가 총을 피하려 한다거나 퍼포먼스를 조작한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때로는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노골적인 적대감도 표출되었다.[12]

프로젝트 시작 20일째 되던 날, 온라인 정보 랭킹 사이트 디그에 소개되면서 참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25] 이 시점에 발사된 페인트볼 수는 4만 발을 넘어섰으며, 한 해커는 페인트볼 총을 해킹하여 기관총처럼 연사되도록 조작하기도 했다.[25] 5월 4일부터 6월 4일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기간 동안, 전 세계 128개국[13]에서 총 6만 발[13][30] 이상의 페인트볼이 발사되었다. 프로젝트 종료 후, 페인트볼 자국으로 뒤덮인 방은 6월 16일까지 청소되지 않은 상태로 전시되었다.[30]

빌랄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서전이자 퍼포먼스 기록인 '이라크인을 쏴라: 총 아래에서의 예술, 삶, 저항'(Shoot an Iraqi: Art, Life and Resistance Under the Gun)이라는 책을 출간했다.[14][25] 이 책에는 그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와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 번갈아 서술되어 있다.[25]

3. 2. 가상 성전전사 (Virtual Jihadi)

와파 빌랄은 '''<가상 성전전사 : 부시 잡기의 밤 (Virtual Jihadi : Night of Bush Capturing)>'''이라는 제목의 컴퓨터 게임 기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원래 알카에다의 온라인 선전 분과에서 만든 해킹 게임인 '''부시를 위한 임무 (Quest for Bush: Night of Bush Capturing)'''을 다시 변형한 것이다. 알카에다 조직은 미국에서 출시된 상업 비디오 게임 '''사담을 위한 임무 (Quest for Saddam)'''을 해킹하여 '''부시를 위한 임무'''를 제작했다. 원작 게임 '''사담을 위한 임무'''에서는 플레이어가 미군 캐릭터의 시점에서 전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지만, 빌랄이 변형한 <가상 성전전사>에서는 플레이어가 자살 폭탄 테러범 캐릭터로 분하여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31][15]

빌랄은 이 작품의 의도에 대해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작업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비극을 풍자하며, 인종차별적 일반화와 편견을 폭로하고자 기획되었다. '''사담을 위한 임무'''나 '''아메리카 아미'''와 같은 게임들은 정형화되고 단일한 시각을 조장한다. 내 작품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으로 인해 알카에다와 같은 폭력 집단의 대원 모집에 취약해진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이 어려운 시기에, 예술가이자 시민으로서 우리는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개입 전략을 모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플랫폼은 비디오 게임 형식을 사용하여 대안적인 서사와 관점을 제시하는 허구의 작업이다. 분쟁 지역의 트라우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안락한 곳에 사는 우리 미국인들은 전쟁의 폭력성에 무감각해졌다.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동안 우리는 고립되고 무관심해졌다. 이 게임은 폭력, 인종차별, 선전에 대한 우리의 성향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눈과 귀를 닫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32][16]


2008년 2월 말, 빌랄은 <가상 성전전사> 작업과 관련하여 렌셀러 폴리테크닉 대학교(뉴욕주 트로이)에서 강연을 요청받았다.[33][17] 그러나 강연 다음 날인 3월 6일, 대학 행정처는 캠퍼스 안에서 <가상 성전전사>를 전시할 수 없다고 통보했으며, 이후 재전시도 불허했다.[34][18] 이러한 결정은 대학 내의 공화당원들이 자신들의 블로그에서 예술학과를 "테러리스트들의 안전한 천국"이라고 비난한 직후에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비난 성명은 이후 철회되었지만, 대학 측의 결정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35][19]

3. 3. 개 혹은 이라크인 (Dog or Iraqi)

2008년 와파 빌랄은 렌셀러 폴리테크닉 대학교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개 혹은 이라크인>(Dog or Iraqi)이라는 넷 아트 작업을 공개했다. 이 작업은 웹사이트를 통해 참여자들이 '버디'라는 이름의 불독이라크인인 작가 자신 중 누구에게 물고문(워터보딩)을 가할지 투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투표 결과에 따라 선택된 대상은 뉴욕주의 한 미공개 장소에서 실제로 물고문을 당할 예정이었다.[36][20] 투표 결과, 빌랄 자신이 더 많은 표를 얻었고, 그는 지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물고문을 당했다.[36]

3. 4. 제 3의 눈 (The 3rd I)

빌랄의 "제 3의 눈(The 3rd I)" 프로젝트는 카타르의 아랍 현대 미술관에서 2010년 12월 30일에 전시되었다.[37][21]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머리 뒤쪽에 카메라를 고정할 티타늄 판을 이식했다. 카메라는 2010년 12월 15일부터 1년간 작동했으며, 1분 간격으로 사진을 찍어 웹사이트([http://www.3rdi.me 3rdi.me])와 아랍 현대 미술관에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사진 촬영 당시 빌랄의 위치 정보를 GPS를 통해 함께 보여주었다. 빌랄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진을 찍는다는 의식적인 행위 없이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재직 중이던 티쉬 예술대학에서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캠퍼스 내에서는 카메라를 가리도록 요구하기도 했다.[37][21] 빌랄은 카메라 이식 부위의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2011년 2월 4일 카메라를 제거하며 프로젝트를 중단했다.[38][22]

4. 비판

와파 빌랄의 작품들은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그의 컴퓨터 기반 예술 작품인 ''Virtual Jihadi''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인기 게임 ''퀘스트 포 사담''을 변형한 것으로, 플레이어는 빌랄 자신을 모델로 한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가 되어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15] 빌랄은 이 작품이 이라크 민간인의 취약성, 전쟁의 비극, 인종차별적 일반화 등을 폭로하고, 서구 중심적인 게임 서사에 도전하며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16]

그러나 2008년, 뉴욕주 트로이에 위치한 렌슬러 폴리테크닉 연구소(RPI)는 빌랄을 초청해 이 작품에 대한 강연을 열었으나,[17] 강연 다음 날 돌연 캠퍼스 내 전시 지원을 철회하고 전시를 취소했다.[18] 이러한 결정은 RPI 대학 공화당 측이 예술 부서를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은신처"라고 비난한 후에 내려졌으며 (이후 해당 발언은 철회됨), 연구소는 언론의 자유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19]

또한, 30일간 진행된 퍼포먼스 ''가정 내 긴장''(Domestic Tension)에서도 빌랄은 온라인 관람객들로부터 끊임없는 비난에 직면했다. 인터넷 생중계 채팅방에서 일부 관람객들은 빌랄이 페인트볼 총격을 피하려 한다거나 퍼포먼스를 조작한다고 비난했으며, 때로는 인종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12]

그의 다른 작품들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머리 뒤에 카메라를 이식했던 "3번째 눈(The 3rd I)" 프로젝트는 1년 동안 매 분마다 이미지를 캡처하여 3rdi.me 웹사이트와 아랍 현대 미술관에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사생활 침해 우려로 인해 소속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카메라를 가려야 했고,[21] 결국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카메라를 제거해야 했다.[22] 또한 사담 후세인 정권의 고문 방식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 《Raze 213》은 부패하는 고기 냄새 때문에 보건 당국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다.[3]

참조

[1] 간행물 Not Just for Art's Sake: Exhibiting Iraqi Art in the West after 2003 World Scientific 2012
[2] 웹사이트 Domestic Tension Frequently Asked Questions http://www.wafaabila[...] 2007-06-22
[3] 웹사이트 Shot More Than 40,000 Times, an Iraqi Artist Spreads a Message with a Paintball Gun http://www.alternet.[...] 2007-06-22
[4] 간행물 Ghosts of Futures Past: Iraqi Culture in a State of Suspension School of Fine Arts, Cyprus University null
[5] 웹사이트 CV http://www.crudeoils[...] 2007-06-21
[6] 웹사이트 New York University – About NYU – Search http://www.nyu.edu/s[...] New York University 2008-09-06
[7] 웹사이트 Wafaa Bilal http://www.chicagotr[...] Chicago Tribune 2008-09-06
[8] 뉴스 Antiwar Art in a New Medium: Painball-on-Web https://www.washingt[...] 2014-03-27
[9] 서적 Shoot an Iraqi https://archive.org/[...] City Lights 2008
[10] 서적 Shoot an Iraqi https://archive.org/[...] City Lights 2008
[11] 서적 Shoot an Iraqi https://archive.org/[...] City Lights 2008
[12] 서적 Shoot an Iraqi https://archive.org/[...] City Lights 2008
[13] 서적 Shoot an Iraqi https://archive.org/[...] City Lights 2008
[14] 서적 Shoot An Iraqi https://archive.org/[...] City Lights 2008
[15] 웹사이트 RPI Students for Free Culture wiki http://rpi.freecultu[...] 200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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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서 In the Name of Art, Wafaa Balil is a Walking Tripod http://www.pcworld.c[...]
[22] 문서 Health Problems Force Professor to Pull Camera From Back of Head http://chronicle.com[...]
[23] 웹사이트 Statement http://www.crudeoils[...] 2007-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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