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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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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압은 다윗 왕 시대의 군대 사령관으로,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며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제였다. 그는 아브넬 살해로 복수하고, 시온 산 요새 공격을 이끌어 군대 사령관이 되었으며, 아람, 암몬, 모압,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압살롬을 죽였으며,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아도니야를 지지하다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 용맹한 전사이자 유능한 장군으로 평가받지만, 거만하고 복수심이 강하며 부도덕한 면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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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
기본 정보
요압
요압
직업군 사령관
소속다윗 왕국
가족아버지: 스루야
어머니: 다윗의 누이 또는 자매
형제: 아비새, 아사헬
생애
주요 활동다윗의 군대 사령관
압살롬 살해
관련 인물다윗
압살롬
솔로몬
종교적 관점
종교유대교
중요성다윗 왕국의 중요한 군사 지도자

2. 이름

요압이라는 이름은 다른 많은 히브리어 이름과 마찬가지로 신명 숭배적이며, 야훼(יהוה|야훼he),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과 '아브'(אָב|아브he)라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이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야훼[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3. 생애

요압은 다윗 왕의 누이인 츠루야의 아들이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수리라고 불렸다.[1] 요압에게는 아비새와 아사헬이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요압의 생애는 크게 다윗과의 활약과 말년으로 나눌 수 있다.

모건 성경에 실린 그림으로, 사무엘기 20장에 나오는 요압이 세바를 추격하여 아벨벳마아가까지 갔고, 세바의 머리가 그에게 던져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모건 그림 성경의 한 페이지로, "압살롬의 생애 장면" (c. 1250년)

3. 1. 다윗과의 활약

요압이 언제부터 다윗의 휘하 장수로 활동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며 츠루야의 아들이며 이스보셋과의 기브온 전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브온 전투에서 적장 아브넬에게 동생 아사헬을 잃었고 이에 대한 복수로 후에 아브넬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로 망명했을 때 그를 쳐 죽였다.[1]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압에게 저주를 내렸다.

그 후 요압은 다윗과 함께 여러 전쟁에 참전하며 수많은 이민족들을 무찔렀고 랍바 전투에서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들었다.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압살롬을 처형했다. 하지만 세바의 난 때 반란을 진압하던 도중 기브온에서 아마사를 살해했다. 이것 역시 아브넬을 살해한 것과 같이 그의 큰 죄악이 되고 말았다.[1] 그의 동생 아비사이 역시 30인 부대의 우두머리로 적군 300명을 죽이고 무찔러 공을 세웠고 그의 무기병 브에롯 사람 나하라이 역시 다윗의 용사였다.

요압은 시온 산 요새 공격을 이끌었고, 다윗은 그를 군대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아람, 암몬, 모압, 에돔을 상대로 군대를 이끌었다. 그는 또한 우리야 살해 사건에서 다윗과 공모했다.

요압은 압살롬의 반란 동안 다윗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윗의 아들 중 하나인 압살롬은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을 규합하여 다윗에게 반역했고, 다윗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 그의 부하들에게 전투에서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압살롬이 살아 있는 채 나무에 걸려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요압과 그의 부하들이 그를 죽였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압은 다윗을 찾아가 꾸짖었다. 왕은 요압의 조언에 따라 군대를 격려하기 위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중에 다윗은 그를 다윗의 조카인 아마사를 군대 사령관으로 교체했다. 요압은 나중에 아마사를 죽였다.

3. 2. 말년

그러나 요압은 다윗 말년에 에브야타르 사제와 의논하여 하낏의 아들 아도니야를 왕으로 지지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 소식이 예언자 나단과 다윗의 아내 밧세바에 의해 다윗에게로 전해지자 다윗은 후계자로 정했던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고 그러자 아도니야의 무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요압 역시 도망쳤고 에브야타르 사제가 해임당하자 놀라 성전의 천막으로 도망쳐 제단의 뿔을 잡았다. 그러자 솔로몬은 부친 시절 다윗의 허락을 받지 않고 요압이 아브넬아마사를 죽인 죄를 물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냈다.

결국 요압은 천막 밖으로 끌려져 나와 브나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요압은 광야에 있던 자기 집에 묻혔고 요압의 자리는 브나야가 차지했다.

4. 평가

ATS 성서 사전은 요압을 "용맹한 전사이자 유능한 장군이었으며, 그의 공공 업무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은 압살롬의 반역과 이스라엘 인구 조사 등에서 종종 선을 위해 발휘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으로서 거만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부도덕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2]

참조

[1] 서적 Antiquities of the Jews https://www.ccel.org[...]
[2] 간행물 ATS Bible Dictionary: "Joab" http://classic.study[...] Public Domain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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