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복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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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복(일본)은 일본의 전통적인 성인 의식으로, 남성은 12세에서 16세 사이에, 여성은 초경을 전후하여 치렀다. 남성의 경우, 옷을 갈아입고 머리 모양을 바꾸는 의식을 통해 성인이 되었으며, 여성은 모착(裳着)이라는 의식을 통해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공적인 제도로서의 원복은 쇠퇴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 행사나 축제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 일본에서는 성인 연령이 만 18세로 변경되었으며, 전통적인 성인식의 의미와 현대 사회의 변화를 조화시키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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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복 (일본) | |
---|---|
개요 | |
이름 | 원복 (元服) |
일본어 표기 | 겐푸쿠 (げんぷく) |
로마자 표기 | Genpuku |
한국어 음독 | 원복 (元服) |
설명 | |
정의 | 일본에서 남자가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 |
시기 | 일반적으로 12세에서 16세 사이. |
역사 | 나라 시대에 당나라의 관례를 모방하여 시작됨. 헤이안 시대에 귀족 사회에서 널리 행해짐. |
의례 |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관모를 씀. 성인의 복장으로 갈아입음. 이름을 고쳐 짓거나 새로운 이름을 받음. |
의미 |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갖게 됨을 의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게 됨을 의미. |
현대의 원복 | 현대에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행해지는 경우는 드뭄. 성년의 날에 기념하는 형태로 변화됨. |
참고 문헌 | |
참고 문헌 정보 | 헤이본샤 편, "신판 일본사 모노사전", 헤이본샤, 2017년 6월 21일, 158쪽, ISBN 9784582124293 |
2. 한국의 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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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원복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는 의례였다. 시대와 계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는 민간에도 보급되었다. 남성의 원복은 해당 문단을, 여성의 원복은 해당 문단을 참조하라.
3. 일본의 원복
3. 1. 남성의 원복
일본 남성의 원복은 만 나이 12세에서 16세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인식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의식에서는 씨족신의 사당 앞에서 어른의 옷으로 갈아입고, 총각(각발, 미즈라)이라고 불리는 아이의 머리 모양을 어른의 머리(관 아래의 뭉치, 칸무리시타노모토도리)로 바꾸어 묶고, 관친(冠親)에 의해 관을 쓰는 가관(加冠) 의식을 치렀다.[2] 원복 이전에는 궐액(闕腋)의 포를 입지만, 원복 후에는 봉액(縫腋)을 입는다.
무가에서는 갓을 씌워주는 사람을 오보시친이라 불렀고, 원복을 하는 사람을 오보시코라고도 불렀다. 공가나 헤이시 계통의 무가에서는 짙은 화장, 눈썹 문신에 오하구로도 했지만, 겐지 계통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가마쿠라부터 무로마치 전반에 걸쳐서는 갓을 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습관이 생겼다. 갓을 쓰지 않는 것은 승려와 빈민, 유랑인뿐이었다고 한다. 전국 시대부터 무가를 중심으로 마게 모습이 주류가 되었고, 에도 시대에는 공가를 제외하고 무가와 서민 사이에서는 원복 때 갓을 쓰지 않고 앞머리를 깎아 사카야키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원복을 할 때에는 대부분 유아명을 폐지하고 개명을 한다. 공가·무가에서는 휘를 새로 짓고,[3] 동료나 상급자가 오보시친인 경우에는 그 편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원복을 하는 나이는 다양했는데, 일반적으로 만 15세 - 21세 정도였고, 궁중에서는 만 12세 - 18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나이는 지방, 상업 도시, 촌락 공동체(농촌, 어촌 등)에 따라 달랐으며, 일족 시조의 원복 연령에 맞춘 씨족도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만 5세(1597년)에,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리 친왕은 만 41세(1411년)에 원복을 하는 등 매우 이르거나 늦은 예도 있었다. 원복 후에는 수작이나 서위 임관이 행해지는 등, 원복에는 공적인 의미도 있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공적인 제도로서의 원복은 쇠퇴하고, 일부에서 사적으로 행해질 뿐이었다.
3. 2. 여성의 원복 (모착)
헤이안 시대부터 센고쿠 시대 무렵까지, 초경을 맞이한 여성은 '''모착'''(裳着)을 입고 성인의 증표로 삼았으며, 결혼이 허가되는 증표가 되었다.[5] 초기에는 모착이 없고, 머리 올리기 의식만 있었다고 한다.
여자에게 모(裳)를 입히는 역할을 "'''코시유이'''"(腰結)라고 불렀으며, 귀인, 혹은 일족의 장로 등의 남성이 맡았다. 길일 날짜에, 모착의 허리끈을 묶고, 머리 올리기를 한 후, "'''테츠쇼오야'''"(鉄漿親)가 입회하여, 여자는 처음으로 오하구로를 하고, 눈썹을 밀고, 두꺼운 화장을 하여 덴조마유를 그리는 것이 허용되었다(히키마유).
모착 이후에는, 고소데는 흰색을, 하카마는 비단을 입었다(현대에 보이는 무녀 복장과 비슷하다). 테츠쇼오야는 일족의 웃어른 여성(백모, 숙모 등)이나 친한 연배의 여성이 행했지만, 시대가 내려갈수록 결혼과 동시의 의식이 되었기 때문에, 중매인이 테츠쇼오야를 겸하는 경우도 많았다.
3. 3. 현대의 원복 의식
메이지 시대 이후 원복 풍습은 사라졌고, 1896년 민법에서 만 20세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성인으로 규정하였다.[5] 메이지 6년의 징병령에 의해 남자는 만 20세에 징병 검사를 받게 되었다. 징병 검사나 그 후의 병역은 남자가 성인이 되는 통과 의례처럼 여겨졌다.
2022년에 시행된 개정 민법에서는 성인 연령이 만 18세로 변경되었다. 현대 일본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전통적인 원복 의식을 재현하거나, 학교 행사로 입지식(立志式), 입춘식(立春式), 소년식(少年式), 원복식(元服式) 등을 거행하기도 한다.
4. 현대 사회와 성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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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서적
新版 日本史モノ事典
平凡社
[2]
서적
在京大名細川京兆家の政治史的研究
思文閣出版
[3]
간행물
豊臣秀吉の唐冠と子息秀頼
國學院大學
[4]
간행물
『大鏡』の構成 : 列伝構成における太政大臣中心主義をめぐって
https://cir.nii.ac.j[...]
立命館大学日本文学会
[5]
문서
남자의烏帽子親に相当する。なお、「鉄漿」は「おはぐろ」とも読み、お歯黒の別名でもある。歯を染めるために使った鉄の溶液、またはそれを付ける行為を指す。
[6]
웹사이트
近江八幡市 湖国に春を呼ぶ~火祭り行事左義長
http://bunkashisan.n[...]
一般財団法人地域創造「地域文化資産ポータル」
[7]
뉴스
御岳登山鉄道 武蔵御嶽神社の元服式、参加募る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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