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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 (동해공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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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강(동해공왕)은 후한 광무제의 아들로, 어머니는 광무제의 첫 번째 황후 곽성통이다. 그는 황태자에서 동해왕으로 봉해졌으며, 광무제의 후한 대우를 받았으나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강은 공왕으로 시호되었으며, 아들 유정이 동해왕의 지위를 계승했고, 후한 말의 유우는 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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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 (동해공왕)
기본 정보
다른 이름 표기가명・작위: 동해왕 (시호: 동해공왕)
전체 이름유강
신분황태자→왕
경칭전하
출생일건무 원년 (25년)
사망일영평 원년 (58년)
향년34세
아버지광무제
어머니곽황후
가족 관계
자녀유정
비양장공주 (두황후의 어머니)

2. 가계

항목내용
부황광무제 유수
모후광무황후 곽씨
동생패헌왕 유보
이복동생제2대 명제
조카제3대 장제 (조카이자 외손녀 사위)
왕후
아들동해정왕 유정 (5대손 유우)
비양공주(沘陽公主)
사위두훈(竇勳)
외손녀장덕황후 두씨(章德皇后 竇氏) (제3대 장제의 비)


3. 생애

유강은 광무제의 첫 번째 황후인 곽성통의 아들로, 건무 2년(26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황후에서 폐위되자 제후왕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건무중원 원년(56년) 태산에서의 봉선에 동행하고, 영평 원년(58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34세로 공왕으로 시호되었으며, 아들 유정이 뒤를 이었다. 후한 말 유우는 유강의 자손이다.

3. 1. 황태자 시절

어머니는 광무제의 첫 번째 황후인 곽성통이었다. 건무 2년(26년), 어머니가 황후로 책봉됨과 동시에 유강은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건무 17년(41년)에 어머니가 황후에서 폐위되자, 유강도 불안감을 느껴 측근과 여러 제후왕을 통해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나 제후왕이 되기를 원했다. 광무제는 폐위시키기를 차마 못하고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를 수락하여 건무 19년(43년)에 유강은 동해왕이 되었고, 건무 28년(52년)에 영지로 부임했다.

3. 2. 동해왕 시절

어머니는 광무제의 첫 번째 황후인 곽성통이었다. 건무 2년(26년), 어머니가 황후로 책봉됨과 동시에 유강은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건무 17년(41년)에 어머니가 황후에서 폐위되자, 유강도 불안감을 느껴 측근과 여러 제후왕을 통해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나 제후왕이 되기를 원했다. 광무제는 폐위시키기를 차마 못하고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를 수락하여 건무 19년(43년)에 유강은 동해왕이 되었고, 건무 28년(52년)에 영지로 부임했다.

과실로 폐위된 것이 아니라 예에 따른 태도를 보였기에, 광무제는 유강을 후하게 대우하여 노군을 포함한 29개의 현을 영토로 주었으며, 수레와 궁전의 가구는 황제와 동등한 것으로 허락했다. 그러나 유강은 동해군을 반납할 것을 요청했고, 광무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감탄하여 그 글을 신하들에게 보여주었다. 노에는 과거 전한의 노왕인 유여가 만든 웅장한 영광전이라는 궁전이 있었기에, 광무제는 유강에게 노에 도읍을 정하도록 명했다.

건무중원 원년(56년)에 입조하여, 태산에서의 봉선에 동행했다. 이듬해 봄에 광무제가 사망하고, 겨울에 귀국했다.

그 이듬해인 영평 원년(58년), 유강은 병이 들었다. 동생인 명제는 의원을 보내고 형제와 제후왕들에게 노로 가도록 명했지만, 유강은 사망했다. 명제는 사공을 파견하여 장례를 주관하게 하고, 특별한 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3. 3. 죽음과 후손

건무중원 원년(56년)에 입조하여, 태산에서의 봉선에 동행했다. 이듬해 봄에 광무제가 사망하고, 겨울에 귀국했다.

그 이듬해인 영평 원년(58년), 유강은 병이 들었다. 동생인 명제는 의원을 보내고 형제와 제후왕들에게 노로 가도록 명했지만, 유강은 사망했다. 명제는 사공을 파견하여 장례를 주관하게 하고, 특별한 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향년 34세. 공왕으로 시호되었으며, 영지는 아들인 유정(동해정왕)이 계승했다. 동해왕은 그 후에도 자손에 의해 계승되어 후한이 멸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후한 말 반동탁 동맹의 영주로서 황제 후보까지 되었던 유우는, 동해왕의 일족으로 유강의 자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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