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농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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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상민은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연세대학교 시절 농구 선수로 활약하며 "오빠 부대"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으며, 1995년 현대 농구단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현대, KCC, 삼성 등에서 활동하며 KBL 챔피언십 우승을 여러 차례 달성했고,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9-10 시즌을 끝으로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서울 삼성 썬더스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전주 KCC 이지스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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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농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이상민 |
한자 표기 | 李相旼 |
로마자 표기 | I Sang-min |
선수 정보 |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신장 | 183 cm |
출생일 | 1972년 11월 11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 학교 | 연세대학교 |
드래프트 | 1995년 |
은퇴 년도 | 2010년 |
선수 경력 | |
프로 입단 | 1995년 |
소속 팀 | 현대/대전 현대 다이너스/대전 현대 걸리버스/전주 KCC 이지스 (1995–2007) 상무 (군 복무) (1995–1997) 서울 삼성 썬더스 (2007–2010) |
코치 경력 | |
코치 시작 | 2011년 |
코치 종료 | 2022년 |
코치 팀 | 서울 삼성 썬더스 (2012–2022) |
수상 내역 | |
선수 | 3x KBL 챔피언십 (1998, 1999, 2004) 3x KBL 정규 시즌 챔피언 (1998, 1999, 2000) ABA Club Championship (2007) 2x KBL 최우수 선수상 (1998, 1999) KBL 플레이오프 MVP (2004) 4x KBL 베스트 5 (1998, 1999, 2002, 2004) KBL 올타임 레전드 12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11 영구 결번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
아시안 게임 | 은메달: 1994 히로시마 은메달: 1998 방콕 금메달: 2002 부산 |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 은메달: 1995 서울 금메달: 1997 리야드 은메달: 1999 후쿠오카 |
2. 선수 경력
이상민은 고교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으로 주목받았다. 연세대학교에 진학해서는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대학 농구를 평정했다. 특히, 당시 최강팀이었던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3학년 때는 농구대잔치에서 성인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5년 상무에서 선수로 뛰던 중, 대한민국 남자 농구 사상 최초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21]
프로 선수 생활 동안 현대와 KCC에서 활약하며 팀을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삼성으로 이적한 후에도 팀을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시키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은퇴할 때까지 뛰어난 기량과 성실함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전주 KCC 이지스에서 영구 결번되었다.[13]
2. 1. 아마추어 시절
이상민은 당시 고교 강팀이었던 용산고, 경복고 등을 물리치고 팀 동료 노경석과 함께 홍대부고를 고교 정상에 올려놓으며 고교 최고의 선수로 주목받았다. '제2의 김현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문경은, 정재근, 이상범, 김재훈, 오성식이 활약하며 성인 농구 판도를 흔들 준비가 되어 있던 연세대학교로 진학했다.[4] 연세대 진학 후에는 장기였던 3점슛이나 속공 돌파보다는 팀 동료들에게 어시스트 및 패스를 제공하여 득점에 도움을 주는 포인트 가드 역할을 도맡아 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최희암 감독의 분업 농구로 인해 대학 시절 이상민의 포인트 가딩 실력이 틀을 잡게 되었다. 이상민이 재학하던 연세대 4년 동안 연세대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비록 연대의 독주를 막기 위해 고려대학교의 현주엽, 전희철, 김병철, 신기성, 양희승 등이 분전했지만, 상대 전적으로나 성인 무대에서 이상민의 연세대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당시 허재, 강동희, 김유택이 이끄는 한국 농구 최강이던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그가 3학년이던 무렵에는 기아자동차, 상무,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기라성 같은 성인 팀을 모두 이기고 농구대잔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4학년 마지막 농구대잔치에서는 후배 서장훈, 우지원, 김훈, 김택훈, 구본근 등을 이끌고 농구대잔치 14연승을 거두고 결선 8강에 올랐지만, 부상과 상대 팀인 삼성전자의 거친 수비와 파울에 의해 4강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상무 입대 후 선배 문경은과 함께 다시 농구대잔치 결승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후배인 서장훈, 김택훈, 황성인, 조상현, 조동현이 이끄는 연세대에 패해 우승컵을 내주기도 했다.
이상민은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았다.[4] 그의 연세대학교 시절은 국내 대학 농구의 "황금기"로 불리는 시기와 일치했다. 그와 그의 동료 선수들은 전통적인 라이벌 고려대학교 선수들과 함께 실력과 수려한 외모로 인해 아이돌 가수나 톱스타 배우들과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누렸다. 그는 연세대 동료 선수들인 문경은과 우지원, 그리고 고려대학교의 현주엽과 전희철 등과 함께 언론으로부터 "오빠 부대"로 불렸다.[5][6][7]
상무 팀에서 뛰는 동안 그는 국내 선수 최초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그는 당시 실업 시대의 주요 농구 대회였던 전국 농구대잔치에서 SBS를 상대로 이 기록을 달성했다.[2] 1995년 1월 26일 서울방송과의 조별 경기에서 13득점 17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해 앞서 1월 11일 대한민국 농구 사상 최초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현대산업개발 김은영에 이어 두 번째이자 남자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21]
2. 2. 프로 시절
Johnny McDowell영어과 함께 현대 걸리버스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KCC 시절을 거쳐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후 팀을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올렸지만, 아쉽게도 우승컵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35세(만 나이)에는 LG 세이커스를 상대로 프로 시절 개인 최고 득점인 35점을 기록하기도 했다.[2]1997년 제대할 무렵, 프로 농구 리그가 출범했다.[10] 추승균, 조성원과 함께 "이-조-추 트리오"로 불리며 현대의 1998년과 1999년 정규 시즌 및 KBL 챔피언십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추승균과 조성원은 슛 능력과 외곽에서의 기량으로, 이상민은 어시스트와 패스로 명성을 떨쳤다.[11] 말년에는 수비 능력도 발전하여 공격과 수비 모두에 기여하는 "투-웨이" 포인트 가드로 명성을 얻었다.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까지 500경기 이상에서 173개의 블록을 기록했는데, 이는 국내 선수 중 가드 포지션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며, 평균 포워드와 센터보다 최소 10cm 작았다.[12]
2. 2. 1. 국가대표 경력
이상민은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었다. 필리핀과의 준결승전에서 66-68로 뒤지고 있던 경기 종료 1분 전, 3점슛을 성공시켜 69-68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14] 대한민국은 이 승리로 20년 만에 농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2]3. 지도자 경력
2010~11 시즌 후 은퇴하고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12년에 서울 삼성 썬더스 코치로 영입되었으며,[15] 2014년 4월 13일에 서울 삼성 썬더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15] 2016~17시즌에는 감독 부임 3년 만에 팀을 프로농구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천기범의 음주운전 사건 여파로 2022년 1월 26일에 사퇴했으며,[16] 이후 이규섭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16]
2023년 6월, 전창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전주 KCC 이지스의 코치로 합류했다.
4. 에피소드
-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167cm의 단신이었으나, 2년 동안 16cm가 자랐다고 한다.
- 19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80cm의 서전트 점프를 이용해 투핸드 덩크슛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 본디 실업 농구단에 입단한 선수들은 한 시즌을 뛰고 상무에 입단하나, 그는 연세대학교 4학년 때 당한 무릎 부상 치료를 위해 현대전자 입단 후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다고 한다.
- 1999년 여름에 KBL이 낸 프로젝트 앨범 "별들의 전쟁"에서 <진심>이라는 노래를 취입한 적이 있다.
-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 정민철은 그와 농구와 골프를 함께하는 사이이다. 2009년 정민철의 은퇴 경기에서 정민철의 지인들이 정민철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상영 시간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편의 영상편지는 그의 것이었다.
5. 경력
기간 | 팀명 | 비고 |
---|---|---|
1997년~2007년 | 대전 현대 다이넷/현대 걸리버스/전주 KCC 이지스 | |
2007년~2010년 | 서울 삼성 썬더스 | 이적 |
2012년 4월 4일~2014년 4월 13일 | 서울 삼성 썬더스 | 코치 |
2014년 4월 13일~2022년 1월 26일 | 서울 삼성 썬더스 | 감독 |
연세대학교 시절, 이상민은 문경은, 우지원 등 연세대 동료들과 고려대학교의 현주엽, 전희철 등과 함께 "오빠 부대"로 불리며 농구 인기를 이끌었다.[5][6][7] 1995년, 대전을 연고로 하는 현대와 계약 후,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하며 국내 선수 최초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9][2]
1997년 제대 후, 프로 농구 리그 출범과 함께 이상민은 현대의 1998년과 1999년 정규 시즌 및 챔피언십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추승균, 조성원과 함께 "이-조-추 트리오"로 불리며 활약했다.[11] 이상민은 2009-10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으며, 그의 등번호 10번은 전주 KCC 이지스에서 영구 결번되었다.[13]
참조
[1]
웹사이트
Lee Sang-Min
https://www.sports-r[...]
sports-reference
2014-12-09
[2]
뉴스
상민이 오빠, 안녕!
https://weekly.donga[...]
2010-05-03
[3]
뉴스
터보 가드 vs 천재 가드… 감독으로 재격돌
https://www.chosun.c[...]
2017-04-21
[4]
뉴스
현대 다이냇 농구선수 이상민 동문 (95년 경영학과 마침)
http://chunchu.yonse[...]
Yonsei University
1995-05-10
[5]
뉴스
[스포츠 특별기획] 원조 '오빠부대장' 문경은-이상민은 올해도 전쟁 중
https://jmagazine.jo[...]
joins.com
2020-10-1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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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우지원 등 오빠들이 돌아왔다
https://www.joongang[...]
2003-11-04
[7]
뉴스
[솔직토크] '은퇴하는 세 거물' 문경은-이상민-우지원
https://www.chosun.c[...]
2010-05-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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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
1994-02-1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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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문경은 상무 입단
https://www.joongang[...]
1995-04-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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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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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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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13]
뉴스
이상민 11번·우지원 10번·문경은 10번, 코트의 전설로…
https://www.donga.co[...]
2010-10-15
[14]
뉴스
Remember Lee Sang Min? Korean great who broke Pinoys' hearts in 2002 Asiad watches PBA game largely unnoticed
https://www.spin.ph/[...]
Spin.ph
2013-06-15
[15]
뉴스
삼성, 이상민 감독 발탁 "우승 이끌 적임자"
https://news.kbs.co.[...]
Korean Broadcasting System
2014-04-13
[16]
뉴스
'최하위·선수 음주운전' 프로농구 서울 삼성 이상민 감독 사임
https://www.hani.co.[...]
2022-01-26
[17]
문서
부산 KCC 이지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18]
뉴스
한겨레신문
1991-04-17
[19]
뉴스
동아일보
1991-04-17
[20]
뉴스
매일경제
1995-02-19
[21]
뉴스
한겨레
199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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