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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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성교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교육자이다. 1960년 성신여자중학교·고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등을 역임하며 문학 활동을 펼쳤으며, 작품 세계에서는 진실한 시를 추구하며 고향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향토적 서정시를 주로 썼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산음가》,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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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은 1950년 부산 출생의 가수, 기업인으로, 1970년 가수로 데뷔하여 활동하다가 연예계를 은퇴하고, 이후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이성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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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관 | 경주 이씨 |
호 | 월봉(月峰) |
출생 | 1935년 9월 15일 |
사망 | 2021년 12월 9일 (향년 86세) |
직업 | 시인 |
출신지 | 강원도 삼척시 |
배우자 | 김영자 |
학력 | |
학력 |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경력 | |
경력 |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 한국문인협회 강원도지회장 강원문화재단 이사 강원도 문화상 심사위원 |
2. 경력
이성교는 1960년 4월 성신여자중학교·고등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였다.[3] 1964년 9월 중앙대학교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학위논문은 '한국현대시의 리리시즘 연구'이다.[3]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3]
교육자로서 이성교는 성신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 한세대학교 이사, 성신여자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정보산업대학원장을 역임했고,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되었다.[3] 문학가 및 연구자로서는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화예술인선교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국민일보 이사,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의 직무를 수행했다.[3]
1968년~1974년 한국문인협회 이사,[3] 1974년~1976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3] 1977년~1978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3] 2001년~2002년 한국기독문인협회 회장,[3] 2006년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3]
2. 1. 생애 초기
2. 2. 학업 및 등단
이성교는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월천리 234번지(후일의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234번지)에서 태어났다.[3] 1942년 초등학교 입학시험에서 3번 낙방 후 11세 때 이천간이학교(2년제)에 입학, 1944년 호산초등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3] 1948년 호산초등학교 졸업 후 그 해 7월 강릉공립상업중학교에 입학했다.[3] 1 ․ 4후퇴 때 방위군으로 소집되었다가 도주하여 귀향, 장질부사에 걸려 석 달간 앓아 누웠다.[3] 중학교 졸업 후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3]1954년 강릉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학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했다.[3] 1956년 국학대학 3학년 때 시인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9월호에 그의 시 <윤회>가 등재되고, 12월호에 <혼사>가 2회 추천되었으며, 1957년 「현대문학」 2월호에 <노을>로 3회 추천되어 등단했다.[3] 1958년 국학대학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3]
1960년 4월 성신여자중학교·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1964년 9월 중앙대학교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학위논문은 '한국현대시의 리리시즘 연구'이다.[3]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3]
2. 3. 교육자 및 문학 활동
이성교는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월천리(후일의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서 태어났다. 1942년 초등학교 입학시험에서 3번 떨어지고 11세 때 이천간이학교(2년제)에 입학, 1944년 호산초등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48년 호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7월 강릉공립상업중학교에 입학했다. 1951년 1·4 후퇴 때 방위군으로 소집되었다가 도주하여 귀향, 장질부사에 걸리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1954년 강릉상업고등학교를 졸업, 국학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했으며, 1956년 국학대학 3학년 때 시인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9월호에 그의 시 〈윤회〉가 등재되고, 12월호에 〈혼사〉가 2회 추천되었으며 1957년 《현대문학》 2월호 〈노을〉로 3회 추천되어 등단했다. 1958년 국학대학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4월 성신여자중학교·고등학교의 교사로 부임, 1964년 9월 중앙대학교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학위논문은 '한국현대시의 리리시즘 연구'이다. 1968년부터 1998년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교육자 경력으로는 성신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 한세대학교 이사, 성신여자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정보산업대학원장으로 일을 했고,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되었다. 문학가 및 연구자로서는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화예술인선교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국민일보 이사,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의 직무를 수행했다.
1968년~1974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1974년~1976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77년~1978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2001년~2002년 한국기독문인협회 회장, 2006년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묘소는 경기 오산리기도원 메모리얼파크에 있다.[3]
3. 작품 세계
이성교 시인은 진실한 시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듯이 시를 쓸 때도 진지해야 되고 이 진실이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말한다.[1] 또, 그는 글을 씀에 있어서 주제, 구성, 표현이 중요한데 표현에 있어서 더 섬세한 단어를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1] 이성교는 고향에 대한 시도 많이 쓴다.[1] 이성교 시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강원도 시골 태생이여서 향토적이고 주정적인 시를 많이 쓴다.[1] 그가 쓴 정통적인 시에는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눈온 날 저녁>, <남행길>, <강원도 바람>, <동해안>, <운두령을 넘으며> 등이 있다.[1] 문학평론가 윤병로는 "김소월이 평안도를, 박목월이 경상도를, 서정주가 전라도를 노래했다면 이성교는 강원도를 노래했다"라고 말했다.[1]
3. 1. 주요 특징
이성교 시인은 진실한 시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듯이 시를 쓸 때도 진지해야 되고 이 진실이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말한다.[1] 또, 그는 글을 씀에 있어서 주제, 구성, 표현이 중요한데 표현에 있어서 더 섬세한 단어를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1] 이성교는 고향에 대한 시도 많이 쓴다.[1] 이성교 시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강원도 시골 태생이여서 향토적이고 주정적인 시를 많이 쓴다.[1] 그가 쓴 정통적인 시에는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눈온 날 저녁>, <남행길>, <강원도 바람>, <동해안>, <운두령을 넘으며> 등이 있다.[1] 문학평론가 윤병로는 "김소월이 평안도를, 박목월이 경상도를, 서정주가 전라도를 노래했다면 이성교는 강원도를 노래했다"라고 말했다.[1]3. 2. 향토적 서정시
이성교 시인은 진실한 시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듯이 시를 쓸 때도 진지해야 되고 이 진실이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말한다. 또, 그는 글을 씀에 있어서 주제, 구성, 표현이 중요한데 표현에 있어서 더 섬세한 단어를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이성교는 고향에 대한 시도 많이 쓴다. 이성교 시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강원도 시골 태생이여서 향토적이고 주정적인 시를 많이 쓴다. 그가 쓴 정통적인 시에는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눈온 날 저녁>, <남행길>, <강원도 바람>, <동해안>, <운두령을 넘으며> 등이 있다. 문학평론가 윤병로는 "김소월이 평안도를, 박목월이 경상도를, 서정주가 전라도를 노래했다면 이성교는 강원도를 노래했다"라고 말했다.
4. 한국문학에 대한 시각
이성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며, "베스트 셀러"라는 이름을 단 시를 따라가지 말고 그 속의 알멩이를 새롭게 자신의 생활을 노래해야 한다고 말한다.[1]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사람이 7천 명이 넘어 문예지에 발표되는 작품의 수가 매우 많기에, 현재 문학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1] 또한, 문예지가 단지 작품 발표 수단이 아니라 문단의 여러 소식과 문학의 지향 방향을 토의하는 활동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
5. 주요 작품 목록
이성교는 여러 시집과 평론집을 출간했다. 1965년에는 《산음가》와 《겨울바다》를 출간했다. 1974년에는 《보리 필 무렵》, 1984년에는 《대관령을 넘으며》, 1989년에는 《하늘가는 길》, 1996년에는 《동해안》을 출간했다. 평론집으로는 1982년에 《현대시의 모색》, 1985년에 《한국 현대시 연구》, 1997년에 《한국 현대시인 연구》를 출간했다.
6. 수상 내역
이성교는 1966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1979년에는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1984년 국민훈장 국민포장을 받았고, 1997년에는 한국기독교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8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2001년에는 장로문학상과 한국글사랑문학회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05년에는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참조
[1]
웹인용
이성교 시인 - 강원도의 힘
http://dsb.kr/detail[...]
드림서치
2013-02-13
[2]
웹인용
삼척 출신 이성교 시인 별세
http://www.kado.net/[...]
2021-12-10
[3]
뉴스
삼척 출신 이성교 시인 별세
https://www.kado.net[...]
강원도민일보
202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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