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자키 아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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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소자키 아라타는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 2022년 사망한 일본의 건축가이다. 그는 1945년 히로시마의 파괴를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의 공허함 속에서 재건을 고민하며 건축을 시작했다. 도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단게 겐조 밑에서 일했으며, 1963년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뉴 브루탈리즘과 메타볼리즘 건축 스타일을 혼합했고, 이후 미토 아트 타워,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팔라우 산 조르디 등을 설계하며 현대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2019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으며, 한 가지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의 맥락에 맞는 해결책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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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자키 아라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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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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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이소자키 아라타 |
출생 | 1931년 7월 23일 |
출생지 | 오이타 시, 일본 |
사망 | 2022년 12월 28일 |
사망지 | 나하시, 오키나와현, 일본 |
국적 | 일본 |
배우자 | 미야와키 아이코 |
사사 | 단게 겐조 |
모교 | 도쿄 대학 (1954년 및 1961년) |
경력 | |
주요 건축물 | 오이타 현립 오이타 도서관 쓰쿠바 센터 빌딩 로스앤젤레스 현대 미술관 엑스포70 페스티벌 플라자 아트 타워 미토 |
디자인 | |
주요 디자인 | 몬로 체어 |
저서 | 공간으로 |
수상 | |
수상 경력 | 1967년, 1975년 일본 건축 학회상 1969년 예술 선장 신인상 1984년 마이니치 예술상 1986년 RIBA 골드 메달 1988년 아사히상 1993년 일본 문화 디자인 대상 199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금사자상 2019년 프리츠커상 |
2. 생애 및 경력
이소자키 아라타는 단게 겐조에게 건축을 배우고 1963년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했다.[1] 초기에는 유럽 경험의 영향으로 "뉴 브루탈리즘"과 메타볼리즘"을 혼합한 스타일을 보였다.(오이타 의료센터, 1959~1960)[3] 이후 후지미 컨트리 클럽(1973~74), 기타큐슈 중앙 도서관(1973~74) 등을 통해 양식이 진화했다. 미토 아트 타워(1986~90), 스페인 갈리시아의 도무스-카사 델 옴브레(1991~1995) 등을 통해 더욱 현대적인 스타일을 개발했다.[3] 그는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각 프로젝트의 맥락에 맞는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8]
1983년 츠쿠바 센터 빌딩 준공으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선구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21] 1986년 도쿄도청사 설계 공모에 참가하여 단게 겐조 안에 대해 시티홀의 의미를 묻는 중층 건축물 안을 제출했다.[21] 1985년 뉴욕 팔라디움 나이트클럽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했고,[6] 1986년 완공된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은 그의 두 번째 국제 프로젝트이자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4]
1988년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의 초대 커미셔너를 맡았다(-1996년).[21] 1991년부터 2002년까지 『http://www.kojinkaratani.com/criticalspace/old/ 批評空間』지 편집 고문을 맡았다. 1996년, 2000년, 200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일본관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2005년 이탈리아 지사인 아라타 이소자키 & 안드레아 마페이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7] 밀라노 시티라이프의 알리안츠 타워,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새로운 타운 도서관 등이 주요 프로젝트다.[7]
2017년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19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2] 2020년 동제대학교 건축도시계획학원 명예교수가 되었다. 2022년 12월 28일 나하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9][23]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이소자키 아라타는 1931년 규슈(Kyushu) 섬의 오이타에서 태어나 전후 일본[4]에서 네 자녀 중 장남으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업가였다.[3] 1945년 그는 고향 맞은편 해안에서 히로시마의 파괴를 목격했다.[3] 그는 2019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면서 "건축물도, 건물도, 도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접한 건축은 건축의 공허였고, 사람들이 어떻게 집과 도시를 재건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3]이소자키는 오이타현 오이타 우에노가오카 고등학교(구 오이타 중학교)를 졸업했다. 1954년 도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동 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1] 1963년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설립하기 전에 단게 겐조 밑에서 일했다.[1]
그의 초기 생애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연도 | 내용 |
---|---|
1931년 | 이소자키 모지의 장남으로 태어남. 아버지 모지는 중학교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동아동문서원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가업인 미곡상과 회선업을 이어받았으며, 1924년에 오이타 고토우 트럭을 창업하고 전후에는 사장을 역임하였다.[21][22] |
1945년 |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22] |
1950년 | 오이타현립 오이타 제일고등학교(현 오이타현립 오이타 우에노오카 고등학교) 졸업. 동급생으로 아카세가와 준이 있었다. |
1951년 | 아버지 사망. |
1954년 | 도쿄대학교 공학부 건축학과 졸업. |
1960년 | 단게 겐조 연구실에서 구로카와 기쇼 등과 함께 도쿄 계획 1960에 참여. |
1961년 | 도쿄대학교 대학원 수물계 연구과 건축학 전공 박사 과정 수료. 이토 테이지, 가와카미 히데미쓰 등과 함께 하타 리야라는 필명으로 「현대건축 우작론」을 집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1963년 | 단게 겐조 연구실(도시건축설계연구소)을 퇴직하고 이소자키 신 아틀리에를 설립. |
2. 2. 초기 경력 및 영향
이소자키 아라타는 1931년 규슈(오이타현) 오이타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업가였다.[3] 1945년, 그는 고향 맞은편 해안에서 히로시마의 파괴를 목격했다.[3] 그는 훗날 "건축물도, 건물도, 도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접한 건축은 건축의 공허였고, 사람들이 어떻게 집과 도시를 재건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3]1950년, 오이타현립 오이타 제일고등학교(현 오이타현립 오이타 우에노가오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4년에는 도쿄대학교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동 대학교 대학원 수물계 연구과 건축학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1] 대학원 재학 중에는 단게 겐조 연구실에서 구로카와 기쇼 등과 함께 도쿄 계획 1960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3년, 그는 단게 겐조 연구실(도시건축설계연구소)을 퇴직하고 자신의 설계 사무소인 '이소자키 아라타 아틀리에'를 설립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레이너 배넘(Reyner Banham)에 의해 "뉴 브루탈리즘"과 "메타볼리즘 건축"이 혼합된 스타일로 평가받았다(오이타 의료센터, 1959~1960). 이후 후지미 컨트리 클럽(1973~74)과 기타큐슈 중앙 도서관(1973~74) 등을 통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2. 3. 주요 활동 및 양식 변화
이소자키 아라타는 단게 겐조의 밑에서 건축 경력을 시작하여 1963년에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설립했다.[1] 초기에는 유럽의 영향을 받은 "뉴 브루탈리즘"과 "메타볼리즘 건축" 스타일을 혼합한 건축물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오이타 의료센터(1959~1960)가 있다.[3]이후 그의 스타일은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후지미 컨트리 클럽(1973~74)과 기타큐슈 중앙 도서관(1973~74)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3] 1980년대부터는 미토 아트 타워(1986~90)와 스페인 갈리시아의 도무스-카사 델 옴브레(1991~1995)와 같은 건물들을 통해 더욱 현대적인 스타일을 개발했다.[3]
이소자키는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각 프로젝트의 맥락에 맞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8] 그는 "각 디자인은 프로젝트의 맥락에서 태어난 특정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8]
1983년 츠쿠바 센터 빌딩 준공을 통해 포스트모던 건축의 선구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21] 1986년에는 도쿄도청사 설계 공모에 참가하여, 초고층 건축의 단게 겐조 안에 대해 시티홀의 의미를 묻는 중층 건축물 안을 제출하기도 했다.[21]
2005년에는 이탈리아 지사인 아라타 이소자키 & 안드레아 마페이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7] 이 사무소는 밀라노의 시티라이프 프로젝트의 알리안츠 타워와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새로운 타운 도서관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7]
그의 다양한 활동과 양식 변화는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19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2]
2. 4. 후기 활동 및 사망
이소자키 아라타는 2005년 이탈리아 지사인 아라타 이소자키 & 안드레아 마페이 어소시에이츠(Arata Isozaki & Andrea Maffei Associates)를 설립했다.[7] 이 사무소의 주요 프로젝트는 밀라노의 시티라이프(CityLife)의 알리안츠 타워(Allianz Tower)와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새로운 타운 도서관이다.[7]일본 국내외에서 건물을 설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소자키는 한 가지 건축 양식에 매달리기를 거부하는 건축가로 묘사되었으며, "그의 각 디자인은 프로젝트의 맥락에서 태어난 특정한 해결책"임을 강조했다.[8]
2017년에는 일본예술원(日本芸術院)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2] 2020년에는 동제대학교(同済大学) 건축도시계획학원 명예교수가 되었다.
이소자키는 2022년 12월 28일 91세의 나이로 나하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9][23]
3. 주요 작품
이소자키 아라타는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는데, 그중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오이타 현립 도서관 (1962–1966)
-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MOCA) (1981–1986)
- 1992년 하계 올림픽 주 경기장인 팔라우 산 조르디 (1983–1990)
- 팔라디움 나이트클럽 건물 내부 (1985)
- 본드 대학교 – 도서관, 행정 건물, 인문대 건물 (1987–1989)
- 팔라폴스 스포츠 콤플렉스 파빌리온 (1987–1996)
- 일본 예술기술센터 (1990–1994)
- 나라 센테니얼 홀 (1992–1998)
- 도무스: 라 카사 델 옴브레 (1993–1995)
- COSI 콜럼버스 (1994–1999)
- 선전시 문화센터 (1998–2007)
- * 선전 도서관 및 선전 콘서트홀 포함
- 이소자키 아테아 (1999–2009)
- 토리노 팔라스포르트 올림피코 (2000–2006)
- 중국 중앙미술학원 박물관 (2003–2008)
- 테살로니키 콘서트홀 신청사 (2003–)
- 히말라야 센터 (2003–)
- 제2차 세계 대전 일본군 파빌리온, 지앤촨 박물관 클러스터 (2004–2015)
- 다이아몬드 아일랜드 (2006–)
- 코리세움 다 코루냐 (1991년)
- 카타르 웨일 코넬 의과 대학교
- 카타르 국립 컨벤션 센터 (2011년 개장)[18]
- 뉴타운 도서관 (2012)
- D38 사무실 (2012)[19]
- 알리안츠 타워 (일 드리토) (2015)
- 하얼빈 콘서트홀 (2015)
3. 1. 일본 내 주요 작품
1998년, 아키요시다이 국제예술촌 내에 N 저택을 기반으로 한 건물이 건축됨.공공건축 100선
( 로봇의 「덱」·「데메」)
현 서일본 시티은행(西日本シティ銀行) 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