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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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수영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99년 데뷔하여 발라드 가수로 활동하며, 독특한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집 《I Believe》를 시작으로 《Never Again》, 《made in winter》, 《my stay in sendai》, 《This Time》, 《The Colors of My Life》 등 여러 앨범을 발표하며,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라디오 DJ로도 활동했으며, 결혼 후에도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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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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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이지연 |
출생일 | 1979년 4월 12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
직업 | 가수 |
장르 | K-pop 발라드 |
활동 시기 | 1999년 ~ 현재 |
종교 | 개신교(초교파) |
배우자 | # (템플릿 제거 필요) 정보 추출 불가, 제거 |
가족 | 아들 조민제 |
레이블 | 뉴에라 프로젝트 |
소속사 | 뉴에라 프로젝트 |
웹사이트 | 이수영 트위터 이수영팬카페 크리스탈 |
스테이지 이름 | 이수영 |
한글 | 이수영 |
한자 | 李秀英 |
로마자 표기 | I Su-yeong |
출생 당시 한글 | 이지연 |
출생 당시 한자 | 李知姸 |
출생 당시 로마자 표기 | I Ji-yeon |
2. 생애
1979년 4월 12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났다.[31]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던 도중에 경기 분당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남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9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세 자녀를 키우기 위해 식당 일, 우유 배달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 와중에 그녀는 CCM 행사에서 개신교를 접하게 되었고,[31] 이후 한동안 교내 친구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에 전념하였다.[32] 그러나,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했던 이수영은 자신이 믿던 개신교를 잠시나마 포기할 정도로 매우 절망했다고 한다.[34]
이와는 별개로, 이수영은 17살 때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장기자랑 코너에서 장원을 수상했다. 18살에는 머라이어 캐리 등의 노래를 불러서 만든 데모 테잎을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에 보냈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보컬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35] 이가기획의 사장 이도형은 이수영이 다양한 분야의 가창법을 트레이닝 받도록 시켰으며, "10시간 보컬 연습 10시간 안무 연습 4시간 취침"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도높은 연습을 했다.[35] 트레이닝 막바지에 이도형은 이수영의 음색이 댄스 가수와 맞지 않다며 발라드 가수로 데뷔시켰다. 1995년 7월 MBC-Radio '별이 빛나는 밤에' 자랑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1999년 10월 8일에 발매된 이수영의 데뷔 앨범인 정규 1집 《I Believe》의 타이틀곡 〈I Believe〉는 오리엔탈 발라드 곡으로 각종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후속곡 〈Good Bye My Love〉로 활동하였다.[28] 데뷔 앨범은 독특한 음색과 가창력으로 24만 장의 앨범 판매량과 4개월간 지상파 TV·라디오 최다 방송, 영상·음원 최다 다운로드, 지상파 TV 3사(순위 프로그램) 최장 기간 랭크인 등의 기록을 세웠다.
2001년 2월 2일에 발매된 정규 2집 《Never Again》의 타이틀 곡 〈Never Again〉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세션이 동원된 곡이다. 후속곡 〈스치듯 안녕〉은 타이틀곡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앨범 활동 중 이수영은 갑작스럽게 쓰러졌으나, 소속사의 강행군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2집 활동을 조기에 마무리했다.
2001년 12월 11일 발매된 세 번째 정규 앨범 《made in winter》는 현악기 세션을 최대한 자제한 앨범으로, 타이틀곡 〈그리고 사랑해〉는 〈라라라〉와 함께 팬들에게 이수영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명곡으로 꼽힌다. 3집 활동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홍보를 강화, 연변 사투리 개인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이미지를 각인시켰다.[36] 청룽과 듀엣곡을 녹음하며 동남아시아 프로모션도 진행했으나, 이후 활동은 없었다. 후속곡 〈차라리〉로 활동하던 중 MBC 라디오 프로그램 《감성시대》를 진행했으며, 2002년 6월 월드컵 개막과 동시에 3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2001년에는 ''파이널 판타지 X''의 수록곡 "Suteki Da Ne"의 한국어 버전인 "얼마나 좋을까"를 불렀다. 데뷔 초에는 앨범 재킷이나 뮤직비디오를 일본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혼자 맞이하는 겨울"(히로세 코미의 "DEAR...again"), "굿바이"(ZARD의 "GOOD DAY"), "얼마나 좋을까"(RIKKI의 "素敵だね"), "끝한국어"(안전지대의 "와인 레드의 마음"), "첫사랑의 그 아이"(THE ALFEE의 "ROCKDOM -風に吹かれて-") 등.)
2002년 4월, MBC는 봄 개편을 통해 이수영을 MBC 표준FM 《감성시대》의 DJ로 발탁했다. 이수영은 2002년 4월 2일부터 2003년 3월 10일까지 진행하였다. 이후 그룹 UN의 최정원에게 DJ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수영은 일본 비디오게임 《파이널 판타지 X》의 OST 수록곡 〈素敵だね〉(스테키다네)를 〈얼마나 좋을까〉로 번안하여 불렀다. 이 곡은 게임 유저들에게 이수영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2002년 9월 16일, 정규 4집 《my stay in sendai》가 발매되었다. 이수영은 앨범 활동과 DJ 활동을 병행하며 앨범 홍보에 도움을 받았다. 타이틀곡 〈라라라〉로 SBS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수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후속곡 〈빚〉도 인기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4집은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연말 시상식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 1월, 4.5집 스페셜 앨범 《Sweet Holiday in Lombok》을 발매, ZARD의 곡인 〈GOOD DAY〉를 리메이크한 〈굿바이〉로 활동했다.
2003년 8월 21일, 정규 5집 《this time》이 발매되었다. 타이틀 곡 〈덩그러니〉와 후속곡 〈여전히 입술을 깨물죠〉로 활동했다. 그 해 연말,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최희준이 시상・발표한 최고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 이효리의 수상이 예상되었던 상황에서 이수영은 본인이 수상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5집 활동을 마친 이수영은 휴식기에 들어갔다. 소속사가 이미 일본 진출을 선언한 터라[37] 다른 작업은 할 수 없었다. 공백기 동안 이수영은 리메이크 앨범 《Classic the remake》를 발매하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리메이크해 첫 싱글로 내세웠다. 이 앨범은 CD와 테이프의 판매 비율이 거의 비슷한 경우에 속해 기존 음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례없는 기현상을 보였다. 앨범이 발매되는 휴식기동안 이수영은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귀국했다.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은 이수영의 일본 진출을 오래 전부터 계획해왔다. 2004년 5월 소속사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정규앨범 1장, 싱글앨범 2장 발매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감행했다. 일부 언론의 기사에서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각오를 보여주기도 했다.[38] 그러나,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사이고노 와가마마 (最後の我がまま)〉는 오리콘 차트 125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일본 활동은 씁쓸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나온 6집 《The Colors of My Life》는 전체적으로 듣기 편안한 음악들로 이루어졌고 이는 이수영이 지향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러나 6집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전 앨범들에 비해 그리 좋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앨범 판매량에 있어서는 2004년 9월 10일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월까지 34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그 해 앨범판매량 3위를 차지했다. 2위 또한 이수영의 앨범인 《Classic the remake》였다. 6집 활동에서 소속사인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크레딧타임에 타이틀 곡 〈휠릴리〉의 뮤직비디오를 방영시켰다. 이수영은 연말 시상식 가운데 제19회 골든디스크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도 가요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이수영은 2005년 1월 1일을 기해 6집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이수영이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과의 계약이 만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각 언론들은 그녀의 행보에 주목했다. 한편 이수영은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 주최 아래 진행되는 공연 가운데 ‘톡톡콘서트’라는 공연이 있다는 사실을 공연 3일 전에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이수영은 미국으로 떠나 친구 박경림과 생활하던 중이어서 준비 한번 된 적 없는 공연이 제대로 되었을 리 없었다. 이 때문에 톡톡콘서트에서의 반주는 모두 MR을 사용했고 노래 또한 5곡만 불렀으며 주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공연 마지막에 이수영은 이 공연에 대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이 공연이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과의 마지막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수영의 소속사였던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은 이수영이 미국에 있을 때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6.5집 및 스페셜 앨범 《As Time Goes By》를 발매했다. 첫 번째 싱글은 〈꽃들은 지고〉였으며, 계약이 끝난 상황에서도 이수영이란 이름과 음원들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소속사 측에서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로 인해 2005년 4월까지 휴식을 취한 이수영은 소속사를 옮길 목적을 가지게 되었고, 4월 22일에 리쿠드엔터테인먼트와 3년간 정규 앨범 3장, 비정규 앨범 2장 발매의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수영이 새 소속사를 확정짓기 전의 후보로는 신나라레코드와 리쿠드엔터테인먼트가 물망에 떠올랐는데 이수영은 신생기획사인 리쿠드엔터테인먼트를 택했다. 그곳은 직원 전원이 개신교 신자로서 그 점이 그 곳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후에 밝혔다. 계약 체결 후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한인 축제 행사 등에 참여한 뒤 이수영은 보컬 트레이닝에 임했다. 미국의 보컬 트레이너는 이수영에게 "당신은 흑인이 아니라서 절대 흑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창법이나 음색을 바꾸려 하지 말고 더욱 발전 시킬 것을 조언했다. 한 달여 간의 트레이닝을 마친 이수영은 국내로 귀국하여 팬들과 만남을 계획해 2005년 7월 30일, 경기도 안성시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팬미팅 겸 캠프 행사를 가졌다. 이 날 이수영은 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에서 추가로 발매할 3장의 앨범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자신의 앨범이 아니며 꼭 7집만을 사랑해 달라고 부탁했다. 10월에 발매 예정이었던 7집이 이듬 해로 연기되면서 이수영은 또 다시 약 6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2006년 1월 21일, 이수영은 정규 7집 앨범 《Grace》를 발매했다. 앨범 발매 한 달 만에 타이틀 곡 〈Grace〉는 방송횟수 1000회를 돌파하였고, SBS 인기가요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MBC FM4U의 라디오 프로그램 정오의 희망곡에서는 7주간 1위를,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벅스뮤직에서는 8주간 1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차트 정상에 바로 오르는 등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3만장 한정판 리패키지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다. 7집 제작에는 일본 아티스트 가스야 요코가 참여했다. 이수영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후속곡 〈시린〉으로 활동하던 이수영은 하반기 앨범 작업과 국내외 공연 일정으로 2006년 4월 9일 7집 활동을 마감했다.
2006년 7월 말, 소속사 리쿠드엔터테인먼트와 이수영 간의 불화설이 불거졌다. 리쿠드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에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고, 이수영의 매니저팀을 전원 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며, 이수영의 동의 없이 전국투어 콘서트 일정을 일방적으로 체결하는 등 불성실한 계약 이행을 했다. 이수영은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리쿠드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을 맞고소했다. 분쟁은 2007년 1월 양측이 이수영의 전속 계약금 10억원 중 2억 1000만원을 리쿠드엔터테인먼트가 반환하는 것으로 합의하며 종결되었다. 이후 이수영은 해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으나, 소속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속사 문제를 해결한 후, 이수영은 2007년 9월 11일 8집 앨범 《내려놓음》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단발머리〉는 기타와 아이리쉬 휘슬 전주가 특징이며, 경쾌한 멜로디에 이별 후 여성의 마음을 표현한 가사를 담았다. 8집은 발매와 동시에 각종 음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지상파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전 앨범보다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11월 22일에는 8집 리패키지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남자를 모르고〉로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이수영은 가까운 친구인 박경림, 김유미, 서민정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새 앨범 수록곡 "Lavender"를 불렀다.
2008년 11월 13일 이수영은 생애 첫 번째 미니 앨범 《Onc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이런 여자〉로 활동했다. 이 곡은 그제껏 해왔던 이수영표 발라드와는 다른 대중성이 강한 오리지널 발라드곡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8집 이후 처음으로 차트진입에 실패하였고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별다른 후속곡 없이 2개월만에 첫 미니앨범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
2009년 10월 21일에는 정규 9집 《DAZZLE》이 발매되었다. 원래의 9집 발매 계획은 2009년 봄이었으나, 연기자 데뷔 작품인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로 인해 계획보다 늦게 발매되었다.[39] 타이틀 곡인 〈내 이름 부르지 마〉는 다소 복고적인 리듬에 세련된 멜로디를 가미하여 팝의 느낌을 살린 이수영표 발라드의 끝을 보는 대체로 편안한 분위기의 노래이다.[39] 9집에는 총 12개의 트랙이 있는데 타이틀을 포함한 신곡이 10개 트랙이며 나머지 두 개 트랙은 첫 번째 미니앨범 《Once》의 수록곡이었던 〈이런 여자〉와 〈첫사랑 그아이〉이다.[39] 신곡을 살펴보면 기존에 여러 차례 선보였던 웅장한 사운드의 발라드 〈아이예〉와 탱고의 느낌을 빌려온 동시에 은유적 가사가 두드러지는 〈Five Of Swords〉, 일렉트로니카를 차용한 〈Wake up〉 등의 곡들을 통해 매우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알 수 있다.[39]
이수영은 2010년 4월 19일부터 KBS 2FM 《이수영의 뮤직쇼》의 DJ로 활동하기 시작했다.[6]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한 《감성시대》 이후 라디오 DJ에 대한 열망을 보였던 이수영은, 해당 자리를 통해 열정적이고 즐겁게 진행하며 입지를 굳혔다. 《이수영의 뮤직쇼》는 방송 3사를 통틀어 청취율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이수영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결혼 소식을 알렸으며, 2010년 10월 5일 교회 지인을 통해 만난 10살 연상의 회사원 조재희 씨와 결혼하였다.[6]
결혼 후에도 《이수영의 뮤직쇼》 DJ로 활동하던 중, 2011년 2월 23일 임신 소식이 알려졌고, 팬들과 청취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후에도 DJ 활동을 이어갔으나, 라디오 진행 1주년을 일주일 앞둔 4월 10일, 태교와 출산에 전념하기 위해 하차하였다. 2011년 7월 27일 아들을 출산했다.[7]
2012년 5월 6일부터 이수영은 MBC 《나는 가수다 시즌2》를 통하여 3년 만에 TV 방송에 복귀하였다. 2013년 2월 19일부터 2017년까지는 SBS MTV에서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저》의 MC를 맡았으며, 2013년 3월 28일 《클래식 : 더 리메이크 두번째》를 발매하며 약 4년 만에 앨범을 발매했다. 그 이후에 《히든싱어》에 출연하여 최종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2. 1. 1979년 ~ 1998년 : 어린 시절 및 초기 활동
이수영은 1979년 4월 12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났다.[31]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던 도중에 경기 분당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남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9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세 자녀를 키우기 위해 식당 일, 우유 배달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 와중에 그녀는 CCM 행사에서 개신교를 접하게 되었고,[31] 이후 한동안 교내 친구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에 전념하였다.[32] 그러나,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했던 이수영은 자신이 믿던 개신교를 잠시나마 포기할 정도로 매우 절망했다고 한다.[34]이와는 별개로, 이수영은 17살 때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장기자랑 코너에서 장원을 수상했다. 18살에는 머라이어 캐리 등의 노래를 불러서 만든 데모 테잎을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에 보냈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보컬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35] 이가기획의 사장 이도형은 이수영이 다양한 분야의 가창법을 트레이닝 받도록 시켰으며, "10시간 보컬 연습 10시간 안무 연습 4시간 취침"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도높은 연습을 했다.[35] 트레이닝 막바지에 이도형은 이수영의 음색이 댄스 가수와 맞지 않다며 발라드 가수로 데뷔시켰다. 1995년 7월 MBC-Radio '별이 빛나는 밤에' 자랑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 2. 1999년 ~ 2001년 : I Believe, Never Again, Made in Winter
1999년 10월 8일에 발매된 이수영의 데뷔 앨범인 정규 1집 《I Believe》의 타이틀곡 〈I Believe〉는 오리엔탈 발라드 곡으로 각종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후속곡 〈Good Bye My Love〉로 활동하였다.[28] 데뷔 앨범은 독특한 음색과 가창력으로 24만 장의 앨범 판매량과 4개월간 지상파 TV·라디오 최다 방송, 영상·음원 최다 다운로드, 지상파 TV 3사(순위 프로그램) 최장 기간 랭크인 등의 기록을 세웠다.2001년 2월 2일에 발매된 정규 2집 《Never Again》의 타이틀 곡 〈Never Again〉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세션이 동원된 곡이다. 후속곡 〈스치듯 안녕〉은 타이틀곡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앨범 활동 중 이수영은 갑작스럽게 쓰러졌으나, 소속사의 강행군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2집 활동을 조기에 마무리했다.
2001년 12월 11일 발매된 세 번째 정규 앨범 《made in winter》는 현악기 세션을 최대한 자제한 앨범으로, 타이틀곡 〈그리고 사랑해〉는 〈라라라〉와 함께 팬들에게 이수영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명곡으로 꼽힌다. 3집 활동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홍보를 강화, 연변 사투리 개인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이미지를 각인시켰다.[36] 청룽과 듀엣곡을 녹음하며 동남아시아 프로모션도 진행했으나, 이후 활동은 없었다. 후속곡 〈차라리〉로 활동하던 중 MBC 라디오 프로그램 《감성시대》를 진행했으며, 2002년 6월 월드컵 개막과 동시에 3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2001년에는 ''파이널 판타지 X''의 수록곡 "Suteki Da Ne"의 한국어 버전인 "얼마나 좋을까"를 불렀다. 데뷔 초에는 앨범 재킷이나 뮤직비디오를 일본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혼자 맞이하는 겨울"(히로세 코미의 "DEAR...again"), "굿바이"(ZARD의 "GOOD DAY"), "얼마나 좋을까"(RIKKI의 "素敵だね"), "끝한국어"(안전지대의 "와인 레드의 마음"), "첫사랑의 그 아이"(THE ALFEE의 "ROCKDOM -風に吹かれて-") 등.)
2. 3. 2002년 ~ 2003년 : My Stay in Sendai, This Time
2002년 4월, MBC는 봄 개편을 통해 이수영을 MBC 표준FM 《감성시대》의 DJ로 발탁했다. 이수영은 2002년 4월 2일부터 2003년 3월 10일까지 진행하였다. 이후 그룹 UN의 최정원에게 DJ 자리를 물려주었다.이수영은 일본 비디오게임 《파이널 판타지 X》의 OST 수록곡 〈素敵だね〉(스테키다네)를 〈얼마나 좋을까〉로 번안하여 불렀다. 이 곡은 게임 유저들에게 이수영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2002년 9월 16일, 정규 4집 《my stay in sendai》가 발매되었다. 이수영은 앨범 활동과 DJ 활동을 병행하며 앨범 홍보에 도움을 받았다. 타이틀곡 〈라라라〉로 SBS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수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후속곡 〈빚〉도 인기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4집은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연말 시상식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 1월, 4.5집 스페셜 앨범 《Sweet Holiday in Lombok》을 발매, ZARD의 곡인 〈GOOD DAY〉를 리메이크한 〈굿바이〉로 활동했다.
2003년 8월 21일, 정규 5집 《this time》이 발매되었다. 타이틀 곡 〈덩그러니〉와 후속곡 〈여전히 입술을 깨물죠〉로 활동했다. 그 해 연말,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최희준이 시상・발표한 최고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 이효리의 수상이 예상되었던 상황에서 이수영은 본인이 수상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2. 4. 2004년 ~ 2005년 : 일본 진출, The Colors of My Life
5집 활동을 마친 이수영은 휴식기에 들어갔다. 소속사가 이미 일본 진출을 선언한 터라[37] 다른 작업은 할 수 없었다. 공백기 동안 이수영은 리메이크 앨범 《Classic the remake》를 발매하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리메이크해 첫 싱글로 내세웠다. 이 앨범은 CD와 테이프의 판매 비율이 거의 비슷한 경우에 속해 기존 음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례없는 기현상을 보였다. 앨범이 발매되는 휴식기동안 이수영은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귀국했다.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은 이수영의 일본 진출을 오래 전부터 계획해왔다. 2004년 5월 소속사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정규앨범 1장, 싱글앨범 2장 발매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감행했다. 일부 언론의 기사에서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각오를 보여주기도 했다.[38] 그러나,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사이고노 와가마마 (最後の我がまま)〉는 오리콘 차트 125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일본 활동은 씁쓸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나온 6집 《The Colors of My Life》는 전체적으로 듣기 편안한 음악들로 이루어졌고 이는 이수영이 지향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러나 6집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전 앨범들에 비해 그리 좋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앨범 판매량에 있어서는 2004년 9월 10일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월까지 34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그 해 앨범판매량 3위를 차지했다. 2위 또한 이수영의 앨범인 《Classic the remake》였다. 6집 활동에서 소속사인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크레딧타임에 타이틀 곡 〈휠릴리〉의 뮤직비디오를 방영시켰다. 이수영은 연말 시상식 가운데 제19회 골든디스크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도 가요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이수영은 2005년 1월 1일을 기해 6집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이수영이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과의 계약이 만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각 언론들은 그녀의 행보에 주목했다. 한편 이수영은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 주최 아래 진행되는 공연 가운데 ‘톡톡콘서트’라는 공연이 있다는 사실을 공연 3일 전에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이수영은 미국으로 떠나 친구 박경림과 생활하던 중이어서 준비 한번 된 적 없는 공연이 제대로 되었을 리 없었다. 이 때문에 톡톡콘서트에서의 반주는 모두 MR을 사용했고 노래 또한 5곡만 불렀으며 주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공연 마지막에 이수영은 이 공연에 대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이 공연이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과의 마지막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수영의 소속사였던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은 이수영이 미국에 있을 때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6.5집 및 스페셜 앨범 《As Time Goes By》를 발매했다. 첫 번째 싱글은 〈꽃들은 지고〉였으며, 계약이 끝난 상황에서도 이수영이란 이름과 음원들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소속사 측에서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로 인해 2005년 4월까지 휴식을 취한 이수영은 소속사를 옮길 목적을 가지게 되었고, 4월 22일에 리쿠드엔터테인먼트와 3년간 정규 앨범 3장, 비정규 앨범 2장 발매의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수영이 새 소속사를 확정짓기 전의 후보로는 신나라레코드와 리쿠드엔터테인먼트가 물망에 떠올랐는데 이수영은 신생기획사인 리쿠드엔터테인먼트를 택했다. 그곳은 직원 전원이 개신교 신자로서 그 점이 그 곳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후에 밝혔다. 계약 체결 후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한인 축제 행사 등에 참여한 뒤 이수영은 보컬 트레이닝에 임했다. 미국의 보컬 트레이너는 이수영에게 "당신은 흑인이 아니라서 절대 흑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창법이나 음색을 바꾸려 하지 말고 더욱 발전 시킬 것을 조언했다. 한 달여 간의 트레이닝을 마친 이수영은 국내로 귀국하여 팬들과 만남을 계획해 2005년 7월 30일, 경기도 안성시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팬미팅 겸 캠프 행사를 가졌다. 이 날 이수영은 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이가기획(팬텀엔터테인먼트)에서 추가로 발매할 3장의 앨범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자신의 앨범이 아니며 꼭 7집만을 사랑해 달라고 부탁했다. 10월에 발매 예정이었던 7집이 이듬 해로 연기되면서 이수영은 또 다시 약 6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2. 5. 2006년 ~ 2007년 : Grace, 내려놓음
2006년 1월 21일, 이수영은 정규 7집 앨범 《Grace》를 발매했다. 앨범 발매 한 달 만에 타이틀 곡 〈Grace〉는 방송횟수 1000회를 돌파하였고, SBS 인기가요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MBC FM4U의 라디오 프로그램 정오의 희망곡에서는 7주간 1위를,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벅스뮤직에서는 8주간 1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차트 정상에 바로 오르는 등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3만장 한정판 리패키지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다. 7집 제작에는 일본 아티스트 가스야 요코가 참여했다. 이수영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후속곡 〈시린〉으로 활동하던 이수영은 하반기 앨범 작업과 국내외 공연 일정으로 2006년 4월 9일 7집 활동을 마감했다.2006년 7월 말, 소속사 리쿠드엔터테인먼트와 이수영 간의 불화설이 불거졌다. 리쿠드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에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고, 이수영의 매니저팀을 전원 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며, 이수영의 동의 없이 전국투어 콘서트 일정을 일방적으로 체결하는 등 불성실한 계약 이행을 했다. 이수영은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리쿠드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을 맞고소했다. 분쟁은 2007년 1월 양측이 이수영의 전속 계약금 10억원 중 2억 1000만원을 리쿠드엔터테인먼트가 반환하는 것으로 합의하며 종결되었다. 이후 이수영은 해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으나, 소속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속사 문제를 해결한 후, 이수영은 2007년 9월 11일 8집 앨범 《내려놓음》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단발머리〉는 기타와 아이리쉬 휘슬 전주가 특징이며, 경쾌한 멜로디에 이별 후 여성의 마음을 표현한 가사를 담았다. 8집은 발매와 동시에 각종 음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지상파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전 앨범보다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11월 22일에는 8집 리패키지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남자를 모르고〉로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이수영은 가까운 친구인 박경림, 김유미, 서민정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새 앨범 수록곡 "Lavender"를 불렀다.
2. 6. 2008년 ~ 2009년 : Once, Dazzle
2008년 11월 13일 이수영은 생애 첫 번째 미니 앨범 《Onc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이런 여자〉로 활동했다. 이 곡은 그제껏 해왔던 이수영표 발라드와는 다른 대중성이 강한 오리지널 발라드곡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8집 이후 처음으로 차트진입에 실패하였고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별다른 후속곡 없이 2개월만에 첫 미니앨범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2009년 10월 21일에는 정규 9집 《DAZZLE》이 발매되었다. 원래의 9집 발매 계획은 2009년 봄이었으나, 연기자 데뷔 작품인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로 인해 계획보다 늦게 발매되었다.[39] 타이틀 곡인 〈내 이름 부르지 마〉는 다소 복고적인 리듬에 세련된 멜로디를 가미하여 팝의 느낌을 살린 이수영표 발라드의 끝을 보는 대체로 편안한 분위기의 노래이다.[39] 9집에는 총 12개의 트랙이 있는데 타이틀을 포함한 신곡이 10개 트랙이며 나머지 두 개 트랙은 첫 번째 미니앨범 《Once》의 수록곡이었던 〈이런 여자〉와 〈첫사랑 그아이〉이다.[39] 신곡을 살펴보면 기존에 여러 차례 선보였던 웅장한 사운드의 발라드 〈아이예〉와 탱고의 느낌을 빌려온 동시에 은유적 가사가 두드러지는 〈Five Of Swords〉, 일렉트로니카를 차용한 〈Wake up〉 등의 곡들을 통해 매우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알 수 있다.[39]
2. 7. 2010년 ~ 현재 : 라디오 활동, 결혼,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수영은 2010년 4월 19일부터 KBS 2FM 《이수영의 뮤직쇼》의 DJ로 활동하기 시작했다.[6]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한 《감성시대》 이후 라디오 DJ에 대한 열망을 보였던 이수영은, 해당 자리를 통해 열정적이고 즐겁게 진행하며 입지를 굳혔다. 《이수영의 뮤직쇼》는 방송 3사를 통틀어 청취율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이수영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결혼 소식을 알렸으며, 2010년 10월 5일 교회 지인을 통해 만난 10살 연상의 회사원 조재희 씨와 결혼하였다.[6]결혼 후에도 《이수영의 뮤직쇼》 DJ로 활동하던 중, 2011년 2월 23일 임신 소식이 알려졌고, 팬들과 청취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후에도 DJ 활동을 이어갔으나, 라디오 진행 1주년을 일주일 앞둔 4월 10일, 태교와 출산에 전념하기 위해 하차하였다. 2011년 7월 27일 아들을 출산했다.[7]
2012년 5월 6일부터 이수영은 MBC 《나는 가수다 시즌2》를 통하여 3년 만에 TV 방송에 복귀하였다. 2013년 2월 19일부터 2017년까지는 SBS MTV에서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저》의 MC를 맡았으며, 2013년 3월 28일 《클래식 : 더 리메이크 두번째》를 발매하며 약 4년 만에 앨범을 발매했다. 그 이후에 《히든싱어》에 출연하여 최종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3. 학력
4. 수상 경력
이수영은 여러 가요 시상식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1994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장기자랑에서 장원을 차지했다.[41] 2002년에는 골든 디스크상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본상, 코리안 뮤직 어워드 본상,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발라드 음악상을 수상했다.[25] 2003년에는 골든 디스크상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및 최고 인기 가수상, 코리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26]
2004년에는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본상 및 프로듀서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2년 연속),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27] 2007년에는 모바일 연예대상 여자 가수상[41]을 수상했다.
연도 | 수상 내역 |
---|---|
1994년 |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장기자랑 장원 |
2002년 | |
2003년 | |
2004년 | |
2007년 | 모바일 연예대상 여자 가수상[41] |
4. 1. 시상식
이수영은 여러 가요 시상식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1994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장기자랑에서 장원을 차지했다.[41] 2002년에는 골든 디스크상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본상, 코리안 뮤직 어워드 본상,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발라드 음악상을 수상했다.[25] 2003년에는 골든 디스크상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및 최고 인기 가수상, 코리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26]2004년에는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본상 및 프로듀서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2년 연속),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27] 2007년에는 모바일 연예대상 여자 가수상[41]을 수상했다.
연도 | 수상 내역 |
---|---|
1994년 |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장기자랑 장원 |
2002년 | |
2003년 | |
2004년 | |
2007년 | 모바일 연예대상 여자 가수상[41] |
4. 2. 가요 프로그램 1위
연도 | 수상 내역 (총 17회) |
---|---|
2002년 (총 2회) | |
2003년 (총 8회) | |
2004년 (총 5회) | |
2006년 (총 2회) |
2004년에는 골든 디스크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였고,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5. 음반 목록
5. 1. 정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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