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양 (왕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양은 조선 태조의 이복 동생 의안대군의 손자이자 완천군의 아들이다. 1404년 하령공에 봉해지고 이듬해 하령군으로 봉군되었으며, 1406년 이름을 이영에서 이양으로 개명했다. 1420년 무과에 급제하여 문종 때 우찬성을 지냈고, 단종 때 판병조사를 겸임하다가 다시 우찬성에 이르렀다. 1453년 계유정난 당시 단종을 지지하다가 수양대군 측에 의해 암살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육종영 - 안평대군
    안평대군은 조선 전기의 왕자로서 학문과 예술에 능했으며 안견, 박팽년 등과 교류하며 몽유도원도와 같은 서화 작품을 남겼으나, 계유정난으로 유배 후 사사되었고 후에 복권되었다.
  • 육종영 - 화의군
    화의군 이영은 세종의 아들로 태어나 화의군에 봉해졌으나, 문란한 사생활과 단종 복위 운동 가담으로 고초를 겪었지만, 단종에 대한 충절을 인정받아 사후에 재평가되었다.
  • 조선 정종 - 심종
    심종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청원군에 봉해지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회안군 이방간과 내통한 죄로 폐서인되어 사망했다.
  • 조선 정종 - 민제 (조선)
    민제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세 딸이 조박, 이천우에게 출가하고 특히 막내딸 원경왕후가 태종의 비가 되었으며, 아들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등은 태종의 외척으로 활동했다.
  • 1453년 사망 -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레올로고스는 1405년에 태어나 1449년 황제가 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위협 속에서 동서 교회의 통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며 동로마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
  • 1453년 사망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이양 (왕족)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공(公)
군(君)
본명이양
李穰
별칭작위(爵位)하령공(河寧公)·하령군(河寧君)
시호(諡號)는 충민(忠愍)
출생일?
사망일1453년 11월 10일
사망지조선 한성부에서 계유정난 사건으로 암살됨.
왕조조선(朝鮮)
가문조선 왕조 전주 이씨
아버지완천군 이숙
친인척하릉도정 이확(아우)
의안군 이화(친조부)
삼한국대부인 교하 노씨(친조모)
안지귀(생질)

2. 생애

태조 이성계의 이복 동생인 의안군 이화의 손자이자 완천군 이숙의 첫째아들이다. 안지귀는 그의 외조카가 된다.

1404년(태종 4) '''하령공'''(河寧公)으로 피봉되었고 이듬해 1405년 '''하령군'''(河寧君)으로 봉군되었으며 1406년 1월이름을 '''이영'''(李瓔)에서 '''이양'''(李穰)으로 개명(改名)하였다. 같은 해 1406년 10월 17일 아버지상을 치렀다. 1408년(태종 8) 10월 6일 조부상을 치렀고 1420년(세종 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의 관직은 문종 때 의정부 우찬성에 이어 단종 때 판병조사를 겸하다가 다시 우찬성에 이르렀다. 그는 단종이 보위에 오른 지 1년 후인 1453년(단종 1)에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단종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가 수양대군(首陽大君, 훗날 세조)이 보낸 수하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2. 1. 가계

2. 2. 관직 생활

1404년(태종 4) 하령공(河寧公)으로 피봉되었고 이듬해 1405년 하령군(河寧君)으로 봉군되었다. 1406년 1월 이름을 이영(李瓔)에서 이양(李穰)으로 개명하였다. 1420년(세종 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문종 때 의정부 우찬성을 지냈고, 단종 때 판병조사를 겸하다가 다시 우찬성에 이르렀다.

2. 3. 계유정난과 죽음

이양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단종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보낸 수하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계유정난을 권력 찬탈로 규정하고, 단종 복위에 힘쓴 사육신 등 충신들을 기린다. 반면, 국민의힘은 계유정난을 왕권 확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옹호하며, 세조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