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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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재유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1933년 이순금과 결혼했다. 1934년 체포되었으나 탈출하여 학생운동과 출판운동을 주도했다. 경성 트로이카를 조직하여 노동 운동을 전개했으며, 1936년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938년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상 전향을 거부하여 고문을 받았으며, 1942년 형기 만료 후 예방 구금 조치로 청주 보호교도소에 수감되어 1944년 옥사했다. 200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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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에서 변호사, 인권 운동가, 사회 운동가로 활동한 이돈명은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주요 시국사건 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의 대부'로 불렸고,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변론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
이재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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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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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 이재유 |
한자 | 李載裕 |
가타카나 | 이・채우 |
히라가나 | 리・사이유 |
2. 생애
이재유는 1929년 안병춘, 변홍대, 이형상 등과 조직을 만들어 동맹파업 등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이끌며 일제에 저항하였고, 여러 출판물을 간행하여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도 했다.[2]
1939년에는 이관술, 박헌영, 김태준, 박진홍 등이 지하 조직 경성 콤 그룹한국어을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중일 전쟁 시기 조선 최대의 지하 활동 그룹이었으며, 1941년 대다수가 검거되었지만, 1945년 일본 패전 후 남조선노동당의 중핵을 담당하게 된다.[2]
2. 1.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함경남도 삼수군 별동면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유년 시절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삼수의 공립 보통학교 5학년에 보결 입학하였으나, 4개월 만에 퇴학하였다. 1922년 무렵 상경하여, 1924년 4월 보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 시험을 쳐서 입학하였으나 3개월 만에 월사금 미납과 아버지 사망으로 퇴학하였다. 이때 그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고 민족주의 사상을 싹 틔우기 시작하였다.[2] 1925년에는 개성에 있는 미션 계열의 송도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학생들과 함께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하고, 반종교투쟁의 일환으로 기독교 관련 과목에 반대하는 학생 파업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2] 1926년 12월에는 일본 대학전문부 사회학과에 유학,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후보 회원이 되었지만, 학비 체납으로 인해 다시 퇴학당했다.[2]2. 2. 일본 유학과 사회주의 운동
1926년 12월 일본 도쿄로 유학하여 니혼 대학 전문부에 학적을 두었으나, 학비 문제로 퇴학하였다. 이후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후보 회원이 되었고, 1928년에는 조선공산당 일본 총국 위원이 되었다.[2] 1927년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노동 단체인 '도쿄 조선 노동 조합'에 상무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2]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 경성형무소에서 3년여 동안 수감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로 성장하였다. 1932년 12월 출옥 후, 1933년 7월 이현상, 김삼룡과 함께 항일 노동 운동 단체인 '경성 트로이카'를 조직하였다.[2] 이들은 코민테른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대중 속에서 활동 동지를 조직하며, 각 운동 단체 및 구성원의 자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2] 이재유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하루 7시간 노동제' 등 현대적인 노동 운동 슬로건을 제시하였다.[2]
2. 3. 경성 트로이카와 지하 활동
1933년 7월, 이현상한국어, 김삼룡 (1908년)한국어과 함께 항일 노동 운동 단체를 조직하고, '경성 트로이카한국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코민테른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상의하달식 혁명 조직이 아닌, 대중 속에서 활동할 동지를 조직하고, 각 운동 단체 및 구성원의 자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재유가 제시한 노동 운동 슬로건에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하루 7시간 노동제', '노동자의 조직, 파업의 자유',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 등 매우 현대적인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1934년 1월 다시 검거되었지만, 서대문경찰서에서 탈주하여 지하 활동에 잠복, 농민으로 변장하여 조선 각지를 방랑하면서 조선공산당 경성 재건 그룹(제2기 경성 트로이카)을 전개했다. 1935년 1월부터는 서울 노원구의 농지를 개간, 농산물을 판 자금으로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 준비 그룹(제3기 경성 트로이카)으로서 기관지 '적기'를 발행했지만, 1936년 12월, 창동역 부근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2. 4. 체포와 죽음
1933년 이순금과 비밀리에 결혼했다.[2] 1934년 1월 22일 서대문경찰서에서 체포되었으나, 4월 13일에 천황제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사상을 가졌던 일본인 경찰 모리다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이재유가 탈출하고 30여 분이 지나서야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2] 탈출 후에도 이관술, 박영출 등과 함께 조직을 결성하고 기관지를 간행하는 등 학생운동과 출판운동을 주도하였다.[2]그 해 1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4년 청주 교도소에서 옥사하였다.[2] 1936년 12월 창동역 부근에서 다시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1937년 5월에 송검되었다. 1938년 7월 징역 6년형이 확정되어 공주형무소에서 복역했으나, 사상 전향을 거부하여 고문을 받고 쇠약해졌다. 1942년 은사로 형기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에 시행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에 따른 예방 구금 조치로 인해 1944년 10월 청주의 보호교도소(예방 구금소)에서 옥사했다.
3. 가계
관계 | 이름 | 비고 |
---|---|---|
고조부 | 이하채(李夏彩) | |
고조모 | 곡산 연씨 | 연동즙(延東楫)의 딸 |
증조부 | 이치헌(李致憲) | |
증조모 | 온양 정씨 | 정동욱(鄭東郁)의 딸 |
조부 | 이계남(李啓南) | |
조모 | 선산 김씨 | 김득상(金得相)의 딸 |
부 | 이강범(李玒範) | |
모 | 전주 이씨 | 이종운(李鍾運)의 딸 |
계모 | 밀양 박씨 | 박주병(朴柱秉)의 딸 |
이복 아우 | 이재록(李載祿) | |
이복 아우 | 이재표(李載杓) |
4. 상훈
200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1]
참조
[1]
문화대전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 - 이재유
http://dobong.grandc[...]
[2]
사전
중앙연구원 <인물 사전 II>-한눈에 보는 역사 속 위인들 [개항기~현대]
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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