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성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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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종성(1924년)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교육자이다. 충남 예산 출신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법무부 총무과장, 내무부 총무과장, 내각수반 경제담당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충남방적을 창업하여 국내 최대 면방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한국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제1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한, 청운여고, 혜전대학, 청운대학교 등을 설립하여 교육 사업에도 헌신했다.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 은탑산업훈장,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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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1924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청운 이종성 |
한자 표기 | 靑雲 李鍾聲 |
출생일 | 1924년 5월 22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
사망일 | 1995년 12월 17일 |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직업 | 기업가, 정치인 |
정당 | 무소속 |
의원 선수 | 1 |
부모 | 이기세(부) |
배우자 | 오숙근 |
자녀 | 슬하 3남 2녀 |
종교 | 불교 |
경력 | |
주요 경력 | 충남방적그룹 회장 제11대 국회의원 한국국민당 부총재 학교법인 혜전학원 재단이사장 |
2. 생애
1924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나 공직, 기업, 정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2. 1. 초기 생애 및 공직
1924년 5월 22일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호는 청운(靑雲)이다. 네 차례 도지사를 지낸 이기세의 외아들이며, 어머니와 조모는 모두 신 안동 김씨 가문 출신이다. 청산리 전투의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역시 그의 외가 쪽 인물이다.대전중학교와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했다. 1946년에는 해주 오씨 오숙근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공직 생활은 1955년 법무부 총무과장과 해무청 수산국 총무과장을 맡으면서 시작했다. 이후 1960년에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총무과장을 지냈으며, 1962년에는 내각수반 경제담당비서관을 역임했다.
2. 2. 기업인 활동
창업자 청운 이종성 회장은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나 노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신념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면방기업을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다른 기업인에 비해 비교적 늦은 나이인 47세에 창업했으나 면방업의 특성 및 면방경기의 사이클을 꿰뚫어보는 안목, 특유의 뚝심과 남다른 노력으로 충남방적은 80년대 30대 그룹군[2], 재계 (당기순익) 순위 18위[3]까지 오르며 계열사 중 1개사 매출액만도 3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국내굴지의 면방사이자 30대기업인 11개 충방그룹사의 총수였지만 1970년 창업, 1980년 충남방적그룹 회장에 취임해 1995년까지 그룹을 이끌며 근검절약 생활을 강조했던 기업인이었다[4]. 과도한 문어발식확장을 꾀하지 않고[5] 주력사업인 충남방적을 견실하게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시설규모, 매출액, 수출 등 모든분야에서 국내 면방업계 1위 대한민국 대표 면방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공직에서 물러난 후 고모부 민덕기[6][7]씨가 경영하던 1965년 조선맥주주식회사 전무이사, 1967년 천안 국안방적 전무이사 등을 지냈다. 이 후 1970년 독자적으로 국안방적을 인수해 충남방적 주식회사[8]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첫 해 면사 6.9만달러 수출에 성공하고 이듬해에는 49만달러 수출도 이루어냈다. 곧바로 증설에 나서 5만9천76추의 증설공사를 마쳤다. 1972년 천안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고, 1973년 수덕운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종성 회장의 독특한 불황극복작전은 성장일변도로 치닫는 계기를 맞게된다.[9] 1973년과 1974년 면방불황이 극에 달했을 당시 13만추를 증설했고 1976년에는 27만3천추 규모의 중견회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6년 대성모방주식회사와 한흥증권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고[10], 충남방적 예산공장을 준공했으며, 홍콩에 충남방적 현지법인도 설립했다. 1977년 한일건설진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이연공업주식회사를 인수했으며, 1978년 창업 8년만에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이는 국내 기업체들 중 수출 랭킹 17위로 기록됐는데 당시 섬유, 그것도 면제품 단일 품목으로 1억불 수출을 이룩한 것은 재계에서도 놀라운 일이었다.[11]
1979년 충남방적은 확보했던 27만평의 대지에 대전공장을 준공하고, 대전염색가공공장을 설립해 충남방적은 면정방시설 52만추, 직기 4천4백대를 보유한 국내 최대의 섬유류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한다. 그 해 2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12] 1980년 수출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이를 전담할 무역회사로서 별도법인체인 (주)충방을 설립한다.[13] 충남방적 이회장은 일찌감치 글로벌시장에도 진출한다. 1980년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에 이어 미국 중동부지역의 시장확대와 수출입업무를 뉴욕에 사무소를 개설하며 일본, 홍콩, 싱가포르, 방글라데시, 호주, 이탈리아, 서독 등 총 9개의 해외 지사망을 갖게된다.[14] 1982년 미국에 충남방적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1987년 3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1988년 일본 오사카[大阪]에 충남방적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일본 이연과 합작해 대한이연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1989년 온양에 그랜드파크호텔을 세웠다[15]. 당시 국내최대의 면방업체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충남방적이 면방업 계열화와 함께 자동차부품 레저분야 등 그룹차원의 신규사업진출 및 사업다각화를 시도해 관심을 끌었다.[16] 1992년에는 베트남과 합작해 호치민에 충남베트남섬유주식회사, 동나이[同奈]에 충남베탕섬유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인도와 합작해 현지에 인도카운트 충남섬유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면방업종의 한계성으로 성장동력이 다소 둔화되고 있었으나 1992년 4월 1일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이종성회장 생전에 충남방적은 국내 최대 면방기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17]. 1996년에는 충방엔지니어링(주)와 충방텍스타일(주)을 설립했다.
2. 3. 정계 진출
이종성은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 한국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전당대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열린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남도 홍성·예산·청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시 야당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한국국민당 부총재, 내무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2. 4. 교육 사업
평소 배움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항상 주어져야 한다는 지론을 가졌던 이종성은 고향 후학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근로자들의 교육 기회 확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18] 1973년에는 국내 최초의 공장 부설 학교인 천안 청운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전액 무상으로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후 예산 예덕실업고등학교, 대전 충일여중고, 오산 수영여자고등학교 등 여러 공장 부설 학교를 추가로 설립했으며, 이 학교들에서 약 7천여 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일하며 공부할 수 있었다.[18]또한, 당시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 고등 교육기관이 부족했던 현실을 고려하여 홍성에 혜전대학교를 설립했다. 혜전대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수업료를 책정하여 고향의 후학들이 부담 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77년 2월에는 청운장학회를 설립하여 매년 약 280여 명에게 3000만원 가량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종성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학교 운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학장의 재량에 맡겨 자율성을 보장했다.[18]
1982년부터 6년간 모교인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84년에는 제19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총동창회 회장[19]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낙산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다. 1994년에는 충청남도 홍성에 충남산업대학교(현 청운대학교)를 설립하며 교육 사업을 이어갔으나, 이듬해인 1995년 12월 17일 사망했다.[20]
3. 상훈
산업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여러 산업훈장을 받았다.
연도 | 훈장 종류 |
---|---|
1973년 | 석탑산업훈장 |
1974년 | 동탑산업훈장 |
1975년 | 은탑산업훈장 |
1977년 | 금탑산업훈장 |
4. 가족 관계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부친은 네 번의 도지사를 지낸 이기세이다. 어머니와 조모는 모두 신 안동 김씨 가문 후손이며, 청산리 전투의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도 외가 쪽 인물이다. 1946년 해주 오씨 오숙근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사위는 청와대 정무수석, 제16·17·18·20대 국회의원(4선),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이다.[21]
5.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결과 |
---|---|---|---|---|---|---|---|---|---|
1981년 | 총선 | 11대 | 국회의원 |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 | 한국국민당 | 65,676표 | 41.27% | 1위 | 당선 (초선) |
1985년 | 총선 | 12대 | 국회의원 |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 | 한국국민당 | 40,356표 | 23.82% | 3위 | 낙선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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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9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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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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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8-07-21
[3]
뉴스
100대기업 작년 총매출 72조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88-07-05
[4]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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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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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시련과 도전 (2) 업종 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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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9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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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종성 충남방적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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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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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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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방적 뉴욕에 사무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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