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양군 (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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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익양군은 중국 역사 속 행정 구역으로, 위, 서진, 남북조 시대, 수나라, 당나라에 걸쳐 여러 차례 설치되고 폐지되었다. 위나라 때는 예주에 속했으며, 여남군과 강하군을 분할하여 설치되었다. 서진 시대에는 기춘군과 주현을 병합하여 군역을 확장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유송, 양나라, 동위 등에 속했으며, 수나라 때는 광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익양군으로 개칭되기도 했다. 당나라 시대에는 광주로 바뀌었다가 익양군으로 잠시 개칭되기도 했다. 익양군의 관할 지역은 시대에 따라 변동되었으며, 현재의 중국 허난성 일대에 해당한다.
220년(황초 원년), 위가 여남군과 강하군을 분할하여 익양군을 설치하고 예주에 속하게 하였다.
2. 역사
진 시대에 익양군은 서양, 태, 기춘, 주, 서릉, 기사, 익양의 7개 현을 관할했다.[1]
남조 송 시대 익양군은 남예주에 속했으며, 기사, 익양, 안풍, 낙안, 여유의 5개 현을 관할했다.[2]
남조 제 시대 익양군은 예주에 속했으며, 기사, 남신식, 익양, 상채, 평여의 5개 현을 관할했다.[3] 495년(영명 13년)부터 527년(효창 3년)까지는 북위가, 527년부터 549년(무정 7년)까지는 양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549년 이후 동위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익양군은 동예주에 속하게 되었고, 익양현 1개 현만을 관할했다.[4] 남조 양 시대에는 광주에 속했다가 동위에 빼앗기기도 했으며, 북익양, 남익양 2개 현을 관할했다. 또한 남조 양은 정주(동위의 남정주)와 영주에 익양군을 설치하기도 했다.[4]
583년 (개황 3년), 수나라가 군제를 폐지하면서 익양군은 폐지되어 광주에 편입되었다.[11] 607년 (대업 3년) 주가 폐지되고 군이 설치되면서 광주는 다시 익양군으로 바뀌었고, 광산, 낙안, 정성, 은성, 고시, 기사의 6개 현을 관할했다.
620년 (무덕 3년), 당나라에 의해 익양군은 광주로 개칭되었다. 742년 (천보 원년) 광주는 다시 익양군으로 개칭되었다가, 758년 (건원 원년) 익양군은 광주로 다시 개칭되어 익양군의 명칭은 사라졌다.
2. 1. 후한 말·조위
후한말, 형주 대부분을 차지했던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하면서 형주 지배력이 약화되었고, 손권과 유비의 세력이 형주 남부 지역에서 확장되었다. 이에 조조는 강하군 지역에서 사수에 성공했던 강하군 8개 현 중 서릉현, 서양현, 대현을 여남군의 익양현, 기사현과 함께 익양군으로 분리했다. 진서에는 조비가 여남군에서 신설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213년(후한 헌제 건안 18년) 조조가 전 지역의 군현을 정비할 때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218년(후한 헌제 건안 23년) 오환 원정을 떠나기 전에 전예가 익양태수로 부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13~218년 사이에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7] 222년(위 문제 황초 3년)부터 224년(위 문제 황초 5년)까지 여양공이었던 조표가 익양왕으로 봉해지면서 '''익양국'''으로 승격되기도 했다.[8]
2. 2. 서진
사마염이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기춘군의 기춘현, 주현이 통폐합되면서 군역이 확장되었다. 황강시 서부, 안루시 일대로 군역이 확장되었다. 7현 16,700호를 거느렸다. 290년(진 혜제 영희 원년), 옛 기춘군에 속한 지역이 서양군으로 분리되었다.[9][10]
2. 3. 남북조 시대
남조 송 시대에 익양군은 남예주에 속했으며, 기사, 익양, 안풍, 낙안, 여유의 5개 현을 관할했다.[2]남조 제 시대에 익양군은 예주에 속했으며, 기사, 남신식, 익양, 상채, 평여의 5개 현을 관할했다.[3] 495년(영명 13년), 북위가 이 지역을 점령했다.
527년(효창 3년), 남조 양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549년(무정 7년), 동위가 이 지역을 점령했다. 익양군은 동예주에 속했으며, 익양현 1개 현을 관할했다.[4]
남조 양 시대에 광주가 설치되었고 익양군은 광주에 속했다. 이후 동위에 빼앗겼다. 이 익양군은 북익양, 남익양 2개 현을 관할했다.
남조 양에 의해 정주(동위의 남정주)에 익양군이 설치되어, 여남·기사의 2현을 관할했다.[4]
남조 양에 의해 영주에 익양군이 설치되었다.[4]
2. 4. 수나라
개황 3년(583년), 수나라가 군제를 폐지하면서 익양군은 폐지되어 광주에 편입되었다.[11] 대업 3년(607년)에 주가 폐지되고 군이 설치되면서 광주는 익양군으로 개칭되었다. 익양군은 광산, 낙안, 정성, 은성, 고시, 기사 6개 현을 관할했다.[11]
2. 5. 당나라
620년(당 고조 무덕 3년), 익양군이 '''광주(光州)'''로 바뀌었고 총관부가 설치되었다. 정성현이 현주(弦州), 은성현이 의주(義州)로 분리되고 송안군이 폐지되고 '''곡주(穀州)'''로 바뀌면서 광주총관부는 광주, 현주, 의주, 곡주, 그리고 여주를 통치하게 되었고 광주는 광산현, 낙안현, 고시현을 통치하게 되었다. 624년(당 고조 무덕 7년), 총관부가 도독부로 바뀌었다. 627년(당 태종 정관 원년), 도독부가 혁파되면서 현주와 의주가 광주에 통폐합되면서 정성현과 은성현이 본주로 내속되었다. 곡주가 폐지되면서 송안현이 낙안현에 통폐합되었다. 742년(당 현종 천보 원년), 군현제가 실시되면서 익양군으로 바뀌었고 758년(당 숙종 건원 원년), 다시 주현제가 실시되면서 광주로 돌아왔다. 본래 5현 5,649호 28,291명을 거느렸으나, 천보연간에 31,473호 198,580명을 거느렸다.[12]
참조
[1]
서적
晋書
[2]
서적
宋書
[3]
서적
南斉書
[4]
서적
魏書
[5]
서적
隋書
[6]
서적
旧唐書
[7]
서적
삼국지 위지 26권 만전견곽전 전예
https://zh.wikisourc[...]
[8]
서적
삼국지 위지 20권 문무세왕공전 초왕조표
https://zh.wikisourc[...]
[9]
서적
진서 14권 지 제4 지리지 上 예주 익양군
https://zh.wikisourc[...]
[10]
서적
송서 36권 지 제26 주군지 2 남예주 익양군
https://zh.wikisourc[...]
[11]
서적
수서 31권 지 제26 지리지 下 양주 익양군
https://zh.wikisourc[...]
[12]
서적
구당서 40권 지 제20 지리지 3 회남도 광주
https://zh.wikisou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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