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현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익현군은 조선 세종의 14남으로, 신빈 김씨의 소생이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으며, 세조 즉위 후 좌익공신 1등에 책정되었다. 1456년 난신 연좌 부녀자들을 노비로 받았으며, 1458년 병을 얻어 세조의 간호를 받았다. 형 계양군과 어울려 술을 즐기다 술병으로 사망했으며, 세조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시호는 충성이며, 묘소는 남양주시에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31년 출생 - 에르콜레 1세 데스테
에르콜레 1세 데스테는 1471년 페라라 공작이 되어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전쟁, 이탈리아 전쟁 등에 연루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후원하고 도시 개발에 힘쓴 인물이다. - 1431년 출생 - 블라드 3세 체페슈
블라드 3세 체페슈는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의 보이보드로서 "드라큘라"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잔혹한 통치로 "체페슈"라고도 불리며 오스만 제국에 맞섰으나 체포되어 유폐 후 전사했고 그의 통치는 과장되어 흡혈귀 드라큘라 신화의 원형이 되었으며 왈라키아 역사와 국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463년 사망 - 윤사로
윤사로는 세조의 계유정난 공신으로 의정부 좌찬성 등 요직을 역임하며 세조 정권에 기여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등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조선왕조실록에 영민함과 청렴함이 기록됨과 동시에 재산 축적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시된 조선 전기의 인물이다. - 1463년 사망 - 장 뷔로
15세기 프랑스의 포병 전문가이자 군사 지도자, 행정가였던 장 뷔로는 샤를 7세 휘하에서 백년전쟁의 프랑스 승리에 기여하고 여러 공성전과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행정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 알콜 독으로 죽은 사람 - 계양군
계양군은 조선 세종과 신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지지하여 공신이 되었고 세조의 신임을 받았으나 술을 즐겨 마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 알콜 독으로 죽은 사람 - 친킴
친킴은 쿠빌라이 칸의 아들이자 원나라 황태자로, 유교를 지지하고 한족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 후 문혜명효황제로 추존되었다.
익현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휘 | 이관(李璭), |
시호 | 충성(忠成) |
부친 | 세종 |
모친 | 신빈 김씨 |
작위 | 조선 세종의 왕자 |
출생일 | 1431년 |
사망일 | (향년 33세) |
배우자 |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 |
자녀 | 1남 1녀 |
2. 생애
세종의 14남으로, 생모는 신빈 김씨이다. 아내는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이며, 슬하에 아들 괴산군 강회공 이지와 딸 이씨 등 1남 1녀를 두었다. 성격이 윗사람의 뜻을 잘 맞추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 1등에 책정되었다.[1]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자들을 공신에게 종으로 나눠줄 때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 등을 받았다.[1]
1458년 병석에 누웠는데, 세조가 내의(內醫) 김길호(金吉浩)를 남양에 보내 그를 간호하게 했다.[1]
형 계양군과 더불어 간사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즐겨 마셨다. 밤에는 여염집에서 창기(娼妓)를 불러 술을 자주 마시다가 술병을 얻었고,[1] 죽기 전 피를 토했다고 한다. 세조는 '이것은 모두 계양군의 허물이다. 의창군이 술로써 죽었는데, 익현군도 또한 술로써 죽으니 매우 슬프다.' 하였다.[1]
2. 1. 가계와 출생
세종과 신빈 김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계양군 증, 의창군 공, 밀성군 침 등이 있으며, 동생으로는 영해군 장, 담양군 거가 있다.[1]
2. 2. 계유정난 가담과 세조 정권 수립
익현군은 성격이 윗사람의 뜻을 잘 맞추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정되었다.[1]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자들을 공신에게 종으로 나눠줄 때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 등을 받았다.[1]
2. 3. 세조의 총애와 죽음
1458년 병석에 누웠는데, 세조가 내의(內醫) 김길호(金吉浩)를 남양에 보내 그를 간호하게 했다.[1]형 계양군과 더불어 간사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꾼이 되어 밤에는 여염집에서 창기(娼妓)를 불러 술을 자주 마시다가 술병을 얻어 죽었다.[1] 죽기 전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한다. 이때 세조는 '이것은 모두 계양군의 허물이다. 의창군이 술로써 죽었는데, 익현군도 또한 술로써 죽으니 매우 슬프다.' 하였다.[1]
2. 4. 사후
시호는 충성(忠成)이다.[1] 조회를 2일간 철조하였다.[1]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산201-7번지 초입에 있다.
3. 가족 관계
[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