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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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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익현군은 조선 세종의 14남으로, 신빈 김씨의 소생이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으며, 세조 즉위 후 좌익공신 1등에 책정되었다. 1456년 난신 연좌 부녀자들을 노비로 받았으며, 1458년 병을 얻어 세조의 간호를 받았다. 형 계양군과 어울려 술을 즐기다 술병으로 사망했으며, 세조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시호는 충성이며, 묘소는 남양주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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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현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관(李璭),
시호충성(忠成)
부친세종
모친신빈 김씨
작위조선 세종의 왕자
출생일1431년
사망일
(향년 33세)
배우자김제군부인 평양 조씨
자녀1남 1녀

2. 생애

세종의 14남으로, 생모는 신빈 김씨이다. 아내는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이며, 슬하에 아들 괴산군 강회공 이지와 딸 이씨 등 1남 1녀를 두었다. 성격이 윗사람의 뜻을 잘 맞추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 1등에 책정되었다.[1]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자들을 공신에게 종으로 나눠줄 때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 등을 받았다.[1]

1458년 병석에 누웠는데, 세조가 내의(內醫) 김길호(金吉浩)를 남양에 보내 그를 간호하게 했다.[1]

계양군과 더불어 간사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즐겨 마셨다. 밤에는 여염집에서 창기(娼妓)를 불러 술을 자주 마시다가 술병을 얻었고,[1] 죽기 전 피를 토했다고 한다. 세조는 '이것은 모두 계양군의 허물이다. 의창군이 술로써 죽었는데, 익현군도 또한 술로써 죽으니 매우 슬프다.' 하였다.[1]

2. 1. 가계와 출생

세종과 신빈 김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계양군 증, 의창군 공, 밀성군 침 등이 있으며, 동생으로는 영해군 장, 담양군 거가 있다.[1]

관계이름
부왕세종
생모신빈 김씨
정부인김제군부인 평양 조씨
아들괴산군 이지
며느리한산 이씨
함양 여씨 여종경의 처
손자여승견


2. 2. 계유정난 가담과 세조 정권 수립

익현군은 성격이 윗사람의 뜻을 잘 맞추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정되었다.[1]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자들을 공신에게 종으로 나눠줄 때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 등을 받았다.[1]

2. 3. 세조의 총애와 죽음

1458년 병석에 누웠는데, 세조가 내의(內醫) 김길호(金吉浩)를 남양에 보내 그를 간호하게 했다.[1]

계양군과 더불어 간사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꾼이 되어 밤에는 여염집에서 창기(娼妓)를 불러 술을 자주 마시다가 술병을 얻어 죽었다.[1] 죽기 전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한다. 이때 세조는 '이것은 모두 계양군의 허물이다. 의창군이 술로써 죽었는데, 익현군도 또한 술로써 죽으니 매우 슬프다.' 하였다.[1]

2. 4. 사후

시호는 충성(忠成)이다.[1] 조회를 2일간 철조하였다.[1]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산201-7번지 초입에 있다.

3.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아들괴산군 이지(槐山君 李漬)
며느리한산 이씨이우(李堣)의 딸
함양 여씨여종경(呂宗敬)의 처
손자여승견(呂承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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