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오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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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월오봉도는 붉은 해, 둥근 달, 다섯 봉우리, 폭포, 소나무를 묘사한 조선 시대의 궁중 회화이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해는 국왕, 달은 왕비를, 다섯 봉우리는 자연을, 폭포와 소나무는 조화를 나타낸다. 일월오봉도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나, 17세기 중반부터 궁궐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 19세기에는 왕의 어좌 뒤에 배치되었다. 현재는 약 20점의 진품이 남아 있으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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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오봉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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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한국어 | 일월오봉도 / 일월도 / 일월곤륜도 |
한자 | / / |
로마자 표기 | Irworobongdo / Irwoldo / Irwolgonnyundo |
일본어 | じつげつごほうず |
일본어 (가타카나) | イルォロボンド |
그림 정보 | |
설명 | 경복궁의 옥좌 뒤에 있는 일월오봉도 |
추가 정보 | |
관련 링크 | http://english.visitkorea.or.kr/enu/SI/SI_EN_3_6.jsp?cid=259914 https://query.nytimes.com/gst/fullpage.html?res=9F0CE5D61038F936A25753C1A965958260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257096&v=43 |
2. 도상의 특징
일월오봉도의 도상은 불타는 듯한 붉은 해, 둥근 달, 험준한 다섯 봉우리, 그리고 두 개의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와 폭포를 묘사하며, 양쪽에는 침엽수 한 쌍이 자리 잡고 있는 장면이다. '탕채(唐彩)'(중국 색상)로 알려진 선명한 색상은 동물 또는 생선 접착제로 고정되어 있어 병풍을 선명하고 방수성 있게 만들었다.[4] 뉴욕 타임스의 비평가 홀랜드 코터는 병풍의 견고하고 선명한 색상과 튼튼한 형태가 "직물 패턴"처럼 규칙적이라고 묘사했으며, 이 병풍이 "당시의 중국 또는 일본 회화와는 다른 고풍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2]
3. 상징적 의미
일월오봉도의 초기 도상학을 설명하는 문서는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성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 병풍은 어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조선의 정치적 우주론을 보여준다.[5][6] 붉은 해는 양(陽)을 상징하는 국왕, 흰 달은 음(陰)을 상징하는 왕비를 나타내며, 이 두 원리가 우주를 작동시킨다.
이 병풍은 해와 달로 상징되는 하늘의 축복을 나타낼 수도 있다. 국왕이 병풍 앞에 앉으면, 모든 힘이 발산되어 되돌아오는 중심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병풍은 하늘의 총애, 명령, 통치자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의 증거로서 정치적 우주론을 나타낸다.[4]
3. 1. 해와 달
초기 일월오봉도의 원본 도상학을 설명하는 기존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채드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미술사학 교수인 이성미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고한다.[5] 이성미 박사는 이 병풍이 어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으며, 이 양식화된 풍경이 조선의 정치적 우주론을 보여준다고 제안했다.[6] "거의" 붉은 해는 양, 즉 긍정적인 남성 원리를 상징하는 국왕을 나타내며, 흰 달은 음, 즉 부정적인 여성 원리를 상징하는 왕비를 나타낸다. 이 두 원리가 우주를 작동시킨다.
또 다른 설명은 이 병풍이 균형을 이루는 해와 달로 상징되는 하늘의 축복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왕이 이 병풍 앞에 앉으면, 그는 모든 힘이 발산되어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 중심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신성한 힘을 부여받은 이 병풍은 하늘의 총애, 명령, 그리고 통치자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의 증거로서 정치적 우주론을 나타낸다.[4]
3. 2. 다섯 봉우리와 자연
이 그림은 불타는 듯한 붉은 해, 둥근 달, 험준한 다섯 봉우리, 그리고 두 개의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와 폭포를 묘사하며, 양쪽에는 침엽수 한 쌍이 자리 잡고 있다. '탕채(唐彩)'(중국 색상)로 알려진 선명한 색상은 동물 또는 생선 접착제로 고정되어 있어 병풍을 선명하고 방수성 있게 만들었다.[4]
뉴욕 타임스의 비평가 홀랜드 코터는 병풍의 견고하고 선명한 색상과 튼튼한 형태가 "직물 패턴"처럼 규칙적이라고 묘사했으며, 이 병풍이 "당시의 중국 또는 일본 회화와는 다른 고풍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2]
3. 3. 하늘의 축복과 왕권
초기 일월오봉도의 도상학을 설명하는 문서는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성미 박사는 이 병풍이 어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조선의 정치적 우주론을 보여준다고 제안했다.[5][6] 붉은 해는 양(陽), 즉 긍정적인 남성 원리인 국왕을, 흰 달은 음(陰), 즉 부정적인 여성 원리인 왕비를 나타내며, 이 두 원리가 우주를 작동시킨다.
이 병풍은 해와 달로 상징되는 하늘의 축복을 나타낼 수 있다. 국왕이 병풍 앞에 앉으면, 모든 힘이 발산되어 되돌아오는 중심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병풍은 하늘의 총애, 명령, 통치자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의 증거로서 정치적 우주론을 나타낸다.[4]
4. 일월오봉도의 역사
채드윅(Chadwick, 1998)과 이(Yi, 1996)의 연구에 따르면, 일월오봉도가 조선 초기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4][5] 정도전이 일월오봉도 사용을 확립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명종 시대의 그림에는 일월오봉도가 나타나지 않아 1392년 기원설에 의문이 제기된다. 19세기 사본에는 일월오봉도가 등장하여,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해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궁궐에서 일월오봉도 사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증거가 17세기 중반부터 나타나지만, 고려와 차별화를 위해 더 일찍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본다.[7] 궁궐 기록에 따르면 일월오봉도는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나, 현재는 약 20점만이 남아있고 서명된 작품은 없다. 일월오봉도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에서 볼 수 있다.[3]
4. 1. 초기 기원설
채드윅(Chadwick, 1998)은 이(Yi, 1996)의 일월오봉도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일월오봉도가 조선 태조 (재위 1392-1398) 통치 시기에 사용되었는지 밝히고자 했다.[4][5] 이(Yi)는 정도전이 신유학을 조선의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392년 조선 궁궐 건축 설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일월오봉도를 사용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그러나 16세기 그림인 "명종 (재위 1545-1567) 때 소총대 무예 시연"에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없다. 반면 19세기 사본에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배치되어 있다. 이는 1392년이라는 연대가 너무 이를 수 있으며, 일월오봉도의 확립 시기를 더 최근으로 추정하게 한다. 이(Yi)는 일월오봉도가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왕조의 권력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로 채택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궁궐에서 해, 달, 다섯 봉우리 그림 사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증거는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지만, 고려 궁정과의 차별성을 두려는 조선 궁정의 노력의 일환으로 더 일찍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7]
궁궐 기록에 따르면 일월오봉도는 끊임없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약 20점의 진품만이 남아 있으며, 서명된 것은 없다. 일월오봉도는 서울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같은 왕궁에서 볼 수 있다.[3]
4. 2. 16세기 이후 정착설
채드윅(Chadwick, 1998)은 이(Yi, 1996)의 일월오봉도 역사 연구를 보고하면서, 태조 (재위 1392–1398) 통치 시기인 조선 초기에 일월오봉도가 사용되었는지 여부를 밝히고자 했다.[4] 이(Yi)가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정도전이 오봉병 사용 관행을 확립했다는 주장이 있다. 정도전은 조선의 국가 이념으로 신유학을 채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392년 조선 궁궐 건축 설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일월오봉도를 사용했다. 그러나 명종 (재위 1545–1567) 때의 16세기 그림인 '소총대 무예 시연'에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없다. 하지만 19세기 사본에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1392년이라는 연대는 너무 이를 수 있으며, 일월오봉도의 확립 시기를 더 최근으로 추정한다. 그는 일월오봉도의 역할이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왕조의 권력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로 채택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4]국립중앙박물관은 일월오봉도에 대한 설명에서, 조선 궁궐에서 해, 달, 다섯 봉우리 그림의 사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증거는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지만, 고려 궁정과의 차별성을 두려는 조선 궁정의 노력의 일환으로 더 일찍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7]
궁궐 기록에 따르면 일월오봉도는 끊임없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약 20점의 진품만이 남아 있으며, 서명된 것은 없다. 일월오봉도의 예는 서울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같은 왕궁에서 볼 수 있다.[3]
4. 3. 국립중앙박물관의 견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월오봉도에 대한 설명에서, 조선 궁궐에서 해, 달, 다섯 봉우리 그림의 사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증거는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지만, 고려 궁정과의 차별성을 두려는 조선 궁정의 노력의 일환으로 더 일찍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7]4. 4. 현대의 일월오봉도
채드윅(Chadwick, 1998)은 이(Yi, 1996)의 일월오봉도 역사 연구를 보고하면서, 태조 (재위 1392-1398) 통치 시기 조선 초기에 일월오봉도가 사용되었는지 밝히려고 시도했다.[4] 이(Yi)가 보고하는 한 가지 제안은 정도전이 오봉병 사용 관행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1392년 조선 궁궐 건축 설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일월오봉도를 사용했다. 그러나 명종 (재위 1545-1567) 때의 그림에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없다. 하지만 19세기 사본에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1392년은 너무 이른 시기이며, 일월오봉도의 확립 시기를 더 최근으로 추정한다. 채드윅은 일월오봉도의 역할이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왕조의 권력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로 채택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4]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월오봉도에 대한 설명에서, 조선 궁궐에서 해, 달, 다섯 봉우리 그림의 사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증거는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지만, 고려 궁정과의 차별성을 두려는 조선 궁정의 노력의 일환으로 더 일찍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7]
궁궐 기록에 따르면 일월오봉도는 끊임없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약 20점의 진품만이 남아 있으며, 서명된 것은 없다. 일월오봉도의 예는 서울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같은 왕궁에서 볼 수 있다.[3]
참조
[1]
웹사이트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https://web.archive.[...]
Korea Tourism Organization
2008-11-20
[2]
뉴스
Sampling of Treasures From 18th-Century Korea
https://query.nytime[...]
1993-10-15
[3]
웹사이트
일월곤륜도 (日月崑崙圖)
http://100.empas.com[...]
Empas / EncyKorea
2008-11-17
[4]
논문
Sun, moon, and five peaks
http://sunzi1.lib.hk[...]
1998-06-01
[5]
간행물
The screen of the Five Peaks of the Choson dynasty
1997-01-01 # 추정 날짜. 연도만 제공됨.
[6]
논문
Sun, moon, and Immortal Peaches
http://sunzi1.lib.hk[...]
1996-09-01
[7]
웹사이트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www.emuseum.g[...]
[8]
뉴스
유홍준의 국보순례 - 일월오봉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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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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