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일제강점기의 축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일제강점기의 축구는 1920년 조선체육회 창립을 시작으로, 조선심판협회, 조선축구협회 등의 기관을 통해 발전했다. 전조선축구대회,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 경평전 등 다양한 컵대회와 도시대항전이 개최되었으며, 실업축구와 학원축구도 활성화되었다. 특히 학원 축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연희전문, 보성전문, 숭실전문 등이 주요 축구단으로 활약했다. 김원겸, 이영민, 김용식 등 뛰어난 선수들이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으며, 경성운동장, 기림리공설운동장 등이 주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2. 협회

1920년 창립된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의 전신)는 1928년 조선심판협회, 1933년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의 전신)가 창립되기 전까지 축구 전반에 관한 문제를 통할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었다. 한편 각 지역별로 체육협회가 생겼는데, 그 중 1925년 평양에 설립된 관서체육회는 조선체육회와 더불어 가장 활발하고 광범위한 활동을 한 단체였다.

3. 축구대회

1920년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의 전신)는 1928년 조선심판협회, 1933년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의 전신)가 창립되기 전까지 축구 전반에 관한 문제를 통할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었다. 한편 각 지역별로 체육협회가 생겼는데, 그 중 1925년 평양에 설립된 관서체육회는 조선체육회와 더불어 가장 활발하고 광범위한 활동을 한 단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다양한 축구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크게 컵대회, 도시대항전, 실업축구, 학원축구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종류설명
컵대회성인 클럽, 소학, 중등, 전문, 실업부 등이 참가하는 토너먼트 방식
도시대항전도시 연고 팀 단위로 참가하며, 리그전 방식으로 진행
실업축구직장 단위 실업팀들이 참가
학원축구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


3. 1. 컵대회

조선축구협회(1938~1940)전국축구선수권대회 및 FA컵으로 계승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조선축구협회(1935~1940)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로 계승전조선아식축구대회오사카아사히신문경성지사(1927~1935)조선신궁대회조선체육협회(1925~1943)재조선일본인 중심 대회평양전조선축구대회평양기독청년회(1921~1926),
관서체육회(1925~1941),
조선체육진흥회평남지부(1942)|기타 지역일본 본토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일본축구협회(1921~1940)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로 계승명치신궁경기대회내무성, 명치신궁체육회, 후생성



일제강점기 조선의 축구 컵대회

3. 2. 도시대항전

평양군(1933), 조선체육회(1933),
조선축구협회(1934~1935),
자유신문사(1946)서울, 평양3지방대항축구전조선축구협회(1938~1942)서울, 평양, 함흥전조선도시대항축구대회조선중앙일보사(1936),
조선일보사(1938~1940),
조선축구협회, 매일신보사 공동(1941~1942)서울전일본3지방대항축구전일본축구협회오사카



일제강점기 조선의 도시대항축구대회

3. 3. 실업축구

20세기 초반부터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직장 단위 실업팀들이 등장하여 전국 단위 대회에 참가하였다. 1930년 평양에서 열린 제6회 전조선축구대회(관서체육회 주최)부터 실업부가 창설되어 평양 일대 실업팀들이 참가하였으며, 1942년 마지막 대회에서는 경평대항실업축구전 부문이 신설되어 평양과 서울 실업팀 연합이 2경기를 치렀다.[1]

1939년에는 서울 실업축구계 인사들이 모여 '''경성실업축구연맹'''을 결성하고 '''제1회 실업축구리그'''를 개최하였다.[2][3]

3. 4. 학원축구

일제강점기 학원축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최 장소대회 명칭주최, 시기
서울조선전문학교축구연맹전조선전문축구연맹 (1926~1930)
관립고등전문학교축구대회조선전문학교체육연맹 (1927~1936)
전조선중등학교축구대회보성전문학교 (1928~1940)
전조선중등학교축구대회경성제대 예과 (1929~1942)
조선고등전문축구연맹전조선학생연맹 (1937~1940)


4. 주요 축구단

일제강점기에는 여러 축구단이 활동했다. 주요 축구단으로는 전조선축구대회나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의 예선에 참가했던 경성 축구단, 평양 축구단 등이 있었다.

이 시기 학원 축구단에 대해서는 하위 섹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4. 1. 학원 축구단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과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이 양대 구도를 이루는 가운데, 평양의 숭실전문(숭실대의 전신)이 3대 강호를 형성하였다.

5. 주요 선수

김원겸, 이영민, 김용식 등은 뛰어난 기량으로 한국 축구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외에도 김영근, 채금석, 이유형 등이 주요 선수로 활약하였다.

6. 주요 경기장

경성운동장, 평양 기림리공설운동장, 함흥공설운동장, 부산공설운동장 등에서 주요 경기가 열렸다.

참조

[1] 서적 韓國蹴球百年史 라사라 1986
[2] 뉴스 실업축구연맹결성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39-06-14
[3] 뉴스 실업축구연맹 내십이일에 거행(속)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39-11-11
[4] 서적 韓國蹴球百年史 라사라 1986
[5] 뉴스 '한국축구 70년 (1) 본사체육부기 http://dna.naver.com[...] 경향신문 1965-02-1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