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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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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적 타락은 기독교 신학에서, 타락 이후 인간의 본성이 죄로 인해 완전히 부패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주장되었으며, 종교 개혁가들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졌다. 전적 타락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칼빈주의는 전적 타락 교리를 받아들이고, 알미니우스주의는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2. 역사

초기 기독교 시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죄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 의지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의지 또한 신의 예정이라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펠라기우스파 반박집에 기록되었고, 에페소스 공의회는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판결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하느님 반역으로 인한 "전적 타락"을 주장했는데, 이는 타락의 보편성과 인격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32] 로버트 찰스 스프롤은 펠라기우스주의를 반기독교로 규정한다.[33]

중세 시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타락 후 죄를 피할 수 없다고 보았으나, 둔스 스코투스는 원래 의로움의 부족으로 한정했다.[13] 종교 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은 "전적 타락" 용어를 사용했지만, ''하나님의 형상''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았다.[13][14] 마티아스 플라키우스 일리리쿠스만 ''하나님의 형상'' 제거를 주장했으나, 콩코드 신조에서 부인되었다.[14] 칼빈은 외적 율법 준수는 가능하나, 거듭남 후에도 악이 섞인다고 보았다.[15] 후기 칼빈주의자들은 "전적 타락" 용어를 쓰지 않고, 더 온건한 견해를 보였다.[14]

가톨릭 교회는 전적 타락을 부정하며,[31] 트리엔트 공의회는 자유 의지 약화와 은총, 인간 행위에 따른 구원을 주장했다.[47]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요 인물이지만, 원죄 교리에서 극단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그의 오류가 루터 등에 의해 잘못 이용되었다고 본다.[48]

정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타락 이해를 부정한다.[49][50] 인간 본성이 근본적으로 타락하지 않았고, "신의 형상이 흐려졌을 뿐"이며, 자유 의지로 선을 택할 수 있다고 본다.[51] 도시테오스 2세는 의지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51] 구원은 신의 은총 사역이며, 인간은 자유롭고, 신의 은총과 인간 자유는 상호 보완적이다.[52]

2. 1. 초기 기독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스스로 죄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이 악에 기울어져 있으며,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11] 자유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12]

4세기의 펠라기우스는 성경의 맥락에서 벗어난 성전 해석을 통해 "전적 타락"이나 아담의 타락이 인류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원이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 실현될 수 있으므로, 신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펠라기우스주의).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면서도, 그 의지 또한 신이 예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펠라기우스파 반박집으로 남아있다.

에페소스 공의회는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판결하여 배척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사람은 아담하느님에게 반역한 결과 "전적 타락"했다. 여기서 "전적"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타락이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 퍼져 예외가 없다는 보편성을 의미한다. 둘째, 타락이 인간 인격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인간은 타락했으며, 인간의 인격 또한 모두 타락했다는 것이다. "신학의 제1원리는 인간의 타락, 인간의 죄이다."[32]라고 한다.

로버트 찰스 스프롤은 펠라기우스주의가 반(反)기독교이며, 자유주의 신학과 펠라기우스주의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33]

2. 2. 중세 시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타락 이후 사람들은 죄를 피할 수 없으며, 이것이 원래의 의로움 또는 무죄함의 상실, 그리고 정욕 또는 이기적인 욕망을 수반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둔스 스코투스는 이러한 해석을 수정하여 죄가 단지 원래의 의로움의 부족만을 수반한다고 믿었다.[13]

2. 3. 종교 개혁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따라 죄가 인간 본성 전체를 타락시켰다는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13]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14] 마티아스 플라키우스 일리리쿠스만이 ''하나님의 형상'' 자체가 제거되고 타락한 인류의 본질 자체가 죄라고 주장했으나, 이 견해는 콩코드 신조에서 부인되었다.[14]

존 칼빈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사람들이 외적으로 율법을 준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내면의 왜곡이 남아있어, 외적으로 좋든 나쁘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거듭남 이후에도 모든 인간의 행동은 악과 섞여 있다고 보았다.[15] 후기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대체로 이에 동의했지만, 도르트 신조와 그 뒤를 이은 17세기 개혁 신학자들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반복하지 않았고, 칼빈보다 타락한 인류의 상태에 대해 더 온건한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14]

2. 4. 근현대

알미니우스주의는 레몬스트란스 5개 조항,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존 웨슬리에 의해 전적 타락 교리를 수용했지만, 칼빈주의 입장과는 차이를 보인다.[16] 『The Methodist Quarterly Review』에 따르면, 알미니안 감리교인들은 칼빈주의의 전적 타락 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외를 두고 동의한다.[17]

  • 첫째, 모든 사람이 거듭나기 전까지 완전히 타락한 상태로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 둘째, 속죄 아래 있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지 않으며, 전적 타락의 완화되지 않은 악에 방치되지 않는다. 속죄는 그를 위한 은혜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정도를 확보하여 도덕적 빛을 가지게 하고, 좋은 욕망과 신의 뜻을 행하려는 노력을 하게 한다.


일부 개혁 신학자들은 제반적 반펠라기우스주의 교리를 고수하는 사람들을 알미니우스주의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아르미니우스와 웨슬리는 이러한 견해를 강하게 거부했다.[18] 그러나 조건적 선택, 무제한 속죄, 선행 은혜와 같은 유사성 때문에, 특히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견해가 부정확하게 함께 묶이기도 한다. 특히, 선행 은혜는 일부 사람들에게 인간에게 하나님을 따를 자유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3. 신학적 의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스스로 죄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으며,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 개혁자들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죄가 인간 본성 전체를 타락시킨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표현했다.[13]

전적 타락은 인간이 원죄의 결과로 타락한 상태를 말한다. 전적 타락 교리는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마음, 생각, 힘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거나 그럴 능력조차 없으며, 본성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따르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도록 기울어진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타락한 인류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그럴 능력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정, 선택, 중생, 구원으로 부르셔야 한다고 보았다.[19] 반면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는 선행 은총 (또는 "능력 부여 은총")이 전적 타락을 뚫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에 응답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전적 타락은 인간이 가능한 한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의도하는 선조차 그 전제가 잘못되었고, 동기가 거짓되며, 실행이 미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대함과 이타심의 행위조차 사실은 위장된 이기적인 행위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선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기인하며, 인간을 통해서는 결코 기인하지 않는다.[21]

전적 타락 교리는 죄의 전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어떤 부분도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겉으로 아무리 경건해 보여도 모든 사람은 은혜를 필요로 한다.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 논쟁에서 양측 모두 전적 타락을 받아들인다. 두 그룹 간의 차이점은 전적 타락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믿음이다.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알미니우스는 선행 은총을 가르쳤다.

사람은 아담의 창조주인 하느님에 대한 반역, 즉 타락으로 인해 "전적 타락"했다. "전적"은 "타락"이 아담의 후손 모두에게 퍼졌다는 보편성과 인격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가진다. "신학의 제1원리는 인간의 타락, 인간의 죄이다."[32]

로버트 찰스 스프롤은 펠라기우스주의자유주의 신학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33]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의 의지는 죄(''sin'')의 노예가 되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지 않는 한 항상 죄(행위)로 기울어진다.

사람은 "이성"에 있어서도 스스로 현명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다. 계몽주의 시대에 인간 이성은 신으로부터 자립한 이성으로서 자기 주장을 했다. 그 결과 물질 세계는 지중해 세계에서 환태평양 세계로, 현대에는 지구를 넘어 우주로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에 대해 무지하며, 영적인 세계를 잃고 스스로를 사차원의 세계, 오감의 세계에 가두고 있다.

타락 전의 세계와 타락 후의 세계는 다르며, 타락한 "본래의 인간"[34][35]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40] 거듭남하여 크리스천이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비로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36][37][38][39] 인간 지성에도 타락의 영향이 미치므로, 학문에도 크리스천의 학문과 비기독교인의 학문의 두 종류의 학문이 있다.[41]

감정・정서 영역에서도 '타락'의 결과는 현저하며, 현대인은 종종 감정의 전도(倒錯)를 경험한다. 사랑 대신 미워하고, 겸손 대신 오만해진다.

장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띠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되듯이, 그들은 타락하여 띠게 된 사탄의 형상으로 인해 사탄의 자녀로서 정당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3:8)라고 말한다.[37]

일반 은총이 있으므로, 비기독교인, 이교도도 선을 행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상대적인 선을 행할 능력은 있다. 타락한 인간도 악마나 악령만큼 부패가 진행되지는 않는다.[43]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6:7은 중생하지 않은 자의 선행도 죄악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게을리하는 것은 더욱 죄악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44][45] 이는 "악한 자가 밭을 가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악한 자가 밭을 갈지 않는 것은 더욱 죄악하다"라고 표현된다.[46]

3. 1. 인간 본성의 타락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스스로 죄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피할 수 없이 악에 기울어져 있으며,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11] 자유 의지는 있으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없다.[12]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 개혁자들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죄가 인간 본성 전체를 타락시킨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표현했다.[13]

존 칼빈은 모든 인간의 행동이 외적으로 좋든 나쁘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내면의 왜곡이 남아 있다고 보았다. 거듭남 이후에도 모든 인간의 행동은 악과 섞여 있다.[15]

전적 타락은 원죄의 결과로 인간이 타락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마음과 생각과 힘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으며, 본성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따르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도록 기울어져 있다. 심지어 종교와 박애조차도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19]

전적 타락은 인간이 인간성의 일부를 잃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성의 일부 특성이 부패되었음에도 죄를 짓거나 짓지 않을 수 있는 본질적인 능력을 유지한다.[20] 인간이 의도하는 선조차 그 전제가 잘못되었고, 동기가 거짓되며, 실행이 미약하다. 이러한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은 없다. 따라서 관대함과 이타심의 행위조차 사실은 위장된 이기적인 행위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선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기인하며, 인간을 통해서는 결코 기인하지 않는다.[21]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 논쟁에서 양측 모두 전적 타락을 받아들인다. 인류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을 방해하는 타락한 상태에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알미니우스는 선행 은총을 가르쳤다.

사람은 아담하느님에 대한 반역으로 인해 "전적 타락"했다. "전적"은 첫째, "타락"이 전 인류에게 퍼져 아담의 후손인 한, 그 "타락"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는 "타락"의 보편성을 나타내며, 둘째, 인격의 모든 영역에 그 "타락"이 미친다는 의미이다. "신학의 제1원리는 인간의 타락, 인간의 죄이다."[32]

로버트 찰스 스프롤은 펠라기우스주의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구원이 없다고 한다.[33]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전과 타락 후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 posse peccare: 에덴동산에서는 죄를 지을 자유도 있었다.
  • non posse non peccare: 타락 후의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없다.
  • posse non peccare: 은혜를 받은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자유도 있다.
  • non posse peccare: 천국에서는 죄를 지을 자유가 없다.


"이성"에 있어서도, 사람은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어지고 있다. 계몽주의가 일어나면서, 인간 이성은 신으로부터 자립한 이성으로서 자기 주장을 했다. 그 결과, 물질 세계는 지중해 세계에서 환태평양 세계로 넓어졌고, 현대에는 인간의 지식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에 관해 무지하며, 영적인 세계를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사차원의 세계, 오감의 세계에 가두어 버리고 있다.

"본래의 인간"[34][35]은 타락했으므로, 성경을 이해할 수 없으며, 거듭남하여 크리스천이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경을 읽어야 비로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36][37][38][39]

타락 전의 세계와 타락 후의 세계는 다르며, 타락 후의 인간은 타락 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40] 인간의 지성에도 타락의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학문에도 크리스천의 학문과 비기독교인의 학문의 두 종류의 학문이 있다.[41]

감정・정서 분야에서도 이 '타락'의 결과는 현저하며, 종종 현대인은 감정의 전도(倒錯)를 경험한다. 사랑하는 대신 미워하고, 겸손 대신 오만해진다.

장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띠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되듯이, 그들은 타락하여 띠게 된 사탄의 형상으로 인해 사탄의 자녀로서 정당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요한일서 3:8)[37]

일반 은총이 있으므로, 비기독교인, 이교도가 선을 행하는 능력을 전혀 잃은 것은 아니며, 그들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상대적인 선을 행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타락한 인간도 악마나 악령만큼 부패가 진행되지는 않는다.[43]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6:7은, 중생하지 않은 자가 하나님께 명령받은 일로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유익한 선행을 했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죄악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자로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행위를 게을리 하는 것은 더욱 죄악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44][45]

3. 2. 하나님의 은총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스스로 죄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으며,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죄가 인간 본성 전체를 타락시킨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표현했다.[13] 전적 타락 교리는 타락의 결과로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마음이나 능력이 없으며, 본성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따르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주장한다.[19]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럴 능력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중생시키시고, 구원으로 부르셔야 한다.[19]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 논쟁에서 양측 모두 전적 타락을 인정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다. 칼빈주의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알미니우스주의는 선행 은총을 통해 전적 타락을 뚫고 사람들이 구원에 응답할 수 있다고 본다.[37]

전적 타락은 인간이 가능한 한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인간이 의도하는 선조차 그 전제가 잘못되었고, 동기가 거짓되며, 실행이 미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21] 따라서 관대함과 이타심의 행위조차 사실은 위장된 이기적인 행위이며, 모든 선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기인한다.[21]

전적 타락 교리는 죄의 전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어떤 부분도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겉으로 아무리 경건해 보여도 모든 사람은 은혜를 필요로 한다.

장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띠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되듯이, 그들은 타락하여 띠게 된 사탄의 형상으로 인해 사탄의 자녀로서 정당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요한일서 3:8)"라고 말한다.[37]

하지만, 일반 은총이 있으므로, 비기독교인이나 이교도도 선을 행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상대적인 선을 행할 능력은 가지고 있다.[42]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6:7은, 중생하지 않은 자의 선행도 죄악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그들이 이 행위를 게을리 하는 것은 더욱 죄악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44][45] 이는 "악한 자가 밭을 가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악한 자가 밭을 갈지 않는 것은 더욱 죄악하다"라고 표현된다.[46]

진보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다.

3. 3. 구원의 조건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스스로 죄에 묶여 있으며,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12]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타락 이후 사람들은 죄를 피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13]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의 종교 개혁 시기 개혁자들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죄가 인간 본성 전체를 타락시켰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표현했다.[13]

존 칼빈은 모든 인간의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 율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왜곡이 남아 있다고 보았다. 즉, 거듭남 이후에도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악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15]

개혁주의 신학과 루터교 신학자들은 인간이 타락의 결과로 선함이 없거나 겉으로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비록 훼손되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14]

전적 타락 교리는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마음이나 능력이 없으며, 본성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따르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종교와 박애조차도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 따라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중생시키시고, 구원으로 부르셔야 한다고 본다.[19]

그러나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는 선행 은총 (또는 "능력 부여 은총")이 전적 타락을 뚫고 나아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에 응답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전적 타락은 인간이 인간성의 일부를 잃었거나 존재론적으로 악화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죄를 짓거나 짓지 않을 수 있는 본질적인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20] 또한, 인간이 가능한 한 악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인간이 의도하는 선조차 그 전제가 잘못되었고, 동기가 거짓되며, 실행이 미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은 없으며, 모든 선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기인한다.[21]

전적 타락 교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어떤 부분도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겉으로 아무리 경건해 보여도 모든 사람은 은혜를 필요로 한다.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 논쟁에서 두 견해 모두 전적 타락을 받아들인다. 다만,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방법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칼빈주의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알미니우스주의는 선행 은총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믿는다.

4. 다양한 관점

전적 타락 교리에 대한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교파입장
칼빈주의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알미니우스주의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지만, 선행 은총을 통해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
로마 가톨릭교회인간의 자유 의지는 죄로 인해 약화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른 행위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동방 정교회인간은 타락한 상태에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의지는 병들어 있지만, 여전히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죄에 묶여 있으며, 자유 의지는 있으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선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12]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타락 이후 사람들은 죄를 피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둔스 스코투스는 죄가 단지 원래의 의로움의 부족을 의미한다고 수정했다. 종교 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 등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죄가 인간 본성 전체를 타락시켰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지지했다.[13]

4세기의 펠라기우스는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적 타락"이나 아담의 타락조차도 없다고 주장하며, 구원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가능하다고 보았다(펠라기우스주의).[31] 그러나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배척되었다.

세라핌 로즈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든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28] 따라서 그가 전적 타락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키프로스 대주교 크리소스토모스 2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이 서방 기독교에서 왜곡되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29]

4. 1. 칼빈주의

존 칼빈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외적으로 율법을 준수할 수 있더라도,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내면의 왜곡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즉, 겉으로 아무리 좋아 보이는 행동이라도 그 동기와 본질에는 죄성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거듭남 이후에도 모든 인간의 행동은 여전히 악과 섞여 있다고 보았다.[15]

후기 칼빈주의 신학자들도 이러한 칼빈의 견해에 동의했지만, 도르트 신조와 그 뒤를 이은 17세기 개혁 신학자들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칼빈보다 타락한 인류의 상태에 대해 좀 더 온건한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14]

개혁주의 신학과 루터교 신학자들은 인간이 타락의 결과로 선함이 없어지거나 겉으로만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인간이 비록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았다.[14]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전적 타락 교리를 통해, 인간이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마음이나 능력이 없으며, 본성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따르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가르친다.[19] 심지어 종교적인 행위나 박애조차도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선택할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먼저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중생시키시고, 구원으로 부르셔야 한다고 주장한다.[19]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양측 모두 전적 타락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타락하고 부패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응답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진다.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알미니우스는 선행 은총을 가르쳤다.

전적 타락은 아담의 창조주인 하느님에 대한 반역, 즉 타락의 결과이다. 여기서 "전적"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32] 첫째, "타락"이 전 인류에게 퍼져 아담의 후손인 한, 그 "타락"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는 "타락"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둘째, 인격의 모든 영역에 그 "타락"이 미친다는 의미에서 "전적"이다. 즉, 모든 인간은 타락해 있으며, 또한 인간의 인격도 모두 타락해 있다는 의미이다.

4. 2. 알미니우스주의

Arminianism영어는 칼빈주의와 달리 전적 타락 교리를 다르게 해석한다. 레몬스트란스 5개 조항,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존 웨슬리는 전적 타락을 확정했다.[16] 『The Methodist Quarterly Review』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우리는 현재 진정한 알미니안인 감리교인들이 이러한 타락에 대한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본성의 전적 타락에 대한 칼빈주의적 관점으로 언급된 것에 대해, 우리는 다음의 예외와 함께 진심으로 동의한다: 첫째,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중생까지 완전히 타락한 상태로 유지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속죄 아래 있는'' 인간이 정확히 말해서 자연 상태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적 타락의 완화되지 않은 악에 방치되지 않는다. 속죄는 그를 ''위한'' 은혜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정도를 확보했는데, 덕분에 그는 도덕적 빛을 가질 뿐만 아니라 종종 좋은 욕망과 신의 뜻으로 인식되는 것을 행하려는 의도된 노력을 하도록 유도된다.[17]

일부 개혁 신학자들은 제반적 반펠라기우스주의 교리를 고수하는 사람들을 "알미니우스주의"라고 잘못 칭하기도 한다.[18] 이들은 인간 마음에 죄로 오염되지 않은 "의의 섬"이 있어 은혜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와 웨슬리는 이 견해를 강하게 거부했다. 조건적 선택, 무제한 속죄, 선행 은총과 같은 유사성 때문에 이들의 견해가 부정확하게 묶이기도 한다. 특히, 선행 은총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따를 자유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 선행 은총은 전적 타락을 뚫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응답할 수 있게 한다.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 논쟁을 이해하려면 "전적 타락"의 범위를 이해해야 한다. 두 견해 모두 전적 타락, 즉 인류가 타락하여 하나님께 응답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알미니우스는 선행 은총을 가르쳤다.

4. 3. 가톨릭

로마 가톨릭교회펠라기우스주의이단으로 규정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인간의 전적인 타락은 인정하지 않는다.[24] 트리엔트 공의회(1547년 1월)는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의 자유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주장을 이단으로 선언했다.[27] 가톨릭 교회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자유 의지는 이 형상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26]

가톨릭 교회는 마르틴 루터, 장 칼뱅종교 개혁가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중 일부 오류를 잘못 이용했다고 본다.[48] 트리엔트 공의회는 구원에 있어서 은총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른 행위도 필요하다고 강조하여,[47] 종교 개혁에 맞서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얀센주의몰리니즘과 같은 일부 가톨릭 신학 조류에서 전적 타락 개념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은 인간의 자유 의지가 죄로 인해 약화되었을 뿐, 여전히 구원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4. 동방 정교회

정교회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이 주장한 인간의 타락에 대한 이해를 채택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교회에서도 성인으로 존경받지만, 인간의 "타락"에 대한 그의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49][50]

정교회에서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락한 조건 속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육체적인 약화와 영적인 병으로서의 의지의 약함, 연대성 결여와 같은 결과가 그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이해한다.[49]

그러나 정교회는 죄로 인해 인간이 병들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타락하여 전면적으로 부패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루터주의자들이 타락으로 인해 인간 내면의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교회에서는 "신의 형상이 흐려졌을 뿐 멸망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형상(Likeness)은 잃었지만 "형상(Image)은 잃지 않았다"고 주장한다.[51] 또한, 정교회에서는 자유 의지에는 한계가 있지만 멸망하지는 않았으며, 인간의 의지는 병들어 있지만 여전히 선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51]

정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타락의 결과 자유 의지는 사라졌다", "인간성은 그 무너져버린 과오에 굴복당하여 자유를 잃었다"는 설에 동의하지 않는다.[51]

정교회는 예루살렘의 성 키릴로스의 "각 사람은 그 행하는 것을 실행할 힘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죄를 짓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악마는 악으로의 암시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을 당신 자신의 의지에 반하게 할 수는 없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서방 교회 신학의 영향이 컸던 시대에 정교회의 호교적인 신앙 고백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지는 예루살렘 총대주교 도시테오스 2세는 1672년 예루살렘 지방 공회에서 인정된 『신앙 고백』에서 "신은, 의지하는 힘, 즉 자신을 따르는 것을 의지하는 힘도, 따르지 않는 것을 의지하는 힘도, 빼앗지 않는다"고 단언했다.[51]

동시에,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역이라고 여겨진다. 하느님과 그 협력자인 인간 각자의 공헌에 대해 비율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부정된다. 구원 사역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의 사역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롭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는 서로 배척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다. 블라디미르 로스키에 따르면 이는 "같은 현실의 두 극"으로 표현되며, 하느님의 은총의 작용 여지가 넓을수록 인간의 자유도 더욱 활발하게 작용한다.[52]

5. 비판과 반론

전적 타락 교리에 대한 비판과 반론은 다음과 같다.


  • 인간 존엄성 훼손: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교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있다.
  • 도덕적 책임 약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도덕적 책임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 사회 개혁 의지 저해: 전적 타락 교리가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저해하고 현실 도피적인 신앙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은 일반 은총 개념을 통해 반론할 수 있다. 일반 은총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로, 비록 비기독교인일지라도 상대적인 선을 행할 능력을 갖게 한다.

교회사에서 신학의 기본적인 형태는 펠라기우스주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로버트 찰스 스프롤은 자유주의 신학과 펠라기우스주의는 구원이 없는 반(反)기독교적 사상이라고 비판한다.[33] "신학의 제1원리는 인간의 타락, 인간의 죄이다."[32]라는 언급처럼, 전적 타락은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5. 1. 인간의 존엄성 훼손

아담의 창조주인 하느님에 대한 반역, 즉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전적 타락"했다고 한다. 여기서 "전적"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첫째, 타락이 전 인류에게 퍼져 아담의 후손인 한, 그 타락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는 타락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둘째, 인격의 모든 영역에 그 타락이 미친다는 의미에서 "전적"이다. 즉, 모든 인간은 타락해 있으며, 또한 인간의 인격도 모두 타락해 있다는 의미이다.[32]

"타락"은 인격의 세 요소인 "지·정·의" 모두에 미치며, 여기에 사람이 가진 근원적인 과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장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띠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되듯이, 그들은 타락하여 띠게 된 사탄의 형상으로 인해 사탄의 자녀로서 정당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요한1서 3:8)"라고 말한다.[37]

다만, 일반 은총이 있으므로, 비기독교인, 이교도가 선을 행하는 능력을 전혀 잃은 것은 아니며, 그들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상대적인 선을 행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영적인 죽음의 상태는 악마와 다를 바 없지만, 인간인 이교도와 천사였던 악마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42] 타락한 인간도 악마나 악령만큼 부패가 진행되지는 않는다.[43]

5. 2. 도덕적 책임 약화

아담하느님에 대한 반역으로 인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이 타락은 모든 인류에게 퍼져 있고, 인격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장 칼뱅은 인간이 타락하여 사탄의 형상을 띠게 되었다고 말했다.[37]

일반 은총으로 인해 비기독교인도 상대적인 선을 행할 능력은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죽음의 상태에 있다.[42] 타락한 인간은 악마만큼 부패하지는 않았지만,[43] 중생하지 않은 자의 선행은 죄악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44][45]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 따르면, 그들이 선행을 게을리하는 것은 더욱 죄악된 것이다.[44][45] 이는 "악한 자가 밭을 가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악한 자가 밭을 갈지 않는 것은 더욱 죄악하다"라는 말로 표현된다.[46]

5. 3. 사회 개혁 의지 저해

전적 타락 교리는 인간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완전히 부패했으며, 지·정·의 모든 영역에서 타락의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교리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저해하고, 현실 도피적인 신앙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32]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6장 7절에서는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선행을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선행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거나 구원을 얻게 하지는 못하지만, 선행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악이라고 말한다.[44][45] 이는 "악한 자가 밭을 가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악한 자가 밭을 갈지 않는 것은 더욱 죄악하다"라는 말로 표현된다.[46]

즉, 전적 타락 교리가 사회 개혁 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은총 개념에 따르면, 비록 비기독교인이나 이교도가 구원에 이르는 선을 행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인 선을 행할 능력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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