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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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암진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을 막기 위해 곽재우 의병이 벌인 전투이다. 조선은 3대 곡창 지대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잃고 전라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일본군은 전라도 진격 작전을 개시했고, 곽재우는 의병을 조직하여 남강 북안의 정암진에 매복했다. 곽재우는 늪지대에 푯말을 꽂아 일본군을 유인하고 기습 공격을 가해 승리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 제6부대는 전라도 진격을 포기했고, 곽재우의 의병 부대는 성장했다. 정암진 전투는 의병의 첫 승리 중 하나로, 백성들의 항전 의지를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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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진 전투 - [전쟁]에 관한 문서 | |
---|---|
전투 개요 | |
분쟁 | 임진왜란 |
날짜 | 1592년 음력 5월 26일 |
장소 | 경상도 의령 남강 정암진 |
결과 | 조선군의 승리 |
교전 세력 | |
교전국 1 | [[파일:Flag of the king of Joseon.svg|center|90px]] |
교전국 2 | [[파일:Toyotomi mon.png|center|65px]] |
지휘관 및 병력 | |
지휘관 1 | 곽재우 |
지휘관 2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안코쿠지 에케이 |
병력 1 | 의병 50명 |
병력 2 | 병력 2000명 |
피해 규모 | |
사상자 1 | 없음 |
사상자 2 | 불명 |
2. 배경
임진왜란 발발 직후,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파죽지세에 밀려 경상도와 충청도를 상실하고, 곡창지대인 전라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곽재우는 안코쿠지 에케이에 대항하기 위해 남강 북안의 정암진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다.
2. 1. 조선의 위기
임진왜란 초기 조선 조정은 3대 곡창 지대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일본군에게 잃고, 남은 전라도는 쌀이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기에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이에 일본군은 전라도 진격 작전을 개시, 6부대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지휘하고 그의 휘하 부하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는 2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경상도 의령으로 진격했다.2. 2.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 작전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에게 크게 밀린 조선 조정은 3대 곡창 지대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잃었고, 남은 전라도는 쌀이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기에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이에 일본군은 전라도 진격 작전을 개시하여, 일본군 제6부대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지휘를 맡았다. 고바야카와 휘하의 안코쿠지 에케이는 2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경상도 의령으로 진격하였다.2. 3. 곽재우의 의병 봉기
임진왜란 초기 조선 조정은 3대 곡창 지대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일본군에게 잃었다. 쌀이 가장 많이 나는 전라도는 꼭 확보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이에 일본군은 전라도 진격 작전을 개시하여 6부대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지휘하고, 그의 부하 안코쿠지 에케이는 군사 2000명을 이끌고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경상도 의령으로 진격하였다. 한편, 의령의 선비 출신 곽재우는 유팽로에 이어 두 번째로 의병 50명을 조직하여 일본군에 맞섰다. 곽재우는 안코쿠지 에케이에 대항해 남강 북쪽 정암진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다.3. 전투 과정
음력 5월 26일 안코쿠지(에케이 ?)의 병력이 정암진 대안에 도착하여 도하를 시도했으나, 곽재우가 이끌던 의병군의 매복 작전에 의해 크게 패배하였다. 곽재우는 일본군이 설치한 나무 푯말을 늪지대로 옮겨 일본군을 유인했고, 정암진 요소와 숲에 매복한 군사들로 하여금 기습 공격을 가하여 일본군을 격퇴했다.
3. 1. 일본군의 도하 준비
안코쿠지 에케이 부대는 정암진에 도착하여 지역 주민을 동원해 도하 지점을 설정하고 정찰대를 보냈다. 일본군은 통과할 지점에 나무 푯말을 꽂고 뗏목을 만드는 등 도하 준비를 하였다.3. 2. 곽재우의 매복 작전
음력 5월 26일, 안코쿠지(에케이 ?)의 2,000명 병력은 정암진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들은 지역 주민을 동원하여 강을 건널 지점을 정하고, 정찰대를 보내 통과할 지점에 나무 푯말을 꽂아 표시해 두고 뗏목을 만들어 건널 준비를 했다.곽재우는 밤 사이에 군사들을 동원해 나무 푯말을 늪지대에 옮겨 꽂아두고, 정암진 곳곳과 숲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두었다. 날이 밝자 안코쿠지 부대의 일본군 선봉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으나 늪지대로 잘못 들어가 곽재우의 의병군에게 전멸당했다. 안코쿠지(에케이 ?)의 주력군이 남강을 건넜으나, 미리 대기하던 곽재우 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다.
3. 3. 일본군의 패배
안코쿠지의 2,000명 병력은 정암진 건너편에 도착해 지역 주민을 동원해 강을 건널 지점을 정하고 정찰대를 보내 통과할 지점에 나무 푯말을 꽂아 표시를 해두고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 이에 밤 사이에 곽재우는 군사들을 동원해 나무 푯말을 늪지대에 꽂아두고 정암진 곳곳과 숲에 군사들을 매복시켜두었다. 날이 밝자 안코쿠지의 일본군 선봉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으나 늪지대로 잘못 들어가 곽재우의 의병군에게 전멸되었고, 안코쿠지의 주력군이 남강을 건넜으나 미리 대기하던 곽재우 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다.4. 결과 및 영향
이 전투에서 일본군 제6부대는 패배하여 전라도 진격을 포기했다. 이로써 제6부대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군 부대 중 유일하게 전라도에 진출하지 못한 부대가 되었다. 곽재우는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승리했으며, 김성일의 도움으로 의령과 삼가를 확보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4. 1.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 좌절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 제6부대는 전라도 진격을 포기하여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군 부대 중 유일하게 전라도에 진출하지 못한 부대가 되었다.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승리한 곽재우 의병 부대는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의 도움으로 의령과 삼가 두 현을 곽재우의 지휘 아래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병력이 1000명으로 늘어났고, 전 목사 오운과 박사제의 3000명의 병력까지 합세해 총 4000명의 병력으로 불어났다.4. 2. 곽재우 의병 부대의 성장
곽재우 의병 부대는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의 지원으로 의령과 삼가를 확보하여 병력이 1,000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전 목사 오운과 박사제 등의 병력과 합세하여 총 4,000명의 병력으로 성장하였다.4. 3. 역사적 의의
정암진 전투에서 일본군 6부대는 패배하면서 전라도 진격을 포기했다. 이로써 6부대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군 부대 중 유일하게 전라도에 진출하지 못한 부대가 되었다. 곽재우는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승리했으며,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의 도움을 받아 의령과 삼가 두 현을 지휘하게 되었다. 곽재우 부대는 병력이 1000명으로 늘었고, 오운과 박사제의 3000명 병력까지 합세하여 총 4000명으로 불어났다.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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