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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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원함은 1880년대 청나라 북양함대의 기함으로, 독일 불칸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1885년 청나라에 인도되어 북양수사에 배치되었으며, 조선, 러시아를 방문했고, 일본 방문 시에는 나가사키 사건이 발생했다. 청일전쟁 중 황해 해전에 참여하여 정여창 제독이 부상당하고 159발의 피격을 받았지만, 웨이하이웨이 방어전에서 어뢰 공격을 받아 좌초된 후 자침했다. 현재 복원되어 웨이하이 항구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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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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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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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정보 | |
이름 | 정원 |
한자 표기 | 定遠 |
로마자 표기 | Dingyuan |
함종 | 장갑함 |
함번 | 1 |
제작자 | 불칸 조선소, 독일 |
운영자 | 청나라 북양함대 |
깃발 그림 | Flag of China (1862–1889).svg |
발주 | 1881년 |
기공 | 1881년 3월 31일 |
진수 | 1882년 12월 28일 |
취역 | 1884년 |
배치 | 1885년 10월 29일 |
최후 | 1895년 2월 10일 |
자매함 | 진원 |
함급 정보 | |
함급 | 정원급 전함 |
배수량 | 상비: 7,144 t |
만재 배수량 | 7,355 t |
전장 | 94.5m |
선폭 | 18.4m |
흘수 | 5.94 m |
설치 동력 | 7,200 ihp (5,400 kW) |
보일러 | 8 원통 보일러 |
추진 | 2축; 2 트렁크 증기 기관 |
속력 | 15.4 노트 (28.5 km/h) |
항속 거리 | 10노트로 4,500 해리 (8,300 km) |
정원 | 363명 |
무장 | |
주포 | 2 x 트윈 12인치 후장포 |
부포 | 2 x 싱글 6인치 후장포 |
속사포 | 6 x 싱글 1인치 속사포 |
어뢰 발사관 | 3 x 어뢰발사관 |
장갑 | |
수선 장갑대 | 14인치 |
갑판 | 3인치 |
바베트 | 12인치 |
사령탑 | 8인치 |
보트 | 어뢰정 3척 |
2. 배경
현대적 해군을 창설하기 위한 일환으로, 북양대신 리홍장은 최신 기술을 가지고 있는 영국과 독일의 조선소에 주목했다. 광범위한 협상 후, 170만 냥 상당의 은원(620만 상당의 독일 골드마르크)으로 계약하여 독일어로 서명하였고, 슈테틴에 있는 불칸 조선소에서 정원함을 건조하기로 했다.
정원함의 용골은 1881년 3월 31일에 기공되었고, 1881년 12월 28일 독일에 파견된 청나라 특사였던 허경징의 감독 하에 진수되었다. 해상 실험은 1883년 5월 2일에 시작되었다.
2. 1. 건조 과정
현대적 해군을 창설하기 위한 일환으로, 북양대신 리홍장은 최신 기술을 가지고 있는 영국과 독일의 조선소에 주목했다. 광범위한 협상 후, 170만 냥 상당의 은원(620만 상당의 독일 골드마르크)으로 계약하여 독일어로 서명하였고, 슈테틴에 있는 불칸 조선소에서 정원함을 건조하기로 했다.정원함의 용골은 1881년 3월 31일에 기공되었고, 1881년 12월 28일 독일에 파견된 청나라 특사였던 허경징의 감독 하에 진수되었다. 해상 실험은 1883년 5월 2일에 시작되었다.
3. 전함 이력
독일 슈테틴의 불칸 조선소에서 건조된 정원은 청불 전쟁으로 인해 인도가 지연되었다. 1885년 청나라에 인도되어 북양수사에 배치되었고, 기함 임무를 맡았다. 1886년 조선, 러시아를 방문했고, 일본 방문 시에는 나가사키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 사회에 큰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청일전쟁 중 황해해전에 기함으로 참가하여 주포 포격 중 함교 붕괴로 사령관 정여창 제독이 부상당했다. 159발의 명중탄을 맞았지만 작전 능력은 유지되었다. 황해해전 이후 웨이하이웨이 방어를 맡았으나, 1895년 2월 5일 수뢰정의 야습으로 어뢰 공격을 받아 좌초되었다. 포대로서 전투를 계속했지만, 2월 9일 육상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고, 2월 10일 일본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침했다. 함장 유보섬(劉歩蟾)도 전함과 운명을 같이했다.
현재 복원함이 웨이하이 항구에 전시 중이다.
3. 1. 청나라 해군 배치
독일 슈테틴의 불칸 조선소에서 건조된 정원은 청불 전쟁으로 인해 인도가 지연되었다. 1885년 청나라에 인도되어 북양수사에 배치되었고, 기함 임무를 맡았다. 1886년 조선, 러시아를 방문했고, 일본 방문 시에는 나가사키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 사회에 큰 위협으로 인식되었다.청일전쟁 중 황해해전에 기함으로 참가하여 주포 포격 중 함교 붕괴로 사령관 정여창 제독이 부상당했다. 159발의 명중탄을 맞았지만 작전 능력은 유지되었다. 황해해전 이후 웨이하이웨이 방어를 맡았으나, 1895년 2월 5일 수뢰정의 야습으로 어뢰 공격을 받아 좌초되었다. 포대로서 전투를 계속했지만, 2월 9일 육상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고, 2월 10일 일본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침했다. 함장 유보섬(劉歩蟾)도 전함과 운명을 같이했다.
현재 복원함이 웨이하이 항구에 전시 중이다.
3. 2. 나가사키 사건
1886년, 정원함은 북양함대의 기함으로서 조선과 러시아를 거쳐 일본을 방문했다. 이때, 청나라 수병들이 나가사키에서 난동을 부린 '나가사키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일본이 해군력을 증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청일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3. 3. 청일 전쟁
1894년 청일전쟁 발발 후, 황해 해전에 참가하여 일본 함대와 교전했다. 주포를 발사하던 중 함교가 붕괴되어 정여창 제독이 부상을 입고 지휘력을 상실했다. 그 이후 159발의 피격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지속했으나, 웨이하이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자침했다. 함장 유보섬(劉歩蟾)도 전함과 운명을 같이 했다.3. 4. 최후
1895년 2월 5일 웨이하이웨이 전투에서 일본군 수뢰정의 야습으로 어뢰에 맞아 얕은 바다에 좌초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포대로서 전투를 속행하였지만, 2월 9일에는 육상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 2월 10일, 일본군에게 나포되지 않기 위해 자침하였다. 함장 유보섬(劉歩蟾)도 전함과 운명을 같이 했다.4. 복원
현재 복원된 정원은 웨이하이 항구에 전시되어 있으며, 청일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한국 근대사에서 외세의 침략과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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