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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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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경기도 경성부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중퇴하고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한 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청주교구장, 서울대교구 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를 거쳐 2006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2012년 은퇴했다. 그는 생명윤리를 강조하며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했으며, 사회 정의를 위해 뉴타운 재개발 정책, 쌍용자동차 노사 분쟁, 용산 참사 등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2021년 4월 27일 향년 90세로 선종하였으며, 사후 각막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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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4년의 추기경
2014년의 추기경.
존칭그의 에미넌스
이름니콜라스 정진석
본명정진석
로마자 표기Jeong Jin-seok
한자 표기鄭鎭奭
출생일1931년 12월 7일
출생지서울, 한국
사망일2021년 4월 27일
사망지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국적한국
종교로마 가톨릭
모교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좌우명"모든 이에게 모든 것" (Omnibus omnia)
니콜라스 정진석 문장
니콜라스 정진석 문장
직위
직책추기경, 서울 대교구장
임명일1998년 4월 3일
임기 시작1998년 6월 29일
임기 종료2012년 5월 10일
전임자김수환
후임자염수정
기타 직책산타 마리아 임마콜라타 디 루르데스 아 보체아 성당 명의 주임사제
이전 직책천주교 청주교구장 (1970년–1998년)
평양교구장 서리 (1998년-2012년)
서품 및 서임
사제 서품일1961년 3월 18일
사제 서품자노기남
주교 서품일1970년 10월 3일
주교 서품자노기남
추기경 서임일2006년 3월 24일
추기경 서임자교황 베네딕토 16세
계급추기경 사제
추가 정보
주교 서임자가브리엘 장봉훈 (1999년 8월 24일)
요셉 이한택 (2002년 1월 25일)
염수정 (2002년 1월 25일)
루카 김운회 (2002년 11월 21일)
바실 조규만 (2006년 1월 25일)

2. 유년 시절

1931년 12월 7일 경기도 경성부 수표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에서 아버지 정원모와 어머니 이복순(루시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정원모는 일제강점기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로, 1931년 여름 조선공산당 재건 국내공작위원회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구속되었고,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44년에는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조사를 받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석방되었다. 광복 후 정원모는 월북하여 북한 정부에서 공업성 부상(차관급)을 지냈으나, 이후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진석은 아버지가 처음 체포될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었으며, 아버지가 출소 후 다른 가정을 꾸리면서 아버지와는 인연이 끊어졌다. 이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고 외동아들로 자랐다. 정진석은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으며,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일본으로 간 뒤 연락이 끊겼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14]

3. 사제와 주교

19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중림동 성당 보좌신부와 성신중·고등학교 교사 등 여러 직책을 거치며 사목 및 교육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서울대교구 법원 서기, 1964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1965년 서울대교구장 비서 등을 역임하며 교구 행정에도 참여하였다.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2]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인 1970년 6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당시 공석이던 청주교구의 제2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다.[3] 당시 만 40세의 나이로 한국 주교단 중 가장 젊었다.[2] 같은 해 10월 3일 주교 서품을 받고 청주교구장으로 착좌하여 이후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다. 청주교구장 재임 중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무(1987년~1993년), 부의장(1993년~1996년), 의장(1996년~1999년) 등을 역임하며 한국 천주교회 발전에 기여했다.

1998년 4월 3일, 고령으로 은퇴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 교구장 겸 서울관구 관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4] 같은 해 6월 6일 평양교구장 서리(교구장 서리)로도 임명되었다.[5]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던 2006년 3월 24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6] 이후 교회법상 교구장 정년인 75세를 넘겨서도 직무를 수행하다가, 만 80세가 된 후 은퇴 의사를 밝혔고 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을 수락하면서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직에서 퇴임하였다.[8]

3. 1. 사제 서품과 초기 활동

1951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다. 이후 1955년 성신대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다.

1961년 3월 18일 서울대교구에서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1]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직후 중림동 성당 보좌신부(1961년)로 사목 활동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부터 1967년까지 서울 성신고등학교(당시 소신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62년에는 서울대교구 법원 서기[2]를, 1964년부터 1965년까지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2]를 맡았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는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의 비서 겸 상서국 부국장을 지냈고, 1966년에는 상서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는 서울 성신고등학교 부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로마의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2]

3. 2. 청주교구장 시절 (1970-1998)

1968년 로마로 유학하여 1970년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2] 귀국 직후인 1970년 6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공석이던 제2대 청주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다.[3] 당시 40세의 나이로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서 가장 젊은 주교였다.[2]

같은 해 10월 3일, 청주시 소재 성가정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를 주례 주교로, 제임스 파디 주교와 한공렬 주교를 공동 집전 주교로 하여 주교 서품을 받고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2] 정진석 주교는 특유의 온화한 성품으로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끄는 목자로서 사목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재단법인 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청주교구장 재임 기간 동안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CBCK)에서도 여러 중책을 맡으며 한국 천주교회 발전에 기여했다.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기간직책
1973년 10월 15일 ~ 1976년 10월 11일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
1975년 2월 26일 ~ 1981년 5월 28일주교회의 상임위원
1978년 4월 4일 ~ 1984년 11월 26일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1983년 2월 25일 ~ 2007년 10월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1984년 11월 30일 ~ 1987년 11월 18일주교회의 상임위원
1987년 11월 18일 ~ 1993년 10월 13일주교회의 총무
1991년 3월 4일 ~ 1996년 10월 17일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
1993년 10월 14일 ~ 1996년 10월 17일주교회의 부의장
1996년 10월 17일 ~ 1999년 10월 14일주교회의 의장



1998년 4월 3일, 고령으로 은퇴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면서[4] 28년간의 청주교구장직을 마치게 되었다.

3. 3. 서울대교구장 및 추기경 시절 (1998-2012)

1998년 4월 3일, 고령으로 은퇴한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 교구장 겸 서울관구 관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다.[4] 같은 해 6월 6일에는 평양교구장 서리(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었다.[5] 그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은 1998년 6월 29일에 거행되었다.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정진석 대주교는 다양한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1998년 평화방송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1999년 7월 8일부터 2012년 5월 10일까지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이사장은 1998년 6월 29일부터 2003년 2월까지(제2대 이사장으로 추정되나, 원본 소스에는 1999-2002년 기록도 존재함), 그리고 2004년 10월 4일부터 2012년 6월 20일까지(제4대) 두 차례 역임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내에서도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1996년부터 맡아오던 주교회의 의장직을 1999년 10월 14일까지 수행했으며, 1998년 10월 13일부터 2004년 10월 14일까지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2004년 10월부터 2012년 5월까지 한국외방선교회 총재를 지냈다.

2006년 3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6] 그의 명의본당은 로마의 보체아의 루르드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추기경 서임 이후 교황청에서도 활동했는데, 2007년 2월 3일 교황청 조직 및 경제 문제 연구 추기경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5월 6일에는 교황청 가정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7][13] 이후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교회법상 교구장 정년인 75세를 넘긴 뒤에도 직무를 수행하다가, 2011년 12월 7일 80세 생일을 맞아 공식적으로 은퇴 의사를 표명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2012년 5월 10일 그의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직 사임을 수락했으며,[8] 후임 서울대교구장으로는 당시 염수정 대주교가 임명되었다.

4. 주요 활동 및 입장

정진석 추기경은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며 활동했다. 특히 생명윤리와 사회 정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생명윤리 분야에서는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인간배아 파괴를 전제로 하는 살인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연구 중단을 촉구했다.[17] 그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강조하며, 서울대교구 내에 생명위원회를 신설하고 관련 연구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20]

사회 정의 분야에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2009년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 정책에 대해 서민과 세입자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비판했고,[1] 쌍용자동차 노사 갈등[21]과 용산 참사[22]에 대해서는 약자의 입장에서 평화적 해결과 법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때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위로와 함께 정부의 소통 노력을 당부했다.[23]

4. 1. 생명윤리 강조

황우석 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2005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대주교는 해당 연구에 대해 강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 정 대주교는 성명서를 통해 황 교수의 연구가 “인간배아 파괴를 전제로 하는 살인 행위”와 같다며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17] 그는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를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인간 생명이 극도로 훼손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연구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17]

정 대주교는 또한 교회가 황 교수 연구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는 지점으로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생명을 복제해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자 존엄성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17] 그는 가톨릭교회가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윤리적 및 임상적으로 문제가 없는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17]

이러한 비판에 대해 황 교수는 “필요한 경우 가톨릭 지도자를 만나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혔고, 정 대주교 역시 “황 교수가 귀국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만나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화답했다.[18]

두 사람의 만남은 2005년 6월 15일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의 대교구장 집무실에서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만남에서 다양한 줄기세포 유도 방법, 임상의학적 장단점, 생명의 시작과 여성 난자 사용에 대한 윤리적 문제 등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있었으나, 배아를 생명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는 좁히지 못했다. 정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가톨릭교회는 수정을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보고 있어서 배아 파괴를 인간 파괴로 간주한다. 이번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역시 인간배아로 규정하고 있다”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했다.[19]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하기로 한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안에 생명위원회를 신설했다. 또한, 성체줄기세포 연구와 임상실험을 위해 약 100억을 투입하여 2005년 10월 5일 세포치료 사업단을 발족시켰다. 이와 함께 국내 성체줄기세포 연구 관련 기관 및 단체와 협력하기 위한 ‘성체줄기세포연구협력단’을 조직하고,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사회 단체와 연대하여 생명존중운동 기구인 ‘생명연대’도 발족했다.[20]

4. 2. 사회 정의 활동

정진석 추기경은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현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사회 정의 실현을 촉구했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의 서민 소외, 노동 문제, 사회적 참사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2009년에는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 정책이 세입자와 서민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돈보다 사람 중심의 정책"을 펼칠 것을 촉구했고, 장기화되던 쌍용자동차 노사 갈등에 대해서는 "힘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노조원 가족들을 위로했다.[21] 같은 해 말에는 용산 참사와 관련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입법기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22]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발생 시에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위로와 함께,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며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23]

4. 2. 1.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비판

2009년 7월 19일, 정진석 추기경은 당시 서울시가 추진하던 뉴타운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1] 그는 대규모 재개발 예정지로 지정되어 강제 철거 위기에 처한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집전하며 강론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1] 정 추기경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지역의 세입자와 서민의 처지를 도외시한다면 그 정책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1] 또한 그는 "재개발 사업은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복지는커녕 추가 부담금 때문에 원주민의 70% 이상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고 있다"고 비판하며, "서민에게 혜택을 줄 거라는 뉴타운 재개발이 오히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이런 정책은 분명히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4. 2. 2. 쌍용자동차 사태

2009년 7월 30일, 정진석 추기경은 쌍용자동차 노사 대립 사태와 관련하여 “모든 문제를 힘으로만 해결하는 것은 불의”라고 지적했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에서 사전 조율 없이 찾아온 쌍용자동차 노조원 가족 10명을 만나 위로하며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불의의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모든 문제 해결에는 인내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이번 문제가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선의를 가진 많은 이들이 이번 사태가 좋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또 노력할 것”이라며 “부족한 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여러분을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대교구청 측은 노조원 가족들이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방문하여 사측의 의약품, 음식, 식수 공급 차단에 따른 어려움과 인권 침해 현실을 토로했으며, 정 추기경은 이를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했다고 전했다.[21]

4. 2. 3. 용산 철거 현장 화재 사건

2009년 12월 8일 정진석 추기경은 용산 참사의 조속한 해결을 호소하였다. 그는 "용산 참사의 핵심은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재개발을 하는 곳마다 문제가 생기고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관련법이 미비하다는 것을 뜻하므로, 입법기관 종사자들이 법 제도 정비 등에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입법기관 종사자들에게 특권도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대우를 받는 만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지 의문"이라며 입법기관의 역할을 촉구하는 동시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22]

4. 2. 4. 천안함 사건

2010년 4월 4일, 정진석 추기경은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2010년 3월 26일)에 대해 언급하며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정 추기경은 명동 주교좌 성당에서 주례한 예수부활대축일 미사에서 "지난 3월 26일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천안함 승조원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실종자 구조작업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애써 주시는 모든 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구조 작업 중 희생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자고 덧붙였다.

이후 4월 6일에는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 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용산 참사 때도 그래야 했지만, 이번 천안함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도 정부가 더욱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를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는 노력을 보였으면 한다"고 당부했다.[23]

5. 은퇴 및 선종

2011년 12월 7일 80세 생일을 맞아 추기경 직무에서 물러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2년 5월 10일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 교구장주교직 은퇴를 받아들였으며[8], 후임 교구장으로는 당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이자 총대리였던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가 임명되었다.[8]

2021년 2월 노환으로 인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9][10] 입원 당시 깨끗하고 편안한 선종을 준비하고 싶다며 수술과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혔다.[10][11] 두 달 후인 4월 27일 향년 90세로 선종하였다.[24][9] 선종 직전 사후 장기기증에 서약하였고, 자신의 각막을 기증한 뒤 선종하였다.[24][11] 장례는 서울대교구장으로 명동성당에서 5일장으로 치러졌다.[24]

6. 문장

정진석 추기경의 문장


방패 왼편의 문양은 대한민국을 돌보는 성모 마리아의 보호(세 별) 아래, 순교 성인들의 정신으로(붉은색 바탕의 빨마와 칼), 성덕(聖德)을 실천함으로써(별과 칼의 금색), 한반도에 빛을 비추어(노란색 무궁화) 한국 사람들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룩하여 온 백성이 성가정 즉, 그리스도의 부모인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가 이룬 가정을 본받아 화목한 한 가족을 이루도록 하고자 함을 뜻한다.

방패 오른편의 문양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작은 원)를 중심으로, 성령(비둘기)과 함께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큰 원)이 되어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그들이 (그분 자신이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도록”(요한 복음서 10장 10절)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증진하고자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왼편은 교구, 오른편은 자신을 나타냄으로써 완벽한 문장이 된다.

문장 아랫쪽 리본에는 라틴어로 OMNIBUS OMNIA|옴니부스 옴니아lat라고 씌어 있는데, 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정진석 추기경의 사목표어이다.

참조

[1] 웹사이트 Life of Cardinal Nicholas Cheong Jin-suk http://www.koreahera[...] 2021-05-02
[2] 뉴스 Former Catholic prelate of Seoul, Cardinal Nicholas Cheong Jin-suk, dies at 89 https://www.licas.ne[...] Licas News 2021-04-28
[3] 서적 Acta Apostolicae Sedis http://www.vatican.v[...] 1970-01-01
[4] 서적 Acta Apostolicae Sedis http://www.vatican.v[...] 1998-01-01
[5] 서적 Acta Apostolicae Sedis http://www.vatican.v[...] 1998-01-01
[6] 웹사이트 Assegnazione dei Titoli e delle Diaconie ai nuovi Cardinali https://www.vatican.[...] Ufficio delle Celebrazioni Liturgiche del Sommo Pontefice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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