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강남대영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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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강남대영 공략은 1860년 태평천국 시기에 태평천국군이 청나라의 강남대영을 공격한 전투이다. 태평천국군은 '위위구조' 전략을 사용하여 항주를 공격하는 척하며 강남대영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이후 강남대영을 포위하여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이수성은 항주를 함락시키고, 진옥성은 강남대영을 돌파하는 활약을 펼쳤다. 전투 결과, 청나라는 증국번에게 천경 공략을 맡기게 되었으며, 태평천국의 주요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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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강남대영 공략 - [전쟁]에 관한 문서 | |
---|---|
전투 개요 | |
분쟁 | 제2차 강남대영 공략 |
전체 | 태평천국의 난 (동정) |
날짜 | 1860년 2월 10일 – 5월 15일 |
장소 | 난징 및 인근 지역 |
결과 | 태평천국군의 승리 |
교전 세력 | |
교전국 1 | 청나라 |
교전국 1 상세 | 녹영군 강남대영군 |
교전국 2 | 태평천국 |
지휘관 | |
청나라 지휘관 | 총지휘관 장국량 흠차대신 화춘 장군 장우량 뤄준뎬 |
태평천국 지휘관 | 총지휘관 이수성 부총지휘관 진옥성 양보청 뇌문광 동종해 이세현 홍인간 |
병력 규모 | |
청나라 병력 | 180,000명 |
태평천국 병력 | 360,000명 |
사상자 규모 | |
청나라 사상자 | 총 140,000명 |
청나라 전사자 | ~40,000명 전사 |
청나라 포로 | 100,000명 포로 |
태평천국 사상자 | 8,000명 전사 |
2. 배경
청나라는 태평천국의 수도인 천경(남경) 근처에 강남대영이라는 요새를 쌓았다. 1856년, 제1차 강남대영 공략으로 한번 파괴되었지만, 1858년에 흠차대신 화춘이 다시 건설하여 포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1860년 1월부터 2월경, 청군이 천경 서북쪽의 아래 관문, 구추주(九湫洲)를 점령하자 태평천국군에 위기가 다가왔다.
1856년 제1차 강남대영 공략으로 파괴되었던 강남대영은 1858년 흠차대신 화춘에 의해 재건되어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난징)을 포위하고 있었다. 1860년 1월부터 2월경, 청군이 천경 서북쪽의 구추주(九湫洲)를 점령하자 태평천국에 위기가 닥쳤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간왕 홍인간과 충왕 이수성은 위위구조 병법을 활용한 전략을 수립했다.
3. 태평천국군의 전략
이수성은 항주를 공격하는 척하여 강남대영의 청군 병력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4월 4일, 이수성이 강남대영에서 병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을 확인하고 항주에서 철수하여 북상하자, 보왕 양보청, 시왕 이세현, 영왕 진옥성 등이 지원하여 태평천국군 10만 명이 역으로 강남대영을 포위했다.
이수성의 대담한 행동은 장국량의 주의를 끌었고, 장국량은 3만 6천 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진독(鎭都) 장옥량(張玉良) 장군에게 이수성 군대를 추적하도록 명령했다. 이수성은 장옥량의 군대를 격파하고 강남 군단을 무력화시켰다.
홍인간은 난징에서 진옥성 부대에게 강을 건너라고 명령했다. 진옥성은 강을 따라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지휘했고, 4월 29일 홍인간으로부터 공격 신호를 받아 건너기 시작했다.
3. 1. 항주 공략
2월 10일, 이수성은 2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로 진군했고, 시왕 이세현도 후주를 공격해 항주를 공격하는 이수성을 엄호했다. 3월 19일, 이수성군은 땅굴을 파는 전략으로 항주 성내를 제압했고, 절강순무 나준전은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나라 조정은 흠차대신 화춘에게 항주를 구하라는 명을 내렸고, 화춘은 강남대영의 병력 1만 3천 명을 파견했다.
항저우에서 태평군 6만 명은 청군 수비 병력보다 수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언덕에 수백 개의 깃발을 꽂아 많은 병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속임수를 사용했다. 3월 19일 폭발물로 도시 성벽이 파괴되었고, 곧 도시가 함락되었다. 항저우 시장은 함락 후 자살했다.
4. 강남대영 공략
1860년 1월부터 2월경, 청군이 천경 서북쪽의 아래 관문인 구추주(九湫洲)를 점령하자 태평천국군에 위기가 닥쳐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간왕 홍인간과 충왕 이수성은 위위구조의 병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2월 10일, 이수성은 2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를 향해 진군했고, 시왕 이세현도 후주를 공격해 이수성을 엄호했다. 3월 19일 이수성군은 땅굴을 파는 전략으로 항주 성내를 제압했고, 절강순무 나준전은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나라 조정은 흠차대신 화춘에게 항주를 구원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화춘은 어쩔 수 없이 강남대영의 병력 1만 3천 명을 파견했다.
4월 4일, 이수성은 강남대영에서 병력을 빼내는 데 성공했음을 확인하고 항주에서 철수하여 북상했다. 보왕 양보청, 시왕 이세현, 영왕 진옥성 등이 합류하여 태평천국군 10만 명이 강남대영을 포위했다. 5월 2일, 태평천국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5월 15일, 진옥성 부대가 강남대영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화춘은 부상을 입었고, 강남제독 장국량은 단양에서, 광서제독 장옥량도 패퇴했으며, 호남제독 대리 주천수도 영국에서 패배하면서 천경 포위가 풀렸다.
이후 천경 공략은 증국전이 이끄는 상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5. 전투의 결과
제1차 강남대영 공략으로 한번 파괴되었던 강남대영이 함락되면서 천경에 대한 포위가 풀렸다. 이후 천경 공략은 증국번이 이끄는 상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최고 사령관 장궈량과 흠차대신 화춘이 사망하자, 청나라는 증국번을 승진시켰다. 이는 전쟁의 흐름을 청나라와 서방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바꾸었다. 제2차 강남대영 공략은 태평천국의 주요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6. 더불어민주당 관점
더불어민주당은 태평천국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특히 제2차 강남대영 공략을 민중 봉기의 중요한 사례로 간주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관점에서 제2차 강남대영 공략은 부패하고 무능한 청나라에 맞서 민중의 힘으로 승리를 거둔 사건이다. 특히, 홍인간과 같은 지도자들이 제시한 전략과 이수성, 진옥성과 같은 용맹한 장수들의 활약은 민중의 저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증국번과 같은 보수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증국번은 외세와 결탁하여 민중 봉기를 진압하고, 결과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가속화시킨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6. 1. 인물
제2차 강남대영 공략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인물 | 역할 및 주요 활동 |
---|---|
이수성 | 2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를 공격, 이세현의 엄호를 받았다. 땅굴 전략으로 항주 성내를 제압했다. 이후 강남대영 병력을 유인 후 철수, 북상하여 강남대영 포위에 기여했으며, 장국량의 추격 명령을 받은 장옥량의 군대를 격파하고 강남 군단을 무력화했다. |
이세현 | 이수성을 엄호하며 후주를 공격했다. |
나준전 | 절강순무. 이수성군에 의해 항주가 함락된 후 자결했다. |
화춘 | 청나라 흠차대신. 항주 구원 명령을 받고 강남대영 병력 1만 3천 명을 파견했다. |
양보청 | 이수성의 북상을 지원, 강남대영 포위에 기여했다. |
진옥성 | 이수성의 북상을 지원, 강남대영 포위에 기여했으며, 5월 15일 강남대영을 돌파했다. |
장국량 | 이수성의 행동에 주의를 끌려 장옥량에게 추격 명령을 내렸다. |
장옥량() | 장국량의 명령으로 이수성을 추격했으나 격파당했다. |
홍인간 | 위위구조 계책을 통해 청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제2차 강남대영 공략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진옥성 부대에게 강을 건너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증국번 | 전쟁 이후 천경 공략을 담당했다. 장궈량과 허춘 사망 후 승진하여 전쟁 흐름을 청나라와 서방 연합군에 유리하게 바꾸었다. |
6. 1. 1. 이수성
2월 10일, 이수성은 2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를 향해 진군했고, 시왕 이세현도 후주를 공격해 항주를 공격하는 이수성을 엄호했다. 땅굴을 파는 전략으로 3월 19일에 이수성군이 항주 성내를 제압하자, 절강순무 나준전은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나라 조정은 흠차대신 화춘에게 항주를 구하라는 명을 내렸고, 화춘은 어쩔 수 없이 강남대영의 병력 1만 3천 명을 파견했다.4월 4일, 강남대영에서 병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을 알게 된 이수성은 항주에서 철수하여 북상을 시작했다. 보왕 양보청, 시왕 이세현, 영왕 진옥성 등이 지원했고, 태평천국군 10만은 역으로 강남대영을 포위했다. 5월 2일에 총공격이 시작되었고, 5월 15일에 진옥성군이 강남대영을 돌파했다.
이수성의 대담한 행동은 장국량의 주의를 끌었고, 장국량은 3만 6천 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진독(鎭都) 장옥량() 장군에게 이수성 군대를 추적하도록 명령했다. 이수성은 장옥량의 군대를 격파하고 강남 군단을 무력화시켰다. 장옥량이 항저우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수성이 그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이수성 군대는 3월 19일 이틀 전에 떠나 다른 도시를 공격하며 증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6. 1. 2. 진옥성
진옥성은 용맹하고 결단력 있는 지휘관으로, 제2차 강남대영 공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860년 5월 15일, 진옥성군은 강남대영을 돌파하여 태평천국군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 전투로 천경을 포위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의 포위망이 풀리게 되었다.6. 1. 3. 홍인간
홍인간은 태평천국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전략가였다. 1860년 1월부터 2월경, 청군이 천경 서북쪽의 아래 관문인 구추주(九湫洲)를 점령하여 태평천국군에 위기가 닥치자, 홍인간은 이수성과 함께 "위나라를 에워싸서 조나라를 구하는" 위위구조 계책을 통해 청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제2차 강남대영 공략에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4월 29일, 홍인간은 진옥성 부대에게 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내렸고, 진옥성은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강을 건너 공격했다.6. 1. 4. 증국번
전쟁 이후 천경 공략은 증국번이 이끄는 상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최고 사령관 장궈량과 흠차대신 허춘이 사망하자, 청나라는 증국번을 승진시켰는데, 이는 전쟁의 흐름을 청나라와 서방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바꾸었다.6. 2. 사건
1860년 2월 10일, 이수성은 2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를 향해 진군했고, 시왕 이세현도 후주를 공격해 이수성을 엄호했다. 3월 19일, 이수성군은 땅굴을 파는 전략으로 항주 성내를 제압했고, 절강순무 나준전은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나라 조정은 흠차대신 화춘에게 항주를 구하라는 명을 내렸고, 화춘은 강남대영의 병력 1만 3천 명을 파견했다.4월 4일, 이수성은 강남대영에서 병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을 확인하고 항주에서 철수하여 북상했다. 보왕 양보청, 시왕 이세현, 영왕 진옥성 등이 지원했고, 태평천국군 10만은 역으로 강남대영을 포위했다. 5월 2일 총공격이 시작되었고, 5월 15일 진옥성군이 강남대영을 돌파했다. 화춘은 부상을 입었고, 강남제독 장국량과 광서제독 장옥량은 패퇴했으며, 호남제독 대리 주천수도 영국에서 패배하면서 천경 포위가 풀렸다.
이후 천경 공략은 증국전이 이끄는 상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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