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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건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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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미술건설본부는 1945년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에 창설된 예술 단체이다. 위원장 고희동, 서기장 정현웅을 중심으로 동양화, 서양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인 185명이 참여했다. 연합군 환영 초상화 제작, 해방기념문화대축전 미술전람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조선미술협회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좌우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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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건설본부
기본 정보
한글조선미술건설본부
한자朝鮮美術建設本部
로마자 표기Joseon Misul Geonseol Bonbu

2. 발족과 구성

8월 18일, 쇼와 천황의 항복 선언 사흘 후 예술인 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조직되면서 그 산하에 창설된 단체이다.[1] 위원장으로는 미술계의 원로인 고희동이 추대되었고, 서기장은 정현웅이 맡았다.

분과로는 동양화부와 서양화부, 조각부, 공예부, 아동미술부, 선전미술대가 설치되었다. 동양화부 위원장 노수현, 위원 김용준, 변관식, 허백련, 서양화부 위원장 김주경, 위원 길진섭, 오지호, 이병규, 이종우, 조각부 위원 김두일, 문석오, 공예부 위원 이순석, 아동미술부 위원장 이병규, 선전미술부 부장 길진섭, 위원 이순석 등 총 186명이었다.[2] 당시 조각부 위원 문석오는 평양에서 활동하였으며, 후에 동양화부 김용준, 서양화부 위원장 김주경, 서양화부 위원 길진섭 등은 월북하였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출신인 임화김남천이 각각 의장과 서기장을 맡아 좌익 문인들이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념 대립에 따른 정치색이 드러나기에는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참여 단체인 조선미술건설본부에는 후에 좌파, 우파로 분류되는 미술인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다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친일 활동 이력이 눈에 띄는 김은호, 심형구, 김인승, 김경승, 이상범, 윤효중, 배운성, 송정훈 등은 의도적으로 제외되었다.

분단이 가시화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련군정이 설치되는 지역까지 포함하여 전국에서 185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3. 활동

조선미술건설본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이 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연합군 환영을 위한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국가 원수 대형 초상화와 국기를 그리는 일을 기획했다. 1945년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덕수궁미술관에서 해방기념문화대축전 미술전람회라는 이름으로 전람회를 개최했다. 97명의 작가가 132점의 작품을 출품하여 성대하게 열렸다.

4. 해체

전시회를 마치고 조선미술건설본부는 발전적으로 해체되었으며, 그해 11월에 조선미술협회를 발족했다. 조선미술협회는 이때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출범했지만, 회장 고희동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계열의 비상국민회의를 지지하는 우파 성향을 보이면서, 이에 반발하는 좌파 계열이 따로 분리되어 미술계도 우익과 좌익으로 분열하게 되었다.

참조

[1] 서적 해방전후사의 인식 4 - 민중항쟁ㆍ무장투쟁ㆍ문화예술운동ㆍ한국전쟁의 해명 한길사 1997-04-01
[2] 문서 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현대미술/주요 미술단체·미술전/조선미술 건설본부 《글로벌 세계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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