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극건설본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선연극건설본부는 1945년 광복 직후 한국 연극계 재건을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송영, 김태진, 이서향 등 연극인들이 주도하여 설립되었으며, 좌우 이념 구분 없이 범연극인 단체로 출발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단체로 활동하며, 일제의 잔재 청산, 민족 연극 발전 등을 목표로 삼았다. 인민극장, 자유극장 등 여러 극단을 창설하고 연극 연구, 잡지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나, 군정기 시작과 함께 이념 갈등으로 분열을 겪었다. 우익 계열의 탈퇴와 좌익 강경파의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 결성 이후 조선연극건설본부는 해체되었고, 남은 연극인들은 조선연극동맹을 결성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건설본부는 1945년 임화, 김남천 등 KAPF 소장파가 결성한 문학 단체로, 좌우 통합을 표방했으나 좌익 강경파의 반발과 KAPF 분리 후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어 해방 직후 문학 운동 방향 논쟁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선미술건설본부는 1945년 8월 18일 창설된 미술 단체로, 해방 직후 연합군 환영 사업과 미술전람회 개최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나 조선미술협회로 발전적 해체 후 좌우익 대립으로 미술계 분열을 초래했다. - 대한민국의 연극 - 혜화동
혜화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부 동쪽에 위치한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 혜화정으로 불렸으며, 해방 이후 혜화동으로 복구되어 2012년 명륜3가동과 합동되었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성북구와 경계를 이루며 여러 교육기관과 문화시설이 위치해 있다. - 대한민국의 연극 - 거창국제연극제
거창국제연극제는 1989년 '시월연극제'로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 매년 여름 거창군에서 다양한 국가의 연극 공연을 선보이는 대한민국의 연극 축제이다. - 1945년 설립된 단체 - 연합군 최고사령부
연합군 최고사령부(GHQ/SCAP)는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목표로 일본 점령을 위해 설치되었으며, 1945년 포츠담 선언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를 최고사령관으로 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다방면에 걸친 개혁을 진행했다. - 1945년 설립된 단체 -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건설본부는 1945년 임화, 김남천 등 KAPF 소장파가 결성한 문학 단체로, 좌우 통합을 표방했으나 좌익 강경파의 반발과 KAPF 분리 후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어 해방 직후 문학 운동 방향 논쟁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조선연극건설본부 | |
---|---|
조선연극건설본부 | |
한글 | 조선연극건설본부 |
한자 | 朝鮮演劇建設本部 |
히라가나 | ちょうせんえんげきけんせつほんぶ |
2. 발족과 구성
1945년 8월 15일 쇼와 천황의 항복 선언 직후, 한국 연극계는 재건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8월 16일 임화 중심의 조선문학건설본부가 가장 먼저 결성되었다. 8월 18일에는 송영, 김태진, 이서향, 함세덕, 박영호, 김승구, 나웅, 안영일 등이 주도하여 조선연극건설본부(약칭 연건)를 결성했다.
조선연극건설본부가 연극의 기본 방침으로 설정한 사항은 다음 네 가지이다.
초기 연건은 좌우 이념 구분 없이 범연극인 단체로 출범했으며,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연극문화협회와 인적 구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연건은 8월 18일 임화가 주도하여 설립된 예술인 단체 총괄 기구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단체로 편입되었으며, 위원장은 송영, 서기장은 안영일이 맡았다.
3. 활동
이때부터 조선연극건설본부 산하 단체로서 다양한 극단이 창설되었다. 인민극장, 자유극장, 청포도, 일오극장, 동지, 혁명극장, 서울예술극장, 백화, 조선예술극장 등이 1945년 9월부터 10월에 설립된 극장이다. 이어서 해방극장, 민예, 전선, 재건토월회, 랑랑극회, 청춘극장 등이 조직되었다.
조선연극건설본부는 연극연구소, 국립극장, 연극영화학교의 설립과 연극 잡지 발간을 기획하고, 연합군의 서울 입성 환영을 위한 강연을 준비하며, 전재민 의연금 모금을 위한 거리 캠페인을 실시하였다. 극본 심의실 설치와 연극 신문 발간도 계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4. 이념 갈등과 분열
군정기 시작과 함께 연극계 내부의 이념적 차이가 점차 드러나면서 조선연극건설본부는 위기에 빠졌다. 우익 계열의 유치진, 서항석은 연건을 탈퇴했고, 좌익 계열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되어 내분이 일어났다. 좌익 강경파는 1945년 9월 27일에 연건을 탈퇴하고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약칭 프롤연)을 결성해 분리되었다.
5. 해체와 조선연극동맹 결성
군정기가 시작되면서 이념적 차이가 드러나 조선연극건설본부는 위기를 맞았다. 우익 계열의 유치진, 서항석은 연건을 탈퇴했고, 좌익 계열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되어 내분이 일어났다. 좌익 강경파는 1945년 9월 27일에 연건을 탈퇴하고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을 결성해 분리되었다.
결국 조선연극건설본부에 남은 연극인들은 해체를 선언한 뒤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에 합류하여 1945년 12월 20일에 조선연극동맹을 창립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