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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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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총독부 미술관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5월 15일에 준공된 미술관이다. 건청궁이 훼철된 자리에 세워졌으며, 모던하면서도 조선 정조를 가미한 단층 건물이었다. 1939년 6월 4일 첫 전시로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다. 광복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고, 1973년 덕수궁으로 이전한 후 한국민속박물관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1998년 경복궁 복원 사업으로 철거되었고, 2007년 철거된 터에 건청궁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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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미술관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건물 명칭조선총독부 미술관
원어 건물 명칭朝鮮總督府 美術館
용도미술관
완공1939년 5월 15일
철거1998년
층수1

2. 역사

조선총독부 미술관은 일제강점기경복궁건청궁이 훼철된 자리에 세워졌다.[8] 1938년 착공하여 1939년 5월 완공되었으며,[1] 같은 해 6월 조선미술전람회를 시작으로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2]

광복 이후에는 1969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고,[3]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으로 이전한 뒤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일부로 활용되었다.[6] 1995년 경복궁 복원사업 계획에 따라 1998년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과 함께 철거되었고,[7] 이후 2007년 원래의 건청궁이 복원되었다.[8]

2. 1. 일제강점기

미술관 부지는 본래 경복궁건청궁이 있던 자리였으나, 1909년 일제에 의해 훼철되고 한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8]

1938년 봄부터 이곳에 미술관 건설이 시작되어 이듬해인 1939년 5월 15일에 준공되었다.[1] 건물은 단층으로 지어졌으며, 외관은 "모던"하면서도 "조선 정조를 가미"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13만 에서 18만 원 사이였던 것으로 보도되었다.[1][2]

완공 직후인 1939년 6월 4일부터 첫 전시로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다.[2]

2. 2. 광복 이후

1969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여 개관하였고, 개관 기념으로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열렸다.[3] 당시 행위예술가 김구림은 흰 광목천으로 미술관 건물을 묶는 퍼포먼스인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선보였다. 그러나 주최 측이 초상집 같다는 이유로 설치 이틀 만에 철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당시 예술계가 마주한 현실과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4][5]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으로 이전하였다. 기존 건물은 1975년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한국민속박물관의 일부로 사용하기 위해 개축 후 재개관하였다.[6]

1995년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철거가 공식화되었으며, 1998년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과 함께 완전히 철거되었다.[7] 철거된 자리에는 2007년 건청궁이 복원되었다.[8]

참조

[1] 뉴스 總督府美術舘竣工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39-05-15
[2] 뉴스 總督府美術舘 新築落成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39-05-25
[3] 뉴스 総 제18회 国展 評 受賞作品을 中心으로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69-10-23
[4] 뉴스 원로 미술가, 초대전 열어준 국립미술관 공개 성토…왜 이 지경까지 https://www.hani.co.[...] 한겨레 2023-08-31
[5] 뉴스 60∼70년대 전위적인 한국실험미술 역사…국립현대미술관 전시(종합)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23-05-25
[6] 뉴스 民俗박물관 來11일 開舘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75-04-25
[7] 뉴스 "<役事> 문체부 27일 경복궁 복원계획 발표" https://n.news.naver[...] 연합뉴스 1995-02-27
[8] 뉴스 북궐도에 나타난 조선정치 1번지 표상한 법궁 ‘경복궁’ https://www.sisamaga[...] 시사매거진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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