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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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헐은 진나라 말기 혼란기에 조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여러 차례 왕위를 잃고 다시 얻는 과정을 겪었다. 진승·오광의 난 이후 조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장한에게 패배하여 거록으로 도주했다. 이후 항우에 의해 대나라 왕으로 봉해졌지만, 진여의 도움으로 다시 조왕이 되었다. 그러나 한신과의 전투에서 진여가 패배하고 처형되면서 조헐 역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기원전 209년 7월, 진승·오광의 난이 발생하자, 진승군의 무장 중 한 명이었던 무신은 조나라 땅에서 조왕으로 즉위했지만, 부하 이량의 배신으로 암살당했다. 진여와 장이는 과거 조나라 왕족의 후예였던 조헐을 조왕으로 옹립했다.[1]
2. 생애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 수도를 함락하고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자, 항우는 조나라 땅을 분할하여 조헐을 대왕으로,[2] 장이를 항산왕으로[3] 봉했다. 그러나 장이의 맹우였던 진여는 낮은 대우에 불만을 품었다. 기원전 205년, 전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여는 전영에게 병사를 빌려 장이를 공격했고, 장이는 유방에게 도망쳤다. 조헐은 진여에게 다시 조왕으로 옹립되었으며, 진여는 대왕을 칭했다.[4] 진여는 조나라에 머물며 국정을 담당했고, 대나라 땅에는 하설을 상국으로 파견하여 통치를 맡겼다.[5]
기원전 205년 10월, 정형 전투에서 진여가 한신에게 패배하고 처형되자, 조헐도 양국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유방은 장이를 새로운 조왕으로 봉했다.[6][7]
2. 1. 조왕 옹립과 거록 전투
진 이세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무신이 대장, 소소(邵騷)가 호군, 진여와 장이가 좌우 교위를 맡아 옛 조나라 영역을 되찾았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는 진승에게 불만을 품고 무신을 조나라 왕으로 옹립했고, 진여는 대장군, 소소는 좌승상, 장이는 우승상이 됐다.[8]
기원전 208년, 조나라 장수 이량이 반란을 일으켜 무신과 소소를 죽이자, 조헐은 이량을 격퇴한 장이와 진여에게서 왕으로 옹립되었다. 이는 장이의 빈객이 조나라 왕족 출신을 구심점으로 삼아 위나라 출신인 두 사람의 약점을 보강하도록 조언했기 때문이다. 이때 신도를 임시 서울로 사용했다.[8]
진 이세황제 3년(기원전 207년) 10월, 진나라 장수 장한이 이량의 투항을 받아 한단성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하내로 이주시켰으며 성을 파괴했다. 이세황제 2년(기원전 208년) 9월, 조왕 헐은 장이와 함께 거록으로 달아났고, 거록성은 장한의 부장 왕리에게 포위되었다. 진여는 항산에서 병사 수만을 모아 거록 북쪽에 주둔하고, 장한은 극원에 있으면서 왕리에게 군자를 공급했다. 왕리는 식량이 넉넉해 급히 공격했고, 거록성 안에는 식량이 부족했다. 장이는 진여를 다그쳐 거록성을 구원하게 했으나 진여가 낸 구원군 5천은 모두 죽었다.[8]
연나라에서는 조나라의 위급을 듣고 이세황제 3년 10월에 장도가 이끄는 구원군을 보냈다. 제나라의 실권자 전영은 조나라와 사이가 나빠 구원군을 보낼 생각이 없었으나, 그의 장수 전도가 반기를 들고 조나라를 구원하러 출진했다. 장이의 아들 장오도 대군에서 1만여 군사를 모았으나, 이들은 진나라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초나라에서는 이세황제 2년 9월에 송의를 대장으로 삼아 구원군을 보냈으나, 송의는 진나라와 조나라가 싸우다 양측이 다 피곤해질 때 한 번에 무찌를 생각했다. 항우가 이에 불만을 품고 송의를 쳐죽이고 적극적으로 조나라를 구원하러 움직였다. 영포 등의 선발대로 용도를 여러 차례 공격해 왕리 군의 식량을 핍절케 하고, 마침내 자신도 강을 건너 거록을 포위한 진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이를 본 제후군도 가담해 진나라 군대를 무찌르니, 12월에 거록의 포위가 풀렸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가 서로 다투다 홧김에 진여가 장이에게 버린 인수를 장이가 거두고 진여의 수하를 거두면서, 진여는 조왕 헐을 떠났고 장이와 진여 사이도 깨졌다.[8][9]
2. 2. 대왕으로의 이동과 최후
조왕 헐은 신도에 남아서, 장이를 보내 항우를 도와 입관하게 했다. 기원전 206년에 항우가 진나라를 멸하고 각지에 제후왕들을 봉하면서 원래의 육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각 나라를 쪼갰고, 자신을 따라온 장수들을 중용해 각각의 본국을 주고 원래의 왕들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조왕 헐은 대왕으로[2] 옮겨졌고, 장이가 나머지 조나라 영역을 받아 항산(恒山)왕이 돼 서울을 양국에 두었다.[10] 한편 진여는 진나라 멸망에 공이 없다 해 그저 남피의 세 현을 항우에게서 받았다.[8][9]
항우의 분봉에 불만을 품은 진여는 마침 비슷한 불만을 품은 전영이 항우가 쪼갠 세 제나라(제, 교동, 제북)를 아우르고 스스로 제나라 왕이 되어 자신에게 군사적 지원을 해 주자 봉읍에서 군사를 긁어모아 상산국을 공격해 장이를 쫓아냈다. 장이는 한왕 유방에게 달아났다. 대왕 헐은 진여에게 다시 조왕으로 옹립됐고, 진여를 대왕으로 봉했으며, 대왕을 자기 스승으로 삼아 자신을 돕게 했다.[8][9]
한왕 2년(기원전 205년), 한왕이 서초를 치면서 조에도 함께하기를 청하자, 진여는 장이의 목숨을 대가로 요구했다. 한왕은 장이를 죽이지 않고 진여를 속여 지원을 받아냈다. 한왕 2년 4월, 한왕이 이끄는 제후연합군이 팽성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 과정에서 장이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즉시 한나라에게서 돌아섰다. 한왕 3년 10월(기원전 204년), 진여는 한나라에서 돌아선 나라들을 공격하러 보낸 한신과 정형에서 싸워 격파돼 저수에서 참수됐고, 조왕 헐도 쫓기다 양국에서 죽어 조나라는 망했다.[8][9]
참조
[1]
서적
史記
[2]
서적
史記
[3]
서적
史記
[4]
서적
史記
[5]
서적
史記
[6]
서적
史記
[7]
서적
史記
[8]
서적
사기 (역사서)
https://zh.wikisourc[...]
[9]
서적
사기
https://zh.wikisourc[...]
[10]
서적
사기, 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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