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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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 오튼(Joe Orton, 1933년 1월 1일 ~ 1967년 8월 9일)은 영국의 극작가이다. 그는 1950년대에 케네스 핼리웰을 만나 연인이 되었고, 핼리웰과 함께 여러 작품을 집필했으나 출판에 실패했다. 이후 오튼은 희곡 작가로 활동하며, 《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 《전리품》, 《집사가 뭘 봤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오튼은 1967년 핼리웰에게 살해당했으며, 핼리웰은 자살했다. 오튼은 사후에 그의 일기가 출판되었고, 그의 삶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는 등 그의 작품과 삶은 지속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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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오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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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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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존 킹슬리 오튼 |
출생 | 1933년 1월 1일 |
출생지 | 레스터, 잉글랜드 |
사망 | 1967년 8월 9일 (향년 34세) |
사망지 | 이즐링턴, 런던, 잉글랜드 |
사망 원인 | 둔기에 의한 살인 |
교육 | 왕립 극예술 아카데미 |
직업 | 극작가 작가 |
파트너 | 케네스 할리웰 (1951–1967) |
활동 기간 | 1959–1967 |
2. 초기 생애 및 교육
조 오튼은 1933년 1월 1일 레스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노동자 계층으로, 아버지는 정원사, 어머니는 신발 공장에서 일했다.[7] 오튼은 천식으로 인해 초등학교 졸업 시험에 불합격했고, 이후 비서 과정을 공부했다.[8]
2. 1. 출생 및 가족 배경
조 오튼은 1933년 1월 1일 레스터에서 윌리엄 아서 오튼과 엘시 메리 오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은 레스터 카운티 자치구 의회에서 정원사로, 어머니 엘시는 지역 신발 산업에서 일하다가 결핵으로 폐를 잃는 등 노동자 계층이었다.[7] 조 오튼에게는 1935년에 태어난 남동생 더글러스와 1939년, 1944년에 각각 태어난 여동생 마릴린과 레오니가 있었다.[7]2. 2. 학창 시절
오튼은 매리엇 로드 초등학교에 다녔으나, 심한 천식 발작으로 인해 일레븐 플러스 시험에 불합격했다.[8] 이후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레스터의 클라크 칼리지에서 비서 과정을 수료했다.[8]3. 케네스 핼리웰과의 만남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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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관계의 갈등과 비극적 결말
1967년 8월 9일, 핼리웰은 노엘 로드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오튼의 머리를 망치로 9번 강타하여 살해했다. 핼리웰은 그 후 넴부탈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35]1970년, ''선데이 타임스''는 살인 4일 전 오튼이 친구에게 핼리웰과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핼리웰의 의사는 살인 당일에 그와 세 번 통화했으며 다음날 아침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록 약속했다. 마지막 통화는 10시에 이루어졌으며, 핼리웰은 의사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내일 아침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핼리웰은 오튼의 성공에 점점 더 위협을 느끼고 고립감을 느끼며 항우울제와 바르비투르산염에 의존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오튼을 영화 감독 리처드 레스터와의 미팅에 데려가기 위해 운전사가 도착했을 때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이 미팅은 ''Up Against It''의 촬영 옵션에 대한 논의를 위한 것이었다. 핼리웰은 유서를 남겼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 모든 것이 설명될 것입니다. KH 추신: 특히 후반부." 이것은 오튼의 난잡함에 대한 묘사를 언급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기에는 공중 화장실에서의 코티징과 북아프리카에서 휴가를 보내는 렌트 보이들을 포함한 십 대들과의 우연한 성관계 등 수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일기들은 그 이후 출판되었다.[36][37] 마지막 일기 작성일은 1967년 8월 1일이며, 페이지 끝에서 문장이 중간에 갑자기 끝나 있는데, 이는 일부 페이지가 누락되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38]
오튼은 화장되어 골더스 그린 화장터에 안치되었으며, 그의 붉은 천으로 덮인 관은 비틀즈의 노래 "A Day in the Life"의 녹음과 함께 서쪽 예배당으로 옮겨졌다.[39] 해럴드 핀터가 조사를 낭독하며 "그는 훌륭한 작가였다."로 마무리했다. 오튼의 에이전트 페기 램지는 오튼의 친척들을 "레스터의 작은 사람들"[40]이라고 묘사하며, 그들을 대신하여 차갑고 특징 없는 메모와 꽃다발을 장례식에 남겼다.
홀리웰 가족의 제안에 따라 페기 램지는 오튼의 형제 더글러스에게 오튼과 홀리웰의 유골을 섞을 수 있는지 물었다. 더글러스는 "레스터에서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는 한" 동의했다. 섞인 유골은 골더스 그린의 기념 정원 3-C 구역에 뿌려졌다.[41] 기념물은 없다.[42]
4. 범죄와 처벌
1959년 1월부터 오튼과 핼리웰은 여러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몰래 꺼내 표지나 소개글을 수정하여 다시 돌려놓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예를 들어 존 베체먼 경의 시집은 거의 알몸에 가깝고 문신이 새겨진 중년 남성의 사진이 있는 새로운 재킷과 함께 도서관에 반환되기도 했다.[10]
1962년 4월 30일, 이들은 절도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았다. 이들이 훼손한 책은 에섹스 로드의 이즐링턴 공공 도서관에서 36권, 홀로웨이 로드에 있는 같은 도서관 지점에서 36권이었다.[11] 1962년 5월, 추가 심리에서 절도 및 형사 손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각각 2GBP의 벌금과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2] 이 사건은 버트럼 파크의 수정된 ''콜린스 장미 가이드''와 함께 "장미 속 고릴라"라는 제목으로 ''데일리 미러''에 보도되었다.[13]
오튼과 핼리웰은 "우리가 게이였기" 때문에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꼈다.[14] 감옥은 이들에게 결정적인 경험이었는데, 특히 핼리웰과의 격리는 오튼이 창의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오튼은 표면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국가의 부패, 가식, 이중 잣대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전에는 어딘가에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는데, 감옥이 이것을 구체화했다. 늙은 창녀 사회가 정말 치마를 걷어 올렸고 냄새는 꽤 역겨웠다... 감옥에 갇힌 것은 내 글쓰기에 초연함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효과가 있었다."[15]
4. 1. 도서관 책 훼손 사건
1959년 1월부터 오튼과 핼리웰은 여러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몰래 책을 꺼내 표지나 소개글을 수정한 후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예를 들어 존 베체먼 경의 시집은 거의 알몸에 가깝고 문신이 새겨진 중년 남성의 사진이 담긴 새로운 재킷과 함께 도서관에 반환되었다.[10] 이들은 훔친 책과 인쇄물로 아파트를 장식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발각되어 기소되었고, 1962년 4월 30일 절도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았다. 이들이 훼손한 책은 에섹스 로드의 이즐링턴 공공 도서관에서 가져온 36권, 홀로웨이 로드에 있는 같은 도서관 지점에서 가져온 36권이었다.[11] 1962년 5월, 추가 심리에서 이들은 절도 및 형사 손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고 각각 2GBP의 벌금과 함께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2] 이 사건은 버트럼 파크의 수정된 ''콜린스 장미 가이드''와 함께 "장미 속 고릴라"라는 제목으로 ''데일리 미러''에 보도되었다.[13]오튼과 핼리웰은 "우리가 게이였기" 때문에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꼈다.[14] 감옥은 이들에게 결정적인 경험이었는데, 특히 핼리웰과의 격리는 오튼이 창의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오튼은 표면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국가의 부패, 가식, 이중 잣대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전에는 어딘가에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는데, 감옥이 이것을 구체화했다. 늙은 창녀 사회가 정말 치마를 걷어 올렸고 냄새는 꽤 역겨웠다... 감옥에 갇힌 것은 내 글쓰기에 초연함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효과가 있었다."[15] 오튼과 핼리웰이 훼손한 책 표지는 이후 이즐링턴 지역 역사 센터 컬렉션의 귀중한 부분이 되었으며, 일부는 이즐링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6] 이 책 표지 컬렉션은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17]
4. 2. 체포와 재판
1959년 1월부터 오튼과 핼리웰은 여러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몰래 꺼내 표지나 소개글을 수정한 후 돌려보내는 범행을 저질렀다. 존 베체먼 경의 시집은 거의 알몸에 가깝고 문신이 새겨진 중년 남성의 사진이 담긴 새로운 재킷과 함께 도서관에 반환되기도 했다.[10]1962년 4월 30일, 이들은 절도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에섹스 로드의 이즐링턴 공공 도서관과 홀로웨이 로드에 있는 같은 도서관 지점에서 책 36권을 가져간 혐의를 받았다.[11] 1962년 5월, 추가 심리에서 이들은 절도 및 형사 손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고 각각 2GBP의 벌금과 함께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2] 이 사건은 버트럼 파크의 수정된 ''콜린스 장미 가이드''와 함께 "장미 속 고릴라"라는 제목으로 ''데일리 미러''에 보도되었다.[13]
오튼과 핼리웰은 "우리가 게이였기" 때문에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꼈다.[14]
4. 3. 수감 생활과 영향
오튼과 핼리웰은 "우리가 게이였기" 때문에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꼈다.[14] 감옥은 결정적인 형성 경험이었는데, 핼리웰과의 격리는 오튼이 창의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는 표면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국가의 부패, 가식, 이중 잣대를 보았다. 오튼은 "감옥은 사회에 대한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전에는 어딘가에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는데, 감옥이 이것을 구체화했다. 늙은 창녀 사회가 정말 치마를 걷어 올렸고 냄새는 꽤 역겨웠다... 감옥에 갇힌 것은 내 글쓰기에 초연함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효과가 있었다."라고 말했다.[15] 오튼과 핼리웰이 훼손한 책 표지는 이후 이즐링턴 지역 역사 센터 컬렉션의 귀중한 부분이 되었다. 일부는 이즐링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6]5. 극작가로서의 활동
조 오튼은 1959년 첫 희곡 《프레드와 매지》를 썼고, 2년 후에는 《방문객》을 썼다. 1963년 영국 방송 공사(BBC)는 라디오 드라마 《계단의 불한당》에 65GBP를 지불했고, 1964년 8월 31일에 방송되었다.[18] 이 작품은 1966년에 연극으로 상당 부분 다시 쓰여졌다.[19]
《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은 오튼이 《계단의 불한당》이 방송될 즈음에 완성한 작품이다. 1964년 5월 6일, 마이클 코드론이 제작하여 웨스트민스터의 뉴 아츠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평가는 찬사에서 격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더 타임스》는 이 작품을 "지난 10년간의 다른 어떤 영국 연극보다도 피를 끓게 한다"고 묘사했다.[20] 3주 동안의 공연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테렌스 래티건의 호평 덕분에 살아남았다. 래티건은 이 연극에 3000GBP를 투자했다.[21] 이 연극은 6월 말에 웨스트엔드의 윈덤 극장으로, 10월에는 퀸스 극장으로 옮겨졌다.[22] 《버라이어티》 비평가 투표에서 최고의 신작 연극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했고, 오턴은 가장 유망한 극작가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1년 이내에 《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은 뉴욕, 스페인, 이스라엘, 호주에서 공연되었고, 영화(오턴 사후)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었다.[23][24]
1965년에 초연된 《루트》(Loot)는 오튼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희곡은 돈을 훔치기 위해 어머니의 시신을 숨기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부패한 경찰과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다. Loot영어는 블랙 코미디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다.[26][27]
《어핑햄 캠프》는 그리스 비극 《바카이》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29] 권위주의적인 휴양지 캠프 소유주와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선량하고 충실한 종》은 오튼의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평생을 한 회사에 헌신한 노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례 게임》은 간통과 살인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자선(기독교적 자선)을 다루었다.[32]
《집사가 뭘 봤지?》(What the Butler Saw)는 조 오튼의 마지막 장편 희곡으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섹스 스캔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성적 억압을 풍자한다. 조 오튼 특유의 블랙 유머와 파격적인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5. 1. 초기 작품
오턴은 1959년 첫 희곡 《프레드와 매지》를 썼고, 2년 후에는 《방문객》을 썼다. 1963년 영국 방송 공사(BBC)는 라디오 드라마 《계단의 불한당》에 65GBP를 지불했고, 1964년 8월 31일에 방송되었다.[18] 이 작품은 1966년에 연극으로 상당 부분 다시 쓰여졌다.[19]5. 2. 《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 (Entertaining Mr Sloane)
《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은 오튼이 《계단의 불한당》이 방송될 즈음에 완성한 작품이다. 1963년 12월에 연극 에이전트 페기 램지에게 이 작품의 사본을 보냈다.[18] 1964년 5월 6일, 마이클 코드론이 제작하여 웨스트민스터의 뉴 아츠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평가는 찬사에서 격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더 타임스》는 이 작품을 "지난 10년간의 다른 어떤 영국 연극보다도 피를 끓게 한다"고 묘사했다.[20]《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은 3주 동안의 공연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테렌스 래티건의 호평 덕분에 살아남았다. 래티건은 이 연극에 3000GBP를 투자했다.[21] 이 연극은 6월 말에 웨스트엔드의 윈덤 극장으로, 10월에는 퀸스 극장으로 옮겨졌다.[22] 《버라이어티》 비평가 투표에서 최고의 신작 연극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했고, 오턴은 가장 유망한 극작가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1년 이내에 《슬론 씨를 즐겁게 하는 법》은 뉴욕, 스페인, 이스라엘, 호주에서 공연되었고, 영화(오턴 사후)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었다.[23][24]
5. 3. 《전리품》 (Loot)
1965년에 초연된 ''루트''(Loot)는 오튼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희곡은 돈을 훔치기 위해 어머니의 시신을 숨기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부패한 경찰과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다. Loot영어는 블랙 코미디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다.[26][27]''루트''의 초고는 1964년 6월부터 10월까지 쓰여졌으며, 원래 제목은 ''장례 게임''이었다. 이 희곡은 탐정 소설을 과장되게 풍자한 것으로, 블랙 코미디적 파르스와 죽음, 경찰, 종교, 정의에 대한 기성 관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오턴은 케네스 윌리엄스를 염두에 두고 트러스콧 역을 재작업했다. 초연은 케임브리지에서 혹평을 받았으나, 오턴은 연출가 피터 우드와의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수정을 통해 작품을 개선했다.
1966년, 오스카 레벤스타인에 의해 ''루트''는 부활했다. 오턴은 600줄 이상을 삭제하여 템포를 높이고 등장인물 간의 상호 작용을 개선했다. 브라함 머레이가 연출한 이 연극은 더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런던 공연은 찰스 매로위츠의 연출로 올려졌으며, 추가적인 삭제를 통해 더욱 개선되었다.
''루트''는 1966년 9월 27일 런던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옵저버''의 로널드 브라이든은 "오턴의 입지를 영국 드라마에 확고히 했다"고 평가했다.[26] ''루트''는 크리테리언 극장으로 옮겨져 342회 공연되었으며,[27] 여러 상을 수상했다. 오턴은 영화 판권을 25000GBP에 판매했다.[28]
5. 4. 《어핑햄 캠프》 (The Erpingham Camp)
《어핑햄 캠프》는 1965년 중반에 쓰여져 그 해 10월에 Associated-Rediffusion에 제안된 작품으로, 그리스 비극 《바카이》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29] 권위주의적인 휴양지 캠프 소유주와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1966년 6월 27일 Associated-Rediffusion의 시리즈 《7대 죄악》 중 "자부심" 편으로 방송되었다.[29]5. 5. 《선하고 충실한 종》 (The Good and Faithful Servant)
《선량하고 충실한 종》은 오튼의 과도기적인 작품이었다. 1964년 6월에 완성된 1막짜리 텔레비전 연극이었지만, 1967년 4월 6일에 Associated-Rediffusion에 의해 처음 방송되었으며, 《7대 미덕》 시리즈에서 "신앙"을 대표했다.[30][31] 이 작품은 평생을 한 회사에 헌신한 노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5. 6. 《장례 게임》 (Funeral Games)
《장례 게임》은 1966년 7월부터 11월까지 네 번이나 다시 쓰여진 작품이다. 원래 《7대 미덕》 시리즈를 위해 제작되었으며, 간통과 살인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자선(기독교적 자선)을 다루었다.[32] 이 연극은 Rediffusion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새로운 ITV 회사 요크셔 텔레비전의 첫 작품 중 하나로 만들어졌다. 《미스터 슬론》의 각색본이 방송된 지 5주 후인 1968년 8월 26일, 《플레이하우스》 시리즈를 통해 사후에 방송되었다.[32][33]5. 7. 《집사가 뭘 봤지》 (What the Butler Saw)
《집사가 뭘 봤지?》(What the Butler Saw)는 조 오튼의 마지막 장편 희곡으로, 1969년 그의 사후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섹스 스캔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성적 억압을 풍자한다. 조 오튼 특유의 블랙 유머와 파격적인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6. 유산 및 평가
조 오튼은 사후 그의 작품과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기념되고 있다. 1978년 존 라르는 오튼이 직접 사용하려 했던 제목인 《귀를 쫑긋 세우고》라는 전기를 출판했다. 이 전기는 1987년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게리 올드만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43][44]
카를로스 베는 오튼과 할리웰의 마지막 날을 다룬 연극 《노엘 로드 25: 우리 같은 천재》를 썼으며, 이 연극은 2001년에 초연되었다.[45][46]
오튼의 고향인 레스터에서는 커브 극장 앞 보행자 통로가 오튼 광장으로 명명되었다.[52] 2019년에는 레스터에 오튼의 동상을 세우기 위한 캠페인이 시작되었으나, 2022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취소되었다.[53][54]
6. 1. 오튼의 작품 세계와 영향
존 라르가 쓴 오튼의 전기 《귀를 쫑긋 세우고》(오튼 자신이 사용하려 했던 제목)는 1978년 블룸스버리에서 출판되었다. 1987년에는 오튼의 일기와 라르의 연구를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 각색이 개봉되었다.[43] 스티븐 프리어스가 감독하고, 게리 올드만이 오튼 역, 알프레드 몰리나가 할리웰 역,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페기 램지 역으로 출연했다.[44] 앨런 베넷이 각본을 썼고, 카트리나 셸던이 음향 편집을 맡았다.카를로스 베는 오튼과 할리웰의 마지막 날을 다룬 연극 《노엘 로드 25: 우리 같은 천재》를 썼으며, 2001년에 초연되었다.[45][46] 이 연극은 2012년 레퍼토리 에스파뇰의 제작으로 뉴욕에서 초연되었다.[47]
2006년 BBC 영화 《케네스 윌리엄스: 환상적인!》에서 케니 도티가 오튼을 연기했으며, 마이클 쉰이 케네스 윌리엄스 역으로 출연했다.[48]
레오니 오튼 바넷의 회고록 《내 안에 있었어》는 2016년에 출판되었으며, 레스터에서 성장한 그녀의 오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49]
2017년, 영화 제작자 크리스 셰퍼드는 오튼의 에드나 웰소프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앨리슨 스테드먼이 에드나 역으로 출연한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진심으로, 에드나 웰소프(부인)'를 제작했다.[50]
오튼의 두 개의 아카이브 녹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1967년 8월에 처음 방송된 BBC 라디오 인터뷰 단편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 영화 협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1967년 4월 23일 방송된 이먼 앤드루스의 ITV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 녹화본이다.[51]
6. 2. 사후 평가 및 기념 사업
존 라르가 쓴 오튼의 전기 《귀를 쫑긋 세우고》(오튼 자신이 사용하려 했던 제목)는 1978년 블룸스버리에서 출판되었다. 1987년에는 오튼의 일기와 라르의 연구를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었다.[43] 스티븐 프리어스가 감독하고, 게리 올드만이 오튼 역, 알프레드 몰리나가 할리웰 역,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페기 램지 역으로 출연했다.[44]카를로스 베는 오튼과 할리웰의 마지막 날을 다룬 연극 《노엘 로드 25: 우리 같은 천재》를 썼으며, 2001년에 초연되었다.[45][46]
레스터의 커브 극장(Curve 극장) 앞 보행자 통로는 오튼 광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52]
2019년 7월, 레스터 대학교의 교수이자 오튼 전문가인 엠마 파커 박사는 그의 고향인 레스터에 그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쉴라 행콕, 케네스 크랜햄, 이안 맥켈런, 알렉 볼드윈을 포함한 연기계의 저명한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다.[53] 모금 목표는 달성되었지만, 주최측은 팬데믹의 어려움과 영국 내 동상에 대한 태도 변화를 이유로 2022년에 이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오튼의 여동생 레오니는 오튼이 미성년 소년들과 성관계를 가졌던 과거가 이 프로젝트 실패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말했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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