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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호드리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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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앙 호드리게스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까지 일본, 중국, 조선에서 활동한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이자 학자이다. 그는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어 문법서인 《일본대문전》과 《일본소문전》을 저술했으며, 일본 교회사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교섭에 통역으로 참여하고, 조선에 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나가사키 무역 관여로 추방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명나라에서 통역관으로 활약하며 포상을 받았다. 그의 저술과 활동은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 교류에 기여했으며, 소설 《쇼군》의 등장인물 모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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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호드리게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주앙 "추주" 호드리게스
다른 이름조アン・ロドリゲス(일본어)
중국어 이름루뤄한 (陸若漢/陆若汉)
로마자 표기Lu Ruòhàn
한국어 이름육약한
출생일1561년 또는 1562년
출생지세르낭셀르, 포르투갈 왕국
사망일1633년 또는 1634년
사망지포르투갈령 마카오, 포르투갈 제국 (중국)
국적포르투갈
직업언어학자, 통역가, 선교사
주요 활동일본어 초기 언어학 연구, 서양 과학과 문화를 조선에 소개

2. 생애

주앙 호드리게스는 1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다.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1604년부터 1608년까지 일본어 사전인 《일본대문전》(日本大文典)을 집필하여 간행했다. 이 사전은 라틴어 문법과 사전 형식을 바탕으로 구어 중심의 문어 문법을 설명하고, 경어법과 조사 등 일본어의 특징을 자세히 정리했다.[9]

나가사키 무역과 정치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이유로 1610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로 추방된 후, 명나라에서 예수회 선교사로 활동하며 1620년 또 다른 일본어 사전인 《일본소문전》(日本小文典)을 간행하고, 《일본교회사》(Historia da Igreja de Iapam)를 집필했다.

말년에는 청나라 군대의 통역관으로 종군하며 명나라 황제 숭정제로부터 포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조선에 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2. 1. 일본에서의 활동

16세기 또는 17세기 일본 병풍에 그려진 포르투갈의 남만 무역에 참여한 흑선


서양식 복장을 한 포르투갈 방문객을 그린 17세기 일본 그림


호드리게스는 1561년[3] 또는 1562년[1] 포르투갈 왕국 비스우 현 세르난셀레에서 태어났다. 10대 초반에 아시아로 건너가 1577년까지 일본에 도착했다.[3] 분고국다이묘인 오토모 요시시게는 아내[6]와 고문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및 스페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고,[4] 호드리게스는 어느 시점에 규슈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는 다른 씨족에 맞서 그의 캠페인에 참여했다.[3]

오토모는 그의 신토 여사제 아내와 이혼하고 1578년에 일본의 가톨릭교로 개종했다.[6] 1580년 12월경,[3] 약 19세에 호드리게스는 오이타("후나이 성")에 있는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갔다.[3] 당시 예수회는 약 10만 명의 신자가 있는 일본의 기독교 공동체를 계산했다.[1]

그는 포르투갈어로 어눌한 문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페인어를 알고 있었고,[7] 예수회에서 라틴어가톨릭 신학을 배우는 한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본 문학일본 철학을 공부하면서 문법을 가르쳤다.[3] 그는 곧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인정받았고,[1] 한자에 대한 지식 덕분에 중국어로 쓰인 문서를 번역할 수 있었다.[7] 그는 알레산드로 바리냐노의 방문과 부지방장 가스파르 코엘류 (1581–1590)를 위해 통역관으로 일했다.[9] 그는 아직 서품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588년에 일본어로 설교를 시작했다. 1590년 7월 바리냐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방문했을 때, 호드리게스는 도요토미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섭정은 한동안 그를 개인 통역관으로 고용했다.[9] 그는 1591년부터 1626년까지 예수회의 일본 선교의 검찰관이었다.[9]

호드리게스는 1593년에 나가사키에서 신학 연구를 마치고 이듬해 마카오에서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은 후 1596년에 일본으로 돌아왔다.[9] 1598년 9월 16일, 호드리게스는 죽어가는 히데요시를 방문하여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9] 그는 새로운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 밑에서도 여전히 호감을 받았고 영향력이 있었으며 나가사키, 오사카, 교토에서 예수회 선교와 일본인 개종자들을 보호했다.[9] 원주민 궁정은 여러 차례 그를 제거하려 했고, 심지어 도쿠가와는 그의 정직성을 몇 번 시험했지만, 그의 의심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9]

1592년, 히데요시가 조선 침공 지휘를 위해 나고야에 도착하자, 예수회에서는 호드리게스와 포르투갈 선장을 나고야에 방문시켰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기뻐하며, 한 달 동안 나고야에 머물게 했다. 1593년, 포르투갈 배가 나가사키에 도착하자, 선장 등을 데리고 나고야를 방문하여, 환대의 자리에서 흑인의 춤과 서양 악기 연주 등이 선보여 매우 흥겨웠다고 한다.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겐이 등과 면회하여, 기독교와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종교 논쟁을 벌였다. 이에야스는 호드리게스의 이야기를 듣고 논리적이라고 평가하며, 추방령이 해제될 때까지 자신의 영지에서 은밀히 생활하는 것을 허락했다. 또한, 철갑선을 여러 척 목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1608년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약탈하는 일본 선원들의 폭력적인 진압과 이듬해 궁정 음모 이후 도쿠가와는 1610년 초 포르투갈 상인들을 주인장 선박, 네덜란드인, 스페인인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부인의 은총호 사건 이후 나가사키 만에 있던 포르투갈 배에 대한 성공적인 공격 이후 그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남겨두었지만, 호드리게스를 영국인 윌리엄 아담스로 교체했다.[9]

1604년부터 1608년 사이에 《일본대문전》(日本大文典, Arte da Lingoa de Iapam composta pello Padre Ioão Rodriguez)을 집필해서 간행했다. 이 책은 라틴어 문법과 사전의 틀에 맞추어 구어를 중심으로 문어 문법을 설명하는 한편 경어법, 조사 등 일본어의 특징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일본어 사전이다.

2. 2. 중국에서의 활동

마카오로 돌아온 호드리게스는 중국 선교에 참여했다.[9] 그는 전강과 남경 근처에서 일했으며, 동방 교회의 유물을 찾기 위해 중국 내륙을 여행했다.[9] 그는 중국 전례 논쟁에 참여하여 마테오 리치의 중국 전통 의례 수용에 반대했다.[9]

명나라에 대한 만주족의 침략 당시, 호드리게스는 통역관으로 활약했다. 1623년 북경에서 유럽 화기 시연에 참여했으나, 대포 폭발 사고로 인해 마카오로 돌아갔다.[13] 1629년, 그는 곤살루 테이셰이라-코레아 휘하 원정대의 통역으로 다시 북경으로 향했다.[13][12] 이들은 탁주에 도착했으나, 산동등주 (현재 펑라이)로 보내져 이그나티우스 슨의 지휘 아래 현대식 대포 사용법을 훈련했다.[13][12]

1631년 초, 호드리게스는 서울에서 온 조선양반 정두원을 만나 천문학과 기타 과학에 대한 예수회의 연구를 소개하고, 망원경 등을 선물했다.[12] 정두원은 호드리게스에게 서양 화기 및 대포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12]

1632년, 오교 반란이 일어나자 호드리게스는 성벽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았고, 이후 북경으로 돌아가 황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았다.[13]

1613년부터 1615년까지 호드리게스는 중국 각지를 시찰하여 교리 문답서 사용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53] 그는 마테오 리치가 번역한 교리 문답서의 오류를 지적하며, 유교 용어 대신 라틴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3][54] 1627년(또는 1628년) 자딩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호드리게스의 의견과는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56]

숭정 연간, 서광계만주족 공격에 서양 대포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호드리게스는 1628년 마카오에서 베이징으로 대포를 운반하는 일행에 동행했다.[57] 1630년 덩저우에서 조선 사절 정두원을 만나 인조에게 홍이포, 천리경 등을 증정했다는 기록이 있다.[59]

호드리게스는 1633년 마카오에서 사망하여 성 바울 성당 유적에 매장되었다.[60]

2. 3. 조선과의 관계

1631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온 조선정두원 일행을 만나 서양의 과학 기술과 문화를 소개했다.[12] 정두원에게 천문학, 지리학, 화포 기술 등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망원경 등을 선물했다.[12] 정두원은 그의 조수 이영후와 대령 정효길에게 호드리게스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이영후는 지리에 대해, 정효길은 서양 화기 및 대포에 대해 질문했다. 이영후와의 대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는 중국—그 본래 이름인 ''중국'' (中國|중국중국어)이 실제로 지구의 중앙을 차지하는지 가장 궁금해했다. 호드리게스는 지구가 구형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자신의 땅을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조선에 서양 문물이 유입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저술

주앙 호드리게스는 일본어 문법 연구, 일본 교회사, 중국 지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저술을 남겼다.

1604년부터 1608년 사이에 집필해서 간행한 《일본대문전》(日本大文典, Arte da Lingoa de Iapampt)은 라틴어 문법과 사전의 틀에 맞추어 구어를 중심으로 문어 문법을 설명하는 한편 경어법, 조사 등 일본어의 특징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널리 알려진 일본어 사전이다.[1] 1620년에는 《일본소문전》(日本小文典, Arte Breve da Lingoa Iapoapt)을 간행하고 《일본교회사》(Historia da Igreja de Iapam)도 집필했다.[2]

그의 저서로는 포르투갈어로 『일본대문전』, 『일본소문전』, 《일본 교회사》가 있으며, 이 중 앞의 두 작품이 간행되었다. 《일본 교회사》는 간행을 위해 집필을 시작했지만 완성되지 못하고 호드리게스가 사망하여, 자료가 분산되었고 일부는 소실되었다.[61] 호드리게스는 중국 불교와 일본 불교의 관계, 중국 지리에 대한 논문을 집필했으나, 현재는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있다.[9] 시안 비석에 대한 설명과 마테오 리치가 기독교 개념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반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남겼다.[9]

3. 1. 일본어 문법 연구

라틴어 문법 체계를 바탕으로 일본어 구어와 문어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본격적인 일본어 문법서인 《일본대문전》(Arte da Lingoa de Iapampt)을 1604년부터 1608년에 걸쳐 나가사키에서 간행하였다.[9]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휘와 문법 외에도 왕조, 통화, 도량형 및 기타 상업 정보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9] 내용은 3부로 나뉘는데, 제1권은 형태론, 제2권은 품사론, 제3권은 문체나 호칭 등을 다루고 있다.[63] 지배층을 통해 포교하려 했던 예수회와 주앙 호드리게스에게 실용 문법서는 전아한 문체나 관위, 통칭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했다.

1620년 마카오에서는 《일본대문전》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내용을 재구성하여 초학자를 위해 만든 일본어 문법서인 《일본소문전》(Arte Breve da Lingoa Iapoapt)을 간행하였다.[9] 《일본대문전》과 마찬가지로 3권으로 나뉘지만, 다루는 사항의 배열에 차이가 있다. 초학자를 위해 간결하게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일본대문전》보다 간결할 뿐만 아니라, 그 후의 연구 성과도 담겨 있으며, 명확하게 쓰여 있는 곳도 많다.

3. 2. 일본 교회사

예수회는 일본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도록 요청했고, 마테우스 데 코로스가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여 호드리게스가 맡게 되었다.[68] 호드리게스와 원 마르티노에게 다시 명령이 내려졌으나, 출판 준비는 되었지만 간행되지 못하고 사본만 남았다. 대부분은 아유다 공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68]

《일본 교회사》(포르투갈어: ''Historia da Igreja do Japão'')는 알레산드로 발리냐노루이스 프로이스의 미완성 작품을 완성하려는 시도였으나, 미완성으로 남았다.[9] 책 제목과 달리, 일본 내 예수회 활동 내용은 "일본 교회 주교"(포르투갈어: ''Bispos da Igreja do Japao'')라는 부록에 주로 할당되었다. 본문은 일본어, 한자, 문체 등을 포함하여 일본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다.[8] 일본에서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의 영향력 확대, 윌리엄 애덤스의 도착, 도쿠가와 막부의 확립을 목격했다. 그는 막부 등장과 다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 등 일본 생활에 대한 관찰을 기록했다. 그의 글은 불교 승려의 성스러움을 칭찬하는 등 일본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 자필 원고는 분실되었지만, 1740년 사본[8]이 1900년경 예수회 J.M. 크로스에 의해 아주다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원고 처음 181페이지는 도쿄에서 발행된 《마카오의 소식》(포르투갈어: ''Colecção: Noticias de Macau''; 1953 & 1955) 시리즈 13권으로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2001년 마이클 쿠퍼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전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 주앙 로드리게스, 『일본 교회사』 (에마 츠토무・사노 야스히코・도이 타다오・하마구치 노지오(상)・이케가미 미네오・이토 슌타로・사노 야스히코・쵸난 미노루・도이 타다오・하마구치 노지오・야부우치 키요시(하) 번역, 대항해 시대 총서 IX–X, 이와나미 서점, 1967–70)
  • Rodriguez, Joaõ, ''João Rodrigues's account of sixteenth-century Japan'' (Trans. Michael Cooper, London: Hakluyt Society, 2001) (쿠퍼 번역본은 제2서 제2부 결여)

3. 3. 기타 저술

호드리게스는 중국 불교와 일본 불교의 관계, 중국 지리에 대한 논문을 집필했으나, 현재는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있다.[9] 시안 비석에 대한 설명과 마테오 리치가 기독교 개념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반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남겼다.[9]

4. 평가 및 영향

주앙 호드리게스는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통역, 외교, 무역, 저술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1604년부터 1608년 사이에 간행된 그의 저서 《일본대문전》(日本大文典, Arte da Lingoa de Iapam composta pello Padre Ioão Rodriguez)은 라틴어 문법과 사전의 틀에 맞추어 구어와 문어 문법을 설명하고 경어법, 조사 등 일본어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일본어 사전이다.[1] 1620년에는 《일본소문전》(日本小文典, Arte Breve da Lingoa Iapoa)을 간행하고 《일본교회사》(Historia da Igreja de Iapam)도 집필했다. 그는 조선에 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1]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지배층과의 협상에서 통역을 담당했고, 예수회의 일본 관구 경영에도 관여했다.[51][52]

제임스 클래벨의 소설 『쇼군』에 등장하는 마틴 알비토는 로드리게스를 모델로 했으며, 1980년 미니시리즈에서는 데미안 토마스가, 2024년 미니시리즈에서는 토미 바스토가 연기했다.

참조

[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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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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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적 The Namban trade : merchants and missionaries in 16th and 17th century Japan https://www.worldcat[...] 2021
[1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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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적
[15] 서적
[16] 서적 解説
[17] 서적
[18] 서적
[19] 서적
[20] 서적
[21] 서적
[22] 서적
[23] 서적
[24] 서적
[25] 서적
[26] 서적
[27] 서적 通事
[28] 서적
[29] 서적
[30] 서적
[31] 서적 通事
[32] 서적
[33] 서적 通事
[34] 서적
[35] 서적 通事
[36] 서적 Cooper
[37] 서적 Cooper
[38] 기타 高瀬
[39] 서적 Cooper
[40] 서적 Cooper
[41] 기타 Cooper
[42] 서적 Cooper
[43] 서적 Cooper
[44] 서적 高瀬
[45] 서적 Cooper
[46] 서적 Cooper
[47] 기타 土井「通事」
[48] 서적 Cooper
[49] 서적 Cooper
[50] 서적 Cooper
[51] 서적 Cooper
[52] 기타
[53] 서적 Pina
[54] 서적 Pina
[55] 서적 Pina
[56] 서적 Pina
[57] 서적 董・黄
[58] 서적 董・黄
[59] 서적 西洋と朝鮮:異文化の出会いと格闘の歴史 朝日新聞社
[60] 서적 Cooper
[61] 서적 Barron and Maruyama
[62] 간행물 Zwartjes
[63] 간행물 福島「解説」
[64] 간행물 福島「小文典」
[65] 간행물 福島「小文典考」
[66] 서적 森田
[67] 서적 森田
[68] 간행물 土井「解説」
[69] 도서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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