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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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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제 사라마구는 1922년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2010년 사망한 포르투갈의 소설가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다양한 직업을 거쳤으며, 1966년 시집 《가능한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실험적인 문체와 환상적인 설정을 특징으로 하며, 《수도원의 비망록》, 《돌뗏목》, 《눈먼 자들의 도시》 등 여러 작품이 국제적인 인기를 얻었다. 1998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라마구는 무신론자였으며,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와 이베리아 연방주의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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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8년 1월의 주제 사라마구
2008년 1월의 사라마구
본명주제 드 소자 사라마구
출생1922년 11월 16일
출생지아지냐가, 산타렝 현, 포르투갈
사망2010년 6월 18일 (향년 87세)
사망지티아스, 카나리아 제도, 스페인
국적포르투갈
직업
직업작가, 극작가, 언론인
활동 기간
활동 기간1947년 – 2010년
배우자
배우자이다 헤이스 (1944년 결혼, 1970년 이혼)
필라르 델 리오 (1988년 결혼)
동반자이사벨 다 노브레가 (1968년–1986년)
자녀비올란테 사라마구
수상
수상카몽이스상 (1995년)
노벨 문학상 (1998년)
노벨상 수상 이유상상력, 공감, 그리고 아이러니로 가득 찬 우화들을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
대표 작품
대표 작품수도원의 비망록 (1982년)
리카르두 헤이스의 죽음의 해 (1984년)
예수 그리스도 복음 (1991년)
눈먼 자들의 도시 (1995년)
모든 이름들 (1997년)
도플갱어 (2002년)
죽음의 중단 (2005년)
카인 (2009년)
서명
주제 사라마구 서명
주제 사라마구 서명
웹사이트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2. 생애

주제 사라마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능공,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 기자, 잡지사 및 출판사 편집위원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1947년 첫 소설 《죄악의 땅》을 발표했으나, 살라자르 독재 시절에는 문학 창작보다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4]

1966년 시집 《가능한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 소설, 희곡, 콩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1979년작 《바닥에서 일어서서》로 문학적 명성을 얻었다. 《수도원의 비망록》(1982년), 《돌뗏목》(1986년)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작품은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소설은 마침표와 쉼표만 사용하고 직간접 화법을 구분하지 않는 독특한 문체와 초자연적인 요소를 수용하는 상상력이 특징이다.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 1. 초기 생애 (1922-1947)

사라마구는 1922년 포르투갈 중부 히바테주주의 작은 마을인 아지냐가에서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주제 소자(José de Sousa)와 마리아 피에데드(Maria Piedade)이다. “사라마구”는 영국에서 야생 무(wild radish)로 알려진 초본 식물의 이름으로, 그의 아버지 가문의 별칭이었는데, 출생 신고 과정 중 이름란에 잘못 기재되었다고 한다.[4]

1924년에 사라마구의 가족은 아버지가 경찰관으로 일하게 되어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몇 달 후 사라마구보다 2살 많은 형 프랑시스가 사망했고, 사라마구는 아지냐가에서 조부모와 함께 휴양을 보냈다. 사라마구는 훌륭한 학생이었지만, 부모는 그를 문법 학교에 계속 다니게 할 형편이 되지 못해 12세에 기술 학교로 전학시켰다.

선반공으로 졸업한 후, 2년 동안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 사라마구는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여가 시간에 리스본의 공공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1944년에는 타이피스트이자 나중에 예술가가 된 이다 레이스와 결혼했다(1970년에 이혼). 1947년에 외동딸 비올란테가 태어났다.[4] 이 무렵 그는 사회 복지 서비스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2. 2. 문학 활동과 정치 참여 (1947-1980)

사라마구는 1947년 첫 소설 《죄악의 땅》을 발표했으나, 독재자 살라자르 시절 내내 문학 창작보다는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가능한 시》라는 시집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 소설, 희곡, 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문학적 명성을 공고히 한 작품은 1979년작 《바닥에서 일어서서》이다.

리스본에서 북동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한적한 마을인 Azinhaga|아지냐가영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정비공으로 직업 훈련을 받았다. 여러 직업을 전전한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Diário de Notícias』 부편집장 시절 정치적 사건으로 1975년에 직장을 잃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번역가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이후 직업 작가를 목표로 삼아 198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 3. 국제적 명성과 문학적 성취 (1980-2010)

1982년 발표된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상상력, 연민, 아이러니를 담은 우화를 통해 우리가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만년에는 스페인카나리아 제도 최북동단 란사로테 섬에서 거주했다.[25]

2. 4. 죽음 (2010)

주제 사라마구는 2010년 6월 18일 사망했다.[43][44]

그의 마지막 작품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조제와 필라르』(미겔 곤살베스 멘데스 감독)가 있으며, 병으로 쓰러지면서도 『코끼리의 여행』을 완성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3. 작품 세계

주제 사라마구 재단은 2011년 10월, "잃어버린 소설"인 『스카이라이트』(포르투갈어: Claraboia)의 출판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1950년대에 쓰여졌으며, 원고가 보내졌던 한 출판사의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사라마구는 사망할 때까지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25]

2007년 보고타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 극장에서의 사라마구

3. 1. 주제와 특징

사라마구는 실험적인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때로는 한 페이지가 넘는 긴 문장을 사용했다. 그는 마침표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쉼표로 연결된 느슨한 절을 사용했다.[4] 그의 문단은 대화를 위한 멈춤 없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확장되기도 한다. 화자가 바뀌면 새로운 화자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시했다. 그의 작품은 종종 다른 작품을 언급한다.[4]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고유 명사 사용을 완전히 포기하고 등장인물을 고유한 특성으로만 지칭했는데, 이는 정체성과 의미에 대한 주제를 반영하는 그의 스타일의 한 예이다.

사라마구의 소설은 종종 환상적인 시나리오를 다룬다. 1986년 소설 《돌 뗏목》에서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에서 떨어져 나와 대서양을 항해한다. 1995년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이름 없는 국가 전체가 "백색 실명"이라는 역병에 시달린다. 1984년 소설 《리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에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명이 시인 자신이 죽은 후 1년 동안 살아남는다. 또한 소설 《죽음의 시간》은 갑자기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를 배경으로 하며, 이 사건의 정신적, 정치적 의미를 다루지만, 결국 책은 개관적인 관점에서 더 개인적인 관점으로 이동한다.

사라마구는 인간 조건에 대한 공감과 현대 도시 생활의 고립에 대해 진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연결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공동체로 결속해야 하는 필요성과 개별성을 유지하고 정치적, 경제적 구조 밖에서 의미와 존엄성을 찾아야 하는 필요성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2009년에 그는 일상적인 글쓰기 방식에 대한 질문에 "두 페이지를 씁니다. 그리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습니다."라고 대답했다.[26] 그는 한 페이지 이상인 긴 문장을 쓰는 경향이 있다. 단락은 통상적인 소설의 장의 길이에 필적할 정도로 길다. 대화를 구분하기 위해 「」나 『』와 같은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등, 개성적인 특징들로부터 독특한 문체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3. 2. 문체

주제 사라마구는 실험적인 문체를 사용하는데, 종종 한 페이지가 넘는 긴 문장이 특징이다. 그는 마침표를 드물게 사용하고 쉼표로 연결된 느슨한 절의 흐름을 선호했다.[4] 그의 문단 중 많은 부분은 대화를 위한 일시 중단 없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확장되며(사라마구는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음), 화자가 변경되면 새로운 화자의 절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다. 그의 작품은 종종 다른 작품을 언급한다.[4] 예를 들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고유 명사 사용을 완전히 포기하고 등장인물을 고유한 특성으로만 지칭하는데, 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정체성과 의미에 대한 반복적인 주제를 반영한다.

사라마구는 종종 길이가 한 페이지 이상인 긴 문장을 쓰는 경향이 있으며, 단락은 통상적인 소설의 장 길이에 필적할 정도로 길다. 대화 구분을 위해 「」나 『』와 같은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등, 개성적인 특징들로부터 독특한 문체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4. 사상

사라마구는 무신론반교권주의를 표방했으며, 포르투갈 공산당 당원이자 자유지상주의적 공산주의 지지자였다. 그는 유럽 연합(EU)과 국제 통화 기금(IMF)의 정책을 비판했고, 그의 소설 다수는 정치 풍자로 평가받는다.[4] 조지 오웰과 비교되기도 하는 그의 정치적 참여는, 시민으로서 세상에 개입하고 참여할 의무가 있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31]

제2차 인티파다 당시 라말라를 방문한 사라마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을 아우슈비츠에 비유하며 비판했고,[36] 이는 반유대주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34][35] 그는 이후 자신의 발언이 아우슈비츠의 '정신'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36] 2006년 레바논 전쟁 때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군사, 경제적 관행을 비난하는 성명에 참여했다.[37]

또한 사라마구는 이베리아 연방주의를 지지하며, 스페인포르투갈의 정치적 통합을 주장하여 양국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대침체 시기에는 "마르크스가 지금처럼 옳았던 적이 없다"고 발언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했다.[38]

4. 1. [[무신론]]과 [[반교권주의]]

사라마구는 무신론자였다.[27] 가톨릭 교회는 그의 소설 중 일부, 특히 신을 희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풍자와 성경 인용구를 사용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 ''카인''의 내용 때문에 여러 차례 그를 비판했다.[27] 1991년 포르투갈 정부는 소설 ''예수 그리스도 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에 대해 비난했고, 포르투갈 가톨릭 신념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작가의 이름을 유럽 문학상 후보에서 삭제했다.[27]

이 책은 인간적인 욕망에 굴복하고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살면서 십자가형에서 벗어나려 하는 그리스도를 묘사한다.[27] 스웨덴 한림원이 사라마구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후, 바티칸은 정치적인 이유로 이 결정을 문제 삼았지만, 사라마구 작품의 미학적 또는 문학적 구성 요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28] 사라마구는 "바티칸은 특히 외부 사람들에게 쉽게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들은 그저 기도에 집중하고 사람들을 평화롭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나는 믿는 사람들을 존중하지만, 그 기관은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다.[28]

4. 2.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공산당 당원이었으며,[34] 만년에는 스스로 자유지상주의적 공산주의 지지자로 규정했다.[20] 1989년 리스본 지방 선거에서 "리스본을 위한 연합"의 일원으로 출마하여 리스본 시의회 의장을 맡은 시의원으로 선출되었다.[29] 또한 1989년부터 2009년까지 유럽 의회의 모든 선거에서 민주적 단결 연합 후보였지만,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직책에 출마했다.[29] 그는 유럽 연합 (EU) 및 국제 통화 기금 (IMF) 정책을 비판했다.[4]

그의 소설 중 다수는 미묘한 종류의 정치 풍자로 인정받고 있다. 사라마구는 ''노트''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의 블로그 게시물을 모은 것이다. ''더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사라마구는 인류를 둘러싼 '조직적인 거짓말'의 그물을 끊어내고, 꾸밈없는 일련의 일방적인 강펀치 산문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30] 그의 정치적 참여는 조지 오웰과의 비교로 이어졌다.[31]

2006년 ''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 사라마구는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이기 때문에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모두 개입하고 참여할 의무가 있으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시민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또는 정치적 개입 없이 내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32]

제2차 인티파다 동안, 2002년 3월 라말라를 방문했을 때, 사라마구는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 범죄이다... 면책감은 이스라엘 국민과 그 군대의 특징이다. 그들은 홀로코스트의 연금 생활자로 변했다."라고 말했다.[36] 그는 자신의 견해를 확장한 에세이에서 유대인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가해진 고통이 . . . 그들이 홀로코스트에서 겪은 고통보다 항상 열등하다는 생각을 배우고 훈련받은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상처를 긁어 피가 나게 하고, 불치병으로 만들고, 마치 깃발인 것처럼 세상에 보여준다."라고 썼다.[33] 이 발언에 대한 비평가들은 반유대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34][35] 6개월 후, 사라마구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난하고, 전쟁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익숙한 일이다.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참을 수 없는 특정 단어가 있는데, '아우슈비츠'를 거기에 말하는 것이다... 나는 라말라가 아우슈비츠와 같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은 아우슈비츠의 정신이 라말라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볼레 소잉카, 브레이튼 브레이텐바흐, 빈첸초 콘솔로 등 8명의 작가들이 모두 비난하는 발언을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나를 자극하게 한 것은 아우슈비츠의 상처에 내 손가락을 댄 것이다."[36]

2006년 레바논 전쟁 동안, 사라마구는 타리크 알리, 존 버거, 노엄 촘스키 등과 함께 그들이 "팔레스타인 국가의 청산 외에는 어떤 정치적 목표도 없는 장기적인 군사, 경제, 지리적 관행"이라고 특징지은 것을 비난했다.[37]

그는 또한 이베리아 연방주의의 지지자였다. 2008년 ''눈먼 자들의 도시'' 촬영을 위한 기자 회견에서 그는 대침체와 관련하여 "시장에 쏟아부었던 돈은 어디에 있었나? 매우 꽉 차고 잘 보관되어 있었고, 갑자기 무엇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났는가? 생명을? 아니, 은행을."이라고 물었다. 그는 "마르크스는 지금처럼 옳았던 적이 없다"고 덧붙이며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예측했다.[38]

4. 3. [[이베리아 연방주의]]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공산당 당원이었으며,[34] 만년에는 스스로 자유지상주의적 공산주의 지지자로 규정했다.[20] 그는 1989년 리스본 지방 선거에서 "리스본을 위한 연합"의 일원으로 출마하여 리스본 시의회 의장을 맡은 시의원으로 선출되었다.[29] 또한 1989년부터 2009년까지 유럽 의회의 모든 선거에서 민주적 단결 연합 후보였지만,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직책에 출마했다.[29] 그는 유럽 연합 (EU) 및 국제 통화 기금 (IMF) 정책을 비판했다.[4]

그는 이베리아 연방주의 지지자였다. 2008년 ''눈먼 자들의 도시'' 촬영을 위한 기자 회견에서 그는 대침체와 관련하여 "시장에 쏟아부었던 돈은 어디에 있었나? 매우 꽉 차고 잘 보관되어 있었고, 갑자기 무엇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났는가? 생명을? 아니, 은행을."이라고 물었다. 그는 "마르크스는 지금처럼 옳았던 적이 없다"고 덧붙이며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예측했다.[38]

5. 작품 목록

(예수의 제2복음) || 2010
(1998) ||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Christ'' || 1993

|-

| ''Ensaio sobre a Cegueira'' || 1995 || 눈먼 자들의 도시 || 1998 || ''Blindness'' || 1997

|-

| ''Todos os Nomes'' || 1997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모든 이름들) || 2008
(1999) || ''All the Names'' || 1999

|-

| ''O Conto da Ilha Desconhecida'' || 1997 || 미지의 섬 || 2000 || ''The Tale of the Unknown Island'' || 1999

|-

| ''A Caverna'' || 2001 || 동굴 || 2006 || ''The Cave'' || 2002

|-

| ''O Homem Duplicado'' || 2003 || 도플갱어 || 2006 || ''The Double'' || 2004

|-

| ''Ensaio sobre a Lucidez'' || 2004 || 눈뜬 자들의 도시 || 2007 || ''Seeing'' || 2006

|-

| ''Don Giovanni ou o Dissoluto Absolvido'' || 2005 || 돈 지오반니와 돌아온 탕자 || || ||

|-

| ''As Intermitências da Morte'' || 2005 || 죽음의 중지 || || ''Death with Interruptions'' || 2008

|-

| ''As Pequenas Memórias'' || 2006 || 작은 기억들 || || ||

|-

| ''A Viagem do Elefante'' || 2008 || || || ''The Trip of the Elephant'' ||

|-

| ''Caim'' || 2009 || 카인 || || ''Cain'' ||

|}

6. 수상

연도수상 내역
1995년카몽이스 상
1998년노벨 문학상
2004년아메리카 문학상
2009년상파울루 문학상 — 올해의 책 부문, 《코끼리 여행기》로 후보에 오름[39]



스웨덴 한림원은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사라마구를 선정했다. 이 발표는 그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마치고 독일을 떠나려 할 때 나왔으며, 그와 그의 편집자 모두를 놀라게 했다.[4] 노벨 위원회는 그의 "상상력, 연민, 아이러니로 뒷받침되는 우화"와 공식적인 진실에 대한 그의 "현대적 회의주의"를 높이 평가했다.[7]

참조

[1] 웹사이트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1998 https://www.nobelpri[...] 2021-11-19
[2] 서적 Genius: A Mosaic of One Hundred Exemplary Creative Minds https://archive.org/[...] Warner Books 2003
[3] 간행물 Fond Farewells http://www.time.com/[...] 2010-12-15
[4] 뉴스 The Unexpected Fantasist https://www.nytimes.[...] 2007-08-26
[5] 웹사이트 Nobel Lecture http://nobelprize.or[...] Nobel Committee
[6] 뉴스 O director que marcou o 'verão quente' de 1975 https://www.dn.pt/po[...] 2010-06-19
[7] 뉴스 New ways of seeing https://www.theguard[...] 2008-11-22
[8] 뉴스 The History of the Siege of Lisbon by José Saramago https://www.kirkusre[...] Kirkus Reviews 1997-05-01
[9] 뉴스 José Saramago, The Art of Fiction No. 155 https://www.theparis[...] Paris Review 1998
[10] 뉴스 Isabel da Nóbrega, a musa que Saramago apagou da (sua) história https://observador.p[...] 2015-05-30
[11] 웹사이트 Nobel Prize citation, 1998 http://nobelprize.or[...] Nobelprize.org
[12] 뉴스 José Saramago: Prophet of Doom – Pessimism is our only hope. The gospel according to José Saramago http://www.bookmagaz[...] 2002-11
[13] 뉴스 Shadows on the Wall: Jose Saramago's latest novel depicts a capitalist nightmare http://www.yalerevie[...] Yalereviewofbooks.com 2004-Spring
[14] 웹사이트 José Saramago: Autobiography http://nobelprize.or[...] Nobelprize.org
[15] 뉴스 José Saramago Biography https://www.nobelpri[...] Nobel Prize.org
[16] 뉴스 The Complexity of Others: The Istanbul Declaration of The European Writers' Conference http://www.irishleft[...] 2010-12-01
[17] 뉴스 Nobel laureate José Saramago dies, aged 87 https://www.theguard[...] 2010-06-18
[18] 뉴스 Nobel-wiining[sic] novelist Saramago dies aged 87 http://www.thehindu.[...] 2010-06-18
[19] 뉴스 José Saramago, Nobel Prize-Winning Writer, Dies https://www.nytimes.[...] 2010-06-18
[20] 뉴스 Portugal mourns as Nobel laureate's body returned http://www.chinapost[...] 2010-06-21
[21] 뉴스 Portuguese Nobel laureate Saramago's funeral held http://news.xinhuane[...] 2010-06-21
[22] 뉴스 President defends Jose Saramago funeral no-show http://news.bbc.co.u[...] 2010-06-21
[23] 뉴스 Saramago: Cavaco Silva diz ter cumprido obrigações como Presidente https://www.publico.[...] 2010-06-20
[24] 뉴스 Cinzas de Saramago são depositadas aos pés de uma oliveira, em Lisboa UOL 2011-06-18
[25] 뉴스 Claraboya, novela inédita de Saramago, verá la luz http://www.elpais.co[...] 2011-10-03
[26] 뉴스 The best advice for writers? Read https://www.theguard[...] 2010-03-04
[27] 뉴스 Saramago the atheist, an outsider in his own land https://www.independ[...] 1998-10-09
[28] 뉴스 Nobel Writer, A Communist, Defends Work https://www.nytimes.[...] 1998-10-12
[29] 웹사이트 Communist Party of Portugal: Short Biographical note on José Saramago http://www.pcp.pt/no[...] Pcp.pt
[30] 뉴스 The Notebook by José Saramago: The Nobel laureate's blog entries burn with passion https://www.independ[...] 2010-04-04
[31] 웹사이트 How totalitarianism begins at home: Saramago and Orwell http://yatrarollason[...]
[32] 뉴스 Interview: Still a street-fighting man https://www.theguard[...] 2006-04-30
[33] 뉴스 De las piedras de David a los tanques de Goliat https://elpais.com/d[...] 2002-04-20
[34] 웹사이트 Nobel-winning Portuguese novelist Saramago dies https://news.yahoo.c[...] 2010-06-18
[35] 웹인용 "Bigotry in Print. Crowds Chant Murder. Something's Changed" http://www.travelbro[...] 2002-05-24
[36] 뉴스 The militant magician https://www.theguard[...] 2002-12-28
[37] 웹사이트 Israel, Lebanon, and Palestine: Tariq Ali, John Berger, Noam Chomsky, Eduardo Galeano, Naomi Klein, Harold Pinter, Arundhati Roy, José Saramago & Howard Zinn http://www.chomsky.i[...] 2006-07-19
[38] 뉴스 Karl Marx was never so right, says Nobel laureate Saramago http://en.mercopress[...] 2008-10-28
[39] 웹사이트 Prêmio São Paulo de Literatura divulga finalistas http://www1.folha.uo[...] 2009-05-31
[40] 웹사이트 Cidadãos Nacionais Agraciados com Ordens Portuguesas http://www.ordens.pr[...] 2017-07-31
[41] 뉴스 Marcelo condecora Saramago com o grande-colar da Ordem de Camões https://www.publico.[...] 2021-11-16
[42] citation José Saramago Foundation Statute http://saramago90ano[...] José Saramago
[43] 뉴스 Nobel laureate José Saramago dies, aged 87 https://www.theguard[...] 2010-06-18
[44] 뉴스 ジョゼ・サラマーゴ氏 http://www.yomiuri.c[...] 読売新聞 2010-06-19
[45] 뉴스 노벨문학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 타계 http://media.daum.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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