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진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진밀은 후한 말기에서 촉한 시대에 걸쳐 활동한 학자이자 관료이다. 젊은 시절부터 재능과 학식이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등용되었다. 유비가 동오를 치려 할 때 반대하다 투옥되기도 했으며, 제갈량이 익주목이 되면서 별가가 되었고, 장온을 감복시킬 정도로 박식함을 드러냈다. 대사농을 지냈으나 226년에 사망했으며, 진수의 평가에 따르면 세속을 초월한 재사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에게 투항을 권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촉한의 중랑장 - 두경
    두경은 촉한의 인물로, 유비 사후 유선 아래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하며 과묵한 성품으로 천문학에 정통했고, 한시장구를 저술했으나 후계자는 없었다.
  • 촉한의 중랑장 - 동윤
    동윤은 촉한의 관료로서 유선 황태자를 보좌하며 제갈량의 신임을 받아 내정을 담당했고 환관 황호의 권력 확장을 억제했으며 장완 사후 상서령에 임명되어 국정을 총괄했다.
  • 226년 사망 - 조비
    조비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초대 황제로, 조조 사후 위왕과 승상 자리를 이어받아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구품관인법을 시행하는 등 내정을 정비했으나 오나라 정벌에 실패하고 요절했으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문장경국 사상을 내세우기도 했다.
  • 226년 사망 - 사휘
    사휘는 오나라 손권 치하에서 교주를 다스리던 사섭의 아들로, 아버지 사섭 사후 손권의 조치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여대에게 항복한 후 형제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 촉한의 관료 - 진수 (서진)
    촉한과 서진에서 벼슬을 지낸 진수는 환관의 핍박을 받기도 했으나 장화의 추천으로 등용되어 《삼국지》를 편찬, 위나라를 정통으로 하는 역사관을 확립한 역사가이다.
  • 촉한의 관료 - 제갈균
    제갈균은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이자 제갈량의 동생으로, 형이 유비에게 등용될 때 촉한에 출사하여 장수교위를 지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그를 제갈량으로 착각하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진밀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진밀
원어 이름秦宓
로마자 표기Qin Mi
자칙 (子勑)
출생생년 미상
출생지익주광한군면죽현
사망226년
사인병사
소속촉한
관직 정보
주요 관직대사농
임명 시기미상
군주유선
재상제갈량
기타 관직장수교위 (長水校尉)
좌중랑장 (左中郎將)
익주목별가 (益州牧別駕)
임관 시기 (익주목별가)223년
기타 정보
청두 무후사의 진밀 소상
청두 무후사의 진밀 소상

2. 생애

진밀은 젊어서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주와 군에서 여러 차례 초빙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유언에게 상서를 올려 동향 출신의 명망 높은 유학자인 임안을 추천하기도 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광한태수 하후찬이 진밀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유비가 제위에 오른 후 동오를 공격하려 할 때, 진밀은 천시를 살피고 이롭지 못할 것이라 간언하여 유폐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제갈량이 익주목을 겸하면서 진밀을 별가로 임명했다. 진밀은 오나라에서 온 사신 장온을 박식함으로 경복시켰다.

대사농이 되었으나, 건흥 4년(226년)에 죽었다.

진밀은 오제의 계보와 황·제·왕·패에 대해 논했는데, 그 논리가 매우 정연했다. 초주는 젊은 시절 진밀에게 여러 번 질문했고, 그 내용을 《춘추연부론》에 기록했다. 《삼국지》의 편찬자 진수는 진밀에 대해 "세속을 떠나는 것을 좋게 여기면서도, 어리석은 척하며 세상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에는 여유가 있었고, 문장은 장려했다. 한 시대의 재사라고 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2. 1. 후한 말기

유장이 익주목이 되자 같은 군 출신 왕상이 치중종사가 되었다. 왕상은 진밀에게 편지를 보내 유장을 만나기를 권했다. 그러나 진밀은 유장이 현명하지 못함을 들어 초야에 묻힐 것이라고 답했다. 훗날 왕상이 엄군평과 이홍의 사당을 세우자, 진밀은 편지를 보내 이것이 같은 고향 사람을 후대하는 것이라 칭찬하면서도, 익주 문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마상여를 위해 사당을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3] 이권이 《전국책》을 빌려 식견을 늘리고자 하자, 진밀은 전국책이 종횡가의 책이므로 좋지 못하다고 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광한태수 하후찬은 진밀을 사우좨주로 삼고, 오관연을 겸하게 하며, 중부(仲父)라 불렀으나, 진밀은 다시 질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 하후찬은 세 번이나 그의 저택을 방문했으며[4], 어떤 때는 공조 고박, 주부 왕보를 동반하여 식사를 가지고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래도 진밀은 자택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후 익주에서 진밀을 불러 종사좨주로 삼았다.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동오를 치려 했는데, 진밀은 천시를 살피고 이롭지 못할 것이라 하여 유폐되었다가 풀려났다. 이릉 전투에서 유비가 패배한 후, 건흥 2년(224년) 제갈량이 익주목을 겸하자, 진밀은 별가로 임명되었고, 좌중랑장, 장수교위가 되었다.[5] 오나라에서 장온이 사신으로 오자, 진밀은 장온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며 자신의 박식함을 보여 장온을 경복케 했다. 장온은 "촉에 진밀이 있는 것은, 노나라에 공자가 있는 것과 같다"라고 칭찬했다.[6]

2. 2. 촉한 시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광한태수 하후찬(夏侯纂)은 진밀을 사우좨주 겸 오관연으로 임명하고 중부(仲父)라 불렀으나, 진밀은 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 익주에서 종사좨주로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3] 하후찬은 세 번이나 진밀의 집을 방문했고[4], 공조 고박, 주부 왕보와 함께 식사를 가져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진밀은 집에만 있었다.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를 공격하려 했을 때 (이릉 전투) 이를 간언하다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동오를 치려 했는데, 천시를 살피고 이롭지 못할 것이라 하여 유폐되었다가 풀려났다.

건흥 2년(224), 제갈량이 익주목을 겸하면서 덕망 높은 선비를 속관으로 발탁했는데, 진밀도 그 중 한 명으로 별가종사가 되었다.[5] 이후 좌중랑장, 장수교위로 전임했다. 장온이 오나라에서 사신으로 오자, 진밀은 자신의 박식함을 보여주며 장온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여 그를 경복케 했다. 장온은 "촉에 진밀이 있는 것은, 노나라에 공자가 있는 것과 같다"라고 칭찬했다.[6]

건흥 4년(226), 대사농이 되었으나 사망했다.

3. 평가

젊어서 재능과 학식이 있어 주와 군에서 여러 차례 초빙했으나, 병을 핑계로 번번이 사양했다. 유언에게 상소를 올려 같은 군 출신의 명망 높은 유학자 임안을 추천했다.[3] 훗날 제갈량이 임안의 뛰어난 점을 묻자, "남의 선행은 기억하고, 과실은 잊는 점입니다"라고 답했다.

유장 시대에는 동향 출신 치중종사 왕상이 출사를 권유했으나, 유장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후에 왕상이 장준과 이홍을 위해 사당을 세우자, 편지를 보내 사마상여도 함께 제사 지내도록 요청했다.

동향 출신 팽요는 오만한 성격으로 타인을 경멸하는 일이 잦았지만, 진밀만은 존경하여 광한 태수 허정에게 추천하기도 했다.[3]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광한 태수 하후찬은 진밀을 오관연·사우제주에 임명하고 중부라고 불렀으나, 진밀은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4] 이후 유비에게 직접 부름을 받아 종사제주가 되었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를 공격하려 할 때 (이릉 전투) 이를 간언하다가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

건흥 2년(224년), 제갈량이 익주 이 되면서 평소 덕망 높은 선비를 속관으로 발탁했는데, 진밀도 그중 한 명으로 별가종사가 되었다.[5] 이후 좌중랑장, 장수교위로 승진했다. 오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장온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막힘없이 답하며 박식함을 뽐내 장온을 탄복시켰다. 장온은 "촉에 진밀이 있는 것은, 노나라에 공구가 있는 것과 같다"라며 칭찬했다.[6]

대사농으로 승진했으나, 건흥 4년(226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제의 계보와 황·제·왕·패에 대해 논할 때 그 논리가 매우 정연했다. 초주는 젊은 시절 진밀을 여러 번 찾아가 질문했고, 그 내용을 《춘추연부론》에 기록했다. 《삼국지》의 편찬자 진수는 진밀에 대해 "세속을 떠나 사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어리석은 척하며 세상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답에는 여유가 있었고, 문장은 장려했다. 한 시대의 재사라고 할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4. 《삼국지연의》에서의 등장

삼국지연의》에서 진밀은 유장의 부하로 등장한다. 유장이 유비를 익주(益州)로 맞이하려 하자 반대했다. 유비 군의 간옹이 항복을 권고하러 왔을 때, 간옹의 오만한 태도를 일갈했다.

한국의 삼국지연의 번역본에서는 모두 이름을 '''진복'''으로 표기하고 있다.

참조

[1] 서적 Qin Mi's biography in the ''Sanguozhi''
[2] 서적 ちくま学芸文庫の『正史 三国志』
[3] 서적 『三国志』蜀書 彭羕伝
[4] 서적 『太平寰宇記』
[5] 서적 『三国志』蜀書 杜微伝
[6] 서적 『華陽国志』 https://zh.wikisourc[...]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