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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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송은 후한 말,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로, 장소, 장굉, 진단과 함께 손책을 섬겼다. 강동 지역을 정복한 손책에게 조언했으며, 손책 사후에는 손권 밑에서 일했다.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나, 결국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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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송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진송 (秦松) |
자 | 문표 (文表) |
출생지 | 강소성 |
활동 시기 | 3세기 초 |
주요 활동 | |
직업 | 정치가, 모사 |
섬긴 세력 | 손권 |
주요 직위 | 모사 |
상세 정보 | |
상세 정보 | 진송(秦松, ? ~ ?)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문표(文表)이며 양주 광릉군 사람이다. |
생애 | 손권(孫權)이 오군, 회계군, 단양군, 예장군에 있을 때 초빙되어 모사(幕士)가 되었으며, 유수구(濡須口)에 주둔할 때 군사(軍事)를 겸임했다. 진송은 손권에게 "근래 국가에서는 여러 차례 군사를 일으켰고, 또 궁실(宮室)을 지으니 백성들이 피폐합니다. 마땅히 백성을 위무하고 농사에 힘써야 합니다."라고 간언했으며, 손권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후에 손권은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각각 자신을 천거하게 했는데, 진송은 주환(朱桓)을 천거했다. 진송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열전(列傳)에 기록되지 못했다. |
2. 행적
장굉, 진단과 함께 동향 사람으로, 손책을 모셔 장소와 함께 그의 모주(謨主)가 되었다.[6][7] 손책이 오군에 있을 때 장소, 장굉과 함께 손책의 상빈(上賓)으로서 함께 마땅히 무력으로써 사해를 다스려 평정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가, 당시 어려 말석에 앉은 육적에게 질책을 받았다.[8]
건안 7년, 조조가 손권에게 임자(지방관의 아들을 서울에서 일하게 하는 것, 혹은 그 아들)를 요구하자 손권은 신하들과 회의를 열었는데, 진송은 장소 등과 함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손권의 속마음과 주유의 주장이 일치하여 손권은 임자를 보내지 않았다.[9]
요절했다.[6]
2. 1. 손책 시기
장굉, 진단과 함께 손책을 모셔 장소와 함께 그의 모주(謨主)가 되었다.[6][7] 손책이 오군에 있을 때 장소, 장굉과 함께 손책의 상빈(上賓)으로서 함께 마땅히 무력으로써 사해를 다스려 평정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가, 당시 어려 말석에 앉은 육적에게 질책을 받았다.[8]손책은 오군의 엄호, 회계군의 왕랑 등을 토벌한 후, 스스로 회계 태수가 되었고, 오군 태수에는 주치, 단양 태수에는 오경, 예장 태수에는 손분, 노릉 태수에는 손보를 임명하는 동시에, 팽성의 장소, 광릉의 장굉, '''진송''', 진단 등을 참모로 삼았다.
진송은 현재의 장쑤 성 화이안 부근인 광릉군 출신이다. 190년대 후반 무렵, 진송은 장소, 장홍, 그리고 진단(자는 자정)과 함께 강동 지역을 정복한 군벌 손책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진송은 손책의 조언자가 되었다.[1][2]
2. 2. 손권 시기
장굉, 진단과 함께 동향 사람으로, 손책을 모셔 장소와 함께 그 모주가 되었다.[6][7] 손책이 오군에 있을 때 장소, 장굉과 함께 손책의 상빈으로써 함께 마땅히 무력으로써 사해를 다스려 평정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가, 당시 어려 말석에 앉은 육적에게 질책을 받았다.[8]200년 손책이 사망한 후에도 진송은 손권 밑에서 계속 일했다. 202년(건안 7년), 조조가 손권에게 임자(지방관의 아들을 서울에서 일하게 하는 것, 혹은 그 아들)를 요구하자 손권은 신하들과 회의를 열었는데, 진송은 장소 등과 함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손권의 속마음과 주유의 주장이 일치하여 손권은 임자를 보내지 않았다.[9]
208년경, 적벽 전투 전에 손권은 조조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신하들과 회의를 소집했다. 진송, 장소 등 많은 이들은 손권에게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촉구했는데, 그들은 조조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손권은 노숙과 주유가 그를 설득하여 조조와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주유에게, 조조에게 항복하라고 촉구한 장소와 진송에게 매우 실망했다고 은밀히 말했는데, 그들이 자신의 안위보다는 가족과 개인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3][4]
유비가 형주로 돌아갈 때, 손권은 큰 배로 송별회를 열었고, 장소·진송·노숙 등 십여 명과 함께 유비를 전송했다고 한다.
요절했다.[6]
2. 3. 사망
건안 7년(202년), 조조가 손권에게 임자(지방관의 아들을 서울에서 일하게 하는 것, 혹은 그 아들)를 요구하자 손권은 신하들과 회의를 열었다. 이때 진송은 장소 등과 함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유의 주장이 손권의 속마음과 일치하여 손권은 임자를 보내지 않았다.[9]진송은 요절했다.[6]
3. 관련 인물
진송은 장쑤성 화이안 부근인 광릉군 출신으로, 190년대 후반 무렵 장소, 장홍, 진단(陳端)과 함께 손책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참모가 되었다.[1][2] 손책은 오군의 엄호, 회계군의 왕랑 등을 토벌한 후, 스스로 회계 태수가 되었고, 오군 태수에는 주치, 단양 태수에는 오경, 예장 태수에는 손분, 노릉 태수에는 손보를 임명했다. 이와 동시에 팽성의 장소, 광릉의 장굉, '''진송''', 진단 등을 참모로 삼았다.
손책이 200년에 사망한 후에도 손권을 섬겼다.[3][4] 202년 조조가 손권에게 아들을 인질로 보낼 것을 요구했을 때, 장소와 진송 등은 머뭇거리며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손권은 주유를 통해 인질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208년경, 적벽 전투 전에 손권은 조조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진송과 장소 등은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촉구했으나, 손권은 노숙과 주유의 설득으로 조조와 전쟁을 결심했다. 손권은 주유에게 장소와 진송이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과 개인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3][4] 유비가 형주로 돌아갈 때, 손권은 장소·진송·노숙 등 십여 명과 함께 유비를 전송했다. 손권이 육손과 함께 주유, 노숙, 여몽에 대해 논할 때, 노숙이 적벽 전투 때 장소와 진송이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던 것을 우려하여 주유를 불러들여 요격하게 할 것을 권했던 것을 칭찬했다.
육적은 어릴 적부터 손권의 참모로서 장소, 장굉, 진송 등의 말석에 있었는데, 육적이 그들과 대등하게 논의를 나누자, 장소 등은 육적의 비범함을 높이 평가했다. 장굉은 동향의 진송과 진단(자는 자정)과 함께 손책을 섬겼으나, 두 사람 모두 일찍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조
[1]
서적
Sanguozhi
[2]
서적
Sanguozhi
[3]
서적
Jiang Biao Zhuan
[4]
서적
Sanguozhi
[5]
서적
資治通鑑
[6]
서적
삼국지
[7]
서적
삼국지
[8]
서적
삼국지
[9]
서적
강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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