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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길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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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짐 길리엄은 1953년부터 1966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로, 브루클린 다저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2루수와 3루수로 뛰었다. 그는 1953년 내셔널 리그 신인상을 수상했고, 두 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다저스에서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며 팀의 여러 우승을 이끌었다. 1978년 뇌출혈로 사망했으며, 그의 등번호 19번은 다저스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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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길리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71년 길리엄이 사인을 하고 있다.
1971년 길리엄이 사인을 하고 있다.
포지션2루수 / 3루수
타석스위치
송구우투
출생일1928년 10월 17일
출생지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사망일1978년 10월 8일
사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
선수 경력 (니그로 리그)
데뷔 리그NgL
데뷔 연도1946년
데뷔 팀볼티모어 엘리트 자이언츠
최종 팀볼티모어 엘리트 자이언츠
활동 기간1946년–1950년
올스타 선정3회 (이스트–웨스트 올스타전: 1948년–1950년)
선수 경력 (MLB)
데뷔 리그MLB
데뷔 날짜1953년 4월 14일
데뷔 팀브루클린 다저스
최종 리그MLB
최종 날짜1966년 9월 30일
최종 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올스타 선정2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1956년, 1959년)
월드 시리즈 우승4회 (1955년, 1959년, 1963년, 1965년)
수상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 (1953년)
영구 결번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 19
타격 성적 (MLB)
타율.266
홈런65
타점625
선수 경력
니그로 리그볼티모어 엘리트 자이언츠 (1946년–195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브루클린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53년–1966년)
코치 경력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5년–1978년)

2. 니그로 리그와 마이너 리그 경력

짐 길리엄은 1946년부터 1950년까지 니그로 내셔널 리그의 볼티모어 엘리트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51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한 후 마이너 리그로 이동했다.[5]

2. 1. 니그로 리그 시절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길리엄은 14세에 지역 세미 프로팀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야구 경력을 위해 고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니그로 내셔널 리그의 볼티모어 엘리트 자이언츠에서 선수로 뛰었다. 이 시기에 "주니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3년 연속 동서 올스타 게임에 출전했다. 베테랑 조지 스케일스의 지도로 스위치 히터로 전향했다.

2. 2. 마이너 리그 시절

1951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을 맺었고, 트리플 A 인터내셔널 리그 산하 팀인 몬트리올 로열스에서 뛰었다. 흑인 선수들은 텍사스 리그에서 경기 출전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다저스의 더블 A 제휴팀인 포트워스 캣츠에서는 뛸 수 없었다. 1951년1952년 모두 인터내셔널 리그에서 득점 1위를 기록했다.

3. 메이저 리그 경력

짐 길리엄은 1953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재키 로빈슨이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2루수 자리를 맡았다.[1] 그 해 17개의 3루타(내셔널 리그 1위)와 100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수상했다.[5]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주로 리드오프나 2번 타자로 활약하며 뛰어난 선구안과 빠른 발을 바탕으로 팀에 기여했다.[5]

길리엄은 현역 말년에 은퇴를 두 번이나 번복하고 팀에 복귀했으며, 1966년에 최종적으로 은퇴했다.[6] 1965년부터 선수 겸 코치를 맡았고,[7] 은퇴 후에는 전임 코치로 활동했다.

3. 1.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1953-1957)

Junior Gilliam영어은 1953년 4월 재키 로빈슨이 외야와 3루로 이동하면서 2루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브루클린 다저스 데뷔 시즌에 내셔널 리그 챔피언 팀에서 0.278의 타율과 팀 내 최다인 125득점을 올렸다. 17개의 3루타는 내셔널 리그 1위였으며, 1920년 이후 다저스 선수 중 최다 기록이었다. 100개의 볼넷으로 리그 2위(스탠 뮤지얼 다음), 21개의 도루로 3위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내셔널 리그 신인상과 스포팅 뉴스 신인상을 수상했다.[1]

1954년에는 0.282의 타율과 통산 최다인 13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1955년 챔피언 팀에서는 0.249의 타율을 기록했다. 1956년에는 통산 최고 타율인 0.300을 기록하며 올스타 팀에 처음으로 선정되었고, 메이저 리그 MVP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또한 볼넷(95개, 팀 동료 덕 스나이더 다음)과 도루(21개, 윌리 메이스 다음)에서 리그 2위를 기록했다. 그해 7월 21일에는 존 몽고메리 워드가 1892년에 세운 한 경기 12개 어시스트 메이저 리그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1957년 다저스의 브루클린 마지막 시즌에는 0.250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아웃 처리와 수비율에서 내셔널 리그 1위를 기록했고, 도루에서도 메이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1]

연도소속팀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자희생번트희생플라이볼넷고의4구사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53BRO
LAD
15171060512516831176251632114210043387.278.383.415.798
19541466956071071712881325452875576223010.282.361.418.779
195514762753811013420871914015151127046378.249.341.355.696
1956153701594102178238623543219629564395.300.399.396.794
1957149695617891542642194372610736404315.250.323.314.637


3. 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1958-1966)

팀이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한 후에도 길리엄은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2] 1959년 시즌에는 내셔널 리그에서 96개의 볼넷으로 1위를 차지했고, 23개의 도루를 기록했으며, 올스타에 선정되어 두 번째 올스타 경기에서 홈런을 쳤다.[2]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다시 2루수로 뛰었고, 1963년 시즌에는 타율 0.282를 기록하며 MVP 투표에서 6위를 차지했다.[2]

1964년 시즌 이후 코치로 임명될 예정이었으나, 팀의 부상으로 인해 1965년과 1966년에 3루수로 출전했다.[2] 1965년에는 모리 윌스, 웨스 파커, 짐 르페브르와 함께 메이저 리그 최초의 스위치 타자 내야진을 구성했다.[2] 1966년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2]

길리엄은 선수 시절 14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65, 1889개의 안타, 1163득점, 65개의 홈런, 558타점, 304개의 2루타, 71개의 3루타, 1036개의 볼넷, 203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통산 0.973의 수비율을 기록했다.[2]

연도소속팀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실볼넷삼진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58년LAD1476365558114525521864318117822.261.352.335.687
1959년1456555539115618431913423109625.282.387.345.732
1960년151670557961382025177401299628.248.359.318.677
1961년14453143974107263415132847934.244.358.344.702
1962년160702588831592414197431779335.270.370.335.705
1963년148605525771482746201491956028.282.354.383.737
1964년11639033444768329627444221.228.318.287.605
1965년11143237254104194414339955331.280.374.384.758
1966년8827323530519016316213417.217.315.268.583
MLB: 9년11105529475863012341712733149932311266631241.259.356.315.671


3. 3. 선수 겸 코치 및 코치 경력

길리엄은 1965년부터 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으며, 1967년부터 전임 코치가 되었다.[7] 1978년 사망할 때까지 다저스 코치로 활동하며 1974년, 1977년, 1978년 세 번의 내셔널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매번 월드 시리즈에서 패했다.[5]

1966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전임 코치로 현장에 남아 오랫동안 팀을 지탱했지만, 1978년 리그 우승 결정 다음 날인 10월 8일 뇌출혈로 급사했다.[7] 다저스는 그간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이틀 뒤인 월드 시리즈 1차전에 길리엄이 현역, 코치 시절까지 일관되게 착용했던 등번호 ''''19''''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7] 다저스의 영구 결번 지정 선수는 기본적으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지만, 길리엄은 명예의 전당 미선정 선수이다.[8]

길리엄의 등번호 "'''1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영구 결번으로 1978년 지정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선구안으로 5번이나 90개 이상의 볼넷을 골랐고, 도루도 3번이나 리그 2위를 차지했다. 득점이 적은 상황에서 팀을 지키는 "다저스의 전법"에서 그의 기동력은 중요한 요소였다.[5]

5. 월드 시리즈 활약

1953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1회 초에 안타를 치고 출루했으며, 5회에는 좌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1] 4차전 7-3 승리에서 3개의 2루타를 쳐 1득점 2타점을 기록했고, 5차전 11-7 패배에서는 우타석에서 또 다른 홈런을 기록했다.[1] 1955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는 2회에 만루에서 볼넷을 얻어 다저스가 리드를 잡았고, 4차전 8-5 승리에서 첫 득점을 올렸다.[1] 다저스는 7차전에서 승리하여 첫 번째 월드 시리즈 챔피언십을 차지했다.[1] 1956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는 10회 1아웃 상황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후 재키 로빈슨의 안타로 득점하여 시리즈를 동점으로 만들었고,[1] 5차전에서는 돈 라르센이 던진 퍼펙트 게임에서 두 번의 삼진과 두 번의 땅볼 아웃을 기록했다.[1] 1963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는 볼넷으로 출루한 후 폭투로 2루까지 진루하여 1회에 유일한 득점을 올렸고,[1] 4차전 7회에는 조 페피토네의 실책으로 3루까지 진루한 후 윌리 데이비스의 희생 플라이로 득점하여 다저스가 2-1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스윕했다.[1] 그는 또한 1959년 월드 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1965년 월드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시리즈에서 우승한 다저스 팀에 속해 있었다.[1] 그의 마지막 메이저 리그 출전은 1966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치러졌다.[1]

6. 사망과 유산

길리엄은 1978년 9월 15일 자택에서 심각한 뇌출혈을 겪었고, 수술 후 혼수 상태에 빠져 회복하지 못했다. 1978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저스가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통산 10번째 페넌트레이스를 확정 지은 다음 날인 1978년 10월 8일, 50번째 생일을 9일 앞두고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에서 사망했다.[3] 그의 등번호 19번은 1978년 월드 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사망 이틀 후에 다저스에 의해 영구 결번되었다.[7]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와 함께 등번호가 영구 결번되었지만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되지 않은 유이한 다저스 선수이다.[8] 그는 잉글우드 공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다저스는 1978년 월드 시리즈 기간 동안 유니폼 왼쪽 소매에 길리엄의 등번호 19번이 새겨진 검은색 추모 패치를 착용했으며, 이 시리즈에서 라이벌 뉴욕 양키스가 6경기 만에 승리했다.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퍼스트 호라이즌 파크 앞의 거리 표지판으로, 주니어 길리엄을 기리고 있다.


길리엄은 28년간 다저스 선수 생활을 하며 뛰어난 기량뿐만 아니라 인품과 스포츠 정신으로 존경받았다.

1981년, 로스앤젤레스 시는 주니어 길리엄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헌정했다. 1984년에는 짐 길리엄 공원이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라 브레아 애비뉴에 위치해 있다. 짐 길리엄 공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여러 시설이 있다. 첫 번째 볼 세레머니는 로스앤젤레스 시장 톰 브래들리 (1973–1993)가 던졌다.

2015년 5월 21일, 내슈빌 대도시 의회는 세컨드 애비뉴에서 파이브 애비뉴를 약간 지난 골목까지 이르는 잭슨 스트리트의 일부 구간을 "주니어 길리엄 웨이"로 개명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길리엄을 기리는 이 구간의 중심 부분은 2015년에 트리플 A 내슈빌 사운즈를 위해 건설된 마이너 리그 야구장인 퍼스트 호라이즌 파크가 위치해 있다.[4]

7. 수상 및 기록



참조

[1] 웹사이트 MLB officially designates the Negro Leagues as 'Major League' https://www.mlb.com/[...] 2020-12-16
[2] 뉴스 Amazing Dodgers Los Angeles Times 1965-09-06
[3] 웹사이트 The All-Time LA Dodger Lineup: The Second Spot http://www.truebluel[...] 2009-01-26
[4] 웹사이트 ORDINANCE NO. BL2015-1105 https://web.archive.[...] 2015-05-21
[5] 간행물 永久欠番名鑑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6] 서적 改訂新版 メジャー・リーグ人名事典 言視社
[7] 간행물 球団別永久欠番物語 第1回 ロサンゼルス・ドジャース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0-05
[8] 문서 202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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