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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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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기식은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관련자를 숨겨준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1983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으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그의 구속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최기식은 사목 활동을 하였으며, 1997년 수필집 《로만칼라와 빈 부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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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식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접두어베네딕토
이름최기식
접미어신부
소속
교회천주교
서품 정보
사제 서품1971년
개인 정보
출생일1943년
종교천주교
부모최순봉(부)
가족2남 6녀 중 막내
경력 및 활동
재직천사들의집 원장, 한국희망재단 이사장
전직천주교 원주교구 사무국장
학력
학력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기타 정보

2.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과 구속

원주교구 소속 최기식 신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수배 중이던 김현장부산 미국문화원 방화범 문부식을 숨겨준 혐의(범인은닉죄)로 구속되었다.[4]

1982년 4월 2일, 지학순 주교는 "죄인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돕는 것이 사제의 직분"이라며 최기식 신부의 행동을 옹호했다. 그러나 4월 5일, 치안본부는 최기식 신부를 범인은닉죄 등으로 연행했다.

2. 1.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2년 3월 18일, 고려신학교 학생 김은숙, 문부식과 부산대 학생 최인순, 김지희 등은 부산 미국문화원 현관에 불을 질렀다.[4] 이들은 "미국 문화의 상징인 부산 미문화원을 불태움으로써 반미 투쟁의 횃불을 들어 민족적 자각을 호소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뿌렸다.[4] 이 사건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미국의 신군부 지지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사건 이후 수배령이 내려진 김은숙과 문부식은 원주교구로 피신했고, 원주교구의 주선으로 자수했다.[4]

2. 2. 범인은닉과 구속

1982년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되어 수배 중이던 김현장부산 미국문화원 방화범 문부식을 숨겨준 혐의(범인은닉죄)로 원주교구의 최기식 신부가 구속되었다.[4]

1982년 4월 2일, 지학순 주교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사제의 직분"이라며 최기식 신부가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지학순 주교는 성명서를 통해 "최기식 신부는 문부식과 김은숙의 자수의사에 따라 당국에 자수를 주선해 주었으며 죄와 폭력은 미워하나 죄인은 미워할 수 없다"라고 공식 발표했다.[4]

그러나 4월 5일 치안본부는 최기식 신부를 범인은닉죄로, 다른 4명은 국가보안법, 범인은닉 및 교사혐의 등을 적용하여 연행했다.

1982년 4월 9일, 최기식 신부는 부산교구장 이갑수 주교와 부산교구 사제단을 만난 자리에서 양심선언을 발표했다.[5] 4월 12일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최기식 신부의 구속에 대하여 당국에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5개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다.[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정은규 신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최기식 신부의 행위는 최선의 길이었음을 확신하며, 광주사태로 쫓기는 사람들을 보호해 준 사제들의 양심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또한, 공산주의가 두려워 정부의 말만 반복하는 사회는 공산독재국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4]

6월 14일 1심 공판에서 부산지법은 최기식 신부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및 범인은닉죄 등을 적용하여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윤공희 대주교는 5.18 2주기 추도미사에서 최기식 신부 구속사건이 광주사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강론했다. 지학순 주교는 최기식 신부의 결백을 주장하는 등 천주교회는 최기식 신부의 석방과 문부식 피고인을 위한 구명운동을 전개하였다. 1982년 10월 추계주교회의에서는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한국천주교주교단은 시국담화문을 발표하여 전두환 정권의 잘못을 지적했다.[4]

최기식 신부는 1983년 8월 12일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으며, 김현장과 문부식은 무기로 감형되었다.

2. 3. 재판 과정과 석방

1982년 6월 14일 부산지법 형사 4부(재판장 안문태 부장판사)는 1심 공판에서 최기식 신부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및 범인은닉죄 등을 적용하여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4]

윤공희 대주교는 5.18 2주기 추도 미사에서 '아물지 않은 광주사태'라는 제목으로 최기식 신부 구속 사건이 광주사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강론했다. 지학순 주교는 〈사목〉에 '가톨릭과 공산주의'라는 제목으로 교회가 용공분자의 양성소처럼 인식되는 데 반박하며 최기식 신부의 결백을 주장했다. 천주교회는 최기식 신부 석방과 문부식 피고인을 위한 구명 운동을 전개하였다.[4] 1982년 10월 추계주교회의에서는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한국천주교주교단은 시국담화문을 발표하여 당시 몇 년간 자행된 전두환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고 방침을 제시했다.[4]

1983년 8월 12일 광복절 특사로 최기식 신부는 석방되었으며, 김현장과 문부식은 무기로 감형되었다.

3. 민주화 운동 참여와 의미

최기식 신부는 광주민중항쟁 관련 수배자였던 김현장부산 미국문화원 방화범 문부식을 숨겨준 혐의(범인은닉죄)로 구속되었다.[4]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이 발생했고, 수배령이 떨어진 김은숙과 문부식은 원주교구청으로 피신하여 교회의 주선으로 자수했다.

1982년 4월 2일, 지학순 주교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사제의 직분"이라며 최기식 신부가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4] 그러나 4월 5일, 치안본부는 최기식 신부를 범인은닉죄로, 다른 4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1982년 6월 14일 1심 공판에서 부산지법은 최기식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및 범인은닉죄 등을 적용하여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윤공희 대주교는 5.18 2주기 추도미사에서 최기식 신부 구속사건이 광주사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강론했다. 지학순 주교는 〈사목〉에 가톨릭과 공산주의라는 제목으로 교회가 용공분자의 양성소처럼 인식되는 데 반박하며 최기식 신부의 결백을 주장했다.[4]

최기식 신부는 1983년 8월 12일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으며, 김현장과 문부식은 무기로 감형되었다.

3. 1.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

1982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구속된 원주교구 소속 최기식 신부에 대해 "최기식 신부의 구속에 대하여 당국에 묻는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6]

1982년 3월 18일 발생한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수배자 김은숙과 문부식은 원주교구청으로 피신, 교회의 주선으로 자수했다.[4] 4월 2일 지학순 주교는 "죄인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돕는 것이 사제의 직분"이라며 최 신부를 옹호했고, 다음 날 성명서를 통해 자수 주선 사실을 밝혔다.[4]

4월 5일 치안본부는 최기식 신부를 범인은닉죄로, 관련자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연행했다. 4월 9일 최기식 신부는 부산교구에서 양심선언을 발표했고,[5]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4월 12일 5개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다.[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최 신부의 행위가 최선이었음을 확신하며, 광주사태 관련 도피자들을 보호한 사제들의 양심을 존중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4] 윤공희 대주교는 5.18 2주기 추도미사에서 최 신부 구속이 광주사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강론했고, 지학순 주교는 최 신부의 결백을 주장하며 구명운동을 전개했다.[4] 1982년 10월 추계주교회의에서는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한국천주교주교단은 전두환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시국담화문을 발표했다.[4]

3. 2.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입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정은규 신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방화사건과 관련하여 교회를 찾아와 보호를 받고 있던 사람들을 본인들의 뜻에 따라 당국에 자수를 주선해준 최기식 신부의 행위는 최선의 길이었음을 우리 교회는 확신한다. 또한 광주사태로 말미암아 쫓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 준 사제들의 양심을 전적으로 존중한다.… 공산주의가 두려워 모든 국민이 정부에서 시키는 말만 반복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는 공산독재국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4]

1982년 10월 추계주교회의에서는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한국천주교주교단은 시국담화문을 발표하여 당시 몇 년간 자행된 전두환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고 방침을 제시했다.[4]

4. 저서

1997년 사제 서품 25주년 기념 수필집 《로만칼라와 빈 무덤》을 출간하였다.[1]

참조

[1] 뉴스 이웃사랑으로 선조들 신앙 이어갑니다 http://app.yonhapnew[...] 연합뉴스 2011-06-14
[2] 웹인용 신임 이사장 최기식 신부님 인사말 http://www.hope365.o[...] 한국희망재단 2011-09-27
[3] 뉴스 빈민아이들 "새 교실서 공부하게 돼 설레요" http://www.hani.co.k[...] 한겨레 2012-02-12
[4] 웹인용 최기식 신부 구속사건 http://www.catholicn[...] 가톨릭뉴스지금여기 2010-12-08
[5] 웹인용 최기식 신부님 양심선언 http://archives.kdem[...] open archives 1982-04-09
[6] 웹인용 성명서-최기식신부의 구속에 대해 당국에 묻는다 http://archives.kdem[...] open archives 198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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