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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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칭기즈 칸 가계도는 몽골 제국의 초대 카간인 칭기즈 칸과 그의 후손들의 가계 정보를 나타낸다. 이 가계도는 주요 구성원만 표시된 가계도와 칭기즈 칸의 직계 가계도, 그리고 몽골 제국 카간들의 족보로 구성되어 있다.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킵차크 칸국, 차가타이 칸국, 우구데이 칸국, 일 칸국, 원나라 등 다양한 국가를 세웠으며, 칭기즈 칸의 혈통에 대한 논란과 과학적 증거도 존재한다. 특히, 칭기즈 칸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C-M217, R1b 등 다양한 하플로그룹이 후보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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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몽케 칸은 1251년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선출되어 금나라 정벌, 유럽 원정 참여, 중앙 정부 강화, 무역로 확보, 고려 항복, 훌라구를 통한 이란-이라크 원정 성공, 룸 술탄국 정벌, 티베트-대리국 평정 등 광범위한 영토 확장을 이끌었으나 남송 정벌 중 병사하며 몽골 제국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 보르지긴 - 알탄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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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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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칭기즈 칸의 가계도
몽골 제국의 역대 카간을 역임한 인물은 굵게 표시했다.[1]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는 형제들보다 많은 자손을 두었지만, 그의 친자 여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 주치는 칭기즈 칸의 첫 번째 부인 보르테가 납치되어 약 1년 동안 감금되었던 칠게르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차가타이는 주치를 "사생아"라고 언급했지만, 칭기즈 칸은 "어찌 감히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가? 그는 내 상속자 중 장남이 아니더냐? 다시는 그런 악담을 듣지 않겠다!"라고 답하며 주치가 자신의 장남임을 세 번이나 강조했다.[1]
현대 역사가들은 주치의 친자 여부에 대한 논란이 칭기즈 칸과 소원해진 이유이자 그의 후손들이 황제 자리를 계승하지 못한 이유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칭기즈 칸은 항상 주치를 장남으로 대했으며, 주치의 계승 실패는 그의 요절로 설명할 수 있다.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빈번하게 혼인했다. 예를 들어, 주치 가문은 페르시아의 일 칸국 왕조에서 아내를 맞이했는데, 이 왕조는 칭기즈 칸의 아들 툴루이의 아들인 훌라구 칸이 세운 왕조였다. 따라서 많은 주치 가문 사람들은 어머니 쪽 조상 중에 칭기즈 칸의 다른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2. 1. 직계 가계도
예수게이와 호엘룬 사이에서 태어난 '''테무친'''은 보르테와 결혼하여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툴루이를 낳았다. 툴루이는 소르각타니 베키와 결혼하여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아리크부카를 낳았다. '''쿠빌라이'''의 아들 친킴은 '''테무르'''를 낳았다.[1]
2. 2. 족보
몽골 제국의 역대 카간을 역임한 인물은 굵게 표시했다.[1]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는 형제들보다 더 많은 자손을 기록했지만, 그의 친자 여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 주치는 칭기즈 칸의 첫 번째 부인 보르테를 납치하여 약 1년 동안 감금했던 칠게르에 의해 칭기즈 칸에게 보내졌다. 차가타이는 한 구절에서 주치를 "사생아"라고 언급했지만, 칭기즈 칸은 "어찌 감히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가? 그는 내 상속자 중 장남이 아니더냐? 다시는 그런 악담을 듣지 않겠다!"라고 답하며 주치가 자신의 장남임을 세 번이나 강조했다.[1]
현대 역사가들은 주치의 친자 여부에 대한 논란이 칭기즈 칸과 소원해진 이유이자 그의 후손들이 황제 자리를 계승하지 못한 이유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칭기즈 칸은 항상 주치를 장남으로 대했으며, 주치의 계승 실패는 그의 요절로 설명될 수 있다.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빈번하게 혼인했다. 예를 들어, 주치 가문은 페르시아의 일 칸국 왕조에서 아내를 맞이했는데, 이 왕조는 칭기즈 칸의 아들인 툴루이의 아들인 훌라구 칸이 세운 왕조였다. 따라서 많은 주치 가문 사람들은 어머니 쪽 조상 중에 칭기즈 칸의 다른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2. 2. 1. 칭기즈 칸의 선조
보르테 치노(푸른 늑대)와 구아 마랄(흰 암사슴)의 후손들은 다음과 같다.[1]대수 | 이름 | 비고 |
---|---|---|
1 | 바트 트사간 | |
2 | 타마차 | |
3 | 호리차르 메르겐 | |
4 | 우짐 부랄 | |
5 | 살리 하차우 | |
6 | 예헤 니둔 | |
7 | 셈 소치 | |
8 | 하르추 | |
9 | 보르지기다이 메르겐 | 처 몽골진 구아 |
10 | 토로골진 바얀 | 처 보로그친 구아 |
11 | 두바 소코르 | 토로골진의 장남 |
11 | 도부 메르겐 | 토로골진의 차남, 처 알란 구아 |
12 | 벨구누데이 | 도부의 장남 |
12 | 부구누데이 | 도부의 차남 |
12 | 부쿠 카타기 | 알란 구아의 장남 (도부 메르겐 사망 이후 소생) |
12 | 부카투 살지 | 알란 구아의 차남 (도부 메르겐 사망 이후 소생) |
12 | 보돈차르 문카그 | 알란 구아의 삼남 (도부 메르겐 사망 이후 소생) |
13 | 하비츠 바가투르 | |
14 | 메넨 투둔 | |
15 | 하치 훌루그 | |
16 | 카이두 | |
17 | 바이신호르 독신 | 카이두의 장남 |
18 | 툼비나이 세트센 | |
19 | 카불 칸 | 툼비나이의 장남, 카마그 몽골의 대칸(1120년-1146년) |
20 | 오힌바르하그 | 카불 칸의 장남 |
20 | 바르탄 바가투르 | 카불 칸의 차남 |
21 | 멩기투 히얀 | 바르탄의 장남 |
21 | 네군 타이지 | 바르탄의 차남 |
21 | 예수게이 | 바르탄의 삼남, 처 호엘룬, 첩 소치겔(1160년-1171년) |
22 | 테무진 | 예수게이의 적장남, 카마그 몽골의 대칸 (1189년-1206년) |
22 | 카사르 | 예수게이의 적차남 |
22 | 하치운 | 예수게이의 적삼남 |
22 | 테무게 | 예수게이의 적사남 |
22 | 벡테르 | 예수게이의 서장남 |
22 | 벨구테이 | 예수게이의 서차남 |
21 | 다아리타이 옷치긴 | 바르탄의 사남 |
20 | 후투그투 몬호르 | 카불 칸의 삼남 |
20 | 호툴라 칸 | 카불 칸의 사남, 카마그 몽골의 대칸 (1156년-1160년) |
20 | 훌란 | 카불 칸의 오남 |
20 | 하단 | 카불 칸의 육남 |
20 | 토도이 | 카불 칸의 칠남 |
19 | 셈소출레 | 툼비나이의 차남 |
20 | 아르디 바를라스 | 셈소출레의 장남 |
20 | 앙 고란 | 셈소출레의 차남 |
17 | 치르햐 린후아 | 카이두의 차남 |
18 | 셍군 빌게 | |
19 | 안바카이 칸 | 카마그 몽골의 대칸 (1146년-1156년) |
17 | 차우진 오르타가이 | 카이두의 삼남 |
2. 2. 2. 칭기즈 칸의 후손
몽골 제국의 초대 카간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며 여러 왕조를 세웠다.세대 | 칸 |
---|---|
2 | 오르다 칸 |
3 | 사르탁타이 |
4 | 코취 칸 |
5 | 바얀 칸 |
6 | 사시부카 칸 |
7 | 에르젠 |
8 | 침타이 칸 |
3 | 쿤키란 칸 |
- * 청장 칸국 (바투 가문)
세대 | 칸 |
---|---|
2 | 바투 칸 |
3 | 사르타크 칸 |
4 | 울라그치 칸 |
3 | 토코칸 |
4 | 타르투 |
5 | 톨레부카 칸 |
4 | 멩구티무르 칸 |
5 | 토크타 칸 |
5 | 토그릴차 |
6 | 오즈베그 칸 |
7 | 티니베그 칸 |
7 | 자니베그 칸 |
8 | 베르디베그 칸 |
8 | 쿨파 칸 |
8 | 나우루즈베그 칸 |
4 | 투다멩구 칸 |
2 | 베르케 칸 |
- * 기타 주치 계열 칸국
칸국 | 가문 | 주요 칸 |
---|---|---|
시비르 칸국 | 샤이반 왕조 | |
아스트라한 칸국 | 아스트라한 왕조 | |
대장 칸국 | 아흐마드 | |
카잔 칸국 | 울루그 무함마드 | |
카심 칸국 | 카심 | |
카자흐 칸국 | 우루스 칸 | |
부하라 칸국 | 샤이반 왕조, 자니 왕조 | |
히바 칸국 | 시반 후손 | |
코칸트 칸국 | 샤이반 왕조 |
- '''차가타이 계열''': 차가타이 칸국과 그 분파인 모굴리스탄, 카라 델, 예르켄트 칸국, 쿠물 칸국 등을 다스렸다.
- '''우구데이 계열''': 우구데이 칸국을 다스렸으며, 귀위크 칸은 몽골 제국 제3대 카간이 되었다.
- '''툴루이 계열''': 몽골 제국의 카간과 원나라 황제, 일 칸국의 칸을 배출했다.
- 몽케 칸: 제4대 몽골 카간
- 쿠빌라이 칸: 제5대 몽골 카간 및 원나라 초대 황제
- 훌라구: 일 칸국의 초대 칸
주요 칭기즈 칸 후손 왕조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 다양한 왕조를 세웠다.
티무르 왕조의 창시자 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후손을 자처하며 차카타이 칸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2] 무굴 제국 황실은 바부르를 통해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후손이었다.
고려 왕족은 충렬왕과 쿠빌라이 칸의 딸의 결혼으로 칭기즈 칸 가문과 연결되었고, 이후 공민왕까지 80년간 보르지기드 공주와 혼인했다.
타타르족 유력자 중 칭기즈 칸 혈통으로는 카잔 칸국과 카심 칸국의 칸, 크림 칸국을 통치한 기라이 왕조 등이 있었다.[2]
러시아 제국에 흡수된 칭기즈계 통치자들은 러시아에 봉사하며 시베리아의 차레비치, 발리하노프 공작 등의 칭호를 받았다.
청나라는 에제이 칸의 동생 아부나이와 그 아들 보르니의 반란 이후 보르지기드 가문의 한 분파를 멸족시켰다.[4] 청나라 황제와 만주국 황제는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간접적인 후손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술레이만 1세의 외할아버지인 크림 칸 멩리 1세 기라이의 딸 아이셰 하프사 술탄을 통해 주치 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3. 칭기즈 칸의 후손들이 세운 국가
타타르족 사회에서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는 점은 정치적으로 중요했다. 예를 들어, 마마이는 칭기즈 칸의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칸 칭호를 사용할 수 없었고, 꼭두각시 칸을 내세워 권력을 행사해야 했다.[2]
티무르 왕조를 세운 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후손을 자처하며 차카타이 칸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그는 칸 칭호를 쓰지 않고 차카타이 가문 출신 두 명을 형식적인 국가 수장으로 내세웠다. 인도 아대륙의 무굴 제국 황실은 바부르와 칭기즈 칸(차카타이 칸을 통해)을 통해 티무르의 후손이었다.
고려 왕족은 충렬왕이 쿠빌라이 칸의 딸과 결혼하면서 칭기즈 왕조의 후손이 되었다. 이후 공민왕 때까지 80년 동안 모든 고려 왕은 보르지긴 가문의 공주와 결혼했다.
후대 칭기즈 칸 혈통을 가진 타타르 유력자들은 다음과 같다.
칭기즈 칸의 후손이 다스린 다른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호쇼트 칸국의 칸들은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후손이었다.
러시아 제국이 투르크계 국가들을 흡수하면서 칭기즈 왕조의 통치자들은 러시아에 봉사하기도 했다. 쿠춤의 후손은 시베리아의 차레비치로, 아블라이 칸의 후손은 발리하노프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들은 모두 칭기즈 칸의 혈통을 주장했다. 유일하게 현존하는 가문은 기라이 가문으로, 이들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떠나 미국과 영국으로 이주했다.
청나라는 1675년 에제이 칸의 동생 아부나이와 그의 아들 보르니의 반란 이후 보르지기드 가문의 한 분파(리가단 칸의 후손)를 몰살시켰다.[4] 이후 청 황제는 차하르 몽골을 직접 통치했다. 청 황제와 만주국 황제는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간접적인 후손이었다. 이들은 아이신 교로 황실과 혼인한 호르친 공작을 통해 칭기즈 칸 가계와 연결된다.
크림 칸국의 칸 멩리 1세 기라이는 딸 아이셰 하프사 술탄을 통해 술레이만 1세의 외할아버지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 역시 조치를 통해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4. 칭기즈 칸의 후손 관련 논란
칭기즈 칸의 장남 조치는 친자 여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 조치는 칭기즈 칸의 첫 번째 부인 보르테가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후 태어났다고 한다. 칭기즈 칸은 조치를 자신의 장남으로 인정했지만, 조치의 혈통에 대한 논란은 그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황제 자리를 계승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진다.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빈번하게 혼인했기 때문에, 조치 가문의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 쪽 조상 중에 칭기즈 칸의 다른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4. 1. 주치의 혈통 논란
칭기즈 칸의 장남 조치는 형제 오고타이, 차카타이, 툴루이보다 더 많은 자손을 기록했지만, 그의 친자 여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 조치는 칭기즈 칸의 첫 번째 부인 보르테가 칠게르에게 납치되어 약 1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칭기즈 칸에게 보내졌다. 차카타이는 한 구절에서 조치를 "사생아"라고 언급했는데, 몽골어 용어의 실제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칭기즈 칸은 이에 대해 "어찌 감히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가? 그는 내 상속자 중 장남이 아니더냐? 다시는 그런 악담을 듣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칭기즈 칸은 "조치는 나의 장자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현대 역사가들은 조치의 친자 여부 논란이 그가 아버지와 결국 소원해진 이유이자 그의 후손들이 황제 자리를 계승하지 못한 이유라고 추측한다. 반면에 칭기즈 칸은 항상 조치를 장남으로 대했으며, 조치의 계승 실패는 조치가 일찍 사망하여 그의 후손들이 계승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은 칭기즈 칸의 후손들이 빈번하게 혼인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치 가문은 페르시아의 일 칸국 왕조에서 아내를 맞이했는데, 이 왕조의 시조는 칭기즈 칸의 아들인 툴루이의 아들 훌라구 칸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조치 가문 사람들은 어머니 쪽 조상 중에 칭기즈 칸의 다른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5. 현대의 칭기즈 칸 후손
현대 사회에서 칭기즈 칸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는 주로 DNA 증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2003년, Zerjal 연구팀은 아시아 남성 8%에게서 발견되는 특정 Y 염색체 하플로그룹(C*(xC3c))이 칭기즈 칸의 후손에게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5] 그러나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 하플로그룹은 몽골인 24%에게서 발견되며,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다른 튀르크계 국가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6] 미국 인간 유전학회는 이러한 연관성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그 연관성을 확실하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7]
2017년, 키아라 바티니와 마크 조블링은 칭기즈 칸이 하플로그룹 C와 관련 있다는 Zerjal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8] 1130~1250년경 몽골 고위층 무덤에서 발견된 고대 DNA는 하플로그룹 C가 아닌 R1b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
칭기즈 칸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 후보로 제안된 하플로그룹은 다음과 같다:[9]
하플로그룹 | 설명 |
---|---|
하플로그룹 C-M217 | |
하플로그룹 R1b | 2016년에 발표된 연구는 칭기즈 칸이 하플로그룹 R1b (R1b-M343)에 속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17] 1130~1250년경 몽골 타반 톨고이의 무덤에서 발견된 다섯 구의 시신은 황금 가족의 구성원일 가능성이 있으며, R1b-M343의 확산을 몽골 제국의 이전 영토와 연결했다. 이 시신들은 보르지긴 씨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18] |
5. 1. DNA 증거
Zerjal et al. (2003)은 아시아 지역 남성의 약 8%에게서 발견되는 Y 염색체 계통 하플로그룹 C*(xC3c)를 확인했으며, 이 계통이 칭기즈 칸의 남성 혈통 후손에 의해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했다.[5] 그러나 러시아 유전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몽골인의 24%가 이 하플로그룹을 가지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인접 튀르크 국가에서는 낮은 빈도로 나타난다고 한다.[6]미국 인간 유전학회 족보 및 족보 검사 태스크 포스(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 Ancestry and Ancestry Testing Task Force)는 이러한 연관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그 연관성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할 방법이 없다고 언급했다.[7]
2017년 인간 유전학에 발표된 검토 논문에서, 키아라 바티니와 마크 조블링은 칭기즈 칸이 하플로그룹 C와 관련이 있다는 Zerjal의 2003년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8] 1130~1250년경 몽골 고위층 무덤에서 발견된 고대 DNA 데이터는 하플로그룹 C가 아닌 R1b에 속하는 MSY 계통을 보여주었다.[8]
다음은 몇 년 동안 칭기즈 칸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 후보로 제안된 하플로그룹이다:[9]
하플로그룹 | 설명 |
---|---|
하플로그룹 C-M217 | |
하플로그룹 R1b | 2016년에 발표된 연구는 칭기즈 칸이 하플로그룹 R1b (R1b-M343)에 속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17] 1130~1250년경 몽골 타반 톨고이의 무덤에서 발견된 다섯 구의 시신은 황금 가족의 구성원일 가능성이 있으며, R1b-M343의 확산을 몽골 제국의 이전 영토와 연결했다. 이 시신들은 보르지긴 씨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18] |
참조
[1]
서적
The Mongols :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2]
문서
[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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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간행물
Li & Cribb 2014
https://books.google[...]
2016-04-04
[5]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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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논문
Distribution of the male lineages of Genghis Khan's descendants in northern Eurasian populations
https://www.research[...]
[7]
논문
Inferring Genetic Ancestry: Opportunities, Challenges, and Implications
2010-05-14
[8]
논문
Detecting past male-mediated expansions using the Y chromosome
https://link.spring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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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Molecular genealogy of Tusi Lu's family reveals their paternal relationship with Jochi, Genghis Khan's eldest son
https://www.nature.c[...]
2019-06-05
[10]
논문
The Y-chromosome C3* star-cluster attributed to Genghis Khan's descendants is present at high frequency in the Kerey clan from Kazakhstan
https://digitalcommo[...]
2012
[11]
논문
Whole-sequence analysis indicates that the y chromosome C2*-Star Cluster traces back to ordinary Mongols, rather than Genghis Khan
[12]
논문
Detecting past male-mediated expansions using the Y chromosome
https://figshare.com[...]
2017
[13]
논문
Whole-sequence analysis indicates that the Y chromosome C2*-Star Cluster traces back to ordinary Mongols, rather than Genghis Khan
2018-01-22
[14]
웹사이트
C-F1756 YTree
https://www.yfull.co[...]
[15]
논문
Molecular genealogy of Tusi Lu's family reveals their paternal relationship with Jochi, Genghis Khan's eldest son
[16]
논문
A commentary on molecular genealogy of Tusi Lu's family reveals their paternal relationship with Jochi, Genghis Khan's eldest son
[17]
논문
Molecular Genealogy of a Mongol Queen's Family and Her Possible Kinship with Genghis Khan
[18]
문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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